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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6년 6월 드디어 <워크래프트> 영화가 개봉했다. 오랫동안 블리자드가 공을 들였던 만큼 사람들의 기대는 상당히 높았다. 사람들이 기대를 했던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블리자드는 게임도 잘 만들지만, 시네마틱 영상을 잘 뽑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게임영상을 언급하면 언제나 블리자드가 제작한 영상들은 반드시 등장한다. 영화처럼 길지는 않지만 단편영화에 준하는 완성도를 언제나 자랑했다. 그런 곳에서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으니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이후 ‘와우’로 표기)는 게임계의 밀리언셀러다. 전성기 시절은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즐겼으며 2014년 기준 누적 사용자 수가 1억을 육박한다. 일정한 인구, (가상의) 영토, 공유하는 문화 등, 과히 국가에 준하는 공동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곳에서 살았던 수많은 아제로스의 주민들이 자신만의 ‘역사’를 원했던 것은 당연하지 않았을까. 


2. 물론, 기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게임을 원작으로 했던 영화는 많았지만, 대부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게임과 영화는 궁합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멀리는 <파이널 판타지>(2001)부터 수많은 게임의 명작들이 영화의 망작이 된 경우는 너무도 많았고, 흔한 악평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진 영화도 꽤 많다. 그래서 이번에 만큼은 게임영화의 한계를 넘을 수 있지 않을까, 사람들은 더욱더 기대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었을 때 비평가와 관객들의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비평가들은 지금까지 게임영화처럼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으며, 관객들도 비슷한 평가를 내렸다. 스펙터클 영화로 그저 그렇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다만, 한 계층만은 예외였다. 바로 와우 사용자들이다. 현재 게임을 즐겁게 하는 사람도 영화관을 찾았고, 과거에 필드를 달렸던 기억을 추억하며 영화를 관람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들은 스크린에 등장하는 <와우> 캐릭터의 말과 손짓 하나하나에 열광하며 몰입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영화와 게임에 등장하는 이른바 유명 캐릭터로 분장하고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관람만 하러 오는 사람과 태도가 달랐다. 이른바 ‘코스튬 플레이’를 직접 하면서, 마치 작은 축제를 벌이는 듯 보였다. 그것은 관람하는 동시에 연희하는 행태였다. 이러한 면모는 영화를 영화로 생각하는 비평가와 일반관객과 굉장히 다른 태도였다. 


3. 비슷한 양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른바 <록키호러픽쳐쇼>로 대표되는 컬트영화에서 일찍이 발생했던 현상이다. 관객들은 영화에 의존하되 영화와 무관하게 자신만의 의식을 치르듯 놀이했다. 이 색다른 현상이 일어난 이후 몇 가지 흥미로운 분석이 따라 나왔다. 첫째 영화관은 억압적인 이데올로기장치라는 것. 영화관은 이데올로기장치며, 영화의 이데올로기를 고스란히 수용하고 동일시하는 기제를 작동시킨다는 것이다. 이것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이론에 따른 분석이었다. 둘째 이러한 유희적인 태도는 기존의 수동적인 감상태도를 통해서 분석하기 힘들며 새로운 개념이 요청된다는 것. 그저 주는 대로 받는 게 당연했지만, 한 번 틀을 깨니까 당연한 게 아니게 된 것이다. ‘관객성spectatorship’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개념이었고, 새로운 주체의 모델을 탐색했던 사람들은 여기서 또 다른 실마리를 얻지 않을까 생각했다. 이데올로기의 호명에 응하지 않는 주체를 말이다. 그렇다면, <전쟁의 서막>의 색다른 관람형태도 컬트영화의 유희적 태도를 반복한 것이 아닐까. 


4.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존재한다. 유희를 끌어낸 동기와 원천이 다르기 때문이다. 컬트영화가 억압적인 영화관-장치를 유희적으로 위반했지만, <전쟁의 서막>은 그런 게 전혀 없이 유희만 존재한다. 그들은 영화관의 억압적인 기제에 저항하지 않으며, 적극적으로 순응한 채 영화의 서사와 캐릭터에 몰입한다. 그들이 게임의 어느 캐릭터로 분했다면, 그것은 몰입과 동일시를 강화하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영화와 게임의 차이가 한몫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에 비교하면, 생생함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게임의 주인공이 되어 게임을 할 때는 전능한 사용자의 손길에 좌우되는 인형 같은 존재고, 중요한 NPC가 등장한다고 해도 퀘스트를 풀어가는 다리거나 레이드의 최종보스 형태로 존재하는 게 고작이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진행되는 서사의 방식도 몰입을 방해하기는 비슷하다. 극단적인 형태이긴 하나, 액션 RPG <디아블로> 연작을 생각해 보라. 여기서 서사는 단 한 번 존재하며, 이조차 스펙터클한 ‘액션’ 때문에 서사적 흐름은 단절되는 경우가 발생한다. 예를 들어, 몹들을 타격할 때 사용자의 게임 ‘행위’ 자체가 강력한 몰입감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와우>처럼 아무리 거대한 서사를 축적한 경우라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전체적으로 서사의 흐름을 조율하며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사냥이든 피비피PvP든 이벤트든 중간에 끊임없이 발생하는 게임행위 때문에 서사적 몰입은 끊어진다. 영화처럼 소설처럼 연속적인 흐름을 이어갈 수 없는 것이다. 


5. 영화처럼 소설처럼 연속적으로 서사를 구축하지 못하는 것은 게임의 단점일까. 사실, 이 측면은 그 동안 게임의 특징으로 거론되는 경우가 많았다. 사용자가 직접 개입해서 서사를 진행하고 완성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메시스’에 대립하는 ‘디에게시스diegesis’를 게임의 속성으로 언급할 때가 많았다. 한마디로 사용자가 수행하는 서사라는 것이다. 실제로 오랫동안 서사들이 축적되고 변화된 <와우>는 ‘부정적인’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새로운 확장팩이 나올 때마다 조금씩 초기 설정이 바뀌는 바람에 오류가 자주 나타난다. 이 때문에 게임의 서사는 (잘 맞지 않는) 퍼즐을 맞추는 것처럼 보인다. 공간적 구축의 형태를 띠는 것이다. 하지만 역으로 그래서 완성된 서사를 욕망하는 것이 아닐까. 스스로 주인공으로 분하며 서사를 진행하지만, 빈 틈을 마주하면서 ‘완성’을 하고픈 욕망이 생긴다고 볼 수는 없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앞서 제기한 두 가지 욕망을 이해할 수 있다. 첫째 내가 조종하는 인형이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는) 캐릭터를 보고 싶었던 것, 둘째 <와우>에서 살았던 수많은 아제로스의 주민들이 자신만의 ‘역사’를 원했던 것. 결국 미메시스적 욕망의 실현이며, 이러한 과정에서 아이러니하게도 수행적 서사 디에게시스를 보완하는 셈이다.


김상우(앨리스온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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