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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으로부터 인지하는 세계:리트리버(박승순, 이종필) _Interview

narenan 2018. 3. 28. 16:10


GAS2017 참여작가 인터뷰 : 리트리버 (박승순 이종필) 


매체 음악가 박승순과 알고리즘 개발자 이종필로 구성된 팀, 리트리버(RETRIEVER)는 자연 또는 도시 풍경 이미지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후 이에 상응하는 사운드/이미지를 자동으로 연동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및 실험적인 음악 퍼포먼스 형태로 구현한다. 이 작품은 인간이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는 영역을 발견하여 감각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딥러닝 알고리즘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오류를 병치하여 양면성을 드러내고, 인공지능의 환상에서 벗어나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Q. 안녕하세요. 먼저 팀 소개와 각자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리트리버: 전자음악가 및 미디어아트 작가로 활동 중인 박승순과 알고리즘 개발자 이종필로 구성된 팀 ‘Retriever(리트리버)’ 입니다. 저희는 현재 KAIST 문화기술대학원 Music and Audio Computing LAB에서 딥러닝 알고리즘을 음악정보 분석(Music Information Retrieval)과 사운드스케이프(Soundscape) 분야에 적용하는 연구를 진행 중이며, 이러한 연구를 기반으로 예술 영역에 활용 가능한 방안을 탐구 중입니다.


Q. 이번 GAS 2017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시나요?
리트리버: 2016년, 한국정보화진흥원에서 주관한 'ICT-문화예술융합공모전'에 현재 <NEUROSCAPE>의 원형인 ‘이미지 콘텐츠 분석을 활용한 사운드스케이프 디자인 활용방안’이란 아이디어를 제안했습니다. 당시에는 이를 예술 작품으로 만들기에 물리적인 한계가 존재하여 구현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한 프로토타입 실험 단계까지 진행하였습니다. 영상, 지도 및 공공 서비스 등의 영역에 활용 가능한 비즈니스 모델을 제안했고 수상을 통해 가능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이후 비즈니스 모델 외에 예술 작품으로 응용 가능한 생각들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NEUROSCAPE>의 작품 컨셉을 도출하였고, GAS2017 전시를 통해 작품 개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Q. 리트리버는 사운드 아트를 기반으로 한 인터랙티브 작업을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고 계시는데요. 이번 GAS에서 선보이신 작업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리트리버: <NEUROSCAPE>는 지난 8월 10일 킨텍스 전시를 시작으로 9월 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 11월 플랫폼-엘, 인천아트플랫폼 등 3개의 인스톨레이션 전시와 1개의 영상 전시, 그리고 뉴로스케이프 시스템을 적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인 작품입니다.

작품 제목인 <NEUROSCAPE>는 Neuron(신경)과 Landscape or Soundscape(풍경 또는 소리풍경)의 합성어로, 인공신경망에 의해 재구성된 기억-(소리)풍경을 의미합니다. 저희는 우선 자연 또는 도시 풍경 이미지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후 이에 상응하는 사운드/이미지를 자동으로 연동하는 시스템을 개발하여, 이를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인공적 사운드스케이프 구성, 그리고 음악 및 안무와의 결합을 통한 퍼포먼스 등 총 3가지 포맷의 작품을 구현하였습니다.

GAS2017 전시에서는 주로 혼합매체형 인스톨레이션(Mixed-Media Installation)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관객은 기계와 동일한 시선으로 모니터를 통해 송출되는 풍경을 감상하면서 원하는 장면을 마치 사진을 찍듯이 캡쳐하고 이를 서버 PC로 전송합니다. 전송된 이미지는 총 3단계의 신경망 레이어를 거치게 됩니다. 첫 번째 레이어는 ‘image to word’ 단계로. 이미지 분석 알고리즘을 통해 관련된 요소를 단어로 검출합니다. 두 번째 레이어는 ‘word to word’ 단계로, 이미지에서 검출된 단어와 527개의 오디오/이미지 데이터셋 카테고리 키워드와의 연관성을 GloVe 알고리즘을 이용해 Cosine Distance(단어간 유사도)를 연산합니다. 세 번째 레이어는 ‘word to sound’ 단계로, 검출된 단어와 오디오 데이터의 유사도를 한 번 더 연산하여 검출되는 오디오/이미지 객체들과의 연관성을 강화합니다. 총 6개의 사운드/이미지/텍스트가 모니터 및 스피커로 송출되며, 일종의 오디오/비주얼 콜라주 사운드스케이프가 실시간으로 구성됩니다. 본 작품은 인간이 생각하지 못할 수도 있는 영역을 발견하여 감각의 확장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에 딥러닝 알고리즘이 지니고 있는 수많은 오류를 병치하여 양면성을 드러내고, 인공지능의 환상에서 벗어나 ‘인간이 기술을 어떻게 바라보고 활용할 수 있는지’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자 하였습니다.


Q. 알고리즘 연구자이신 이종필 작가님께서는 어떤 연구와 작업을 해오셨는지 궁금합니다.
이종필: 음악(특히, EDM)과 같은 청각적 자극을 사랑하는 연구자로서, 인공 신경 회로망 기술의 오디오 분류, 오디오 추천 그리고 오디오 생성에의 적용과 분석을 연구 중입니다. 특히 음악 분류, 환경소리 분류 그리고 음성 인식과 관련한 여러 세계 대회(MIREX, DCASE, TensorFlow Speech Recognition Challenge)에서 1등, 3등, 5등과 같이 우수한 성적을 계속해서 거두면서 더욱 진보된 신경 회로망 기술 기반 청각 분류 모델을 개발 중입니다. 이 외에 Dopefeel이라는 팀명으로 EDM 작곡 및 편곡을 진행 중이기도 하며 무엇보다 팀 ’리트리버’로서 인공 신경회로망 기술을 통한 예술적 표현의 확장을 탐구하고 있습니다.


Q. 박승순 작가님의 이력이 독특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자음악 앨범을 내셨었고 여러 콜렉티브 활동도 하시고 다양한 전시, 페스티벌 활동을 하셨는데요. 본인이 생각하는 주요 활동을 소개 부탁드립니다.
박승순: 저는 주로 음악을 다양한 매체에 적용하는 실험을 지속해오고 있습니다. 2010년 데뷔앨범인 <Cosmos>를 시작으로 <Nexus>, <Life Particles(Remix)>, <W.W.W.> 등 우주와 자연에 관련된 이론적 연구들과 상상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집을 발표해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리의 숲>, <초대>, <드림타임> 등의 연극 공연의 음악감독 및 다수의 전시에 작곡 및 사운드 디자인 등으로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2014년 부터는 KAIST 문화기술대학원에 입학하면서 자연스레 새로운 기술들을 음악에 적용하는 실험을 시작하였습니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속도를 다르게 하여 센서에 매핑된 다양한 패턴의 음을 연주하는 악기이자 인터페이스 <AQUAPHONICS V1>를 시작으로 2015년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전시에서 파이프에 흐르는 유속의 속도를 조절하여 연주하는 <AQUAPHONICS V2>, 음에 반응하여 실시간으로 빛이 발현되는 인스톨레이션 <CHROMATIC SCAPE> 등 음악을 기반으로 한 인스톨레이션 작업을 꾸준히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콜렉티브 IDEAN의 공동 대표로서 다수의 음반 프로듀싱과, 국내 실험적 예술가들과 함께 <NEINFEST>라는 다원예술축제를 기획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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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순, <AQUAPHONICS V2> 물, PVC, 유속센서, 사운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2015 금천예술공장 다빈치크리에이티브

박승순, <AQUAPHONICS V2>
물, PVC, 유속센서, 사운드, 사운드 인스톨레이션, 2015
금천예술공장 다빈치크리에이티브

박승순, <CHROMATIC SCAPE>

 조명, 사운드, 가변크기, 2016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박스 시야



Q. 이와 같이 다양한 활동을 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박승순: 이러한 다양한 실험을 지속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음악 내 기술매체의 적용 가능성’에 대해 고민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표현방식을 찾는데 관심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루이지 루솔로, 존 케이지, 에드가 바레즈, 피에르 셰페르, 머레이 셰이퍼, 백남준 등에게 영향을 받으면서, ‘음악’ 또는 ‘소리’를 다른 관점에서 탐구하는 자세를 많이 배우게 됩니다. 이에 따라 회화, 영상, 연극, 무용, 미디어 아트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는 작가를 만나 기술적으로 연결 가능한 지점을 모색하게 되고, 자연스레 이를 음악과 어떻게 유기적으로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지 탐색하면서 동시에 고유의 새로운 음악적 문법 또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Q.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인공지능과 풍경, 사운드가 결합된 형태의 작업을 선보이고 계시는데요. 인공지능과 시각이미지, 청각적인 요소의 결합을 통해 특별히 염두에 두고 계시는 지점이 있으시다면요?
리트리버: 이번 작업 과정에서 저희가 초점을 둔 것은 인간이 풍경을 바라보는 인지과정이 단순히 시각, 청각, 언어 등 개별적 요소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지점입니다. 인간의 인지과정을 모방한 심층신경망 알고리즘 연구에서도 Andrew Owens, Matthias Solèr, Yusuf Aytar등의 연구자들이 이미지, 사운드, 텍스트 등을 통합 모달리티로 접근하여 여러 형태의 실험을 진행 중입니다. 풍경의 부분적 요소들을 언어로 인지하고, 그 언어를 기반으로 우리의 기억 속에 저장된 소리와 이미지들을 불러와 연상하는 일련의 과정을 기계에 동일하게 구현했을 때, 기계가 구성하는 기억의 풍경은 어떤 모습일지 들여다보는 구조로 작품의 개념을 설정하였습니다. 또한 인공지능과 예술에 대한 담론에 있어 대부분 ‘인공지능을 통해 얼마나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저희의 경우에는 보다 근본적인 부분인 예술 작품을 촉발하게 만드는 창의성, 즉 ‘생각’ 또는 ‘모티브의 발견’이란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했습니다.


Q. GAS2017의 세 번의 전시에서 각 전시마다 약간의 변주를 통해 작품을 전시하셨습니다, 각각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리트리버: 우선 킨텍스에서 소개된 첫 번째 작품 <NEUROSCAPE I: Random Access Memories>에서는 기계가 바라보는 풍경의 영상을 보편적인 풍경, 예를 들어 도시, 자연, 사무공간 등을 소재로 이러한 영상에서 추출된 이미지를 기반으로 연산 및 매핑을 진행하였습니다. 전시장에 입장한 관람객은 작품 전면에 배치된 모니터 화면에서 좌측의 실시간 풍경 영상을 동일하게 감상합니다. 이 영상은 작품의 가운데 설치된 웹캠을 통해 송출되고 있으며, 모니터 앞에 놓여진 컨트롤러를 통해 관람객이 원하는 장면을 버튼을 눌러 캡쳐하면 서버PC에 이미지가 저장됩니다. 캡쳐된 이미지는 전면 모니터에 투사되고, 해당 알고리즘 연산은 인터넷 접속을 통해 실시간으로 구현되며, 검출된 6개의 이미지와 사운드는 각각의 모니터와 스피커로 전달됩니다. 관람객은 작품 전면에 놓인 컨트롤러 볼륨과 이펙터 등 물리적 변형을 사용하여 자신이 선택한 이미지에 적합한 소리들을 변형하면서 구성 가능합니다. 가능한 관람객이 직접 소리를 변형함으로써 일종의 인공적 사운드스케이프 연주를 할 수 있는 인터랙션에 초점을 둔 작품이었습니다.

리트리버, <NEUROSCAPE I: Random Access Memories>

비디오, 사운드,미디어 모듈, 딥러닝 알고리즘, 가변크기, 2017

GAS2017 일산 킨텍스



두 번째 작품 <NEUROSCAPE II: Fountain 2017>의 주제는 프랑스의 예술가 마르셀 뒤샹의 작품 <샘(fountain)> 이었습니다. 뒤샹의 샘이 세상에 처음 공개된 지 1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우리는 여전히 ‘변기’라는 기성제품을 바라보면서 미적 감상이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미술사를 통해 ‘샘’을 학습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과연 이 ‘변기’를 보고 무엇을 떠올릴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이었는데요. 예술사에 관한 학습이 전혀 되어있지 않은 뉴로스케이프가 바라본 ‘샘’은 당연히 ‘변기’ 그 자체를 떠올립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인공지능과 예술을 확장하는 단계에서 우리가 ‘예술 작품’이란 것을 어떻게 규정하고 기계에 학습시켜야 할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자 했습니다.

리트리버, <NEUROSCAPE II: Fountain 2017>

비디오, 사운드,미디어 모듈, 딥러닝 알고리즘, 가변크기, 2017

GAS2017 서울시립미술관 SeMA창고



마지막 작품 <NEUROSCAPE III: Mourning the victims of Sewol ferry disaster>은 인공지능이 사회 문제에 어떻게 작용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을 선보였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우리는 세월호가 침몰하면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장면을 목격하였습니다. 우리의 기억 속에, 어느 덧 수많은 매체에서 전송한 참사 현장들이 기억 속에 자리하였고, 팽목항에서 바라본 바다는 이전의 바다와는 다른 슬픈 기억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아무리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능을 뛰어넘는다고 해도, 여전히 인간만이 해결 가능한 문제들이 너무나도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뉴로스케이프>는 우리의 그런 아픔까지 도달하지는 못하였습니다. 기계는 우리와 동일한 시선으로 바다를 바라보지만, 일반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생각만을 보여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기계는 세월호라는 사건을 목격하지 않았기에 어떠한 기억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기계에 무엇을 기대할 수 있으며 앞으로 우리의 삶을 위해 이 기계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리트리버, <NEUROSCAPE III: Mourning the victims of Sewol ferry disaster>

비디오, 사운드,미디어 모듈, 딥러닝 알고리즘, 가변크기, 2017

GAS2017 플랫폼-엘



Q. 도시풍경의 이미지를 알고리즘으로 분석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또한 이 과정에서의 오류들이 무수히 나타나고 있다고 하셨는데요, 기술적 배경의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습니다.
리트리버: 우선 저희가 본 작업에 활용한 알고리즘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 번째는 Google Cloud Vision API의 Label Detection 알고리즘으로 이미지를 분석하여 이와 연관성이 높은 요소들을 관련도가 높은 순서대로 검출하는 알고리즘입니다. 두 번째는 word2vec 알고리즘입니다. 첫 번째 단계에서 Label Detection으로 검출된 단어와 527개의 카테고리로 분류된 오디오/이미지 데이터셋 키워드와 Cosine Similarity 연산 과정을 통해 가장 연관성이 높은 단어들이 검출되면 그 단어군에 속한 소리와 이미지를 자동으로 연동하는 프로세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여러 풍경의 이미지를 입력하고 결과를 검출하는 과정에서, 캡쳐된 풍경과 연관성이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요소를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 사진을 입력하면 ‘불’이라는 결과가 나오는 것 처럼 말이죠. 일반적으로 우리는 ’불’은 ‘바다’와 연관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생각이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닙니다. 인간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끊임없이 실수를 통해 학습하고 그 것을 보완해 나가는 불완전한 존재이니까요. 천동설과 지동설의 패러다임을 떠올려보면, 우리가 과연 ‘바다’와 ‘불’이 연관성이 별로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첫 대국 때 많은 전문가들이 ‘실수’라고 언급 했던 ‘수’가 사실은 ‘실수’가 아니었던 것처럼, <뉴로스케이프가> 던지는 많은 이야기들은 어쩌면 훗날 돌이켜 보았을 때 ‘오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사실 오류는 우리에게 있을 수도 있죠. <뉴로스케이프가> 끊임없이 우리에게 도시나 자연의 소리풍경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보면,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감각들을 깨울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이 것이 저희가 궁극적으로 지향하고자 하는 목표이기도 하죠.

<뉴로스케이프> 알고리즘 및 시스템 구성도



Q. 팀 리트리버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을 바라보는 관점이 궁금합니다.
박승순: 제가 생각하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감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도구라고 생각합니다. 음악 분야에서 자동 작곡이나 음악 추천 서비스들이 점점 정교화 되어가는 것을 보면, 분명 어느 지점에서는 인간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란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분명 인간만이 가능한 영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철학’이 더욱 중요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특히 이번 <뉴로스케이프> 작업 과정에서 인공적으로 구성한 가상의 소리풍경이 실제보다 더 진짜 같게 들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보들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라는 철학적 개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특히 그 중에서도 풍경의 수많은 소리들을 우리가 어떻게 다시 규정해야 하고 인식해야 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종필: 인공 지능은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문제해결 능력을 보조하고 강화해주고, 인간의 표현 한계를 뛰어넘게 해주며, 이러한 도움을 통하여 궁극적으로 사람의 고된 일을 대신 맡아서 해줄거라 생각합니다. 이 중 우리는 표현에 더 많은 자유를 주는 인공지능 기술을 예술적 표현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합니다. 새로운 미디어 또는 표현 기술이 세상에 나올 때마다 우리는 이의 기술적 발전과 더불어 이러한 기술이 가진 철학적 의미와 기존에는 표현하기 힘들었던 영역의 발전이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기술 또한 이의 일종으로서 우리는 이가 가진 철학적 함의와 그 표현의 확장을 적극적으로 탐구하고자 합니다. 특히 팀 구성원 간의 공통적 관심사인 청각적 자극에 관련된 탐사를 주된 영역으로 삼고 있습니다.


Q. 확장성과 오류를 병치하여 만들어진 ‘기억-풍경’은 하나의 인공적 창의성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
리트리버: 우선 ‘창의성’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개념적으로 규정하는지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창의성’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뉴로스케이프>가 구성한 인공적 기억-풍경은 철저히 인간에 의해 구현된 기계적 계산 결과일 것입니다. 특히 풍경이라는 대상을 보고 떠올리는 생각들이 다른 요소(학습, 기억, 경험 등)와 연결되는 과정에서 흔히 말하는 창의적 생각이 발현되는데, 아직 이러한 창의적 연상 과정이 뚜렷하게 증명된 것은 아닌 만큼, 다른 한편으로는 <뉴로스케이프>가 구현한 기억-풍경을 인공적 창의성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제 겨우 풍경의 요소들을 인지하고 약 527개의 단어군에서 검출한 연상 결과물을 보여주죠. 어린 아동의 경우 약 6세가 되었을 때 14,000개 정도의 단어를 습득한다고 하니, <뉴로스케이프>는 올해 갓 태어나 세상을 배우는 과정에 있습니다.


Q. 과학과 예술의 융합에 대한 작가님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박승순: 과학과 예술의 융합이라는 것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기적 관계를 형성해왔기에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광학기술의 발전과 원근법의 등장, 녹음기술의 발전과 새로운 음악 표현 방식의 등장 등, 과학기술의 발전은 끊임없이 예술가들에게 창의적 모티브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다만 이전 시대의 기술의 발전과 이에 영향을 받은 새로운 예술 표현 방식의 등장 사이에는 약 20년 정도의 텀이 존재했는데요, 현재의 과학기술과 예술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종필: 과학과 예술은 모두 연구적 사고라고 생각합니다. 기존에 세상에 나온 관념들을 이해하고 그 관념들의 끝에서 인류의 사고의 확장을 이루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가 가진 기술 또는 표현방법은 다르지만 그 근저에 이러한 공통성이 있기에 과학과 예술의 융합은 특히나 지금과 같이 인공지능 기술의 오픈소스 철학(기술의 조건 없는 공유를 통한 저변확대와 더욱 빠른 지식 확대)이 대두되는 상황에서는, 근 시일내에 매우 타이트하게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예술과 과학 모두 인류의 행복 증진을 위한 인간의 지식과 표현의 확장이라는 대 전제를 공유한다면 궁극적으로 이 두 영역간의 다름 보다는 닮음이 더욱 부각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 <뉴로스케이프>외에 현재 진행하고 계신 프로젝트나 예정하고 계신 계획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종필: 우선 뉴로스케이프의 발전된 형태에 대해서 계속 논의 중에 있습니다. 인공지능과 인류에 대한 더욱 폭넓은 이해를 통하여 더욱 진보된 작품을 예정 중에 있습니다.

박승순: 2018년에는 <NEUROSCAPE>가 다양한 예술 장르에서 어떻게 기능할 수 있는지를 탐색하고, 또한 작품 제작 과정에서 발견한 철학적/과학적 개념들을 보완하여 책으로 발간할 예정입니다. 개인적으로는 2018년 2월, 우란문화재단 ‘프로젝트박스 시야’에서 무대미술가 신승렬 작가님과 함께 무대미술과 사운드가 중심이 된 공연 또는 전시 작품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그자비에 드 메스테르의 <내 방 여행하는 법>과 조르주 페렉의 <사물들>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청각/시각적 경험을 기반으로 한 사유의 여행을 통해 감각을 확장하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준비 중입니다.



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유다미(엘리스온 에디터) 배혜정 (GAS2017 큐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