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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두, 입, 코, 성대, 인두, 목젖, 혀, 입술, 등 신체의 기관을 이용해 소리를 만들고 다양한 음역과 발음을 꽤나 복잡하게 발성하는 목소리는 전 우주에서 유일하게 지구에서만 내고 들을 수 있는 소리라는 점에서 어쩌면 굉장히 존재론적인 요소로 다가온다. 사람의 성별과 나이는 물론이고 키와 몸무게까지 추론할 수 있는 목소리는 정체성을 나타내는 요소로써 큰 상징을 내포한다.

 올 해 어느날, 한 정치인이 목소리를 바꾸고 나타난 일을 떠올려보자. 그가 새로이 개발한 목소리를 외치자 여기저기서 떠들썩한 말들이 오갔다. 한 목소리의 변화를 둘러싼 이 술렁임에 있어서, 우리는 목소리의 변주를 일련의 변화의 상징으로 이해하며, 목소리란 비단 몸에서 나와 말을 전달하는 소리가 아닌 우리가 동원하고자 하는 감정과 의지, 그리고 욕망을 담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신체의 소리이면서도 신체로부터 벗어난 울림이기도 한 목소리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다양한 비유의 보조관념으로 이용된다. 예컨데 발언과 주장의 의미로 목소리를 말하기도 하고, 때로는 권력이나 위상을 은유하기도 하며, 신의 음성과 같은 영적/종교적 메세지를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목소리는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신체의 소리지만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음악으로 존재하기도 하며, 소통에서 배제된 타인에게는 소음으로 여겨지기도 하고, 여라기지 상징적, 은유적, 사회문화적 맥락속의 도구로 자리한다.

 2017년 4월 20일 부터 7월 1일까지 코리아나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 [The voice] 전 에서는 목소리를 매개로 국 내외 12여개 작가들의 작품을 엮었다. 먼저 존 케이지의 작품 ‘아리아’(1958) 가 눈에 띄는데, 이는 비정형의 선과 부호들로 이루어진 악보로, 보이스 퍼포머의 청각적 요소와 악보의 시작적 정보와의 우연적 관계를 표현한다. 어쩌면 이는 신체에서 출발한 목소리가 외부로 떨어져 나가며 우연적으로 일으키는 다양한 파동임과 동시에 일련의 미학적 스펙트럼으로서 간주하게 한다. 전시는 이 작품을 필두로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들의 의미는 완결되지 않고 끊임없이 전시로 묶여 또 다른 의미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전시를 구성하는 작품들은 존 케이지의 작품 이외에도 주디스 배리 Judith Barry, (미국, 1954- ) 차학경 Theresa Hak Kyung Cha (한국, 미국, 1951-1982) 제레미 델러 Jeremy Deller (영국, 1966- ) 미카일 카리키스 Mikhail Karikis (그리스영국, 1975- ) 김가람 Ga Ram Kim (한국, 1984- ) 김온 On Kim (한국) 라그나 키아르탄슨 Ragnar Kjartansson (아이슬란드, 1976- )브루스 나우만 Bruce Nauman (미국, 1941- ) 재닌 올레슨 Jeanine Oleson (미국, 1974- ) 이세옥 Sei Rhee (한국) 슬라브스와 타타스 Slavs and Tatars (유라시아, 2006- ) 등의 작품으로 구성 돼 있다. 가볍게 살펴보더라도 존케이지의 1958년 작 ‘Aria’ 에서부터 동시대 현상을 시시각각으로 반영하기를 지속하는 김가람 작가의 ’Sound Project’ 까지, 목소리를 주제, 혹은 구성성분으로 이용한 국 내외 작가들의 작품들을 전시하는것을 알 수 있으며, 덧붙이자면 이 목소리라는 테마는 본질적으로 청각이란 시간의 속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본 전시의 작품들은 대개 소리와 영상설치의 형태로 이뤄져 있다.

 전시장을 들어서면 더 보이스 라는 전시명에 걸맞에 어디선가 나즈막히 속삭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바로 브뤼스 나우먼의 <Lip Sync>(1969) 다. 전시가 시작되는 경계의 한 구석 깊숙히 설치되어 있는 브뤼스 나우먼의 작품 <Lip Sync> 는 립싱크 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중얼거리는 얼굴이 거꾸로 뒤집힌 모습으로 한 시간 가량 연속된다. 나도 모르게 작품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함께 중얼거리며 꽤나 오랜시간 지켜보게 하는 작품인데, 잘 보다보면 이미지와 소리의 싱크가 엊갈리며 입모양은 어느새 씰룩거리는 외계 생명체로 보이게 되고, 영상과 소리의 싱크가 달라지며 마주하는 낯선 지각경험을 유도한다. 이로써 [더 보이스]전의 시작은 지각적 혼란을 야기하는 브뤼스 나우먼의 낯선 접근법을 통해 전시를 보다 경험적 차원으로 걸음하며 목소리를 둘러싼 의미적 파동으로 인도한다.

브루스 나우먼 <Lip Sync> (1969)
Single channel video, 57 min, b&w, sound
Courtesy Electronic Arts Intermix (EAI), New York




 본격적으로 전시가 시작되는 공간으로 들어가면 한쪽으로 미카엘 카리키스와 차학경의 작품 <Promise Me>, (2012) <Mouth to Mouth>, (1975) 가 배치되어 있다. <Promise Me> 에서 두개의 모니터 중 한곳에서는 퍼포머가 입을 최대한 크케 벌려 소리를 내고, 다른 한편의 모니터에서는 입을 벌릴 수 없는 몸짓을 하는 과장된 비디오 퍼포먼스가 보여진다. 또한 그 옆에 자리한 차학경 작가의 작품 <Mouth to Mouth> 에는 흑백의 노이즈 속에서 보일듯 말듯 한 입술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한글의 단모음을 발음하는 여성의 입술은 목소리 없이 제스쳐로만 존재하다가 이내 하얗게 덮힌다. 목소리를 마녀에게 내어주고 인간이 된 인어공주가 결국엔 오해를 풀지 못한 채 물거품이 돼 버리는 이야기인 안데르센의 동화 '인어공주'를 연상시킨다. 즉 목소리란 발언인 동시에 의지의 표현이며 표현하지 못하는 상황이 주는 고통을 가늠하게 하며, 표현의 수단이면서도 존재의 증거이기도 한 목소리의 의미를 이 두 작품을 통해 발화의 권리와 억압의 고통과 함께 함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카엘 카리키스 <Promise Me> (2012)
Two channel video, 2 min(loop), color, sound
ⓒ Mikhail Karikis


차학경 <Mouth to Mouth> (1975)
Single channel video, 8 min, b&w, sound, 1975
Courtesy Electronic Arts Intermix (EAI), New York




 지하 1층에서는 위에 소개한 작품들 이외에도,  주디스 배리 Judith Barry, 슬라브스와 타타스 Slavs and Tatars 의 작품으로 목소리를 사회적, 문화적 바탕에서 부유하는 목소리의 역할을 다양한 각도로 인식하도록 하는 작품들이 배치 돼 있다면, 아래층엔 보다 언어적이고 시간성을 내포하는 작품들이 배치 돼 있다. 가장 먼저 김가람 작가의 <Sound Project>, (2014~)를 마주 할 수 있는데, 이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막론하고 매달의 이슈를 다루며 10년의 장기 프로젝트를 목표로 지속되고 있는 작품이다. 벽에는 가사가 적힌 페이퍼와 함께 음원을 들을 수 있도록 헤드폰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 음원들은 인터넷 환경에서 익명성을 담보로 내는 목소리인 댓글을 성분으로 만들어진다. 작가는 매월 이슈가 되는 기사를 선택하고 기사에 딸린 댓글을 이용해 가사를 쓴다. 그리고 TTS프로그램을 이용하여 가상의 걸그룹이 노래를 부르게 하고, 음원 사이트에 업데이트 하는 과정을 지속한다. 이 작품은 전시에서 내내 들었던 인간의 목소리가 아닌 기계가 내는 목소리를 들어보는 순간이다. 오늘날 siri에서부터 여러 음성 서비스를 통해 기계의 목소리가 익숙한 환경이지만, [The voice]전에서 기계의 목소리는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너무나 정확하여 부정확하게 느껴지는 발성 없는 소리와, 균일하게 끊어지고 이어지는 목소리는 ‘성별’ 내지는 ’주체’도 없이 지칠 줄 모르고 가사를 읊조린다. 이 목소리는 마치 다른 소리들과 구별되지 않는 인터넷 가상환경 속의 집단적 합창을 듣는 느낌이다. 질서정연한 기계음성 속에는 현전하는 이슈에서부터 '신박한' 가사가 어우러지며 기묘함이 극대화된다. 가장 딱딱한 보이스 이기도 하며 생생한 보이스이기도 하다. 


김가람 <The Red Wall>(2017)




 또 다른 벽면에서는 필자가 가장 흥미롭게 마주한 작품인 김온의 <기억과 기록 사이의 목소리 사용법<, (2017) 을 접할 수 있다. 카프카의 <꿈> 의 텍스트들을 분할한 종이가 설치되어 있(는 모습은 그 의도에 있어서 궁금증을 자아내지만)으며, 한켠에는 텍스트에 적힌 동사들을 읽는 목소리가 말하는 이 없이 스피커를 통해 전시장 바닥으로 울려펴진다. 물리적으로 엮인 텍스트는 비물질적인 소리로 흩어지며 문장으로부터 벗어날 때, 이 목소리는 일련의 '소리시' (Poésie sonore) 가 되며, 여기서 ‘동사’와 ‘목소리’가 대면하며 발생하는 또다른 속성과 맥락을 포착되는 지점이 흥미롭다. 김온 작가가 시도하는 소리의 ‘동사’들이란 움직이는 모습의 단어들이다. 즉, 동사는 언어에 있어서 가장 본질적이면서도 기능적이고,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요소이며 이는 목소리가 가진 속성을 내포한다. 예컨데 목소리가 덩그러니 울려 퍼질때, 자연스럽게 목소리의 발원지를 찾아 주변을 둘러보는 것처럼, 동사만 남겨진 시에는 모호한 의미와 주체 사이에서 공회전을 하다가 의식적으로 화자의 부재를 인식하도록 한다. 이 과정에서 동사의 끝에 반복적으로 자리한 여백에는 텅 빈 침묵이 부각되고, 그 다음에 흘러나올 목소리에 앞서 간장감을 조성하며 청자의 참여를 유도한다. 참여라 함은 침묵의 자리에 자연스럽게 융기하는 기억과 감각의 발현이며 이러한 차원에서 가스통 바슐라르의 시적 교감을 연상시킨다.

김온 <기억과 기록 사이의 목소리 사용법> (2017)

텍스트&사운드 설치, 사운드 63분, 가변크기




 반면 소리 자체로 감상을 유도하는 작품인 라크나 키아르탄슨의 <Song> (2011)은 온전히 목소리의 음성에 감상하도록 만들어진 작품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금발의 여인들은 6시간동안 노래를 멈추지 않는데, 그들은 미국의 시인 알랜 긴스버그의 원시 <song>의 구절을 노래한다. 세명의 아이슬란드 여인의 신비로운 선율을 듣고 있으면 목소리가 가진 감정과 표현의 스팩트럼이 얼마나 풍부한지를 느끼게 하는데 여기서 작가는 의도하는 서사구조나 특별한 의미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목소리를 감상하도록 내버려 두었다고는 하나 미국의 카네기홀에서, 알랜 긴스버그의 시를, 6시간동안 쉼없이 돌아가는 카메라 롤링을 통해 울려펴지는 소리를 통해 일련의 생명력을 제시한다는 느낌을 준다. 예컨데 김소연 시인은 어느 책에서 목소리에 대해 이렇게 썼다. "목소리에는 달콤함과 쓰디씀과 시원함과 저릿함과 애절함과 다정함과 굳셈과 갈증과 설득력과 단호함과 슬픔과 기쁨과 무서움과 비통과 환희가 담겨있으며.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애착과 교감이 거기엔 있다. 그래서 속기도 쉽고 속이기도 간단하다” 즉, 여인이 목소리가 가진 풍부한 생명력은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관념적 이미지를 확장하는 도구이기도 하며, 형식 이상의 순수한 아름다움의 소리를 경험하도록 한다. 


라크나 키아르탄슨 <Song> (2011)

Single channel video installation, 6 hours

Courtesy of the artist and Luhring Augustine, New York



 오늘날 성긴 은유의 행렬과도 같은 전시들에 피로감을 느끼던 와중, [The Voice]전은 명확한 제목으로 주제를 던져놓고 이를 능숙하게 풀어낸 느낌이 드는 전시였다. 아무래도 개별적으로 단단히 설 수 있는 작품들로 구성됨에 있어서 드러나는 차이인 듯 하다. 또한 작품 구성을 적절하게 배치하고 신경써서 환경을 조성한 느낌이 들었으며 다양한 연계프로그램으로 전시의 층위를 확장시키는 노력이 돋보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몇몇 작품에 있어서 언어적으로 이해가 필요한 작품에는 자막이 없이 운영되었다는 점과, 좀더 심도있는 대화를 기대했던 큐레이터 토크에는 단순히 도슨트의 형식으로 작품에 대한 정보를 설명하는 정도의 프로그램에서 아쉬움이 남았다. 어찌됐든, 목소리가 울려퍼지는 이미지의 메인 타이포부터 신선하고 깔끔하게 맞아떨어지며 전시의 구성도 일관성 있게 점철된 모습이 편안했기에 명쾌한 기분을 주는 전시였다. 누군가는 이러한 전시를 단조롭다거나 지루함으로 논하기도 할 테지만 단조로움으로 치부하기에는 작품마다 풍부한 신체 경험을 강조하며 능동적인 감상을 유도하도록 하는 작품 선정과, 주제로부터 뻗어나가는 스팩트럼의 지형에 신경 쓴 부분이 감지되며, 목소리가 동시대 시각예술의 영역에서 자리하는 작용들을 편안하게 이끌어내는 모습이 돋보였다.



글. 유다미 엘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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