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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http://aliceon.tistory.com/2975)에서 소개한 것처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진행했던 <예술과 기술의 실험: 또 다른 시작>2000년 이후 E.A.T.의 활동을 다룬 두 번째 회고 전()이자 한국에서 E.A.T.를 소개한 첫번째 전시였다. 이번 전시에는 E.A.T.와 관련된 작품 33점과 아카이브 100점이 소개되었고, 이해를 돕기 위한 전시 연계 강연과 렉처 퍼포먼스도 함께 진행되었다. 1부에서는 왜 1960년대, 냉전의 시대에 E.A.T. 가 탄생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들의 가장 핵심적인 프로젝트였던 <9개의 밤: 연극과 공학(9 Evenings: Theatre & Engineering)> <펩시 파빌리온(Pepsi Cola Pavilion)>를 중심으로 내용을 전개했다. 2부에서는 각 작품의 맥락에 대해서 설명하기 보다 전시의 구성과 이 전시가 가지는 의미를 짚어보고자 한다.

 


전시는 총 4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었다. 첫번째 섹션 협업의 시대E.A.T.가 설립될 수 있었던 1960년대를 되돌아본다. 냉전의 절정기였던 1960년대는 기계 시대의 끝이라 불렸을 만큼 새로운 기술이 범람하던 시대였다. TV와 라디오 등 당시의 기술은 현재 너무나 익숙한 것 또는 고전적인 것이 되어버린 것이지만, 당시 예술 표현의 범위를 확장하기 충분한 것이었다. 대표적으로 장 팅겔리(Jean Tinguely)<뉴욕찬가>(1960)는 본격적인 협업의 시대를 알리는 기념비였다. 빌리 클뤼버와 로버트 라우센버그, 로버트 브리어가 함께 협업한 작업이자 당시 벨 연구소 소속의 기술자였던 빌리 클뤼버가 본격적으로 미술계에 관여하게 된 시작점이기도 했다. 블랙 마운틴 칼리지와 해프닝, 그리고 백남준의 실험들이 이를 증명하듯 1960년대의 예술가들은 기술뿐만 아니라 춤, 문학 등 서로 다른 분야와 활발히 교류했다. 이처럼 E.A.T.1960년대의 풍부한 기술적 토양과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싹을 피웠다.

 


<예술과 기술의 실험: 또 다른 시작> 전시 전경, 앤디 워홀<은빛구름>(1966)



앤디 워홀의 <은빛구름>(1966)을 지나 만나게 되는 두번째 섹션 ‘E.A.T.의 설립과 세번째 섹션아홉 번의 밤: 연극과 공학1967E.A.T.의 결성 이후의 대표적인 작업을 보여주는 공간이었다. 대표작과 퍼포먼스 실황 등이 전시실 가장자리에 위치했고 전시실 중앙 천장에 설치된 로버트 휘트먼의 <붉은 직선>(1967) 아래에 E.A.T.의 여러 문서와 아홉 번의 밤에 사용되었던 도면, 소도구, 기기 등이 전시되었다. 마지막 확장된 상호작용섹션은 1960년대에 그치지 않고, E.A.T.의 활동이 교육이나 환경 등 여러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확장한 과정과 그 결과를 담았다

그러나 어두운 전시실에서 손전등을 비추어 마치 E.A.T.를 발굴/발견하는 듯한 경험이 관람객으로 하여금 예술과 공학 사이의 협업 과정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는지는 의문이 남았다. 이러한 의문은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도록에서 해소할 수 있었지만, 전시로만 한정했을 때 이해하기 쉬운 형태는 아니었다. 또 장 뒤피의 <심장 박동 먼지: 원뿔형의 피라미드>(1968)은 필자가 방문했을 때, (정해진 작동 시간을 오랫동안 기다렸음에도 불구하고) 작품 고장으로 작동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다. ‘예술과 기술의 융합을 주제로 하는 전시에서(항상) 이런 일이 일어나는걸까?

 

물론 이러한 불편을 겪었다고 개인적인 불만을 나열하는 것은 아니다. 나와 같은 이러한 불만, 혹은 못마땅함은 당시 1960년대 E.A.T.의 연극을 본 비평가도 느꼈던 것이기 때문이다.

 

기술적으로 미진한 부분이 많이 오프닝이 40분이나 지연되었고, 15분이었어야 할 인터미션은 35분으로 연장되었으며, 음향 장비의 질이 떨어져 안내 방송조차 알아듣기 힘들 정도였다. 미국 예술계에 신의 축복이 깃들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신은 미국의 과학계가 발전하도록 해야 한다.[각주:1]


위의 글은 E.A.T.의 핵심 작업인 ‘아홉 번의 밤’에 대한 당시의 혹평이다. 이러한 혹평에 대해 빌리 클뤼버는 전면적으로 반박했는데, 당시 비평가들이 기술적인 측면과 예술적인 측면을 구분하지 않았고 미학적인 공연의 특성까지 기술적인 오류로 돌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평가들의 시선은 과학기술의 산물인 기계에 대한 당시, 아니 지금까지 이어지는 일반적인 인식을 잘 보여준다. 극도의 발전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이 시기(1960년대), 잘 작동하지 않는 기계나 의도된 고장-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나는 기계-를 만든 다는 것은 효율성이라는 새로운 윤리에서 벗어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비평가들의 부정적인 시선은 E.A.T.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 예술과 공학의 융합이라는 목표를 이루었음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Herb Schneider, Rauschenberg, Lucinda Childs, L.J. Robinson, Per Biorn and Billy Klüver in Berkeley Heights, NJ, preparing for 9 Evenings: Theatre and Engineering, Berkeley Heights, New Jersey, 1966. Photo: Unattributed 


전시의 가장 마지막에서 현재 벨 연구소에서 있는 기술자와 벨 연구소에서 운영하는 레지던시에 입주한 작가들의 인터뷰가 담긴 영상을 볼 수 있었다. 아직도 많은 기술자가 예술로 인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고, 반대로 예술가도 기술자와 함께 작업을 하면서 나아간다. 전시의 마지막에서 마주한 이 영상이 이 전시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E.A.T의 진정한 의미로 다가왔다. 더 똑똑한, 그리고 완벽하게 작동하는 기계들이 늘어나고 스스로 그런 기계가 되어야 살아남는 오늘날, 부서지고 무너질 고장 날 기계를 만들어보는 것. 결과물은 생각하지 않는 것. 잉여적으로 만나 무언가를 만드는 것. 그렇기에 어떤 특정한 결과물이나 글이나 전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움직임, 분위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협업을 위한 노력들이 E.A.T.의 유산이다.


글. 최선주 [앨리스온 에디터]



  1. Clive Barnes, “Dance or Something at the Armory” the newyork times (October15, 1966) 예술과 기술의 실험: 또다른 시작 도록 p.92 재인용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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