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네트워크된 도시의 빛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9. 3. 12:50


색은 혼합하면 할수록 탁해지고 어두워지는데 반해 여러 가지 색깔의 빛은 한데 모여서 다른 새로운 색으로 빛난다. 도시는 온갖 색의 빛이 모여 새로운 빛을 만들어내는 무대이다. 수 만가지 색깔의 빛은 예상치 못한 조합을 이루며 도시를 채운다. 다만 현기증이 날만큼 넘쳐나는 무수히 많은 색깔의 빛은 본래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 또 연결되고 새롭게 빛난다. 작은 조각 하나하나가 모여 색 조합을 만들고 큰 그림을 구성해내는 모자이크 같다. 단, 빛의 모자이크는 훨씬 더 유연하게 연결되고 유동적으로 결합된다.

≪2007 대전FAST : 모자이크 시티≫ 전은 도시를 구성하는 요소요소들이 연결되고 결합하면서 빚어내는 새로운 빛에 주목한다. 도시를 구성하는 환경, 그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펼쳐가는 이야기들이 연결되어 새로운 빛을 뿜어낸다. 환경-인간-삶은 교묘할 정도로 유기적으로 결합되며 도시의 색을 만들어내고, 예술가들은 유쾌함과 희망의 출처이자 절망의 원천인 도시에서 창작의 에너지를 갖는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시의 물리적/비물리적 구조와 사람들의 유기적 연결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어가는 도시환경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삶과 문화에 접근하는 작품들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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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지애 <어떤풍경>

그런 점에서 콜코즈Kolkoz의 <콜코즈 타워>는 이번 전시의 주제를 함축적이고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미지들을 분할하고 조합하여 만들어낸 콜비츠 타워와 도시 풍경 안에는 결코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없어 보이는 빈곤한 사람들의 생활공간이 첩첩이 쌓이고 하늘높이 뻗어나가 도시를 상징하는 기념비적 빌딩으로 우뚝 서있다. 지속적으로 가상과 현실을 연결시키며 진행되어가는 콜코즈의 도시공간은 그 안에서 우리 자신을 매개로 현실과 가상을 끊임없이 연결시키는 우리의 모습을 비춘다. 박준범의 <하이퍼마켓>은 보다 사적인 경험을 프리즘 삼아 도시의 변화를 비추고 있는데, 작가 자신이 유년기를 보낸 대전이라는 도시의 변화를 실제 공간에 작가가 침입하여 현실과 가상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위트 있게 표현해냈다. 파퓰러스케이프PopulousSCAPE의 <도시화된 세계로의 야간 비행>이란 제목의 작품은 서로 다른 문화와 특색과 문제를 지닌 공간들이 도시라는 공통분모를 통해 어떻게 연결되고 지향점을 공유할 수 있는가를 시적으로 보여준다. 모든 도시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도시의 이름은 지표나 수치에 의해 익명화되고 전체 안으로 매몰되어버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렇지만 이러한 공통분모는 도시들이 연결되고 문제점을 공유할 수 있는 가능성 또한 내포한다. 건조한 정보수치만을 가지고 파퓰러스케이프가 펼쳐 보인 시각적 아름다움은 문제의 나열을 넘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빛을 던져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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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니아 칠라리Sonica Cillari <의식적 공간 01 Counscious Space 01>

한편 <모자이크 시티>전에서는 물리적 구조와 인간의 접촉, 그리고 소통을 통해 진화해가는 유기적인 도시 환경을 보여주는 작품들로 흥미를 끌었다. 몸과 몸, 몸과 공간 사이의 관계를 소재로 한 소니아 칠라리Sonica Cillari의 작품은 암흑의 공간은 관람객들 사이의 접촉을 통해 다이나믹한 무대로 변신시킨다. 사람들 사이의 접촉과 온몸을 통한 상호작용은 통해 새로운 세계로 넘어가는 통로이자 에너지원이 된다. 크리스티나 쿠비쉬Christina Cubish의 작품 <새 나무>는 관객들이 회백색 벽에 나뭇가지 형상으로 드리워져 있는 사운드 케이블 주위를 지나는 사이에 새들이 지저귀는 숲 속이나 천상의 화음이 울려 퍼지는 저 너머 공간으로 옮아가도록 한다. 다만 세상 모든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들으며 자기 자신의 잊혀졌던 추억과 침잠해있던 감성을 깨우기 위해서는 작품 앞에 잠시 머물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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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나 쿠비쉬Christina Cubish <새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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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타 다카하시Kyota Takahashi <하숙생>

앞에서 보았던 작품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과 연상을 보여주었다면 반대로 도시라는 공간은 분리와 이탈, 그리고 소외의 현장이기도 한다. 교타 다카하시Kyota Takahashi의 작품 <하숙생>은 늘 함께일 것만 같은 누군가가 나로부터 멀어지는 소외의 순간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공중에 매달린 5개의 스크린과 흰 모랫바닥 위로 비춰진 사람들의 그림자가 각각 한 쌍을 이루고 대화하는 듯 하다가 불현듯 서로로부터 멀어진다. 이동통신과 네트워크 기술은 아주 멀리 떨어진 누군가와 언제든 연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준다. 제각각 분주히 살아가는 순간순간에도 늘 연결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을 갖고 싶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렵다. 내가 접촉할 수 있는 누군가가 내 곁에 있을까. 심지어 나란 존재는 온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을까. 어느 순간 나 자신으로부터 스믈스믈 빠져나가는 나 자신과 나에게서 멀어지는 누군가를 붙잡고 싶지는 않은가. 한 공간에 머물면서도 만날 수 없고 다른 공간에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스쳐 지나가는 군상을 화면에 담은 이배경의 작품 <섬>역시 미디어 환경에서 한 쌍처럼 등장할 수 밖에 없는 연결과 소외의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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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배경 <섬>

1900년대 초반 새로운 기술이 등장으로 급변한 현대 도시에 대한 연구를 펼쳤던 벤야민은 “가장 복잡한 문명과 현대적인 문화는 나를 편안하게 하며 이와 관련된 주제들이 바로 창작의 수단”이라고 말하면서 도시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바 있다. 도시는 모든 문제가 발생하는 온상이기도 하지만 아름답고 편안한 유쾌함의 원천이기도 하다. <모자이크 시티>전은 바로 이러한 도시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 경험하고 있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다양한 미디어아트 작품들을 통해 보여주었다. 다만 대전이라는 과학도시 전체를 캔버스로 삼겠다는 포부나 과학기술 시대의 새로운 매체를 자유롭게 활용하여 도시의 속성을 탐구한 작품들은 사실 많지 않았다. 미디어로 매개되지 않은 것이 없을 정도로 미디어는 일상화되어 있고 작가들에게 역시 미디어 환경은 살아 숨쉬는 터전 그 자체이다. 작가는 언제나 자신이 처한 환경과 사회에 천착하여 작품을 내놓지만 그것이 예술을 통해 매체의 이면을 발견하고 속성을 탐구하는 작업과는 차이가 있을 것이다. 대전FAST(Future of Art and Science and Technology)가 그 제목만큼 과학과 예술의 만남에 초점에 두었다면 과연 그 만남의 지점을 어디에 두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글.이주연(앨리스온 에디터) violet@aliceon.net




민지애 <어떤풍경>



교타 다카하시Kyota Takahashi <하숙생>



파퓰러스케이프PopulousSCAPE <도시화된 세계로의 야간 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