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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미술관 제 2전시실(현 아르코미술관), 2005.2.23~3.6

 언젠가부터 건축전이라는 부제가 붙은 전시가 드문드문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느 집단이나 자신들만의 화두가 있고 그 속에서 흔히 논의되는 바가 있다. 하지만 그런 이야기들은 그 집단을 벗어났을 때 아무런 의미도 갖지 못하기 일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이 내놓는 건축전들은 자기들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축을 공부한 학생들에게도 충분히 알려지지 않아 때로는 생소한 이런 전시들이 일반인에게 볼거리, 생각할 거리를 제공할 것인가가 항상 의문이다. 다행히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 회고전은 한국인 누구엑나 익숙한 '방'을 주제로 차분하게 말을 걸어왔다는 점에서 거리감을 좁혀 다가온 것 같다.

 이 전시는 김광수, 송재호, 유석연씨가 지난 해 베니스비엔날레 건축전에서 선보였던 것으로 국내 관람객들을 위한 회고전의 성격이 짙다. 노래방, PC, 찜질방, 비디오방, 놀이방, 전화방, 소주방 등으로 대변되는 한국적 도시공간의 모습을 통해 일상의 의미와 이를 건축이 어떻게 담아내는지를 생각해보고자하는 의지가 잘 드러나는 이 전시는 기존의 비엔날레에서 선정된 몇몇 건축가들이 자신의 대표작을 출품해왔던 전례를 깨고 공동의 주제를 가지고 전시를 조율하는 커미셔너와 함께 작업한 내용을 전시하고 있다. 삶의 방식과 건축형식 괴리는 건축가와 도시계획가의 통제를 벗어난다는 큰 줄기가 기본인 “방의 도시”는 농경사회의 마을에서 근대와 탈근대도시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정보 시대의 도시로 도약한 서울의 현재에 대한 이야기이다. 유기적이고 연속적 도시공간은 불연속적 방들의 네트워크로 대체된다. 획일화된 상가 건물들 사이를 빽빽히 채운 방들의 네트워크는 건축가의 바람과는 다르게 성장하고 있다. 건축가는 이러한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단순히 무시하거나 거부해야 하는가? 건축가들의 작업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

   

 “방의 도시”에서 세 명의 건축가는 서울이란 도시 속의 건축과 그 속에 섞여 있는 서민들의 삶의 패턴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접근 분석하고, 이를 비판하지도 찬양하지도 않은 차가운 시선을 유지하고 있다. 이들은 이미 존재하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확인시키기보다는 방의 도시에서 배제된 것, "보이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공동작업 방식을 택한다. 방의 변이와 변종을 추적하고 분류하고 계보를 만든다. 계보는 건축가의 상상력을 매개로 하나의 신화로 태어난다. "방의 도시"는 결국 거대도시에서 정주와 일상의 의미, 그리고 그것을 담는 건축이 무엇인지를 되묻는 실험이다. 이런 의미에서 "방의 도시"는 현재화된 미래이자 건축의 새로운 텍스트 쓰기이다. 먼저 김광수의 Xell-City작업은 사각의 틀 속에 넣었다 뺐다 바꾸어도 전혀 문제 되지 않을 것 같은 우리의 아파트 문화를 꼬집고 있다. 8명의 사람들의 하루 일과를 분석한 후 일주일간의 동선을 추적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들이 흔적을 남긴 도시의 방들을 연결하고 그들이 거주하는 또 다른 방, 아파트라 부르는 거주 공간의 획일성을 아파트 평면 모듈을 들어 극명하게 보여주고 마지막에 Vinyl +Container Camp로 거주자에게 유동적이고 변화 가능한 삶을 살 수 있는 공간을 제시하는 것으로 마감한다. 장황한 분석 끝에 나온 결과물은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다 해도 어딘지 모르게 빈곤해 보인다. 유석연은 Bang-on-line에서 동일한 혈통과 동질성을 지닌 서울이 최고의 인터넷 보급률, 이동전화의 일반화로 이룬 초고밀성 속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삶을 비교하여 특히 학교를 중심으로 등교 상태를 visible로 방과 후를 invisible로 나누어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송재호는 noW/Where이란 이름으로 각종 근린생활 영역으로서의 방들, 그리고 도시 전체의 공간적 조직의 상관관계를 정리해 내지 못한 채 각종 변종들의 탄생과 이해들이 얽혀져 있음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중 특히 눈에 뜨이는 비디오방, 피씨방, 노래방, 놀이방, 전화방, 찜질방, 소주방들을 주거문화의 일부 요소들로 분화, 탈바꿈시켜 도시 공간의 일상성 깊숙이 정착시키고자 각각의 변형된 평면들로 나타나고 있다. 그의 작업 속에 도시는 살아서 꿈틀거리면 그 속의 건축 단자(monad)로서의 방들은 무한한 변이가 가능한 세포 같은 것이다.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은 어느 때보다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설치미술을 방불케 하는 작업들과 영상들로 가득하고 개막식에는 어어부밴드의 공연까지 곁들여져 여러 나라 관객들의 주목을 독차지했음을 회고 영상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이 선택한 전시방법 또한 기존의 전시와는 조금 다르다. 전시장 속에서 만나는 건축은 항상 이미지 스케치와 실물 모형, 세부 도면들로 대변되어 왔지만 여기서는 그것들과 유사한 형태의 오브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다. 차라리 전시장 한 켠의 건물 모형은 초라하기 까지 하다. 최근에는 건축전시들은 또 다른 흐름을 타고 있는 것 같다. 기교를 부린 3D 모델링 작업과 CG작업들, 미디어 전시를 보러 온 것은 아닌가하는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현란한 설치 작업과 영상물들이 존재한다. 새로운 실험이 늘고 생각하고자 하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날이 갈수록 컴퓨터 이미지 작업이 늘어나는 것이 현실이지만 “방의 도시”를 기획하며 건축가 자신들은 그들이 만든 용어사전에서 멋 떨어지게 정의한 건축가<architect: 신 혹은 신의 아들/딸 혹은 그렇다고 생각하는 사람, 밤에 일어나고 아침에 잠드는 사람, 컴퓨터를 잘 못 쓰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 금연 구역에서 혼자 담배 피는 사람>와는 아주 다른 모습의 건축가가 되어가고 있고 되어가길 강요받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시각적인 자극이 가장 일차적인 판단의 대상이 되겠지만 자칫 깊이 없음을 간과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방의 도시”가 서울이나 한국의 도시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문제임을 세계의 관객들이 공감하게 만들려면 무엇보다 깊이 있는 주제의식과 참신한 대안이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건축이라는 작업은 자신이 가진 스케일을 바탕으로 이야기되고 평가되는 속성을 가지는데 닫힌 사각의 틀에 놓이는 작업들은 아무래도 인위적인 손질이 더욱 많아질 수 밖에 없고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공간으로 옮겨오는 순간 건축의 본질과는 조금 의미를 달리 하는 작업이 되는 것이다. 루이스 칸(Louis Kahn)은 일직이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고 한다. “화가는 검은 태양을 그릴 수 있지만, 건축가는 할 수 없다. 화가가 만드는 당나귀는 하늘을 날 수 있지만, 건축가가 만드는 당나귀는 대지위에 서 있어야 한다.” 이것은 다고베르트 프라이(Dagobert Frey)가 “건축은 예술적으로 형성된 현실이다.” 라고 한 것과 같은 것이다. 그것은 건축이 언제나 하나의 현실적 존재이며 생활공간이라는 것, 즉 현실적 존재라는 것은 예술로서의 건축에 대해 커다란 제약이지만, 제약은 동시에 수단이며 동기이다. 그 제약 때문에 건축예술은 다른 어떠한 예술보다도 더욱 사람들 공공의 감정, 이상, 사상의 표상으로서의 힘을 획득한다고 하는데 건축 전시는 오히려 그런 면에서 기존의 제약을 잠시 벗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러한 작업들은 명확한 틀이 정해져 있지 않아 건축과 동떨어져 보일 수 있다. 그것이 이번 전시를 보며 가지는 아쉬운 점이라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형이상학적인 공간에 대한 실체는 구체적인 작품과 작업방식을 세밀하게 보여줄 때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전시장이라는 힌색 큐브 속에서 건축 개념의 설명만으로는 작업의 보편성이나 당위성을 획득하기는 어렵다. 이유를 생각해 본다면 우선 건축가의 자의성이라 할까. 적지않은 건축가들의 부연설명에서 혼재하는 논리 및 해석의 차이는 단순히 다양한 스펙트럼이란 긍정적 가치보다 학문적으로 혹은 현실 참여적으로 검증되거나 실현되기 어려운 모호한 개념으로 상정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상황은 건축가만의 문제가 아닌 학문으로서 정립되지 못하는 것은 학문하는 이들의 책임이기도 하며, 현대예술의 자율성을 남용하며 작가정신을 지상의 가치로 여기는 건축가들의 편식이기도 하며, 기술과 생산성, 이미지의 가치를 폄하하는 건축사들의 무지일 수도 있다. 다만 너무나 당연할 수밖에 없거나 다시 모호한 윤리라는 문제로 형이상학적 실체의 구체적인 실현작업 없이 단순한 설명이나 보이기 위한 이미지만으로 작업을 마치지 않길 바란다. 어쨌든 여러 어려운 여건에서도 “방의 도시”에서 건축가들은 나름의 고민을 전달하기 위해 고투한 흔적이 엿보이고 그것만으로 가치를 가지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렘 쿨하스(Rem Koolhaas)다 장 누벨(Jean Nouvel)이다 하는 내노라하는 유명 건축가의 건물들이 서울 도심 곳곳에서 세워지고 있을 때 베니스에서는 노래방, PC, 찜질방, 비디오방, 전화방등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도시공간에 대한 고민이 세계의 공감을 끌어내고 있었다. 국내에서 열리는 설계경기에 응모조차 하지 못하는 우리 건축가들의 안타까운 현실은 우리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보니 세계가 주목한 세 건축가의 공동 작업은 더욱 많이 생각할 거리를 준다. 건축이란 현실적 공간과 그것을 이미지화하는 과정을 전시하는 것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같은 분명한 차이가 있겠지만 개성적인 표현과 공동체적인 어울림, 그리고 부조화 속의 조화로 현대도시의 현실을 대립시키고 혹은 화해시키는 이런 즐거운 우리 건축가들의 작업이 이제 전시 공간인 오프라인 에서 뛰어나와 자신의 작품에서, 우리의 도시 속에서, 우리의 사회 속에서 진정한 작품으로서의 삶을 담아내고 삶을 디자인하는 용기로서 온라인의 구체성을 획득하는 날이 하루 빨리 다가오길 바라는 바이다.

 

김혜영 (홍대 예술학) elephant2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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