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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으로 이해한 생생한 차이 이야기 : 예술가와 디자이너 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6. 5. 11. 17:40


아마도 파리에서는 디자인을 순수 예술fine arts과 응용 미술applied arts의 경계에 있는 예술적개념의 한 형식(스타일)으로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가구를 마치 하나의 조각품처럼 바라보고, 디자인을 스타일링styling으로, 논리적 설계를 미학적 장식이나 서정적 영감을 받은 형태로 잘못 생각한(혼동한) 것이지요. 이러한 불명료한 의식 때문에, 예술가가 작업한 예술적디자인이나 디자인적이지 않은anti-design 오브제들, 그리고 기술과 관계없이 비현실적인 환상으로 만들어진 제품의 제안들도 쉽게 통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책 『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서문 중에서 세계 예술 시장의 중심지였던 파리에서 1900년대 초중반 산업분야에서의 디자인 개념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혼란을 겪고 있는 상황을 묘사한 내용이다. 이 때로부터 약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흘러간 시점에서 이 책을 펼쳐 든 나는 생각했다. 위에서 설명하고 있는 예술과 디자인을 둘러싼 혼동에 대해 읽어본 오늘날의 우리는 이 둘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는가 

원서는 1971년에 발간되어, 당시에도 여전히 혼란을 겪고 있는 예술과 디자인, 그리고 예술가와 디자이너 간 차이를 이해하기 위한 객관적인 수단을 찾기 위해 논리적 구조와 체계를 분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분석적이지만 딱딱하지 않다. 저자는 독특한 배경을 가지고 독자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준다.『예술가와 디자이너』의 저자 브루노 무나리Bruno Munari(1907~1998)는 그의 조국 이탈리아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명성을 얻었던 예술가이자 디자이너이다. 청년 시절 미술과 조각 등 순수 예술 분야에서 활동했고, 중년이 된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디자이너로 활약하면서 오늘날 이탈리아 디자인의 발전에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예술가와 디자이너로서의 삶을 각각 비등하게 살아보고 나서 저술한 책 속 이야기에는 저자의 삶을 통한 생생한 체험의 결과가 녹아있다 

저자는 전통적인 기법을 고집하는 예술가들과 새로운 기법을 모색하는 예술가들이 다른 길을 걷게 되면서, 산업 분야에 쓰이는 재료와 기술을 받아들여 일단의 그룹으로 일하는 새로운 형태의 직업인이 등장하게 된 시기를 경험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를 거쳐 두 갈래로 나누어진 예술가와 디자이너 각각의 활동 사이에 어떠한 유사성과 상이성이 존재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이야기를 명징하게 이끌고 가기 위해 주관적인 이상을 가진 낭만적 스타일의 순수 예술가와, 과다할 정도로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객관적인 디자이너를 등장시켜 양 극단의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비교하면서 그 차이를 설명하고 있다. 환상으로 일하는 예술가와 창의성으로 일하는 디자이너, 자신 또는 그를 이해할 수 있는 엘리트 집단을 위해 일하는 예술가와 공동체 및 대중을 위해 일하는 디자이너,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일하는 예술가와 모든 문제점들에 대해 최상의 해결책을 제시하는 논리적 방식으로 일하는 디자이너, 자신의 손으로 직접 작업하는 예술가와 작업을 손수하지 않고 공동으로 하는 디자이너, 작업상의 비밀을 유지하는 예술가와 자신이 사용한 도구나 재료, 기법 등 각종 결과를 공개하고 유포시키는 디자이너 등 상당히 다른 예술가와 디자이너를 등장시킨다. 다소 극단적인 비교이자, 디자이너를 비하하는 예술가 또는 예술가적 방식으로 디자인을 하려고 하는 예술가를 비판하는 서술이 곳곳에 눈에 띈다. 현재 시점에서, 특히 둘 사이의 경계에 가까이 위치한 보다 다양한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에게는 공감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지만 저자는 시대가 변화하면서 각각의 속성이 고정되지 않고 변화함을 전제하고 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저자는 결국 진정한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대한 자신의 철학과 디자인관을 피력하고 있다. 동시에 예술과 사회, 예술의 기능, 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통해 예술의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이미지와 여백이 많은 얇은 책 속에 저자의 에너지가 농축된 이야기들을 엮어, 예술가와 디자이너뿐만 아니라 예술과 디자인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각각의 역할에 대해 곱씹으며 읽고 싶도록 만드는 책이다.


. 김아름 [앨리스온 에디터]


저자 브루노 무나리 | 역자 양영완 | 예술가와 디자이너 | 디자인하우스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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