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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아트라는 단어를 뜯어보면 새삼 이상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다. 미디어를 다루는 예술, 기술을 다루는 예술. 그런데 미디어라는 것은 화가가 사용하는 캔버스나 붓, 망치와 정으로부터 컴퓨터, 스크린, 각종 피지컬 컴퓨팅에 사용하는 센서까지, 그 모든것을 포괄한다고 이야기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기술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컴퓨터 기술, 무선 기술, 피지컬 컴퓨팅 기술 모두 IT라고 통칭하는 분야에 속한 기술이다. 동시에 사진을 찍는 기술, 유화를 그리는 기술, 조각을 만드는 기술 역시 기술이며 그들 도구를 만드는 것까지도, 나아가 인간이 어떠한 목적을 위하여 하는 행위 모두 기술의 범주 안에 들어갈 수 있다. 이 안에서 ‘기술’은 결과물로서의 기술과 사용 방법과 노하우로서의 기술이 혼용되고 있지만 양 자를 서로 바꾸어도 성립한다. 요는, 예술과 기술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라는 사실이며 미디어가 매개를 넘어 환경을 구성한 오늘날은 더욱 그렇다는 것, 그리고 이 환경 안에서 ‘기술’을 이해하고 ‘기술’을 사유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 졌다는 점이다.

의레 떠올릴 수 있는 예술과 기술의 거리감은 모더니즘 이후의 학제 시스템에서 시작한다. 효율과 집중의 논리 아래 각 학문분야의 구분과 개별적 발전은 그 속도와 성취에 근거해 분명하게 구분되었다. 그 결과 예술과 기술은 모두 인간의 위대한 성취이지만 서로 이해하기 어렵고 대립되는 위치로 인식된다. 각자의 언어는 아주 달랐고 사고방식 역시도 차이를 인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었다. 문과생과 이과생의 대화를 상상하면 명확해진다. 시간이 흘러 양차 세계대전 이후의 시대는 인간의 활동과 사유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이 진행되는 시점이었다. 동시에 냉전이라는 유래없는 거대한 대립의 틀 아래서 철저한 이분법적 억압이 전개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양 극단과 모순이 부딪치던 혼란스러운 시기이기에 많은 변곡점이 발생할 수 밖에 없었다. E.A.T.라는 단체의 시작은 그런 시대 맥락에서 읽어볼 수 있을 것이다. 


E.A.T. Experiment in Art in Technology. 예술과 기술 실험이라는 이 공학적 느낌의 단체는 1966년 빌리 크뤼버와 프레드 발트하우어라는 기술자와 로버트 라우센버그와 로버트 휘트먼 등의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결성되었다. 이들은 서로 낯선 영역이 모여 만들어 낼 수 있는 '가능성'에 주목했다. 이들은 뉴욕에서 활동하는 기술자와 작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제껏 모이고 소통하기 힘들었던 두 집단의 협력과 이해를 이루기 위해 기술의 효율과 이해관계, 예술의 미적 가치판단을 내려두고 보다 자유로운 관계와 활동을 모색했다. 이들의 활동은 <9개의 밤: 연극과 공학(9 Evenings : Theatre & Engineering)>으로 대표되는 대규모 퍼포먼스 행사와 각종 전시, 강연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졌고 오늘날의 예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Jean Tinguely, Hommage to New York, 1966, 설치작품 부분과 풍경이미지


전시전경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수식은 '융합'이나 '학제간 교류', '크로스오버', '콜라보' 등 여러 영역을 합치거나 교류함을 통해서 창의성을 뽑아내려는 시대적, 제도적 요구 시류에 매우 부합하는, 매혹적인 것이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원류, 혹은 매우 유의미한 결과이자 주체로서의 E.A.T.를 조망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서서 처음 기획된 전시가 바로 2015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 위치한 잘츠부르크 현대미술관(Museum der Moderne Salzburg)에서 진행된 <E.A.T : 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전시이다. 이 전시는 2000년 이후 E.A.T.의 활동을 다룬 첫 대형 회고전이다. 미술관의 2개 층에서 E.A.T.라는 이름의 활동이 벌인 2차 세계대전 이후 미술의 중요 순간을 작품과 아카이브 자료를 같은 공간에 배열하며 추적해내었다. 우선, 전시를 돌아보기에 앞서, 주인공과 주인공이 나오게 된 배경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왜, 1960년이라는 이 시기에 빌리 크뤼버와 라우센버그라는 기술자와 예술가는 서로 얼굴을 맞대고 ‘기술’이라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을까. 왜, 이들은 서로의 사유의 결과로서 그렇게 많은 작가와 기술자를 포섭하여 다양한 사유와 창작활동을 진행했고 그 결과를 거대한 전시와 담론의 장으로서 펼쳐내었을까. 1960년대는 냉전의 절정기였고 기술은 그 대립의 첨병에 위치해 있었다. 미국은 1950년대 소련이 인류 최초로 인공위성을 발사한 것과 최초로 라이카라는 생명체를 우주 위성궤도상에 올린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이른바 이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은 우주와 관련된 과학과 기술개발에 사활을 걸었고 이를 위해 설립한 것이 미 국방고등연구계획국 DARPA(1958)와 미 항공우주국 NASA(1958)이다. 냉전시기 기술에 대한 탐닉은 위성궤도에서의 핵 투발이라는 국가의 존립 자체와 연관된 중요한 이슈였고 당시의 두 세계 최강국가 미국과 소련이 벌이는 자존심의 대결이었다. 한편으로는 국가 규모의 과학 및 기술 부문의 올림픽으로 인류 역사상 최고의 과학기술 발전을 이룩한 시기이기도 했다. 이는 정부와 시민 모두에게 동일하게 부합된 풍경이었다. 기술은 국가적 이슈였고 동시에 개개인의 생활과 사고라는 내밀한 부분까지 영향을 끼치는 밀착된 이슈였다. 사람들은 이 기술 올림픽에 열광했고 TV라는 기기를 통해 중계를 보았다. 여러 기계들은 생활속에 녹아 작동하며 사람들의 삶을 더욱 좋거나 나쁘게 변화시키고 있었다. 여기에 첨단 연구소의 대명사였던 미국 벨 연구소 소속의 기술자 빌리 크뤼버(Billy Klüver)가 등장한 것이다. 


그는 영화라는 문화에 많은 흥미를 가지고 있었던 기술자였다. 그는 기술자가 가지지 못한 기술과 사회에 대한 조망을 예술가에게서, 그리고 예술가가 가지지 못한 기술에 대한 시야와 이해가 서로의 만남을 충족시켰을 때 발현될 수 있는 가능성을 찾기 위해 행동했다. "어떤 가능성은 공학자, 또는 예술가 각자의 예상에 의한 것이 아니다. 이들이 모여 서로가 상호 관계하며 발현될 수 있는 탐구 결과로서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라고 언급하며 사람들을 모으고 서로를 매칭시키기 시작했다. 예술가는 새로운 기술을 적용할 수 있었고 기술자는 기존효용을 위한 기술이 새로운 맥락에서 동작하는 풍경을 맞이할 수 있었다. 이러한 E.A.T.라는 역사적 순간의 하일라이트로서, 그리고 이 전시가 다루는 가장 핵심적인 영역은 크게 두 가지로 꼽을 수 있다. 바로 <9개의 밤: 연극과 공학(9 Evenings : Theatre & Engineering)>과 <펩시 파빌리온(Pepsi Cola Pavilion)>이다. 


9 Evenings document movies


Robert Rauschenburg, Open Score, 1966

당시 퍼포먼스에서 사용한 소도구 및 기기들.


<9개의 밤>은 10명의 예술가가 9일간 매일 2~3회의 서로 다른 퍼포먼스를 시리즈의 형태로 진행한 것이다. 이 행사는 뉴욕의 69기병대의 무기고였던 커다란 실내 공간(현 파크 애비뉴 아모리)을 개조하여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모든 퍼포먼스에는 다양한 기기와 시스템들이 포함되었으며 이를 위해 30명의 공학자들이 함께 했다. 퍼포먼스로서 연극, 무용, 음악들이 기계라는 매개를 통해 혼합되어 말 그대로 다원 예술로서 펼쳐졌다. 그들이 이룩한 중요한 예술-기술적 성과 중 하나는 연극에 대한 전자환경모듈시스템인 ‘TEEM(Theatrical Electronic Environmental Modular)’이다. 이 시스템은 퍼포먼스에서 행위자가 스피커, 카메라, 프로젝터, 조명 등을 원격 조정할 수 있게 하는 전자 제어 전송 시스템이다. 행위자는 퍼포먼스 환경에 배치된 각각의 기기들을 조정하여 공간을 재구성 할 수 있었다. 이들이 자아낸 풍경은 오늘의 인터렉티브 아트라던가 융합예술의 모습 바로 그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라우센버그가 만들어낸 <오픈 스코어>는 퍼포머와 공간의 상호작용을 이뤄낸 작업이었다. 기술자로 참여한 빌 카민스키는 테니스 선수의 복장을 갖추고 실제로 테니스 경기를 진행한 퍼포머를 위한 라켓을 개조했다. 이 라켓에는 소리를 수집하기 위해 라켓 손잡이에는 초소형 FM 송신기를 삽입했다. 퍼포머가 라켓으로 공을 타격하는 순간 그 소리는 무대의 스피커로 전송되어 무기고 공간 전체를 울리게 했고 그에 맞춰 공간 안의 48개의 조명이 하나씩 꺼지게 했다. 이런 일련의 장면은 적외선 TV카메라로 촬영되어 공간 한편의 대형 스크린에 상영되며 또 다른 미디어 풍경을 연출했다.


앤디 워홀은 텔레마틱 사회에 대한 은유가 들어있는 이러한 퍼포먼스와 연결되는 부분이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 워홀의 <Silver Cloud, 1966>은 공간 안에 은색 풍선을 가득 띄워놓은 작품이다. 이 작품의 요지는 천장에 붙어있는 모습이 아닌 은빛 덩어리가 공중을 부유하는 기이한 풍경이었다. 워홀은 스카치팩 풍선 안쪽의 헬륨과 공기의 조성을 조절하여 부유감을 조성해내었다. 이 은빛은 로켓이 태양광을 받아 반사하는 차가운 우주 기계의 색이었다. 떠올라 천장에 달라붙지도, 떨어져 바닥에 닿지도 않고 공간에 둥둥 떠있는 기이한 부유현장은 우주의 무중력 상태의 그것이었다.  사람들이 이제껏 보지도 체험하지도 못했던 새로운 풍경을 이뤄낸 것은 우주공학 기술이었고 예술이 이제껏 보여주지 못했던 시각풍경을 이룩한 것도 스카치팩과 헬륨의 교묘한 무게중심을 이뤄낸 기술자와 예술가의 합작품이었다. 


후면 Pepsi Cola Pavillion 전경 / 앞 Robert Breer, Floats, 1970



a. Fujiko Nakaya, Fog Sculpture #47773, 1970 / 구조물 : Forrest Myers, Light Frame, 1970

b. c. 입구 및 내부전경

펩시 파빌리온은 박람회 기간동안 300만명이 방문한 성공적인 프로젝트였다.


오카사 박람회에서 기업관으로서 선보였던 펩시 파빌리온은 하나의 단일건물, 또는 단일 구조물이 아니었다. 드라마틱한 건물의 외형을 조성한 후지코 나카야의 <안개 조각#47773>, 로버트 브리어의 <떠다니는 것들>, 포레스트 마이어스의 <빛의 프레임>, 데이비드 튜더와 로웰 크로스의 <레이저 굴절 시스템> 등 설치, 영상, 음향을 망라하는 작품을 위해 20여명의 예술가와 50여 명의 공학자들이 포함된 대규모 인원의 협력 결과였다. 건물 외부에서는 일본 고유의 놀이 종이놀이인 '오리가미'를 연상케 하는 거대한 구조물이 그 스케일을 뽐냈으며 그 구조물 위로 후지코 나카야의 안개 작품이 기하학적 외형을 허물어뜨리는 안개를 뿜어내며 기묘한 존재감을 더해내었다. 브리어의 <떠다니는 것들>이 입구 앞 광장에서 느릿느릿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율동감을 지나쳐 입장한 공간 안쪽에서는 튜더와 크로스의 거울로 가득찬 환상적인 투영 공간과 음향의 조화아래 공간에 대한 이전의 경험을 흔드는 체험을 제공했다. 이러한 기묘함과 충격의 연속은 기술과 예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어떤 극한점을 보여주었다. 그 밖에도 전시에서는 E.A.T.라는 거대한 우산 아래 활동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을 관람할 수 있었다. 존 케이지를 비롯, 로버트 라우센버그, 한스 하케, 얀 팅글리, 앤디 워홀 등 40인의 작가들이 기술에 대해 사유하고 유희했던 결과와 증거들이 전시장에 여러 기록물들과 함께 기록의 합창을 열고 있었다. 


우리 시야를 한 곳에 집중하면 더 잘 볼 수 있고 더 잘 이해할 수 있지만 주변을 볼 수 없다. 우리의 신경을 한 곳에 집중한다면 효율은 증가하지만 매우 중요한 지점을 간과하거나 심지어 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기술중심주의는 힘과 효율을 가지고 우리의 환경과 삶을 양적으로 크게 향상시켰지만 기술중심주의는 자연을 파괴하고 인간 스스로를 파괴했다. 예술지상주의는 이제껏 생각치 못했던 깊은 사유와 신선한 시점을 발견했지만 우리의 삶과 변화를, 그리고 또 다른 가능성을 놓친다는 점을 간과했다. 그런 문제지점에 대해서 많은 반성이 있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중 굵직한 발걸음 하나로서 E.A.T.가 존재한다. 예술가는 새로운 기술에 대한 접근 기회를, 기술자와 과학자는 기술이라는 장 너머에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던 사회적 문제를 고찰할 수 있는 계기를, 그리고 예술가와 기술자, 관람자 모두는 기술이 가진 또 다른 가능성에 도달할 수 있는 장에 함께 설 수 있었다. E.A.T.는 놀라웠다. 오늘날 우리가 미디어아트라고 부르는 작품들의 형태의 전형들, 인터렉티브, 영상, 융합퍼포먼스, 움직이고 반응하는 구조물 등 떠올릴 수 있는 대부분의 모습들이 담겨 있었다. 

이번 전시는 앞서 언급한 바 21세기에 들어서 처음 진행된 E.A.T.에 대한 대규모 회고전으로서 의미가 크다. 물론 그 이전에도 The Story of E.A.T와 같은 E.A.T.와 관련한 행사들이 존재했다. 중심인물인 빌리 크뤼버는 그룹 활동이 종료된 이후 2001년 The Story of E.A.T라는 아카이브 전시를 로마에서 처음 선보였다. 크뤼버 자신의 글과 소장 사진들을 중심으로 진행된 이 전시는 2002년에는 미국 뉴욕의 소나벤드 갤러리(Sonnabend Gallery), 펜실베니아의 라퍄예트 대학교(Lafayette College)를 거쳐 영국 리즈(Leeds)의 에볼루션 페스티벌(Evolution Festival)과 캐나다 시애틀의 워싱턴 대학교(University of Washington) 등 전 세계를 순회했다. 2003년과 2004년 각각 일본 도쿄의 ICC와 스웨덴의 노르셰핑 미술관(Norrköping Museum of Art)에서 각각 관련 전시가 진행되었다. 이들은 E.A.T.가 표방했던 문화적 유전자를 끊임없이 되새길 수 있도록 활동을 벌인 자취였다. 같은 선상에서 이번 전시는 E.A.T.에 참가한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과 그와 관련한 텍스트 자료들, 그리고 전시 기획과 진행에 대한 여러가지 아카이브 자료들이 망라된, 종합적으로 E.A.T.라는 단체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로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행사개요
전시제목 : EAT: Experiment, Art and Technology
전시장소 : Museum der Moderne Salzburg
전시기간 : 2015. 7.25 ~ 11. 1.
참여작가 : Per Biorn, Robert Breer, John Cage, Lucinda Childs, Cecil H. Coker, Pete Cumminski, Merce Cunningham, Jean Dupuy, Öyvind Fahlström, Ralph Flynn, Hans Haacke, Leon Harmon, Alex Hay, Deborah Hay, Larry Heilos, Peter Hirsch, Harold Hodges, Robert V. Kieronski, Billy Klüver, Ken Knowlton, Tony Martin, Jim McGee, Marta Minujin, Forrest Myers, Fujiko Nakaya, Steve Paxton, John Pearce, Yvonne Rainer, Robert Rauschenberg, Robby Robinson, Herb Schneider, Jean Tinguely, Wen-Ying Tsai, David Tudor, Fred Waldhauer, Andy Warhol, Robert Whitman, Witt Wittnebert, Dick Wolff, Niels & Lucy Young




Hans Haacke, Ice Table, 1967



Leon Harmon & Kenneth Knowlton, Studies in Perception I: Computer Nude



Andy-Warhol-Silver-Clouds-1966



좌 Manfred Schroeder, Target, 1968


이미지 출처 :

http://broadway1602.com/e-a-t-experiments-in-art-and-technology-retrospective-at-museum-der-moderne-salzburg/



E.A.T.: Experiments in Art and Technology 1960-2001, Julie Martin (Director of E.A.T.)


글. 허대찬 (aliceon edi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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