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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이 통찰로, 통찰이 계산으로 수렴될 때

: 알파고(AlphaGo)가 제기한 포스트휴먼에 대한 질문


   최근 대한민국의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과 구글의 자회사이자 영국의 인공지능(AI) 프로그램 개발 회사인 딥 마인드(Deep Mind)의 알파고(AlphaGo)의 승부 이야기가 뜨거운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물론, 이러한 관심은 바둑 자체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최신 기술의 향방이나 바둑에 전혀 관심 없는 이들에게도 이들의 승부는 단순히 바둑 승부가 아닌 여러 가지 측면에서 논의가 끊이지 않는 화제 거리를 제공해 주었는데, 이는 우리가 흔히 SF영화를 통해 경험해왔던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상에 관한 현실의 리포트이자 인간과 비인간을 구별해 온 인간 고유의 직관 혹은 통찰 능력에 관한 물음표를 제공해 준 사건이었다.

결과적으로 승부는 알파고의 4:1 승리로 마무리되었다. 5번의 대국 중, 인간이 1승만을 거두었다. 이세돌 기사는 3국 이후, 3번의 패배를 인정하며 인간이 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세돌)의 패배라며 겸양의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시합 전 이세돌 기사의 승리를 장담했던 대부분의 언론과 전문가들의 예측은 5국의 승부임에도 불구하고 첫 번째 시합이 종료된 후, 대부분 충격과 당혹감을 감추지 못해 아연 질색하는 모습들로 바뀌었다. 물론, 이러한 예측들이 알파고의 이전 승부의 기록을 충분히 검토한 후에 나온 것이 아니기에 다소 섣부른 감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각주:1] 만약 알파고의 대전 기록 및 기보 등을 살펴보았다 하더라도 알파고의 기량을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결국 우리는 인간을 기준으로 기계(프로그램)의 상승세와 진폭을 예측할 수 밖에 없는데, 알파고는 결국 인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실력 향상을 위한 프로세스를 전개하기 때문이다.[각주:2]

   그러나 이렇듯 현실적인 이해와 접근이 본질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사항이 있다. 인간과 기계, 직관과 계산, 감성과 이성 등의 구분이 그것이다. 금번의 사건 역시, 이러한 구도에서 보자면 매우 흥미진진한 인간과 기계의 진영 논리를 근간에 둔 이벤트이자, ‘기계(기술)가 인간을 초월할 수 있을 것인가?’ 라는 도전적인 문제를 야기하는 사건이다. 이러한 전개는 어떻게 보면 당연하고 현실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과 전제는 생각보다 깊은 기계에 대한 몰이해 및 인간의 가능성의 확장을 저해시킨다는 측면을 수반한다. 알파고의 승리 이후, 세계는 구글의 인공지능 기술, 딥 마인드 테크놀로지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접근들은 위의 전제를 기사의 출발점으로 삼는 듯 하다. 최근 스마트 미디어 리뷰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한 블로그에서는 이세돌 기사의 4국 승리 이후 다음과 같은 제목의 기사를 개제했다. 



“직관이 마침내 정교한 장치를 무찔렀다 Institution beats ingenuity at last”[각주:3]


이는 이번 승부가 인간과 기계, 직관과 계산(장치)의 대결이라는 점을 매우 강하게 전제한다. 물론, 알파고는 바둑이라는 게임의 다양한 포석을 예측하고 승부의 확률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이다. 따라서 알파고가 사용하는 프로그램이 어떠한 프로세스를 거쳐 승부의 수를 만들어가는가를 추적하는 것은 흥미로운 접근이지만, 이러한 기술적 측면을 분석하는 것만큼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지점은 그러한 계산과 대비되는 인간 고유의 직관이라는 영역이다.

   직관(直觀, intuition)은 사유(思惟) 혹은 추리(推理)와 대립되는 인식능력이나 작용으로서 사유가 반성(反省)과 분석(分析)을 통해 사태의 일면을 파악하는 데 반해, 직관은 순간 속에서 사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나 분석처럼 명확하지 못하며, 직관하는 자에게는 명확하게 인식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을 타인에게 전달할 수 없다.[각주:4] 이러한 직관의 특성 때문에, 직관은 두 가지의 구분으로 나뉘는데, 경험적 직관과 본질적 직관이 그것이다. 만약 본질적 직관이 경험에 전혀 의존하지 않고 사실을 파악하는 능력이라면, 경험적 직관은 우리의 사유가 의존하는 최고의 인식능력이다. 바둑을 비롯하여 다양한 인간 활동 속에 이러한 직관 능력은 자연스럽게 수반된다. 만약, 어떤 바둑 기사가 자신의 한 수를 착수하기 전에 특정 직관의 순간을 경험했다고 가정해보자. 그의 직관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 자신 또한 그 출처를 정확히 모르는 제 3의 인식이 직관이 아니던가? 그러나 사실 그렇지 않다. 다른 경우에도 그렇겠지만, 바둑의 경우 착수하려는 이에게 드는 직관은 결국 그의 경험에 기초한다. 그의 경험은 스스로의 기억 프로세스를 거쳐 하나의 판단을 만들어낸다.[각주:5] 물론 기억이라는 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기억의 과정은 직관의 성립조건의 전제처럼 순간 속에서 파악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직관과 기억의 차이점은 결국 속도의 문제로 귀결될 수 있는가?

   기계들의 자기 진화를 주장하는 질베르트 시몽동(Gibert Simondon)은 인간과 기계간 기억 능력의 본질적인 차이를 기계의 선행 기억의 불필요성에서 찾는다. (반면, 인간은 형태들과 도식들의 총체인 기억을 자신의 형태들을 개별기억에 연결함으로써 받아들인다) 또한 그러한 차이점으로부터 인간의 기억이 무질서한 요소들을 고정시키는 것에 관해서 상당히 무능력함을 밝힌다.[각주:6] 경험에 의거한 직관은 이렇듯 인간과 기계의 차이를 드러낸다. 다만, 본질적 직관의 경우는 이와는 다르게 발생한다. 칸트(Immanuel Kant)는 대상에 직접적으로 관계하는 표상을 직관(Anschauung)이라 지칭하며,[각주:7] “개념없는 직관은 맹목적이며, 내용 없는 사유는 공허”하다고 언급한다. 그는 직관을 외적 직관과 내적 직관(혹은 자기 직관)으로 구분하며, 각각이 형식으로서 공간과 시간을 취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각주:8] 그러한 측면에서보자면 앞서의 차이점으로 언급된 속도의 문제는 결국 시간의 차원에 귀속되기 때문에, 그들의 직관을 내적 직관으로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측면은 ‘경험적인 근간을 지니는 직관이 결국 시간이라는 틀 속에서 경우의 수를 짐작해보는 계산의 영역과 근본적으로 어떠한 점에서 구별되는가?’라는 의문을 들게 만든다. 한편, <물질과 기억>의 저자 베르그송(Henry Bergson)은 조금 다른 측면에서 직관을 언급한다. 그는 직관을 일종의 지적 공감으로 인식한다. 그는 우리가 관조하는 대상이 갖는 성질을 내재적인 것과 외재적인 것으로 분류하며, 일반적인 우리의 분석이 외재적 성질에 관한 모종의 분류라면 결코 대상에 대한 섬세한 분석은 불가능하며 이에 직접 그 대상의 입장이 되어보는 공감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다만 그의 이러한 접근이 과학적 실증주의의 차원이 아닌 철학적 사색에 가깝다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따라서 베르그송의 이러한 접근은 직관이 대상의 외재적 특성만을 포착하는 것이 아닌, 내재적 특성 혹은 규칙에 의거해서 부여되는 차원의 것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렇듯 대상의 내적 규칙에 대한 파악과 경험적 측면에서 발생하는 것이 직관이라면, 직관은 계산 영역과의 접점으로 다시금 회귀한다. 계산은 개체의 분별을 전제한 후, 각 개체들이 갖는 상관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헤아림일 수 있다.

   그렇게 보자면 인간의 직관을 기계(기술)의 특성과는 차별화되는 그 무엇으로 산정하는 것보다는 ‘계산’과 ‘분석’ 능력으로 상징되는 기계(기술)의 영역이 인간의 직관과 결국 어떠한 지점에서 수렴할 것인지 접근해보아야 한다. 결국, 인간과 기계는 생명공학과 정보기술의 발달 속에서 포스트 휴머니즘의 논의 속에서 조우하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발표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던 ‘사이보그 선언문 A Manifesto for Cyborgs’에서 도나 해러웨이(Donna Haraway)는 “20세기 후반에 이른 우리의 시대, 이 신화적 시대에 우리 모두는 키메라이자, 기계와 유기체가 이론화되고 가공되어진 혼합물,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사이보그”라고 선언한다.[각주:9] 직관이 기계의 능력이 되고, 계산을 통해 인간을 측정하는 미래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금번의 대국을 통해 우리가 제기해야 하는 질문은 인공 지능이 가져올 기술적 특성에 관한 것이 아닌, 오랜 기간 사유되어온 인간 존재에 대한 물음이다. 스티글러(Bernard Stiegler)의 지적처럼, 기술은 인간에게 보철적 존재로서 파악되는 결코 우리와 분리될 수 없는 융합적 존재이기 때문이다.[각주:10]



글. 유원준 (앨리스온 편집장)


  1. 알파고는 2015년 10월 판 후이(樊麾 Fan Hui) 2단과의 5번기에서 모두 승리한 이후, 그 후의 경기 데이터를 공개하지 않았다. [본문으로]
  2. 판 후이 2단과의 작년 10월 대국 이후, 2016년 1월 세계적인 과학 전문지 네이처에 알파고의 원리에 관한 논문이 개제되었다. Mastering the game of Go with deep neural networks and tree search, D Silver, A Huang, CJ Maddison, A Guez, L Sifre… - Nature, 2016 [본문으로]
  3. http://www.theverge.com/2016/3/13/11184328/alphago-deepmind-go-match-4-result [본문으로]
  4. 직관 [直觀, intuition] 교육학용어사전, 1995. 6. 29 [본문으로]
  5. 베르그송은 이를 ‘이미지-기억(souvenir-image)’이라고 하며, 이 기억이야말로 현재와 과거 사이를 왕복 운동하면서 현재 상황의 요구에 맞게 유용한 과거의 기억들을 수축하는 현실적 의식의 작동 방식을 잘 보여준다고 설명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Henry Bergson, 김재희, 『물질과 기억』, 106-107p [본문으로]
  6. 질베르트 시몽동, 김재희 역,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 177p [본문으로]
  7. 칸트는 직접적 표상은 유일한 대상(개체)에 관계하는 개별적 표상이며, 많은 대상에 간접적으로 (징표를 매개로하여) 관계하는 보편적 표상으로서의 개념과 대립한다고 주장한다. [본문으로]
  8. 칸트는 직관을 내적직관과 외적직관으로 구분하며 내적 직관을 통해 모든 외적 직관을 파악한다고 언급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다음을 참조하라. P. Cummins, Kant on Inner and Outer Intuition, Nous Ⅱ, 1968. [본문으로]
  9. Haraway, Donna. "A Cyborg Manifesto: Science, Technology, and Socialist-Feminism in the Late Twentieth Century". Simians, Cyborgs, and Women. New York: Routledge, 1991.149p [본문으로]
  10. Bernard Stiegler, Techniques and Time, Vol.1 (1994/1998), pp. 152~153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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