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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체를 넘어서: 시몽동의 기술철학-포스트휴먼 사회를 위한 청사진

 




기술철학자 시몽동

질베르 시몽동(Gilbert Simondon, 1924~1989)은 프랑스 중동부 공업 도시에서 태어났다. 탄광과 공장 지대 사이에서 자란 시몽동은 장인들, 기술자들과 스스럼없이 의견을 나누었고, 기계화에 따른 기술적, 인간적 문제에 대해 실제적인 해결책을 찾고자 했다. 그는 고전 철학부터 물리학, 광물학, 생물학, 기술 공학에 이르는 넓은 사유 스펙트럼을 가지고 있었고, 사이버네틱스와 정보 기술에도 큰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생전에 출간한 저서는 두 권, 『형태와 정보 개념에 비추어 본 개체화』,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뿐이다. 한국에서는 2011,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가 번역되면서 뒤늦게 시몽동의 철학이 소개되었다. 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와 같은 철학자들과 동시대를 살았으며 후대로는 브라이언 마수미, 베르나르 스티글레르, 브루노 라투르와 같은 현대 기술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90년대가 시작하기 직전 세상을 떠난 시몽동의 기술 철학이 긴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본 글에서 소개할 책『시몽동의 기술철학』(2017)은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의 역자이자 시몽동 연구자인 김재희 (저자)의 시각에서 본 시몽동 안내서라고 할 수 있다. 책은 6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장부터 3장은 시몽동의 주요 개념인 개체화, 기술적 대상, 발명을 소개하고 정리하는 부분이다. 4장부터 6장은 각각 정치, 미학, 포스트휴먼이라는 주제를 시몽동의 철학을 통해 읽어보는 부분으로 저자의 의견이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개체화/기술적 대상의 존재 양식/발명

 

  1장은 시몽동의 개체화론에 대한 개관이다. ‘개체화는 시몽동의 핵심 개념인데, 준 안정적 시스템에 내재하는 불일치, 양립 불가능성, 긴장과 갈등의 문제를 개체발생을 통해 해결하는 변환 작동이라 할 수 있다. (p.20) 예컨대 물을 끓이면 끓는점에서 액체와 기체가 공존하다 점차 기체가 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처럼 불안정한 긴장 속에서 새로운 체제로 변화, 상전이 하는 것이 바로 개체화이다. 그러나 시몽동은 기술적 대상들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기술적 대상과 인간, 더 나아가 인간 사회 사이의 관계까지 개체화론을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것이 바로 시몽동과 다른 철학자들의 차이인데, 베르그손이 생명체의 개체성만 인정한 것과 달리 시몽동은 결정(結晶)에 의한 모든 개체는 개체로서, 생성 중에 있다고 주장했다. (p.39)

 

문화는 균형 잡혀 있지 않다이로부터 기계에 대한 우상숭배에 불과한, … 테크노크라트의 열망에 지나지 않는 과도한 기술만능주의가 탄생한다자신의 동료들을 지배하고자 하는 인간은 안드로이드 기계를 불러낸다

바로 그 기계 뒤에서 아무런 불안 없이 모든 위험에서 벗어나서 무기력감도 모두 지운 채로

자신이 발명한 그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승승장구하며 편안히 쉬기 위해서 말이다."[각주:1]

 

  2장은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2011)의 문단을 인용하며 시작한다. 알파고 이후 기계/인공지능에 대한 막연한두려움을 느끼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시몽동은 기술적 대상인 기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계를 두려워하게 되었음을 지적한다. 그는 기술에 대한 공포감은 기술 자체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기술을 바라보는 관점과 태도에 있다고 보았다. 그는 기술 공포증과 기술 관료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술과 인간의 앙상블을 주장한다.


갱발 터빈(guimbal turbine)

사진 출처: www.google.com/patents/US2634375


  3장에서는 기술적 대상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발명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살펴본다. 시몽동은 발명이라는 개념을 자신의 기술철학을 특징짓는 새로운 개념으로 이용했는데, 그에게 있어 발명은 기술적 활동의 특성이자 사회 변혁의 원동력이었다. 시몽동은 인간적 관점에서 기술과 발명을 이해한 베르그손을 비판적으로 계승한다. 베르그손의 발명은 창조와 제작 사이의 모호한 위치에 있지만, 시몽동의 발명은 개체 내부에 잠재된, 전개체적 퍼텐셜의 발현이라고 본다. (p.114) 시몽동이 예시로든 갱발(Guimbal) 터빈을 살펴보자. 갱발 터빈은 기술적 환경(발전기의 조건)과 자연적 환경(바닷물) 사이의 문제를 새로운 기술-지리적 환경(물과 기름을 이용한 절연, 방수, 냉각 효과) 과 구조를 발명함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p.109)


정치/미학/포스트휴먼

 

  다음 세 개의 장에서는 시몽동의 철학을 현대 사회의 문제와 좀 더 적극적으로 연관시킨다. 4장 기술-정치에서는 노동으로 인한 소외의 문제를 다룬다. 마르크스가 생산력과 생산 관계의 불일치에서 소외의 원인을 찾았다면, 시몽동은 기술성과 인간-기계 관계의 불일치에서 소외의 원인을 찾는다. 시몽동은 인간의 잘못된 이해로 인해 소외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예컨대 인간 개체의 역할을 기계가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계 개체가 등장하기 전 기계 개체의 역할을 대신해왔던 것이 인간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p.130) 따라서 이 소외에서는 자본가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시몽동은 소외의 극복을 위해 노동이 아니라 기술적 활동을 제안했다. 기술적 활동은 기계의 활용을 넘어서는 발명, 구축 활동 등을 포함한다. 노동은 기술적 활동이 되어야만 한다.” [각주:2]


  5장은 시몽동의 기술 미학을 다룬다. 이 장에서 저자(김재희)는 시몽동과 동시대를 살았던 백남준의 예술을 인간-기계 앙상블의 예시로 들었다. 시몽동은 기술미학을 단순히 기술적 대상들의 미학이 아니라 더 근본적으로 목적 지향적인 동작들과 행위들의 미학이라고 풀이했다. (p.170) 시몽동의 기술미학은 미완의 상태로 남겨졌지만, 오늘날 많은 미디어아트, 현대미술이 시몽동적 기술미학의 한 사례로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6장은 앞서 살펴본 시몽동의 기술철학으로부터 미래 사회의 전망을 그려본다. 저자는 캐서린 헤일즈, 가타리, 들뢰즈, 라투르의 철학과 함께 시몽동의 철학을 확장하면서 시몽동의 개체초월적 인간-기계 앙상블에서 새로운 포스트휴먼 모델을 제안한다.

 

개체를 넘어서

 

  시몽동은 기술을 도구나 보철물로 환원하는 인간중심주의나 기술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기술만능주의, 그 양극단을 벗어나고자 했다. 다시 말해 인간 본성과 문화에 대립하는 기술이 아니라 공존하는, 상호협력하는 기술을 꿈꿨다. 시몽동은 개체를 넘어서는 개체초월적 관계(transindividuel)를 통해 이가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여기서 초월“trans”은 개체들을 가로지르면서 동시에 넘어가는것이다.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되고, 사회가 모여 국가가 되는 원자 구성적 사고가 아니라 개체가 동시 결정되는 방식으로 발생하는 것, 즉 개체들의 앙상블이다.

  오늘날 기계와의 공생은 새로운 요구사항은 아니다. 그러나 기술/기술적 대상에 막연한 공포를 가지고 있다면, 기술을 경제적 풍요와 편리함을 위한 수단으로만 보고 있지 않은지, 기술과 인간의 대립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 갇혀 있진 않은지 자문해봐야 한다. 바로 지금이 인간과 기계의 민주적 협력을 통해서만 사회 구조의 변화의 가능성을 보았던 시몽동적 사유를 펼쳐야 할 때인 것이다.‘ 인간 vs 기계의 구도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저자 소개



목차



글.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

  1.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2011) pp.10-11 [본문으로]
  2. 『기술적 대상들의 존재 양식에 대하여』(2011) p.360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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