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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에는 작품설명 태그가 벽면에 붙어 있지 않다. 작품을 알고 싶으면 팜플렛을 뒤적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개미만한 팜플렛 글씨를 보는 건 최악이다. 작품설명은 고사하고 제목 태그 조차 없어, 팜플렛 안내동선과 내가 지나온 길을 일일이 대조해야, 내가 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다른 전시에 다 있는 제목태그 하나 붙이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전시 담당자한테 묻고 싶기까지 하다. 차라리 팜플렛을 덮어버리고 오롯이 작품만을 감상하고자 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전히, 팜플렛을 뒤적이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나를 꽤 곤란하게 한 전시 팜플렛> 



사실 빛과 사운드라는 이 전시 키워드는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나에게 예술이 주는 쾌감은 바로 규정된 경계를 허물어 버릴 때다. 시각과 청각, 서로 다른 감각체계가 <투명성>의 영역으로 용해되는 과정을 경험하는 것은 기대해 볼만하지 않는가? <Through the listening glass>는 바로 그런 재미있는 구석을 다루고 있다.



얀 오를라레의 <72 임펄스>는 기존의 인터렉티브 아트처럼 감상자의 터치로 작품이 변형된다. 더 특별한 점이 있다면, 다양한 플레이 모드로 빛의 파장을 다채롭게 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사운드는 감상자의 조정에 따라 변화한다. 사운드는 빛의 움직임에 맞춰 비트를 만든다. 감상자는 어떤 모드로 플레이 하냐에 따라서 빛을 통한 사운드 조절이 가능하다. 이 작품이 더 큰 효과를 낸 지점은 중첩되어 있는 6개의 프레임이다. 첫 번째 프레임에서 여섯 번째 프레임으로 빛이 퍼져 나갈 때, 자연스럽게 소실점을 만들어, 빛이 움직이는 데 이질감 없는 내러티브를 만들었다. 사운드는 어두운 공간 안에서 퍼져 나가는 빛과 함께 묵직하게 공간화하는 역할을 한다.



<Drop the beat, 어둠 속에서 빛과 함께 퍼지는 사운드>



피에를 알랭 제프레노의 <Greensounds> 전시장 벽면에는 녹색빛 자연 풍경이 투사되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로 공간을 감싼다. 이 작품은 어플을 다운 받아 감상할 수 있는 사운드 인터렉티브 아트다. 어플로 소리의 크기와 속도를 조절할 수 있다. 이 작품이 생경한 지점은 자연의 소리를 디지털 기기를 활용하여 감상한다는 점이다. 굳이 구글플레이에서 어플을 다운 받고 실행하는 과정은 전시장이 투과하는 자연풍경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잘 정제된 디지털 풍경과 형식들에서 마주치는 것은 오히려 ‘비어있음’이다. 

<Greensounds>와 같은 인터랙티브 아트가 제공하는 체험이 오히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체험이 되는 지점이 어쩌면 이러한 디지털기술에 경도 되면서 부터다. 이러한 기술이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는 데 도움 주기도 한다. 하지만 어플로 사운드를 조절하여 관객의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이, 라디오 볼륨 조절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는 지 한번 자문해봐야 할 듯하다.    



<녹색 빛깔과 자연의 소리로 가득 메운 전시장 안.>



오히려, 아래층에 전시된 드니 방장의 <찰나와 공간>은 층을 가득 메우는 크리스탈 사운드로 전시 공간 분위기를 압도했다. 천장에 매달려 진동하는 유리판에 쓰여진 황금색 악보는 사운드와 기묘하게 어울렸다. 크리스탈 사운드는 유리악보와 어우러지면서 시각적으로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특히 사운드는 구역 별로 나누진 작품들 사이의 벽을 깨고 상호침투 감상의 통로로 역할을 이어갔다. 이 전시에서 가장 사운드를 효과적으로 사용한 지점이 아닌가 싶다. 



  

<아래층을 가득 메우는 은은한 크리스탈 사운드, 직접 가서 들어보시죠>



빛이 산란하듯 사운드가 퍼져나가는 시각과 청각의 움직임은 흥미롭다. 그러나 이 전시에서 바로 그러한 효과를 관객에게 제대로 보여주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불투명한 빛, 투명한 사운드, 두 가지 이질적 속성을 제대로 용해하여 관객에게 전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질성이 있음에도 빛과 사운드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퍼짐>의 속성이다. 그 속성은 빛과 사운드가 서로가 서로에게 공명하기 좋은 위치를 만든다. 바로 그러한 지점을 포착하여 <투명성>을 관객에게 환기 시켜줬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흔히, 관객은 작품을 감상하면서 의미를 찾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관성이 있다. 시각적 요소는 바로 그러한 의미 부여의 실마리로서의 역할을 한다. 즉, ‘이 알 수 없는 소리의 의미는 저기 내 눈 앞에 보이는 비주얼에서 찾을 수 있을 거야’와 같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람은 오히려 머리를 더 아프게 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빛과 시각 이미지로 구성된 이 전시에서 작품설명을 담은 구태의연한 활자태그가 꽤나 이질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오히려 태그가 작품감상을 방해할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이 전시는 생각한 것일지도 모른다. 굳이 관객에게 의미를 전달하기 보다, 작품 그 자체가 보여주는 효과로서 의미를 전달하고 싶었다면 말이다.

 


* 본 글은 토탈미술관에서 08.25-10.23까지 진행예정인 Through the listening glass를 보고 쓴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글. 임태환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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