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방송80년 KSB특별전-백남준 비디오 광시곡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17. 10:52



199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X세대라면 MTV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시끄러운 음악과 함께 등장하는 경쾌한 VJ들의 따발총 같은 수다, 그리고 이와 함께 어우러진 의미 없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빠른 TV화면은 내러티브에 집중하던 기존의 방송들과 차별화 되면서 젊은 층 사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었다. 지루한 토요일 오후, 저 멀리 홍콩에서 보내오는 쾅쾅거리는 록 음악은 십대의 심장을 뒤흔들고, 빠르게 변하는 감각적인 화면들은 십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홍콩 VJ들은 아시아 십대들의 우상이었고, 우리는 같은 음악에, 같은 화면에 함께 함성을 지르고 함께 몸을 흔들어댔다. 방송 80주년을 기념하는 KBS의 백남준 특별전이자 작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바치는 헌정 추모전인 ‘백남준 광시곡’전은 그 시절 MTV의 재현이다. 이 전시는 백남준의 1990년대 대규모 비디오 조각 작업들과 백남준의 1980년대를 대표하는 위성 비디오 프로젝트인 <굿모닝 미스터 조지오웰>, <바이바이 키플링>, <손에 손잡고> 상영관으로 이루어져있다. 특히 대규모 비디오 조각들에는 1960년대 중반 이래 끊임없는 비디오 작업을 통해 비디오의 속도감과 현란함이 관객의 시각을 사로잡는 비법임을 익히 잘 알고 있는 작가의 능수능란한 기교가 담겨져 있다. 따라서 전시장의 구성 또한 시각적 임팩트의 극대화에 집중되어 있다.        


어두운 전시장에 대비되는 네온사인 같은 비디오 이미지들은 화려하다 못해 어지럽기까지 하다. 빛과 전극으로 이루어진 비디오 아트의 특성상 관객들은 춤추는 이미지의 향연에 우선 압도당한다. 중앙 홀 왼쪽에 엎드린 거대한 전자 <거북>(1993)의 스케일은 작품의 의미와 내용을 차치하고 스케일로 우선 시선을 사로잡는다. 가로 9.6 미터, 세로 3.3 미터의 대형 비디오 벽인 <M200>(1991)과 <인플럭스 하우스>(1993)와 같은 작품들 모두 스케일과 비디오의 화려한 화면이 어우러져 캔버스가 줄 수 없었던 시각적 충격을 경험케 하는 작품들이다. 강력한 시각적 충격과 숨을 멎게 할 만큼 드라마틱한 바로크적 효과, 이것이 전시장에 대한 관찰자의 첫인상이자 감상의 시작이며 동시에 끝이다. 작품이 전달하는 내용은 그다지 중요치 않다. 마치 MTV처럼.      





전시장에 놓여있는 작품들은 작품 전체의 내용이나 의미상에서 제각각이다. 요셉 보이스를 추모하는 <보이스/복스>, 명상적 이미지 작업인 <촛불 프로젝션>(1988), 샬럿 무어만을 위해 특별히 제작되었던 <TV침대>(1972, 1991년 재제작) 등 각각의 비디오 조각 작업들은 비디오에 대한 백남준의 단편적 사유의 조각들을 담고 있을 뿐이다. 이들을 연결하는 끈은 작품의 내용이 아니라 비디오라는 매체이며, 비디오가 주는 시각적 이끌림이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이 <TV 침대>이다.
애초에 <TV 침대>는 1972년 뉴욕 키친에서 샬럿 무어만이 건강치 못한 몸으로 첼로 퍼포먼스를 강행하자 이를 안쓰러워 한 백남준이 특별히 고안해 낸 일상용품이었다. 이 당시에 제작한 <TV 침대>는 지극히 실용적인 용도로 실제로 침대로 사용될 만한 소박한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1991년 재제작 되어 현재 전시장에 전시되어 있는 1991년의 <TV 침대>는 제목만 ‘침대’라고 붙어있을 뿐 더 이상 침대의 기능과 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샬럿 무어만은 번쩍거리는 18개의 TV모니터가 달린 새 침대에서는 결코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없을 것이다. 이십 여 년의 간극만큼이나 달라져버린 <TV 침대>의 외형은 백남준의 비디오 작업 양상의 변화를 상징한다. 이처럼 백남준의 비디오는 의미에서 시각으로, 내용에서 형식으로 변해왔다.





전시장 모퉁이에 놓여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1980년대 비디오 상영관이 중요한 이유는 바로 백남준 비디오 형식의 초기 시각 실험 작업들을 비디오테이프를 통해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중 가장 주목해 볼만한 작품은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이다. 1984년이 도래했지만 작가 조지오웰이 두려워하던 전체주의적 세계 대신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신세계가 도래했다는 낙관적 자신감에 가득 찬 이 비디오는 쾰른과 동경, 샌프란시스코와 LA, 파리, 그리고 서울을 가로지르는 야심찬 위성방송 프로젝트이다. 이 비디오는 백남준이 방송과 비디오를 통해 제시하는 장밋빛 신세계의 전망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비디오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비디오의 형식이다. 중간 중간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자의 진행멘트와 이에 섞여 나오는 어지러운 록음악, 팝송들, 무엇보다 의미 없이 지나가는 화려한 화면들은 MTV의 다름이 아니다. 백남준은 <비디오테이프 스터디 No.3>(1969)와 <일렉트로닉 문 No.2>(1969)과 같은 초기 비디오테이프에서부터 비디오 화면을 실험하여왔다. <굿모닝 미스터 오웰>에 보이는 감각적 화면은 이러한 실험의 성공적 결과물인 셈이다. 비디오 화면에 나타난 화면의 감각성은 전시장 바깥의 거대 비디오 조각물들의 바로크적 매혹을 담보한다. 자석선을 이용해 자그만 소니 TV화면을 춤추듯 연주하던 노 거장의 젊은 날은 헛되지 않았다. 그는 이제 비디오 화면과 비디오 조각 전체를 아우르는 거대 오케스트라를 통솔하는 지휘자인 것이다.





이쯤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전시의 제목을 다시 곱씹어 본다. 랩소디 인 비디오, 비디오 광시곡. 영웅시를 노래하는 환상곡 풍의 기악곡인 랩소디를 비디오로 연주하는 백남준이라. 그럴듯한 제목이다. 답답할 만큼 무더운 여름 밤, 일상에 지쳐 느릿느릿 무뎌진 감각을 열어젖히고 전시장 전체를 압도하는 폭발적 랩소디의 향연에 심취하고 싶다면 아직 끝나지 않은 노거장의 연주회에 참석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글. 이수연.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 (jodie7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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