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정흥섭 개인전 <Loading>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3. 01:30

'Loading'이란 단어는 컴퓨터를 사용하는 요즘 사람들에겐 익숙한 단어이다. 자료를 컴퓨터 온라인상에 업로드 하기도 하고 다운로드 하기도 하고. 처음 정흥섭의 개인전 제목이loading이라고 들었을 때에도 아마 컴퓨터 매체를 이용하여, 이미지를 업/다운 로딩하는 것을 보여주는 작업이 되겠구나 정도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전시장에 들어서서 마주하게 된 것은 영상이미지와 함께 전시장 바닥에 놓여진 종이 작업들이었다.

정흥섭의 이번 전시 작업은 컴퓨터 화면 속의 이미지를 ‘실제 세계’로 로딩해보면 어떨까라는 단서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보통 이런 문제를 다룬다고 하면, 컴퓨터 상의 이미지가 현실 세계에도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상현실(VR)이나 증강현실을(AR) 생각하기 쉽상인데, 정흥섭이 생각하는 것은 그런 식으로 단순히 매체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매체가 가지고 있는 영향력의 허구성에 대해 역설한다. 재미있는 것은 그가 역설하는 방식인데, 사용하는 재료나 담고 있는 이야기들이 현대미술의 조류와 접점을 공유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우선 그가 ‘로딩’하기 위해 선택한 재료는 ‘종이’이다. 그는 컴퓨터 시뮬레이션 게임의 이미지라든가, 온라인 신문의 이미지 등을 선별하여 픽셀이 다 드러나는 해상도로 A4사이즈 종이에 출력한다. 그런 뒤에, 그 종이들을 다시금 손으로 찢어서 풀로 붙인 다음 3차원의 입체로 재현한다. 종이로 만든 3차원의 인물 입체는 얼핏 보면 권오상의 사진 조각 시리즈와도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정흥섭의 종이 꼴라주 입체들은 수직의 사진 면이 틈새 없이 매끈하게 발린 권오상의 사진 조각과 달리, 손으로 찢어 붙인 이음새 사이사이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다. 그 구멍을 통해 그가 만든 입체가 속이 텅 빈 것이라는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다. 이를 통해 2차원의 디지털 이미지가 갖는 무중력성이 3차원으로 재현되어서도 여전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우리가 실제인양 매료되는 이미지가 사실 이처럼 가벼운 이미지의 껍데기로 이루어져 있다는 ‘허구’를 직시하길 바랐던 것이 아닌가 싶다.

구현 방식 뿐 아니라, 그 내용에 있어서도 그가 허구성을 제안하려 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만들어내는 인물들은 어떤 개인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권오상은 현존하는 실제 인물을 찍고, 선명한 해상도로 사진을 출력하여 특정 개인의 아우라를 강하게 뿜어내는 반면, 정흥섭의 꼴라쥬 입체는 ‘익명성’을 띈다. 특히 게임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저 픽셀로 이루어진 가공임을 확실시 하려는 듯, 그가 찢어낸 종이 하나하나는 마치 픽셀 단위 같이 보이고, 그것들이 조잡하게 덕지덕지 붙여진 상황에서 우리는 섬세하게 묘사된 어떤 특정 인물의 개인성을 찾아내기 쉽지 않다. 이것이 가장 잘 드러난 작업은 <Loading_FIFA2008 >(2008)으로 정흥섭은 여기서 FIFA 2008라는 컴퓨터 게임에서 관중석에서 응원하는 한 인물을 선택하여 3차원으로 구현하고 있다.



전시장에서 찾을 수 있는 또 다른 한 익명은 전쟁 게임에서 죽어가는 병사를 종이 꼴라쥬로 입체화한 작업 <Call of Duty>(2008)이다.
그런데 이 작업은 단순히 컴퓨터 시뮬레이션 이미지의 허구성만을 표현하는 것으로 한정하기에는 주제가 갖는 무게감이 크다.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이제 전쟁이 마치 시뮬레이션 된 게임과 같아진 상황을 그 동안 많은 미디어 작가들이 비판적으로 은유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정흥섭의 작업은 또 다른 맥락에서 읽힐 수가 있다. 2차원의 시뮬레이션에서 죽어있는 병사가 우리가 마주하는 3차원의 공간에서 실제 부피를 차지하면서 쓰려져 있는 것을 목격하는 것은 앞서 설명한 작업에서 읽어 내려한 이미지의 ‘가벼움/허구성’과 대별되는 또 다른 ‘무게감’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익명성과 더불어 그의 작업에서 제안되는 또 다른 세계는 ‘일상성’과 연관된다. 그는 Loading_Untitled (2005)시리즈 작업에서 다양한 식재료가 놓여 진 주방 싱크대 위, 신발이 어지러이 놓여있는 현관과 같은 일상의 풍경을 사진에 담아낸다.
90년대부터 한국의 대다수 젊은 작가들이 거쳐간 일상이라는 주제를 정흥섭도 잇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만, 정흥섭은 단순히 주변 사물이나 풍경을 드러내는 개인적 서사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 듯하다. 이들 사진 속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가 종이에다 물감으로 그려낸 오브제가 숨겨져 있음을 보게 된다. 이러한 제스처는 앞서 소개한 작업들이 2차원의 이미지를 3차원으로 구현하던 상황을 다시금 2차원에 편입시키는 것이다. 사진 속에 펼쳐진 현실의 실제 사물과 달리, 유달리 그 허구임이 쉽게 눈에 띄는 그의 종이 오브제는 우리가 컴퓨터/사진 등의 매체로 매개되어 바라보는 풍경이 ‘실제’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허구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결국, 그가 이번 전시를 통해 보여주는 여러 매체와 서사들을 꿰는 하나의 주제는 ‘매체와 우리의 지각 조건’에 관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영상, 사진, 회화, 입체 등을 넘나들면서 그것들로 묘사된 어떤 이미지도 어느 것 하나 ‘실제(reality)’가 아닌, ‘표상(representation)’임을 깨닫게 하는 데에 주력한다. 특히 그의 영상 작업<Loading_train >(2006)은 우리의 지각이 갖는 불완전성을 유머러스하게 꼬집는다. 얼핏보면 이 영상은 기차 안에서 2개의 창을 통해 비춰진 풍경을 촬영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그렇게만 알고, 필자는 ‘참 싱거운 작업이군’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품설명을 듣고 난 뒤의 충격이란! 이 작업은 사실, 하나의 풍경을 촬영해서 2초의 시간차를 두고 두 화면에 플레이 시킨 것이란다. 우리의 지각은 얼마나 기만당하기 쉬운 것인지..

 

미술사에서 눈속임 회화는 미술의 근간을 오랜 시간동안 지탱시켜왔다. 하지만 이제 이미지는 그처럼 사실적인 ‘재현(representation)’이 아니라, 시각의 ‘표상(representation)’임을 주장한 것은 19세기 인상주의 이래로써, 그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이미지가 ‘재현’인 것으로 착각하는 재미에 빠져 사는 듯하다. 그리고 정흥섭은 그러한 몰입에서 깨어나는 또 다른 재미를 제공해주는 듯하다.

덧붙여 주제를 표현함에 있어 매체의 사용을 영상 설치에만 한정하지 않고, 종이라는 전통적 매체를 사용하여 찢기, 그리기, 잘라내기, 쌓기 등의 수공예적 요소를 보여준 것을 감상하는 것도 즐거웠다. 그리고 내용 면에 있어,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전쟁, 섹슈얼리티를 사진 작업에서는 일상성 등의 보편적인 주제(globality)를 드러낼 뿐 아니라, 윤두서 자화상을 이용한 <Loading_윤두서>(2006)와 같은 작업에서는 한국적인 소재를 통해 지역성(locality)을 획득하는 균형감각도 엿볼 수 있었다. 사람크기만큼 확대한 컵라면 위에 올려 진 만화책 작업은 대량생산물과 대중매체의 조합에서 희화화된 팝(Pop)의 일면을 보는 것도 같다. 지면의 한계 상 그의 작업이 지닌 여러 면면을 일일이 소개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2000년 전후 국내에 불어 닥친 뉴 미디어 아트 바람과 함께, 많은 작가들이 교조주의적으로 ‘매체의 새로움’이라는 형식적 문제에 많은 열정을 투자했다. 그 열기의 거품이 가라앉은 지금, 필자는 이번 전시처럼 현대미술의 조류와 접점을 지니는 풍부한 내용을 보여주는 젊은 미디어 작가의 활동이 새로운 대안이자 방향이 될 것이라고 본다.

글.장다은 (미술비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