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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에는 앙리 르페브르의 저서 <리듬분석>을 바탕으로, 2015 9.17 ~ 11.15일까지 경기도 미술관에서 전시된 <리듬풍경> 기획전 작품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리듬이야말로 지금까지 철학적 체계가 결여하고 정치조직들이 

망각해 왔음에도 감성과 육체에 의해 체험되고 느껴지고, 만져진 바로 그 구체적 보편이 아니겠는가?"

앙리 르페브르 – 리듬 분석 中 –


어느 날, 우리 집 앞에 지하철이 개통되었다. 회사와의 거리는 절반으로, 출퇴근 시간은 30분으로 단축되었다. 지옥 같았던 출퇴근 시간도 이제 숨통이 트인다. 기상해서 씻고,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도착하고, 점심을 먹고, 퇴근을 하고, 집에 도착하던 일상화 된 리듬 사이에, 내 집 앞 지하철 개통은 새로운 리듬을 만들어 냈다. 길고 짧음, 빠름과 느림, 일상과 결탁한 나의 신체 리듬은 어느 순간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리듬과 궤적을 함께 하고 있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를 묘사할 때, ‘시간’과 ‘공간’은 매우 중요한 키워드 인 듯하다.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에서도 채플린은 컨베이어 벨트에서 끝없이 나오는 볼트를 조인다. 컨베이어 벨트는 공간을 점유하면서 동시에 시간을 수반한다. 그것은 컨베이어 벨트가 공간 속에서 일정한 시간의 리듬을 생성하면서 공장의 공정을 시스템화했기 때문이다. 이 시스템에서 이탈하면 볼트는 밀리고 사고가 터진다. 채플린에게 이 리듬은 이미 신체에 내재된 듯, 휴식 시간에도 볼트를 조이는 행동은 우스꽝스럽게 반복된다. 자본주의 시스템과 신체의 절합, 그것은 시스템과 신체의 유기성을 드러낸다.


    <찰린 채플린의 '모던 타임즈' 필름 스틸>

시간과 공간, 앙리 르페브르는 바로 위와 같은 방식으로 일상을 바라봤다. 그 방법은 그의 마지막 저서 <리듬분석>에서 구체적으로 나와 있다. 앙리 르페브르는 ‘리듬’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도시 일상을 분석한다. 도시의 삶은 개인의 정체성과 도시와 맺는 관계에 따라서 리듬이 만들어진다. 예를 들어, 계급, 인종, 성별, 직업 등에 따라서 개인이 도시를 누비는 패턴과 리듬은 다르다. 학생이라면 대중교통과 학교가 만든 효율적인 리듬에 따라서 패턴화된다. 주부라면 남편과 자녀의 출근과 등교, 반찬 거리를 싸게 살 수 있는 마트의 시간대, 그리고 드라마 시청 시간에 따라서 도시 공간 속 리듬은 달라진다. 이러한 수 많은 개인들의 정체성은 복잡한 도시의 그물망과 관계를 맺고 리듬을 생성한다. 도시는 어느 순간, 이러한 리듬들의 공공의 장이 된다. 여기서 주목할 점, 왜 우리의 리듬은 도시공간에 종속되는가? 앙리 르페브르의 자본주의 일상 비판은 바로 이 물음에서 시작한다. 


"우리는 우선 차이와 반복의 매개를 찾아내야 한다. 

그리고 리듬이라는 개념 속에 이미 내포된 차이와 반복의 관계를 

실재의 리듬 속에서 발견하고 인식해야 한다."

앙리 르페브르 – 리듬 분석 中 –


<요한나 빌링의 '풀 하임 세션'>

이 작품은 여자가 쓸어져 가는 창고에서 즉흥 피아노 연주를 하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 연주는 어디론가 향하는 자동차 행렬의 배경음악으로 깔린다. 맨 앞차 고장으로 이 행렬의 움직임은 잠시 멈추게 되고 그 사이 사람들은 잠을 자거나 책을 보거나 경치를 감상하는 등, 일상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들어온 새로운 시간의 공간을 저마다의 취향에 맞게 활용한다. 청보리밭의 지평선, 일몰 시간대의 풍경과 일렬로 쭉 늘어선 빼곡한 차의 답답한 이미지의 충돌, 그리고 무심하게 흘러나오는 피아노 연주는 의미해석이 아닌, 휴식의 리듬을 부추긴다.


이렇게 리듬이 고착화 될 수록, 일상은 자본주의 패러다임에 종속된 지각 체계를 형성한다. 체계는 경계를 만들고 리듬은 ‘나’와 공간 사이의 강도를 세게 한다. 일상의 리듬에 위배되는 낯선 리듬의 침투는 불편함으로 변한다. 친구 집에 가는 길에 지름길이 있다는 것을 알지라도 그것이 나에게 익숙지 않은 리듬을 만들어 낸다면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동안 갔던 길을 따라서 이동한다. 설령 그것이 일상 속에서 더욱 더 부드럽고 매끄러운 새 리듬으로 안내할지라도 이미 고착화된 리듬을 깨지 못한다. 나와 관계 맺는 도시의 리듬은 어느 순간부터, 도시와 ‘나’ 사이의 고착화된 감성과 지각체계로 연결된다. 앙리 르페브르가 리듬 분석을 시도한 이유 또한, 자본주의 도시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통해, 개인에게 부과하는 자본주의의 구조적, 경제적 감성체계을 진단하기 위해서다. 의사는 환자의 몸에 청진기로 심장박동의 리듬을 세면서 몸의 문제를 확인한다. 리듬 분석은 자본주의 문제를 드러내는 분석 방법론이다. 도시 속에서 리듬은 심장박동처럼 보편적인 언어를 획득하지만 개인에 따라서 형성하는 체계와 처방전은 다르다.


<조혜정/김숙현 작가의 '감정의 시대: 서비스 노동의 관계 미학'> 

이 작품은 감정 노동자의 몸짓을 통해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왜곡된 교환관계를 꼬집어 낸다. 감정 노동자들의 일터에서 벌어지는 코드화된 제스처는 자본주의 도시 일상과 신체과 결탁한 또 다른 리듬을 형성한다. 개인의 직업군에 따라 달라지는 리듬의 양태를 분석함으로서 자본주의가 내재한 구조적 모순을 돌이켜 본다.


‘리듬’이 도시의 보편적 언어의 흐름을 형성한다면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리듬이 만들어내는 경계다. 주파수 대역폭에 따라서 서로 다른 통신이 연결되듯이 리듬의 대역은 개인의 직업, 역할, 지위, 장소에 따라 다르게 형성된다. 리듬의 체계는 개인의 존재에 대한 자명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개인이 일상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활용하는 방법과 형식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관계에서 누군가는 많고 누군가는 적은 대역폭의 리듬을 생성하면서 도시 리듬의 체계는 종속적인 시스템을 띤다. 이러한 보편적인 도시의 리듬을 공유하는 방식과 양의 차이는 점차 얼마나 많은 리듬을 도시 속에서 구축하는가를 통해서 개인의 정체성 혹은 시스템의 상위에 있는가와 연결되기도 한다.



<양정욱 작가의 '서서 일하는 사람들'>

이 작품은 키네틱 조각 작품으로, 일상 속에서 반복되는 여러 직업군의 사람들의 움직임을 압축하여 담아냈다. 위, 아래, 좌우 일정한 주기에 따라 움직이는 평범한 일상의 제스처는 삐그덕 거리는 나무 조각의 움직임 속에서 건조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 노동의 움직임을 구조화하여 보여준다. 


예를 들어, 도시 속 노숙자와 대기업 CEO의 리듬은 체계와 영향력 그리고 영토의 크기부터 큰 차이가 있다. CEO는 도시 리듬의 주요 변곡점을 집어내고 리듬을 만들어낸다. 그것은 하위 리듬 폭에 영향력을 행세한다. 하지만 노숙자는 공간을 점유하는 방식과 리듬이 단순하고 도시 변두리에서 흐름을 생성하여 그 외에 리듬에 별다른 영향력을 주지 못한다. 그들의 리듬은 도시 속에서 무의미한 존재로 떠돈다. 이러한 리듬은 점차 개인과 감성체계를 결정짓는 정치적 영역 속에 편입된다.

앙리 르페브르가 이 책을 통해서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개인이 ‘혁명적인 변화의 리듬’을 만들어 내는 것. 다시 말해,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고 체험할 수 있는 계기의 순간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이 말은 종속된 리듬의 체계에서 벗어나 끝없이 분열의 리듬을 생성하는 것이다. 그것의 도시의 고착화된 시스템 속에서 파열의 리듬을 만드는 것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파열의 리듬은 바로 제도와 사회적 구성원, 도시의 감수성을 분리하고 연결하는 분열선이자 경계다. 경계선은 항상 유동적이어서 편성과 재편성을 이룬다. 이 속에서 변혁의 리듬이 창발하고 도시는 새롭게 재구성되면서 일상은 보다 유체화된다. 


<권용주 작가의 '연경'>

이 작품은 방직제조 공장으로 반복되는 두 개의 노동 시스템을 비교한다. 작가는 방직공장에서 젊은 시절 노동을 한 자신의 어머니를 인터뷰함과 동시에, 실크회사에서 일하는 태국 노동자의 삶을 병치시키면서 자본주의가 반복적으로 개인에게 부과하는 삶의 구조적 리듬을 관찰한다.  


리듬의 경계, 그것은 끝없이 지워지고 새로 구축됨을 반복하면서 자본주의 일상이 내재화하는 리듬에서 어긋나기를 종용해야 한다. 앙리 르페브르에게 리듬은 경계 지어진 구조 속에서 새로운 구조의 흐름으로 재편성하고 경계를 허무는 공공의 영역에서 그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에게 ‘리듬’은 ‘구체적인 보편’을 획득할 수 있는 주요 도구이자, 우리 안에 내재한 감성 체계를 재편성할 수 있는 무기로서의 낙관적이면서 보편적인 개념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상에서 새로운 리듬을 창조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미국의 작가 폴오스터는 <겨울 일기>라는 그의 저서 말미에 인상적인 글을 남긴다. 어쩌면 이 글이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의 리듬을 변혁시키기 위한 단초가 되지 않을까?


 <당신이 하는 일을 하기 위하여 걸을 필요가 있다. 걷다 보면 단어들이 떠오르고, 머릿속에서 그것들을 쓰면서 단어들의 리듬을 들을 수 있다. 한 발 앞으로, 다른 발을 앞으로 내밀면서 심장이 이중으로 두근두근 띈다. 두 개의 눈, 두 개의 귀, 두 개의 팔, 두 개의 발, 이것 다음에 저것. 저것 다음에 또 이것. 글쓰기는 육체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몸의 음악이다.단어들이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때로는 글쓰기도 의미를 가질 수 있다. 단어들의 음악은 의미가 시작하는 곳이다. 당신은 단어들을 쓰기 위해 책상 앞에 앉지만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걷고 있다. 언제나 걷고 있다. 당신이 듣고 있는 것은 당신의 심장의 리듬, 심장의 박동이다. 만델스탐은 이렇게 말한다. 단테가 신곡을 쓰면서 닳아 없앤 신발이 몇 켤레일지 궁금하다. 춤보다 작은 형태로서 글쓰기.>


글. 임태환[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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