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반짝이는 서울 사이 소멸의 안타까움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 20. 22:30

지난 1월 9일부터 안국동에 위치한 갤러리175에서 안세권의 세 번째 개인전, "The Gleams and Glimmers of Seoul"이 전시되고 있다. 비디오나 사진을 이용한 작업을 하는 안세권은 세 번째 개인전을 통해 심미적 관찰자 입장으로서의 자신의 세계를 조금 더 뚜렷하게 표현한다.

어두운 전시장 안으로 발걸음을 들여놓는 순간, 안세권의 작업이 확연하게 눈에 들어온다. 암흑의 공간에서 그의 작업을 보는 것과 빛의 간섭이 있는 공간에서 그의 작업을 보는 것은 새삼 말할 것도 없이 다른 차원의 이야기가 된다. 빛이 있는 전시장에서 라이트 패널의 매체적 특성은 평면화 되어 안세권의 작업을 밋밋하게 만들었던 데 반해 빛을 제거한 공간에서 라이트 패널은 자신의 매체적 특성을 극대화하여 그 안에 담고 있는 사진이 말하고자 하는 순간을 포착하도록 최적화 하였다.



폐허 속에서도 안세권의 작업은 푸른빛을 잃지 않는다. 폐허와 비교되는 고층아파트들은 빛나는 한구석을 차지하고 폐허 속에는 빛이 가라 앉아 있다. 푸른빛의 청명함이 사진에 남는다. 마지막 점검을 위해 켜놓은 아파트의 불빛들과 한 대기업의 파란마크 그리고 오른쪽에는 폐허가 되어버리는 어느 동네는 대조적이다. 이 장면을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무차별적 발전의 산물이나, 개발주의의 희생양이 된 도시의 한 쪽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그 이상의 것을 작가는 이야기하고 있다. 단순히 사회적인 시각으로 다가간 르포형식 사진이라면 안세권의 작업은 의미있지 않을 것이다. 그의 작업에서 의미를 갖을 수 있는 것은 그의 작업이 이러한 개발 중심의 도시의 광경을 한 발짝 떨어져서 심미적으로 바라보았다는데 있다. 청계고가도로 위를 불안하게 움직이는 시각에서도, 다 쓰러져는, 더 이상 남아있는 건물이 없이 무너지고 파헤쳐지고 그을린 흔적만이 남아 있는 월곡동의 모습에서도 바라보고 있는 대상 그 자체에 집중해 사회적 상황을 읽어내는 것과 동시에, 사그라져 가는 도시 풍광의 아름다움을 지나쳐버리지 않는다. 특히 라이트 패널로 보여주는 사진 작품에서 도시는 빛을 통해 부유하는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된다. 작가가 불어넣은 빛은 음울한 도시 구석에 한 가닥 남은 사회적 공간의 표상이다. 이 빛은 외려 아직 사라지지 않은 이 공간의 마지막 의미가 되어 남겨진다.

라이트 박스 위에 놓인 필름 안에서 스러져가는 도시 속 낡은 주택 부분 부분을 확대경을 통해 확인해 나가다 보면, 생활의 단편들이 자세히 보인다. 그런 것들은 남겨지지 않고 휩쓸려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개인적 시간이 담겨져 있는 그 공간들은 새로운 공간으로 대치된다. 작가가 바라보는 시선에 실려 있는 안타까움은, 다시는 볼 수 없는 과거의 시간과 공간의 형태들에 머무른다. 도시의 개발 과정에서 우리가 존재했던 공간이, 순간이 사라지는 것이다. 공간의 현존은 시간의 개입과 필연적인 관계를 형성한다. 공간의 해체와 소멸은 그러므로 시간의 소멸, 생에서 사로 넘어가는 문이 된다. 작가가 말하려고 하는 시간성은 공간을 통해, 공간의 사라짐을 통해 이야기되고 이러한 사유가 시간성으로 규정되는 매체가 아닌 순간의 매체인 사진을 통해 말한다는 점에서 더욱 아이러니하다.



안세권의 작업들은 그 배경이 도시, 그 안에서의 시간과 정체성이라는 점에서 발터 벤야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벤야민이 생각했던 것처럼, 도시는 결국 “‘늘 새로운 것’처럼 가장하고 있는 ‘반복동일성’의 진보”의 한 얼굴이다. 그의 작업에서 황폐해진 재개발지구와 파란 마크가 찍힌, 하나하나 의미가 담겨져 있기 보다는 뜻도 특별함도 없이 기계적으로 쌓아 올려놓은 것 같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는 단편적으로는 대조를 이루는 듯하지만, 결국 발전의 단계와 다음 단계라는 사실에는 큰 차이가 없다. 하나의 이미지에서 새로움과 낡음으로 대비되는 두 형상은 결국 다시 반복될 또 다른 낡음과 새로움으로 읽혀질 수 있다. 안세권의 작업에서는 흘러가는 낡음에 대한 아쉬움이 드러나지만, 그 안에서는 결국 재생산되는 형태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며, 이것이 그의 이미지 안에 숨어있는 도시 공간 속의 정체성이다. 



그램 질로크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벤야민에게 사물의 진짜 속 알맹이는 사물이 본래 위치해 있던 맥락이 사라지고 난 후, 즉 대상의 표면에 부수어지고 소멸의 가장자리에 남아있을 때 비로소 발견된다.” 작가의 작업 속에서 소멸은 이러한 벤야민의 사유와 일치한다. 그는 지속적으로 소멸 속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아낸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인간을 담고 있던 공간은 재생산된다. 공간의 정체성은 사그라지고 재생되면서 반복되는 순간의 영속이다. 작가는 작업 전반에 걸쳐 긴 호흡을 통해 이 순간들을 포착하고 있다. 그가 쫒는 것은 시간이 지나쳐가는 도시의 공간, 그 안에서 존재하는 우리의 모습, 시간 속에서 멀어져가는 우리의 모습에 대한 향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