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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대표 작가인 도날드 저드는 프랭크 스텔라의 회화를 제작하는 과정을 “one thing after another” 즉 “하나 다음에 또 하나” 라고 표현하며 일정하게 반복된 체계의 산물 이라는 의미를 덧붙였다. 이는 60년대 대량생산의 기계적인 반복과 질서를 표상하는 말이다. 저자 권미연은 ONE PLACE AFTER ANOTHER, 즉 “한 장소 다음에 또 한 장소”라는 원제를 붙이며 20년이 지난 1980년대 후기 자본주의 시대부터 정보와 자본이 글로벌하게 이동하면서 세계화가 이루어지는 가운데, 오늘날의 장소란 지역적 특수성의 소멸되고, 문화가 동질화되며, 정체성의 차이마저 희박해지는 사회적 공간임을 제시하며 이 책을 통해 장소 특정적 미술을 둘러싼 담론을 해체한다.

이 책은 1960년대 후반 모더니즘 조각을 시작으로 미니멀리즘, 제도비판, 공공미술, 공동체 특정적 미술까지 이어지는 장소 특정적 미술의 계보를 살피면서 사회 경제 정치 이론을 관통한다. 이 계보에서는 장소 특정성의 개념들이 물리적인 공간에서 일련의 현상 자체로서 확대되는 양상을 제시한다. 처음에는 물리적 법칙에 얽매여 바닥 위에 놓여있는 어떤것을 의미하던 장소 특정성이 점점 장소를 벗어나고, 유목적이며, 장소를 초월하기까지 하는 장소 특정정 미술의 복합적인 해석을 풀어내고 , 그 대안으로 관계적 특정성을 살피는 일을 강조하며 맺는다.

저자는 장소 특적정 미술을 하나의 장르로 보는것을 넘어 미술과 공간의 정치성을 내포하는 하나의 기호로서 강조하는데. 이 ‘정치성’ 이라는 기호를 추론하는 여정은 맨하튼 연방 광장에 설치되었던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를 언급하면서 시작된다. ‘기울어진 호’ 는 공공공간에 깔려있는 수많은 모순들을 은폐하려는 공공미술의 지배적 경향에 대한 강한 비판의 의미로 설치되었지만 시민들의 적극적인 반발과 치열한 공방으로 7년만에 철거되었다. 이후 이보다 좀더 민주적이고 지역 통합적인 자세로 보이는 존 에이헌의 사우스 브롱스의 공공조각 또한 다른 대안적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의 반발로 철거되었다. 이러한 비교 연구사례들을 분석하며 장소 특정적 미술이 점점 공동체의 영역으로 획대됨과 동시에 정치적 활동이 미술의 연장선 상에 있음을 본격적으로 전개한다. 이처럼 1장 에서는 존 에이헌의 공동체 기반의 공공미술 시도에 이어, 점점 장소 특정적 미술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모델’로 사회적 쟁점과 정치적 행동주의로 전면화 되면서 공동체의 협업을 이끌어내거나 공동체 중심 미술활동들의 움직임이 일어나며, 그렇게 90년대 초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이 등장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리처드 세라 <기울어진 호(1981)>



2장에서는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이란 유독성 폐기물 문제, 노숙자 문제, 노인 문제, 문화적 정체성 등을 다루면서 공공의 사회 문제와 공동체적인 참여에 강조를 둔다. 초기 장소 특정적 미술 에서 ‘공공미술’이라는 용어로 지칭해왔던 공공장소에 놓인 설치 조각들로부터 형태와 의도와는 전혀 다른 측면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 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는데 이는 다양한 관객을 불러들이고 그들의 삶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사회 참여에 기반을 두는 시각예술의 장르가 되었고, 이러한 미술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곤경을 드러내고 변호하며 사회 쟁점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요구되는 현상을 바탕으로 한다. 책에서는 1993년 시카고에서 개최된 미술 프로젝트(행사) [행동하는 미술] 을 사례로 들면서 공동체 특정성으로서의 이행이 어떤 미술적, 건축적, 사회적, 정치적 합의를 내포하는지 고찰한다. 이들은 공공의 참여, 상호작용의 영역, 행동하는 사회세력으로서의 미술가 역할, 공동체적 협업 방식을 앞세우며 물질적 오브제가 아닌 지역의 참여자와 미술가 사이의 일시적 상호작용에 의해 점이되는 흐름을 이어나갔다. 표현방식은 거리미술, 비디오, 포스터, 벽화 등 전통 매체를 망라하면서, 이렇게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미술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적인 쟁점과 직접적인 접점을 만들어냄을 서술하며 이러한 활동은 곧 공공의 이익을 위한 미술로서 행동주의적이며 공동체주의적으로 평가되었음을 밝혔다.

3장 에서는 이렇게 장소 특정적 공공 미술은 쟁점 특정적 공공미술의 형태로 구체화 되어 공동체 특정적이고 관객 특정적인 것에 대한 요구로 이어지는 전개를 서술하는 가운데 저자는 장소를 민족, 젠더, 지리적 접근성, 정치적 입장, 종교적 신념, 사회적이거나 경제적인 계급 등에 기초한 공동의 혹은 공동체적 정체성을 공유한다고 가정하며 작업의 구상과 제작에 관객들의 적극적인 협업과 참여는 삶이 사회정치적 구조에 파고드는것이 미술의 능력이라 여기는 현상을 소개한다. 하지만 이는 장소의 담론적 가상화가 확정되어 결국 정체성 자체가 복합적인 담론 안에서 구축되는 정도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주었음을 비평적 관점으로 서술한다. 또한 공공미술에서 새로운 장르를 차별화 하려는 이같은 움직임은 비평적으로는 또 다른 양태의 미학적 전위주의, 즉 사회적, 정치적 행동주의의 새로운 형태이거나, 또 하나의 도시 재활의 새로운 전략으로 보여질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미술가와 큐레이터, 미술가와 후원 기업, 정부와 지자체 등이 긴밀하게 결합하고, 미술가는 심미적 산물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문화예술 서비스를 제공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기관과의 계약에 따라 작업하는 정치적 기호를 내포한다는것을 밝힌다. 흥미로운 점은 미술학자 벤자민 부클로가 60-70년대 네오 아방가르드의 원칙을 ‘행정의 미학’ 이라고 정의한 것을 언급하며 행정의 미학이 80년대 이후 ‘미학의 행정’으로 전도 되었다고 냉소적으로 지적한다. 이처럼 문화생산의 구조적 변화가 미술의 형태와 미술가들의 역할을 변모시키고 미술의 오리지널리티와 권위, 독자성등의 가치는 그 외적인 맥락으로 옮겨졌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공동체가 장소로 전이되는 공공미술의 변환 과정을 분석하면서 미술가의 역할과 미술의 기능 그리고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데. 특히 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주목할 만하다. 공공의 이익을 주장할 때, 과연 그 공공이란 어떻게 결정되는가? 일군의 사람들을 소외된 집단, 하나의 공동체로 정의할 권한은 어디에 있는가? 공동체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진행되게 이전에 이미 존재했는가, 아니면 그에 의해 만들어졌는가? 어떠한 범위내에 공동체가 결속되는가? 이렇게 공공미술의 범주에서 공동체 개념들을 세세하게 짚어보는 시도는 가장 모호한 부분이면서도 가장 깊이 생각해 봐야 할 것들을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공동체 라는 용어를 둘러싼 모호한 담론들은 개개인의 다양한 차이를 하나의 사회적 집단체로 결속시키는 정치적 개념이고, 모든 정치적 이념들에도 이용될 수 있는 가변적인 도구임을 밝힌다. 또한 공공미술은 이미 소외된 부류에 주변적인 정체성을 재확인 시킴으로써 불균형을 정당화하고 미술가를 지정하여 위계적인 협력관계를 만들며, 일련의 통일된 정체성을 생산하도록 유도하고 명령하는 일련의 제도적이고 행정적인 권력이 될 수 있음을 경고하면서,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구성원들의 차이를 식민화 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같은 위기에 대한 대안적인 공동체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철학적 개념들을 제시하면서 장소 특정적 미술이 필요로 하는 것은 이상적 공동체의 불가능성을 인식하고 그 불가능성의 기반 위에서 실험하는 집단적인 예술의 실천과 관계적 특정성을 살피는 일을 제시한다. 집단적 미술 실천이란 일단 일종의 잠정적 집단을 필요로 하는데, 미술가 혹은 문화기관이 유발한 특정한 상황으로 기능하고 나름의 모임과 흩어짐을 불가피한 모델링 혹은 해결책으로 수행하면서 상호작용의 조건들의 미치는 효과를 인식하는 집단을 말한다. 여기에서 그 집단의 정체성을 일관되게 재현하는것은 불가능하며 불안정한 상태로 남아있는데 그것이 집단 내 개인들 사이, 그리고 그 집단과 외부 세력들 사이에서의 협상을 지속적으로 순환하게 만들며 공동체에 대한 단정적인 장소 선정의 부담을 넘어 비판적인 장소 해제를 상상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책을 따라가다 보면 장소에 대한 해석은 더더욱 급속하게 글자 그대로의 의미에서 벗어나 지역과 관련된 의미 및 개념적인 의미로 다양하게 확장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 확장된 의미의 ‘새로운 장르 공공미술인’ 오늘날의 숱한 ‘’행동하는 미술’’들은 진정 미술제도와 시장세력 그리고 각종 사회문제들에 저항하기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는지, 공동체인들과 협업하는 미술가들은 과연 사회적 연관성을 깊이 고민하는지, 장소와 작업은 제대로 만나 이야기를 하는지, 여러 나라를 떠돌며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미술가들은 떠돌아다니는 세일즈맨의 모델이 아닌지, 하는 질문들이 남는다. 과거에 리처드 세라가 미술의 본성을 떨어트리고, 찢고, 접고, 자르는(verb list) 등의 기초적인 물리적 행동으로 환원했다면, 장소 특정적 미술의 현재는 협상하고, 조절하고, 타협하고, 조사하고, 홍보하고, 조직하고, 인터뷰하는 활동이 요구되는 최근의 미술 경향을 일깨운다.


글. 유다미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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