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Artist

홍지윤, 새로운 동양화 존재방식을 제안한다_inter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5. 14. 18:33



Aliceon :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난 3월에 진행되었던 11회 개인전에 이르기까지 홍지윤 작가는 ‘퓨전 동양화’ 작가로 알려져 왔습니다. 본인을 설명하는 키워드가 된 ‘퓨전 동양화’에 관해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가 추구하는 퓨전동양화는 시와 글씨가 기반이 되는 수묵화를 탐구하여 동양의 전통적인 정서를 현대의 기술과 이미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양화와 디지털의 만남을 기점으로 하여 동양화와 다른 문화가 만나 만들어지는 새로운 동양화의 존재방식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제 작업은 현재진행형의 동양화를 추구하며 이는 동시대 미술을 이야기 합니다. 제 스스로의 작업이 지금의 삶을 사는 사람들의 마음에 편안하게 다가가서 함께 나누고 서로를 즐겁게 하는 것으로 기억되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Aliceon : (위 질문에 이어서) 개인 홈페이지에서 “동양화와 다른 문화가 만나 만들어지는 새로운 동양화의 존재방식을 제안한다”라고 언급을 하셨는데, 동양화의 새로운 존재 방식으로서의 영상 매체와의 결합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요?

동양의 사유 체계는 우주와 자연과 삶에 대한 해석입니다. 그리고 그 기반에는 "자유로움"이 있습니다. 이는 하나의 연속체인 우주 안에서 자연과 창조의 기본 원리이기도 하죠. 따라서 자연의 이치에 대한 관심은 표현의 자유로움에 대한 단초가 됩니다. 제 작업은 자유로움에 대한 정신적이고 또한 물리적인 사유의 공간적 재현입니다. 동양화의 수묵과 영상과의 만남은 이러한 수묵 동양화의 전통과 영상매체의 결합이며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결합하는 방식이기도 합니다. 즉 제 작업은 시와 글씨가 기반이 되는 수묵화를 탐구하여 동양의 전통적인 정서를 현대의 기술과 이미지로 해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Aliceon : 예전 한 매체(2008 아트프라이스 1월호 - Artist Forum)와의 인터뷰에서 ‘작품과 작가의 삶이 일치하는가?’ 라는 질문에, ‘삶과 일치 한다. 삶을 詩로 적고 그것을 작품화 하는 것이 내 작업의 내용이기 때문이다’라고 답변을 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삶 속에서 느껴지는 감성을 작품으로 표현하는 데에 있어, 영상 매체가 지닌 특성이 있다면 어떠한 것인가요?

저는 오래전부터 그날의 삶을 하루하루 짧은 일기나 혹은 단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감성을 통해 정리되거나 혹은 그대로 풀어져서 한편, 한편의 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어들을 정리하고 바라보면서 시가 가지게 되는 자체의 운율과 글씨자체가 가지고 있는 조형성에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글과 글씨들이 이렇게 저렇게 모았다가 늘어놓았다가 하며 또 다른 형태를 상상합니다. 이것들은 다시 이미지가 되어 편집프로그램 안에서 하나로 연결됩니다.  
여기에서 '시간성‘이라는 개념을 빠뜨릴 수 없는데 이는 또한 동양화의 지필묵이 가지는 매체의 특징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다양한 농담을 담은 먹물은 단지 눈으로 보기에는 검은 먹물로만 보입니다. 이것이  시간을 거치면서 물이 증발하고 남은 후 각기 다른 농담으로 화선지위에서 본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제게 있어서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변해 원래의 색을 보여주는 수묵의 특성은 삶의 과정과 닮아있다고 여겨졌고 특별히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수묵그림이 컴퓨터 프로그램 안에서 편집되기도 하고 연결되기도 하며 변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모습도 한 맥락위에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수묵작업의 과정과 삶의 과정의 문제 그리고 수묵작업을 컴퓨터를 통해 매체화하는 데에 있어서 당연히 존재하는 시간성은 최근 이야기 하고 있는 제 감수성에 대한 ’기록‘의 문제와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가지기도 합니다. 
감성을 시간성위에서 시각화 하는 데에 있어서 영상매체는 제게 있어서 수묵작업과 동일시될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 흥미로웠고 작업의 경쾌한 진행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는 작업의 특징을 말 할 때 중요한 부분으로 자리하며 제 작업에 있어서 영상 매체가 갖는 특성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Aliceon : 홍지윤 작가의 작업을 보면, 한편의 영상 편지를 보는 듯 합니다. 일전의 언급을 보면, '나에게 움직이는 수묵그림-수묵영상은 시간의 흐름을 동양적으로 시각화하기 위한 수단이다'라고 하셨는데, '시간 흐름의 동양적 시각화'란 어떠한 의미인가요?

위의 답변과 연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작가라면 누구나 그러하겠지만 저는 시간이나 계절의 변화 또는 세월이지나면서 변화되어가는 사람들의 겉모습과 속마음, 그것들과 나와의 관계를 예민하게 느끼는 것 같습니다. 
언제부턴가 의식하지 않는 사이에 어쩌면 제 작업이 이러한 부분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천성이 재빠르지 않고 단번에 무엇을 하기보다는 시간을 두고 일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삶을 살아가는 제 심성은 심사숙고하게 느린 속도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수묵화의 재료적 특성과 닮아있습니다. 이제는 원래의 내가 그런 것이었는지 동양화를 그려서 그렇게 된 것인지 단정할 수 없겠지만요.  
2003년 ‘화선지위의 시간’이라는 책을 만들었습니다.
이는 본격적으로 수묵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1997경쯤부터 써온 편지나 일기 시 들을 엮어서 간간히 그려온 수묵드로잉들과 함께 엮어 만든 책입니다.  책의 제목을 지을 무렵 고심 끝에 책의 내용에 들어있는 시의 제목들을 죽 늘어놓고 보니 결국 지나가는 시간위에서 일어났던 또는 겪었던 감정들을 적어 놓았던 것이었습니다.  책을 출간한 이후 그러한 면에서의 ‘시간’에 대해 좀 더 깊이 생각할 기회가 많아졌고 본격적으로 수묵그림들과 시들을 영상에 담아보기로 하고 작업한 수묵영상 ‘가을날 저녁에’(2003)이 지금까지 수묵영상작업으로 이어져 오게 되었습니다.  영상작업을 진행하면서 수묵의 특성과 그것을 닮은 제 감성을 효과적으로 표현하려면  빨리 움직이는 세태나 여타의 영상작업의 속도보다 훨씬 느린 쪽을 선택하는 것이 더 잘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시간성을 가진 영상작업의 디테일에 있어서 느린 디졸브로 이어지는 편집방식에서 느림의 정도를 조절하면서 느림 안에서 발생되는 빠르기와 또 다른 느림에 대한 생각들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생각들을 정리하며 영상작업을 진행하면서 ‘느림’으로 대체되는 동양적 사고와 동양화 내 삶의 방법을 수묵영상작업에서 다시금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시간 흐름의 동양적 시각화' 라고 표현 해 본 것입니다.
 

Aliceon : 2005년작 <사계>와 같은 작품을 보면, 작가의 삶을 통해 느껴지는 감성이 ‘영상, 그래픽, 사진, 수묵화’ 등의 다양한 표현 방법과 압축된 ‘시(詩)’로 드러나는 듯 합니다. 이러한 작업들은 문인화에서 보여졌던 ‘시(詩) ․ 서(書) ․ 화(畵)’를 영상 속에서 풀어내고 있다고 보여집니다. 이에 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제 작업에서 시는 그림이 되고 또한 그림은 시가 됩니다. 생각을 해 보면, 그림은 또는 시는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가는 삶에서 만난 우연한 어떤 때를 관찰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일인 것도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 느끼고 깨닫고 그리고 나서 시를 짓고 글씨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가벼운 농담을 하듯 이야기를 합니다." 나의 작업은 주로 자연에 대한 자유로운 생각들과 일상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의 흐름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에 있으며 紙, 筆, 墨과 詩,書,畵 그리고 서화동원(書畵同源)의 개념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소통의 매개는 언어와 이미지이며 예술은 문학적인 네러티브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동양화는 시(詩)입니다. 나의 작업은 詩를 짓고 그 시를 글씨로 옮기는 것에서부터 시작되며 이러한 시와 글씨가 水墨그림이 되고 컴퓨터에 옮겨져서 수묵영상이 되는 것이죠.

Aliceon : 새로운 기술을 활용한 다양한 작업들을 진행하시다 보면, 기존 동양화 작업들과 다른 새로운 고민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보여집니다. 혹시 그러한 부분이 있으셨다면 어떠한 것들인가요? 

동양화는 기본적으로 지필묵을 재료로 한다는 양식적 특징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문인화의 개념에는 문학에서 말해져온 보여지는 것 이외의 것을 그린다는
상외지상(象外之象, 형상 밖의 표상 - 언제나 생생하게 존재하고 있는 허의 상은 감상하는 독자의 마음속에서는 드러나게 된다. 독자들의 상상력을 고조시켜 시에 묘사된 것보다 훨씬 광대하고 풍부하며 생동적인 그림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것 이것이 상외지상(上外之象)이라고 하였다) 이라는 말에 의미를 둡니다.  
이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이러한 동양화가 단지 재료로써 만의 문제가 아니라 제게는 정신성을 요구하는 작업에 대한 태도의 문제로 받아들여져 왔습니다. 때문에 처음에 이러한 동양화의 특성이 강한 제 작품을 가지고 기술적 변형을 한다고 생각했을 때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매체로써 동양화(지필묵)과 사진, 그래픽, 영상은 정 반대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작품으로써의 설득력과 객관성을 갖기 위해서는 늘 둘의 성격을
한 선상위에서 이해하고 비교, 검토,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내적이미지와 시각이미지, 무거움과 가벼움, 비움과 욕심, 수렴과 발산, 느림과 빠름,
종적사고와 횡적 사고, 모호함과 정확함, 동양과 서양, 동양화와 현대미술, 같은 것들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작업의 과정은 이제는 제게 있어서 삶을 유추하는 방법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고민의 문제들은 작가로써 뿐만이 아니라 삶을 사는 한 사람으로써 나 자신에 믿음위에서 해결되어왔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고민들이 단지작업을 위한 것뿐만이 아니라 나를 찾아가는 길에 길잡이가 되어 주고 있다는 점에서 고마운 마음입니다.
      
 

Aliceon : 회화작업에서 드로잉, 애니메이션에 이르기까지 홍지윤 작가의 작업에서 '새'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혹시 이유가 있다면요?



제 방안 침대에 누우면 흐린 날에는 수묵화를 닮은 회색하늘이 또는 맑은 날에는 파란 하늘에 구름 몇 조각이 떠 있는 하늘이 보입니다.
집 옆, 전봇대부터 시작된 전기 줄 한 줄이 네모난 창틀 안에서 그림처럼 정확히 아름다운 각도로 지나갑니다.  그 위에 언제나 비둘기 한 두 마리가 앉아있거나 잠시 머물다가 날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게 오래전부터 참 시적이고 낭만적으로 느껴졌고 잠에서 깨어나 정신이 들 때까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게 참 즐거웠습니다.
2001년경 어느 날 작업실에서 먹의 농담을 사용해 새의 깃털과 몸체를 내 모습과 닮게 그려보고 싶어서 단번에 작은 화선지에 한 점 그렸더니 참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앉은 자리에서 날이 밝는 줄도 모르고 100여점을 그렸습니다.
그런 영감과 그림들이 2003년 5회 개인전 때 발표한 수묵영상 - 한 번을 날면 구만리    를 난다는 장자의 새를 의식한 큰 새 ‘붕’에 그대로 묘사되었고 그때 그린 작은 새 그림들도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전시의 글에서 설명했듯이 이미 수묵화로 그린 새에 자아를 이입하게 되었던 것 입니다. 작게 여겨지는 제 안에 존재하는 작가적 이상과 인간적 욕망, 삶의 감정들이 그 때부터 새로 발현되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후로 새를 바라보는 마음이 특별 해 졌고 수묵의 표현이 갖는 특성이 새의 형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시간이 지나 2006년 독일뮌헨 레지던스 기간 동안 뮌헨예술가의 집(Villa walberta)근교에 위치한 호수에서 만나게 된 백조들과 오리들은 이국의 정취와 고국에 대한 향수를 자극했고 이후 이번 전시에서 작품화한 인생은 아름다워 : 기도(祈禱) 또는 애원(哀願) : Chopin - 피아노 협주곡 제 2번 - 1. Maestoso 에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는 그림을 그리는 한 사람으로 이전보다 좀 더 삶에 가까워지는 제 심상을 긍정적이고 밝게 표현하고자 즐겁고 자유롭게 나는 새들의 형상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Aliceon : ‘디자인 정글 아카데미’ 에서 진행하시는 '홍지윤의 퓨전동양화' 수업은 어떠한 수업인가요? 짧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자유로운 마음으로 천천히, 어린아이같이 그리는 그림을 디자이너와 비전공자들에게 가르치는 수업입니다.  동양화와 동양화 이외의 각 장르가 가진 틀을 깨고 동서양의 문화를
넘나들며 동양인에게나 서양인에게나 친근한 동양화를 보여주고자 합니다.
세상은 변하고 당연히 동양화도 변합니다. 머물러있지 않고 변화를 꿈꾼다는 것은 일견
예술이란 말을 앞세운 창작의 본질에 대한 가장 설득력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변화하는 지금의 패러다임은 환경과 생태 그리고 문화와 문화가 만나 만들어내는 또 다른 모습의 다양한 어떤 것에 대한 도전이자 그것에 대한 기대이며 발생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그 어떤 재료보다도 자연에 가까운 지필묵으로 인간과 자연을
이야기하기에 더 없이 알맞은 동양화가 구체적인 현재의 삶을 문인화와 선종화의 표현방법이 기반으로 하여 진행됩니다. 또한 홍지윤의 퓨전동양화는 동양화적 전통을 계승한다거나 그것의 현대화를 모색한다기보다는 디자이너뿐만이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원하는 것에 대한 가장 원활하고 효과적인 아이디어와 창작을 위한 즐거운 재료가 되어 그 자체로 새로운 하나의 문화가 되기를 추구합니다.

http://ejungle.co.kr/workshop/wks_overview.asp?p_no=1866&pm_no=834
http://ejungle.co.kr/workshop/wks_overview.asp?p_no=1822

Aliceon : 앞으로의 작업에 관한 계획 및 일정은 어떠하신가요?

상반기 안에 화장품회사와 올해 개인전 ‘인생은 아름다워’작업의 꽃을 모티브로 상품이 출시될 예정이며 5월중에 중국의 송장미술관에서 한국성을 보여주는 작업을 하는 작가들과 기획전에 참여하여 수묵영상 작품 ‘음유, 낭만, 환상’을 발표합니다. 그리고 6월에는 동양화작가들과 독일에서 프로젝트 전시를 합니다. 7,8월에는 도자기에 그림을 그릴 계획에 있고 하반기에 최근 수묵과 형광색을 사용한 작품을 새로운 방법으로 사진화하여 개인전을 열고 아트페어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내년이나 후년 경 최근 관심을 갖게 된 오브제나 매체로써의 ‘책’을 주제로 한
규모 있는 작업을 계획하고자 하며 추후 현재 진행하고 있는 박사과정에서 퓨전동양화에
대한 이론적인 검증을 시도하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Aliceon: 여러가지 질문에 성심껏 답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작업 기대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