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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 format’이 태도가 될 때 : gif 30주년을 기념하며 _aliceview

sjc014 2017. 12. 30. 02:23


※이 글은 다수의 gif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gif의 역사


오늘날 인터넷 밈(meme)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그래픽 파일 형식인 GIF(그래픽 인터체인지 포맷, Graphics Interchange Format)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최초의 gif는, 미국에서 처음으로 상업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했던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인 컴퓨서브(CompuServe)1987 5 28일에 발표한 것이었다. 당시 gifjpg보다 압축률은 떨어지지만 같은 색을 표현할 때 용량이 훨씬 적고 이미지가 잘 깨지지 않는 것이 강점이었다. 그러나 이때 개발된 gif는 많은 사람이 떠올리는 gif의 대표적인 특징인 애니메이션 루프는 불가능했다.

2년 뒤, 1989년 개발자 스티브 윌하이트(Steve Wilhite)가 업그레이드 버전인 gif 87a를 공개했고 비로소 파일 순서에 따라 여러 이미지를 보여주는 짧은 애니메이션이 가능하게 되었다. 그리고 1990년대 인터넷 브라우저인 넷스케이프(Netscape) 내비게이터 2.0gif 애니메이션을 사용하면서 본격적인 gif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 GIF가 돌아다니게 된 이유는 넷스케이프가 추가 한 애니메이션 루프 때문입니다.
넷스케이프가 브라우저에 GIF를 추가하지 않았다면, GIF는 1998년에 죽어버렸을 거에요.
[각주:1] 

– gif 87a의 개발자, 스티브 윌하이트-


(출처: http://nineteenfiftysix.tumblr.com/)


예술 형식으로서 gif


  1990년대 월드와이드웹(www)의 가능성이 확인되면서 예술가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웹 아트(Web art)라는 새로운 예술 장르를 탄생시켰다. 대표적인 웹 아트인 올리아 리알리나(Olia Lialina)의 웹 프로젝트<My Boyfriend Came Back From the War http://www.teleportacia.org/war/wara.htm> (1996)에 등장하는 움직이는 이미지는 모두 gif이다. 물론 그녀가 다른 선택지에서 gif를 꼭 집어 고집한 것은 아니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비디오를 삽입하고 싶었으나 당시 웹 브라우저에서 움직이는 이미지를 넣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gif를 사용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각주:2] 기술적인 이유이긴 했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계속해서 하이퍼링크되며 다른 영상이 재생되어야 하는 그녀의 작품을 표현하기에 용량이 비교적 작은 gif가 가장 적합했을 것이다.  

  Jodi(조안 힘스커크 Joan Heemskerk, 더크 페스만 Dirk Paesmans)의 작품<wwwwwwwww.jodi.org>에서도 가상 공간 안에서의 gif를 적극적으로 이용했다. 가상 공간 안에서 시각적인 효과를 전달하기 위해서 용량이 작지만 움직일 수 있는 gif 형식은 가상 공간에서 유희적이고 새로운 시각적 충격을 주고자 했던 웹 아트 작가들에게 환대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제 gif는 완전히 하나의 대표 형식이 되었다. 예컨대 물감이 회화로 연결되는 것처럼 gif를 떠올리면 무한 루프‘’되는 애니메이션을 바로 떠올리는 것이다



(출처: http://savgiffest.tumblr.com/)

2015년에는 미국 Telfair Museums 주최로 Savannah GIF Festival이 개최되었는데, 5가지 카테고리-유쾌하고 이상하고, 비현실적이고, 오싹하거나 감동적인(funny, weird, trippy, creepy, ambient)- 안에만 해당하는 gif 이미지는 모두 출품할 수 있었다. 페스티벌 기간 동안 20여 개국의 180명의 작가들이 출품한 670개의 gif가 서배너(Savannah)에 있는 Jepson Center에서 전시되었다. 이 페스티벌은 미국의 대표적인 gif 포털인 기피(GIPHY/ https://giphy.com/savannahgiffest)와 유튜브에서도 감상할 수 있었고,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작가에게는 골든 디스크가 아닌, “골든 플로피 (Golden Floppy)” 상을 수여하는 등 위트가 넘치는 행사였다. gif는 그만큼 친숙하고 인터넷 신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자리 잡았다.


짤의 탄생


gif 87a의 개발자 윌하이트가 위에 밝힌 바와 같이, gif는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의 커뮤니케이션, 유행과 매우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한 gif의 트랜드를 보자면 1990년대에는 고전적인 애니메이션, 배경이 투명한 gif가 웹사이트에 첨부되었고 21세기 초에는 배경이 있는 다양한 이미지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유통되었다. 그리고 2010년대, 오늘날에는 영화, TV 프로그램의 비디오 캡처로 만들어진 루프 시퀀스가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에서 적극적으로 만들어지고 뿌려지고 있.[각주:3] 

▲ Chuck Poynter’s “Dancing Girl"

(출처: http://blog.geocities.institute/archives/2466)


영화의 캡쳐로 만든 gif


  1분 미만의 루프 시퀀스인 gif에서는 전체 스토리와 맥락은 완전히 무시된다예컨대 위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이는 짤'은 1972년의 영화<From Jeremiah Johnson>(1972)의 한 장면이다. 하지만 이 gif가 어디서 왔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그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 루프 시퀀스 영화의 맥락에서 '짤'려나와서 인터넷 밈이 된다.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 내에서 이러한 이미지들은 gif라는 이름보다는 움짤(움직이는 짤방)로 더 많이 불린다. 움짤의 어원이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사실까지 떠올리지 않더라도 ’이 인터넷 커뮤니케이션의 필수요소라는 것을 이해하는데 무리는 없을 것이다 (이 움짤의 범위를 카카오톡이나 라인 같은 모바일 메신저의 움직이는 이모티콘 스티커까지 넓힌다면 더더욱 쉽게 이해될 것이다). 짤은 드라마와 영화의 부분 장면뿐 아니라 매우 민감하게 당대의 이슈를 반영한다. 한 국회의원의 노룩패스는 여러 개의 움짤로 패러디되었고 지난 5월, 대선 기간에도 각 후보를 지지하는 여러 짤이 지지자들에 의해 제작, 유포되었다

 히토 슈타이얼은 자신의 글 <In Defense of the Poor Image>에서 가난한/빈곤한 이미지(Poor Image)를 대중적인 이미지다수가 만들고 볼 수 있는 이미지라고 정의했다가난한/빈곤한 이미지는 부유한 이미지(Rich Image)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열화된 이미지무료로 떠도는 이미지압축되고 재가공되고 복사 붙여넣기 된 이미지를 의미한다그리고 가난한 이미지는 ‘편집자이면서 비평가번역가공동저자인 사용자(user)를 대변한다. 슈타이얼의 '가난한 이미지'라는 개념에 '짤'을 대입해서 읽어보자. 짤(원문은 poor image)은 업로드다운로드되며공유되고재편성재편집된다.[각주:4] '짤'은 대중이 아닌 다수로 존재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사용자의 존재를 드러내면서 그 의미를 확장했다.


형식태도가 될 때

  

 트위터에 사용자가 gif 파일을 업로드하면 자동으로 mp4 포맷으로 변환된다. 그리고 다시 사용자가 그 파일을 다운 받으면 mp4를 다시 gif로 변환한다. 굳이 트위터가 번거로운 변환과정을 거치는 이유가 무엇일까? 과거와는 다르게 기술적으로 더 좋은 디지털 포맷이 있지만 "짤의 태도"를 이끌어내는 것은 "gif 포맷"이기 때문아닐까? 필자는 여기에서 "gif 포맷"을 루프되는 파일 형식을 포함할 뿐 아니라 gif를 가지고 유희하는 사용자의 존재를 포함한 것으로 정의하고자 한다. 이들은 기존의 이미지를 재프레이밍(reframing), 캡처(capture), 문서화(documenting)해 새로운 이미지, 즉 gif를 인출하는 존재다(미술사학자 데이비드 조슬릿의 포맷 개념 인용).[각주:5] 이렇게 확장된 "gif 포맷"에서 필름(film)은 클립(clip)으로, 사색(contemplation)은 오락 거리(distraction)로 대체된다.[각주:6] 

 하랄트 제만 Harald Szeemann(1933-2005)의 기념비적인 전시, <태도가 형식이 될 때 When Attitudes Become Form>(1969)는 예술가의 작업 과정과 관객의 참여로 대표되는 '태도'가 당대의 예술 '형식'이라고 선언했지만, 이제 형식 Format은 태도를 이끌어낸다. 정확한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물론) 나의 일은 아니지만, 머지않은 미래에는 gif라는 시대에 뒤처진 "압축 방식"은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러나 확장된 "gif 포맷"은 인터넷 커뮤니티 안에서 확고하게 "gif 태도"로 존재할 것이다. 


(출처: http://gph.is/1anmY6m)


글.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


  1. Fernando Alfonso, 「The animated history of the GIF, the internet’s favorite format」,dailydot, 2012.5.3., www.dailydot.com/upstream/gif-history-steve-wilhite-olia-lialina-interview [본문으로]
  2. 같은 글. [본문으로]
  3. 같은 글. [본문으로]
  4. Hito Steyerl, 「In Defense of the Poor Image」,e-flux , 2009,11., http://www.e-flux.com/journal/10/61362/in-defense-of-the-poor-image [본문으로]
  5. David Joselit, AfterArt (Princeton University Press, 2013), p.55~56. [본문으로]
  6. Hito Steyerl, 위의 글.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