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사운드 아트 101: 재미에서 난해, 무시무시까지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6. 17. 23:29


 


2007년은 ‘사운드의 해’라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한지 오래다.  그 동안 소수 매니아와 작가, 뮤지션들의 리그라고 여겨졌던 사운드 아트, 실험전자음악, 현대음악 등에 관한 미술계의 동시다발적인 관심과 기획행사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올 한해 줄지어 열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 첫 신호탄인 ‘사운드 아트 101: 재미에서 난해, 무시무시까지’. 무엇보다 그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101’, 대학의 수업 시스템에서 가장 기초반임을 표시하는 이 숫자는 이번 전시의 출발점을 명확히 해준다.  즉 ‘사운드 아트란 무엇인가. 그 a, b, c를 알려주마’라는 ‘개론 전시’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공부하듯이 사운드 아트란 무엇이고 어떤 세부 장르와 접근들이 있는지를 분류하고 차근히 설명하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눈에 띤다. 



14개의 작품을 들어볼 수 있도록 한 청취스테이션은 3개의 섹션으로 나뉘어 특히 시각예술과의 (무)관계성을 중심으로 작업군을 분류해놓았다.  전시중인 다수의 작품에서 사용되고 있는 필드레코딩은 녹음스튜디오가 아닌 실제 환경의 소리를 담아냄으로써 특정 문맥과 상황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많은 아방가르드 작가들과 실험음악가들에 의해 시도되어 왔다.  강력한 네덜란드 음악씬을 배경으로 하는 앤 웰머의 <T.(H.)A.T.(L.Q.)L.E.(T.E.)>, 레드 제플린과 락, 하드웨어의 역사적 쇠락을 연결 짓는 켄 몽고메리의 <lonlytime>, 그리고 짧은 한국여행에서의 경험을 유머러스하게 담아내는 료 다카사키 <찜질방에서 잠자기>는 모두 현장에서 직접 채취한 소리들을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특정 시공간에서의 사적 경험이 소리를 통해 전달되고 다시 새로운 맥락에서 타인에 의해 경험되는 일련의 과정은 일상에 대한 소격효과를 이끌기도 한다.  전통적인 음악 개념에 반하거나 그 관습에의 거부에서 비롯된 작품 또한 눈에 띈다. 장재호의 <.mM_1>는 층위를 갖는 기존의 음악구조에 대해 반문하면서, 소리 하나 하나를 살아 움직이는 점으로 상정하는 컴퓨터 알고리즘에 기반하여 일종의 발생적 음악을 만들어낸다.  마치 우주에 떠다니는 생명체 알갱이들의 군무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업은 비선형적인 진행과 더불어 공간적인 깊이를 느끼게 한다.
 







최영준의 <소닉 아트 v.1-5>는 소리와 이미지의 직접적인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사진을 스캔하여 얻어진 데이터베이스를 음으로 변환하는 프로그램이다.  수세기 동안 사운드와 이미지의 연관관계와 통합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예술가들의 노력이 지속되어왔지만 디지털이라는 기술적 현상은 이를 보다 적극적인 방식으로 실현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최영준 또한 컴퓨터 알고리즘을 이용해 raw data를 다른 감각으로 변환시킨 것인데, 영상으로 연주하고 소리로 이미지 듣기를 시도하는 최근의 흥미로운 실험들은 아쉽게도 이번 전시에서는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영화관 환경에 기반한 조하네스 마이어의 <바라.보는 사람들>은 이미지가 제외된 상태에서 소리와 텍스트만을 통해 심상과 내용의 아이덴티티를 구축하는 과정을 작업의 축으로 삼음으로써 영상에서 소리의 역할을 일깨우는 흥미로운 작업이다.







특히 신체를 통한 경험, 물리적인 진동에 의해 야기되는 떨림, 공간 안에서 이러한 진동이 서로 인터랙션하고 신체와 맞닿는 지점을 통감각적으로 끌어내고자 하는 일련의 작품들은 청각의 자유로움과 사운드의 비물질성, 유동성을 통해 소리를 ‘듣는 것’에서 ‘거기에 있는 것’으로 소리감상의 헤게모니를 전환시킨다.  조지 추아, 치와이 유엔, 얼윈의 공동작업 <안개가 피어나다>는 바로 청각적이며 동시에 육체적인 진동을 죽음이라는 화두와 연결한다.  죽음을 삶의 연장으로 표현한 에밀리 디킨슨의 마지막 말에서 제목을 따온 이 작품은, 죽음과 애도의 순간을 꿈틀대는 에너지의 공간으로 변환시킨다.  레닌의 영묘와 같은 암전상태의 전시장은 종결의 공간이라기 보다는 새로운 에너지를 잉태하는 코쿤이 된다.  김영섭의 <케이블 도자기 그리고 소리>는 유동적인 소리를 오히려 박제함으로써 일상의 문화(도자기, 사물놀이 등)가 관조의 대상인 오브제로 전락하고 있음을 꼬집는다.  8000미터에 달하는 사운드케이블을 꼬아 만든 60여 개의 도자기 안에는 다양한 일상의 소리를 뿜어내는 스피커가 내장되어 있어 관객은 각각이 들려주는 소리를 허리 굽혀 듣게 된다.






‘사운드 아트 101’은 소위 ‘음악’에서부터 노이즈, 비가청영역 사운드에 이르기 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재료를 사용하는 작업들을 포진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다양한 소리들을 스테레오 헤드폰이라는 전달매체에 국한시켜 버림으로써 각 작품의 풍부하고 독특한 소리적 경험을 거세해 버린 점은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소리의 경험은 귀 뿐만 아니라 몸 전체로, 주위를 둘러싼 공간의 흐름을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본 리뷰는 월간미술 5월호 전시 글의 수정본 임을 밝힙니다.


글. 허 서 정(아트센터 나비 큐레이터 sjhur@nabi.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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