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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트센터나비는 작년 11월 15일부터 올 1월  20일까지 <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AI와 휴머니티 Why Future Still Needs Us: AI and Humanity > 라는 제목의 전시를 진행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외 아티스트, 개발자, 프로그래머 등이 참여했고 구글의 딥 드림(Deep Dream), IBM 왓슨(Watson), 인공지능 알고리즘 마젠타(Magenta) 등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덕션을 볼 수 있는 자리였다. 전시 외에도 AI 컨퍼런스, 해커톤 등 다각도로 인공지능에 접근할 수 있는 연계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되었다. 전시의 제목 '인간이 아직도 필요한 이유’는 인공지능으로 대체될 위험이 높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 본다면 안도의 한숨을 내 쉴(?)만한 전시의 제목이지만, 낙관적인 메시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분명 인공지능으로 인해 일자리는 줄어들 것이고 대체되는 직업은 늘어갈 것이다. 이미 아마존은 컴퓨터 비전, 머신러닝, 딥러닝 기술을 활용한 아마존 고(Amazon Go)라는 이름의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고 29만 4,574명이 일자리를 잃었다.[각주:1]

  그러나 인공지능을 인간의 반대편이 선 존재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18세기 기계화로 인해 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지만, 더 많은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났고 더 편리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중요한 것은 자동화 시스템과 인공지능으로 일자리가 줄어듦에 따라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에 대해 인간적인 대처방안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해결방안은 알고리즘이 만들 수 없다. 이번 나비의 전시는 알파고 이후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인공지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이 시점에 다양한 인공지능 프로덕션을 통해 이해의 폭을 넓혔다는 의미가 있는 전시였다.


양민하, <해체된 사유(思惟)와 나열된 언어(The Listed Words and the Fragmented Meanings)>, 2016

<큐비스트 미러(Cubist Mirror)>, <칸딘스키 미러(Kandinsky Mirror)>, 2016


  전시에서 처음 만나게 되는 작품은 진 코건(Gene Kogan, b.1985, 미국)의 큐비스트 미러 (Cubist Mirror), 칸딘스키 미러(Kandinsky Mirror) (2016)이다. 진 코건은 알고리즘과 머신러닝, 컴퓨터 음악 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며 시각 예술과 접목했고,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대표적인 작가이다. 마치 거울처럼 작품 앞에 선 관객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순한 인터렉션 작업이지만, 일본의 소프트웨어 개발자 유스케 토모토(Yusuke Tomoto) 가 개발한 인공신경망 알고리즘을 이용해 관객의 모습을 큐비즘과 칸딘스키 스타일 등 대표적인 사조의 스타일로 변형해 보여준다.


작가의 다른 작품, Mona Lisa restyled by Picasso, van Gogh, and Monet.(출처: http://genekogan.com/works/style-transfer/)


  아트센터 나비의 창제작 연구소 나비 이아이 랩(Nabi E.I.Lab)에서 제작한 에어하키게임은 인공지능 로봇과 대결해볼 수 있는 작품이다. 인공신경망 알고리즘 중 강화학습 딥 큐 러닝(Deep Q-Learning)을 활용한 작품으로 게임을 계속할 수록 로봇팔의 실력이 점차 늘어 나는걸 느낄 수 있었다.


인공지능 에어 하키(AI Air Hockey)>, 2016


  모리스 베나윤(Maurice Benayoun, b.1957, 프랑스)과 장밥티스트 바리에 (Jean-Baptiste Barrière), 토비아스 클랭(Tobias Klein)의 작품 <브레인 팩토리 Brain Factory>는 인간의 뇌파를 시각화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었다. 
관람객은 뇌파를 측정하는 헤드셋을 착용하고 의자에 앉아 감정이나 의식과 연관된 단어들을 떠올리거나 집중해서 작은 공을 원 안에 넣는 게임을 진행한다. 뇌파 측정 헤드셋으로 수집된 데이터는 작가가 설계한 시스템을 통해 3차원 형태로 변환된다. 마지막 단계에서 관람객은 인공지능에 대해 떠올리라는 안내를 듣는다. 영상에는 뇌파의 영향으로 어떠한 형상이 생겨나고 3D 프린터로 형상을 출력하는 것이 작품의 과정이다. 

  뇌-컴퓨터/기계 인터페이스(BCI/BMI)는 최근 세계적으로 활발히 연구되는 분야이다. 인간의 뇌파를 감지하고 해석해 기계를 작동시키는 인터페이스다. 즉 생각하는 대로 컴퓨터나 기계를 조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작품을 체험하면서 이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간과 기계를 연결하는 이 새로운 인터페이스에 익숙한 세대도 곧 등장할 것이다.


<브레인 팩토리(Brain Factory)>, 2016


  이렇게 과학기술의 최전선에 있는 기술을 이용하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인공지능의 허점을 보여주고 비판하는 작품도 있었다. 신승백 작가와 김용훈 작가는 아르헨티나 소설가 보르헤스의 에세이 『존 윌킨스의 분석적 언어』에서 ‘중국의 어떤 백과사전’에 쓰여 있다는 독특한 동물 분류법 14가지를 이용했다. ‘(a) 황제의 소유인 것, (b) 방부처리 된 것, (c) 길들여진 것’ 등 분류 기준에 따라 인공지능 동물 분류기가 동물 이미지를 분류하고 그 결과물을 작은 14개의 모니터를 통해 보여준다. 그러나 이 분류기에는 오류가 있는데 예를 들면 (b) 방부처리 된 것 분류에 살아있는 동물의 사진이 들어가는 경우이다.


동물 분류법 14가지


< 동물 분류기 Animal Classifier>, 2016


  비슷한 사례로 2015년 7월, 자동으로 얼굴을 인식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구글 포토가 흑인 사진을 고릴라로 분류하는 오류가 나기도 했다. 세계 바둑 챔피언을 이기는 인공지능 개발은 성공했지만, 어린 아이도 할 수 있는 사진을 보고 분류하는 일에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이 글에서 복잡한 알고리즘 과정을 설명할 수는 없지만, 알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인간이 필요한 이유? 
 

 



  최근 구글의 인공지능 비서 구글 홈(Google Home) 두 대가 대화하는 모습을 실시간 중계한 영상이 이슈가 되었다.[각주:2] 두 대의 인공지능 스피커는 꽤 심오해보이는 대화에서 동문서답까지 다양한 질문과 대답을 이어갔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두 인공지능 스피커에 소설 ‘고도를 기다리며’에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을 붙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름이 생기고 나서의 그들의 대화는 소설 속 두 인물의 대화처럼 보이게 되었다. 그(것)들의 대화는 단지 클레버봇(cleverbot)이라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통해 이전에 입력한 말들을 조합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사실 인간적인 관점을 매우 잘 드러내는 현상이다. 딥드림의 그림이 비싸게 팔리고, 대가들의 스타일을 모방하는 진 코건의 작품을 보면서 인공지능도 예술을 하는 시대가 왔다는 이야기와 인간의 영역인 예술을 침범하는 인공지능에 대한 걱정을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러나 기술철학자인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은 현대사회에서 인간이 느끼는 소외의 가장 강력한 원인이 기계에 대한 몰이해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소외가 기계에 ‘의해’ 야기된 것이 아니라 기계의 본성과 본질에 대한 몰-인식으로 인해 야기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간이 기계의 가운데서 통역자와 조정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해야한다고 보았다.


기계는 낯선 존재자다.
이 낯선 존재자 안에는 인정받지 못한 물질화된 제어된 하지만 인간의 잔여물인, 인간적인 것이 갇혀 있다.[각주:3]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


  전시에서 접할 수 있는 작품들은 모두 인공지능이 참여한 결과물이다. 그러나 13명(팀)의 전시 참여 작가는 인공지능의 예술작품을 통해 직감이나 감정, 창의성 등 인간의 고유성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졌다. “인공지능이 이렇게 예술을 할 수 있다면 인간은 어떤 역할을 해야하는지” 말이다. 너무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 그 속도를 따라가기 힘들 정도로 인공지능은 더 많은 제품과 소프트웨어,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곳까지, 우리의 삶에 들어올 것이다. 예술에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인공지능, 머신러닝을 활용했다는 것만으로 예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면, 이제는 물감을 사용하는 것처럼 익숙한 재료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이 등장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인공지능의 예술을 해석하고 이해해야하는 것은 인간이다. 구글 홈의 대화를 심오한 대화로 만든 행위처럼 말이다. 시몽동의 말처럼 낯선 자, 인공지능 안에는 인간적인 것이 있다. 그 갇힌 가능성을 해석하고 예술로 풀어나가는 역할이 가까운 미래의, 예술적 인간에게 주어진 역할일 것이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


글.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

  1. 맥갤러리, "일자리 파괴자가 된 아마존", 2017.02.10, http://naver.me/Fga5c2Rp [본문으로]
  2. https://www.twitch.tv/videos/113582306 [본문으로]
  3. 질베르 시몽동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양식에 대하여』김재희 옮김(그린비, 2011),1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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