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art fever in europe 2007!_world report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8. 17. 11:16



2007년 유럽의 여름은 미술 열기로 가득차있다. 스위스의 바젤 아트페어를 비롯하여, 5년에 한번 열리는 카셀 도큐멘타와 10년에 한번 열리는 뮌스터 조각 축제, 말이 필요없는 베니스 비엔날레, 그리고 ZKM이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준비한 개관 10주년 기념 전시인 터모클라인 전시까지.. 굵직굵직한 전시들만 나열하더라도 이러하다. 그에 더해 이러한 시기적 요인을 잘 활용한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비롯한 세계적인 미술관들의 전시까지 욕심을 낸다면 아마 유럽에서 돌아올 때쯤이면 미술이 더 이상 미술로 보이지 않고 단순한 오브제들의 나열처럼 보일 정도로 식겁할 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에게 이번 출장 겸 유럽의 미술전시투어는 잊지 못할 여름의 기억을 선사하였다.


Art 38 Basel Fair 2007 0612-0617


작년부터인가 세계적인 아트페어들 사이에서 스위스의 작은 도시 바젤의 아트페어가 집중적으로 조명되기 시작했다. 단순한 상업성을 넘어선 사회적인 이슈들과 현재의 미술 트렌드를 가장 적절히 반영하고 있다고나 할까. 많은 콜렉터들과 미술 관계자들은 너도나도 바젤 아트페어를 추천하기 시작했다. 위치상 ZKM이 있는 칼스루에와도 가까웠던 덕분에 나 또한 많은 기대를 하고 들렀던 곳이기도 하다. (ICE기준 약 1시간 30분 소요) 바젤 아트페어는 본관의 1,2,3 전시와 젊은 작가와 아트페어 본관의 문턱을 아슬아슬하게 못 넘은 작품들을 전시하는 곳곳의 작은 전시관들로 구성이 되었다. 그 중에서 나에게 가장 인상깊었던 전시를 꼽아보라면 난 두말없이 본관의 제 1전시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들어서자 마자 Vectorial Elevation으로 우리에게는 너무나 친숙한 일렉트로닉 작가 라파엘 로자노 해머Rafael Lozano-Hemmer가 2006년 시드니 비엔날레에서 보여주었던 Homographies Subsculpture 7작품을 보고 이 전시장의 분위기를 대략 읽을 수 있었다. 그야말로 1전시는 아트페어의 목적인 “판매”에서 조금 벗어나, 바젤 아트페어에 온 미술 관계자들을 위한 눈 요기거리라고나 할까. 여러 비중있는 작품들과 사회적풍자와 위트들로 채워진 작품들의 구성은 마치 미술작품 전문 남대문 시장 같은 2, 3 전시장에서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두리번 거리던 나의 눈길 또한 잡아주었다. 아무튼 바젤 아트페어는 대성공이었다. 모든 아트피플들이 한 자리에 모인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만 좁은 공간과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더 돋보일 수 있는 작품들이 그 빛을 조금 잃은 듯이 보였던 것은 아쉬운 점이었다. 또한 외국의 전문적인 갤러리스트들과는 비교되는, 한국의 아마추어틱한(다소 너무 어린) 한 갤러리스트는, 좋은 작가의 좋은 작품들을 가지고 제 값을 받지 못하는 듯해 보여 더욱 아쉬운 점을 남겼다. 논외 이야기로 참여한 한국의 두 갤러리 중 그 한 곳은 다른 곳에 비해 부진한 성적을 올렸다고 전해진다. 본 전시 이외에도 볼만했던 전시는 창고를 변형하여,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 Scope이 있었는데 전시장 바로 옆에 유흥을 돋을 수 있는 바를 함께 마련하여 더운 날씨에도 전시를 즐기는 듯한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오히려 본전시보다 “여유”와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에 많은 작품들이 날개돋힌 듯 팔리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본전시 작품들보다 “싸다”는 이유도 작용한 듯했다. 곧 철거될 듯한 다소 공간과 조금은 아마추어리틱한 작품들은 묘하게 어울렸다. 미술 전시에서 공간이 갖는 아우라가 작품의 질을 결정할 수 도 있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스치는 순간이었다. 바젤 아트페어 2007은 한마디로 트렌디한 미술백화점 같았다. 너무 다양한 작품들이 너도나도 아트피플들의 손길과 관심을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어떤 미술 작품들이 이슈화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두말할 것없이 바젤 아트페어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다.





ZKM “Thermocline of Art. New Asian Waves” 0614-1021


117명의 작가와 273점의 작품, 아시아 20개국의 참여라는 수식어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이 전시는 ZKM이 개관 10주년을 맞이하여, 한국의 큐레이터 이원일을 감독으로 임명하는 획기적인 기획으로 준비한 블록버스터급 전시였다. 그러나 ZKM 전시라면 당연하게 기대할 법한 미디어 전시라고는 할 수 없는, 그야말로 모든 장르와 매체를 넘나드는 “다양성”으로 승부하는 전시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번 유럽을 강타한 미술 전시들 가운데서 한국작가들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던 점을 감안한다면, 한국인 감독의 지휘아래, 유럽의 큰 미술관에서 15명의 한국작가들의 작품이 선보였다는 것은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준구엔 하츠시바, 매튜나기, 양푸동, 아마캔워, 비반 선다람, 지티쉬 칼랏 등의 현재 가장 활발하게 빛을 발하는 작가들의 참여는 자칫 다양성에 의해 깊이가 떨어질 수 있는 전시에 힘을 실어 주었다. 다만 이 전시에서도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각의 훌륭한 작가들의 합집합 속에서 큐레이터의 비전이 얼마나 명확하게 드러났나하는 의문이다. 볼거리 많고, 다양한 컨텐츠 속에서 그 중앙을 관통하는, 혹은 전체를 넘나드는 테마가 보다 분명했다면 더할 나위없는 전시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전시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극명히 대비를 이루기도 하였다.





Venice Biennale 2007 0610-1121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일 미술대학의 학장인 로버트 스토Robert Storr가 총감독을 맡아 귀추가 집중되었던 전시이기도 하다. 학자로서의 그의 능력이 큐레이터로서도 얼만큼 빛을 발할 것인지가 이슈였던 것이다. 그러나 뛰어난 학자가 뛰어난 기획의 능력까지 갖추기는 어려운 것인지,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는 그 어느 때보다 조용하고 차분한 전시였던 것 같다. 내가 앞선 ZKM 전시와 대비를 이루었다고 하는 것도 이러한 점에서 이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의 주제는 “Think with the Senses – Feel with the Mind: Art in the Present Tense“였다. 그래서인지 감독이 전시를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본 전시장 어디서나 느끼고 생각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소제목에는 얼마나 충실했는지 의문이 든다. 다소 진부하기까지 한 세계평화와 전쟁의 문제 그리고 그 이슈의 반복적인 발견은 그 큰 전시장을 지나는 발걸음을 점점 무겁고 쳐지게 만들었다. 명확하고 진지한 기획자의 비전이 먼저인가, 아니면 관람객들의 재미와 흥미 유발을 위한 다양성과 새로움이 먼저인가는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논하는 것 만큼이나 불필요한 것이겠지만, 전 세계의 관심을 받는 가장 큰 미술 축제의 하나였던 만큼 그 양 갈래의 욕구를 염두에 두었어야 할 것이다. 다소 트렌드에 부응하지 못했던 베니스 본관 전시를 뒤로하면 그래도 우리는 그 욕구를 좀 더 만족시킬 수 있는 국가관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주목받았던 국가관은 러시아관인데, 컴퓨터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을 결합시킨 AES+F GROUP의 작업은 흥미와 기술력 그리고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면에서 관람객들을 만족시켰고, 뉴미디어와 아날로그를 적절히 믹스하여 배치한 전시관의 작품 구성 또한 좋은 점수를 얻을만 했다. 또한 이형구라는 한 작가만을 내세워 무리수를 두는 것은 아닌가 염려했던 한국의 국가관 역시, 압축적이고 집약적인 전시 구성으로 관람객들에게 꽤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외에도 처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가한 레바논관, 작가 소피 칼Sophie Calle이 직접 다니엘 뷔렝Daniel Buren을 커미셔너로 선정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던 프랑스관과, 거울을 사용하여 건축적인 구조를 선보임과 동시에 매우 트렌디한 작가의 개인전을 선보인 독일관도 좋은 평을 받았다.





Kassel Documenta 0616-0923와 Muenster Sculpture Project 0617-0930


5년 만의 카셀 도큐멘타, 10년 만의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그 이름만으로도 기대감에 부풀게 만드는 그런 것들이었다. 유럽행이 쉽지 않은 나에게 이 적절한 시기의 겹침은 가히 신이 주신 축복과 같은 것이었다. ZKM이 있는 칼스루에에서 카셀과 뮌스터는 각각 약 2~3시간이 소요된다. 그래서 나는 카셀과 뮌스터를 함께 방문할 목적으로 먼저 뮌스터행에 올랐다. 일단 뮌스터라는 도시가 주는 느낌은 전통의 문화가 살아있는 아기자기한 작은 마을이었다. 독일의 어느 부유한 시골 마을 같았다고나 할까. 자전거를 타고 돌면 하루만에 모든 작품들을 볼 수 있다는 지인의 말에 자전거를 빌려타고 관람에 나섰다. 독일인에 비해 다소 짧은 체격탓에 가장 작은 자전거를 빌려타고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던 기억도 난다. 뮌스터 조각 축제는 조각이 주인공이라기보다는 그 마을과 조각이 이루는 풍경 그 자체가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조각작품들을 빠른 시간내에 심도있게 관찰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도록으로 보는게 나을 지도 모르겠다. 지도에 머리를 파묻고 멀리 떨어져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는 일은 뮌스터라는 도시의 여유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혹한 일이 될 것이다. 하루를 꼬박 다녀 삼분의 이되는 작품들을 찾아 내었을 때 나 또한 다른 나머지 조각들을 포기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에 반해 카셀은 그 도시 전체가 도큐멘타를 열렬히 환호하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들어가는 초입부터 “도큐멘타의 도시”라고 써있었을 정도이다. 혹자는 카셀에 때마침 불어닥친 폭풍우가 도큐멘타의 실패를 뜻하는 것이라고 탓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 내가 방문했을 때 마침 불어닥친 폭풍우는 야외설치된 Ai Weiwei의 작품을 완전히 무너뜨렸다. 작가는 무너진 작품의 상태가 더 낫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고 하는데, 나로서는 알 수 없는 너그러움이었다 - , 개인적으로는 앞서 언급한 전시들 가운데 카셀 도큐멘타에 가장 큰 점수를 주고 싶다. 먼저 카셀 도큐멘타에서 기획모티프로 내세운 “Is modernity our antiquity?, What is bare life?, What is to be done?“라는 세 가지의 질문과 그 답은 전시의 모든 과정에서 “너무 극명하지는 않지만 조심스럽게” 스며들어 나타나고 있었고, 종종 진부한 작업들도 찾아 볼 수 있었으나, 그것을 살짝 덮어주는 전시의 공간구성은 나에게도 많은 자극이 되었다. 단지 뉴미디어 아트를 선호하는 ‘나에게’ 아쉬운 점이 있었다면, 카셀 도큐멘타의 특징이었던 심도깊은 비디오 작업들 보다는 매체의 경계에서 다소 자유로워졌던 것이었다. 전시 서문에서부터 명시하듯이, 카셀 도큐멘타 12는 한 마디로 “Formless” 경계를 넘나드는 듯 보였다. 아무튼 나의 첫번째 카셀도큐멘타와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는 그런대로 모두 합격점이었다. 아마 10년 뒤에나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더욱 뜻깊었던 시간으로 남으리라.





이 외에도 유럽의 미술열기를 더하고 있는 프랑스 퐁피두 센터의 “Air de Paris” 전시는 2년 여의 기획기간을 통해 건축이라는 다른 분야와 미술의 교집합을 전시함으로서, 좋은 평가를 얻고 있었으며, 소장품전에서는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참여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었기에, 퐁피두 센터의 ‘영리함’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였다. 자신들이 “트렌디”해야 하는 베니스 비엔날레의 작품들을 미리 알아보았다는 증거를 보여준 것일지, 아니면 역으로 베니스 비엔날레를 지탄하고자 한 것은 아닐지 의문이 든다. 어찌되었건 우리에게는 이것이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되고 있음은 확실하다.


유럽의 미술 열기가 식기까지 아직 시간은 충분하다. 누리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글.사진.최정은.앨리스온 에디터 (red@aliceon.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