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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좋은 삶



기간 : 180906-181118

장소 : 서소문본관

참여작가 : 고연옥 & 잣 프로젝트, 구민자, 김월식+무늬만 커뮤니티, 김현탁, 노경애, 보물섬 콜렉티브(김동찬, 민성홍, 송민규, 최진요, 하석준, 황경현), 언매핑 유라시아, 은정태, 이그니토, 이소영, 정기현, 허윤경, 권병준, kook+, 디륵 플라이쉬만, 미팅룸, 신도시, 씨위드, 정재철, 장애여성공감 극단 <춤추는허리>, 크리티컬 아트 앙상블, 팩토리 콜렉티브, 디스플레이 디스트리뷰트 (쿤치, 리드인 공동 편집), 류한길, 리슨투더시티, 모노스콥 (두샨 바록), 안건형, 윤원화, 윤지원, 인민의 아카이브, 최하늘, 그린피스 동아시아 서울사무소, 민세희, 데이비드 하, 로렌 맥카시, 루바 엘리엇, 오스카 샤프 & 로스 구드윈, 마리오 클링게만, 마이크 타이카, 모두의 연구소 (김승일), 스캇 켈리 & 벤 폴킹호른, 신승백 김용훈, 정지훈, 진 코건, 최승준, 배남우, 댄 첸, 샘 라빈, 스털링 크리스핀, 아담 하비, 아람 바톨, 나자 부텐도르프, 에드 브라운, 에디 바겐넥트, 에바/프랑코 마테스, 엘리사 지아디나 파파, 제레미 베일리, 최성일·리케 글라저, 프로젝트 코버, 애드버스터즈 미디어 재단, 탁영환・이경남, 000간, 김상돈, 믹스라이스, 박형준, 케이트 라워스, 미셸 보웬스, 리처드 윌킨슨,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무중력지대 양천, 양아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는 '아직 아니다Noch Nicht'를 인간 희망의 원리로 제시하며 도달 불가능한 소실점과 같이 닿을 수 없는 미지의 모습이 우리를 미래로 달려 나가게 만드는 희망의 원동력이라고 했다. 우리의 시선은 늘 나타나야 할, 나타날 것만 같은, 하지만 아직 나타나지 않은 어떤 것을 향하도록 되어 있고, 이 원리는 '이미 보이다'라고 표현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아직 현실이 되지 않았기에 그 모습을 정확히볼 수 없어 우리는 더욱더 그 보이지 않는 미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붙들려 있게 된다. 이 틈이 바로 우리 모두가 개입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미 우리가 상상하는 이미지들을 포착하여 '아직 아닌' 현실이 '이미 보일' 수 있도록 전환시키는 매개자로서 말이다. 이번 비엔날레는 이 전환의 매개자로서 예술의 역할을 주목한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술’의 범주를 벗어난 학문 간 협력을 통해 동시대의 삶을 재해석하고, 다양한 개인과 집단이 제시하는 '아직은 아니지만, 이미 보이는' 창의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대안 가치들을 함께 상상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 이후 금융 시장에서는 ‘뉴 노멀New Normal’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났다. 이 용어는 사회 경제의 변화상을 포착하기 위해 생겨났지만, 이는 폭넓게 지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중층적 차원의 위기들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다. 한때 규범적 현실처럼 여겼지만 지금은 근본적 차원에서 현실성과 정당성이 모두 의심받고 있는 명제들이 잔뜩 쌓여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은 기존 질서 안에서 해결되지 않은 채 이미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상태로, 그 위기들은 이제 전혀 낯설지 않은 우리의 현실이 되어가고 있고,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미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며 삶을 변화시켜 나가고 있다. 다른 말로 하자면, 현재 우리의 삶은 이미 도처에서 새로운 규범에 따라 흘러가고 있다. 이제는 옛 질서의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질서의 가능성을 검토해야 한다. 자본이나 금융 시장과 달리, 우리가 주목해야 할 ‘뉴 노멀’ 절반 이상은 우리 스스로가 일구어 내는 것이다.


알베르 카뮈Albert Camus의 유작 <첫 번째 인간The First Man>이 상징적으로 보여주듯이, 이미 지난 세기 후반부터 인류는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기 시작하였다. 그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향한 상상력은 인간의 신체, 성적 정체성을 필두로 한 다양한 정체성, 타인 혹은 자연과의 관계, 인간의 오감과 시공간 지각, 우주와 영원성의 형이상학적 종교적 탐색 등 무수히 다양한 방향에서 펼쳐져 왔다. 우리는 이를 16세기 르네상스 시대에 생겨난 종래 인간주의적 관점에서의 인간상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또 다른 인간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려는 징후로 보고자 한다. 올더스 헉슬리Aldous Huxley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라는 디스토피아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는 새로운 인간의 모습을 적극적으로 상상하고 그려내야 한다. 허무적 상상력이 아닌 변화된 세상 속에서 '좋은 삶'을 꿈꾸고 이를 실현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구체적 사람을 전제로 했을 때에만 비로소 새로운 인간의 모습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좋은 삶'은 소박하지만 몇 천 년 이상의 시간, 문화 그리고 장소를 불문하고 인간이 스스로의 존재를 만들어나가는데 최고의 준거점 역할을 해왔다. 그 구체적인 내용은 시공간 및 문화를 비롯한 다양한 요소들로 인해 모두 다르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무수히 다양한 모습의 좋은 삶 속에는 분명히 공통분모들이 존재한다. 첫 번째로는 사람이 몸과 마음에 지니고 있는 잠재적 욕구와 능력을 하나하나 일깨워 발전시키는 피어나는 삶Eudaimonia, Flourishing Life을 들 수 있으며, 두 번째로는 개인에게 좋은 삶이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토론을 바탕으로 한 탐구가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영구불변의 나침반이자 변화무쌍한 카멜레온인 '좋은 삶'에 대하여 이번 비엔날레는 지금 이 시대에 ‘좋은 삶’이 무엇일지 다중과 함께 탐구하고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2018년 4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콜렉티브 일동


김남수 무용평론가; 김장언 독립큐레이터; 임경용 더북소사이어티 대표;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




올해로 10번째를 맞이하는 "서울미디어시티비엔날레 2018; 좋은 삶"은 '공동감독'이라는 집단지성을 통해 공동의 주제, 키워드 그리고 차이를 통한 의미 생산의 장을 만들고자한다. 특히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4인(김남수, 김장언, 임경용, 홍기빈)의 콜렉티브가 초대한 동시대 삶의 조건과 현장, 창조적인 노력들이 어떻게 풀어져있을지 궁금하다. 누구에게나 '좋은 삶'에 대한 열망은 있다. 그런 '좋은 삶'에 대한 기준은 제각기 상이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통분모는 분명히 있기마련이다. 이렇게 존재하는 공통분모는 이 시대의 어떤 부분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지는 것일까? 좋고 싫음은 온전히 내가 깨닫는 것일까? 삶과 미디어시티는 어떤 연관이 있을까? 다양한 질문을 남기게 되는 이번 비엔날레에 관심있는 독자께서는 오는 9월 6일부터 11월 18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 전체에서 비엔날레가 진행되니 참고바랍니다. 



자세한 사항은 SeMA 홈페이지 참조  |  sema.seoul.go.kr






정서연 (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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