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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ke Your Time-올라퍼 엘리아슨 개인전_world report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6. 3. 09:13



아이슬란드 출신의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의 명성을 압축하기 위해 그를 “현대미술계의 비요크(Björk)”라 부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90년대 초반 이후 북구를 넘어 유럽 전역의 주요 전시 서킷을 휩쓴 그의 주요 작품들이 “Take Your Time”이라는 이름의 특별전으로 미국에 대규모로 상륙했다. 전시가 열리는 뉴욕현대미술관과 그 지부 갤러리인 PS1은 세계 각국의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이것이 그의 영향력을 입증하는 전부는 아니다. 단언컨대 그의 작품은 196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주요 경향들- 미니멀리즘, 개념미술, 대지미술, 확장영화 (expanded cinema), 공공미술, 나아가 현재의 미디어아트- 을 직간접적으로 소환하면서 가장 첨단의 주제들 - 자연과 인간, 생활영역과 전시영역 사이의 관계, 기술적 매체들이 인간의 지각에 관여하는 방식- 을 구현하기 때문에 비평적으로도 폭넓게 주목받아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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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아슨의 인터뷰에서 강조하는 두 가지 키워드인 “관람자 참여(involvement)”와 “시간성(temporality)”에서 미니멀리즘의 직접적인 영향을 찾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각종 설치물은 전시공간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고, 공간에 대한 지각은 설치물의 구조와 작동에 따른 상대적이고 가변적인 것이 된다. 이 설치물-공간의 매트릭스를 시각과 몸의 행위로 체험하는 과정이 이 전시의 테마인 “Take Your Time”의 속뜻이다. 형형색색의 램프와 각종 프로젝션 도구, 안개와 거울 등 그의 설치물들을 직조하는 재료들은 물론 그 설치물이 구현하는 효과들마저도 관람자의 미적, 인지적 경험이 중심에 설 때 현실화된다. 예를 들어 천장에 커다란 회전거울이 설치된 “Take Your Time (2008)” 은 관람자들이 거울 바로 밑의 플로어에 누워 시각의 탈중심화를 느낄 때 작품으로서 완성된다. 관람자 중심성은 블랙박스 내부에 분무기를 설치하고 여기에 비스듬히 스포트라이트 램프를 투영하여 무지개를 발생시키는 작품 “Beauty (1993)” 에서도 마찬가지다. 물의 입자와 빛의 파동의 충돌에 따라 끊임없이 물결치는 색채의 시각적 환영은 관람자가 다가와 분무기 속으로 몸을 통과시키는 순간 사라지고 촉각적인 생생함을 대신 남긴다. 이러한 참여적 작품들은 관람자를 서두르게 하지 않는다. 즉 미리 녹화된 영상이나 이미지의 루프에 관람자의 동선을 구속시키는 형태가 아니라, 관람자가 충분히 즐기고 싶을 만큼의 친근성과 여유를 마련해둔다. 이러한 아이디어를 효과적으로 구현한 작품들은, 색채 형광등을 반투명 투사벽에 일정 시간을 두고 투영하는 “360` room for all colors (2002)”와 “the natural light setup (2008)” 이다. 당신은 그저 이 공간 안에 들어가 미세하게 변하는 색광의 톤을 편안하게 만끽하거나 색채의 스펙트럼이 펼쳐내는 공간적 깊이 속에 빠져들기만 하면 된다. 이것들에는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지만) 당신의 감각과 인지적 패턴을 제약하는 어떠한 인공적 인터페이스도, 시간적 압박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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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자의 현상적 체험은 주로 시각적인 경이이다. 여기에서 사각의 프레임에 구획되어 시각적 인상을 전달하는 표상으로서의 이미지란 존재하지 않는다. 굳이 이미지라 한다면 그것은 관람자의 위치와 자연광(혹은 인공적 불빛)의 변화에 따라 끊임없이 달라지고 정적인 공간에 여러 수준의 역동성을 부여하는 ‘가변적 환경(environment)’로서의 이미지다. 심지어 스크린 인터페이스를 차용한 두 작품에서도 관람자의 응시를 통합하는 중심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는다. “Reimagine (2002)”에서 스포트라이트는 갤러리의 벽을 따라 사각형을 형성하면서 깊이의 환영을 부여하지만 위치를 변경하면서 소멸하고 다시 나타난다. 이보다 더욱 매혹적인 “Wall Eclipse (2004)”에서 스포트라이트는 사각의 회전거울을 비춘다. 거울과 그 거울의 그림자는 서로 합쳐지지 않고 화이트 큐브 내부에서 공존한다. 거울의 그림자가 사라질 때 관객이 보게 되는 것은 벽 한쪽에 비친 스포트라이트의 그림자다. 이 한 번의 루프에서 관객은 투영되는 그림자-이미지와 그것의 원본, 그리고 투영의 매체인 스포트라이트가 이루어내는 삼각관계의 변화도를 보게 된다. 그 변화도는 관람의 대상이자 바로 그 관람의 조건이다. 다분히 영화적인 프로젝션의 장치 (apparatus)를 환기시키면서도 이를 관객의 체험 앞에 노출시키는 전략은 197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일군의 아티스트들이 프로젝터와 비디오 모니터를 갤러리에 설치하고 이미지를 공간화했던 실험들과 맞닿아있다. 그리고 광학적 현상이 2차원의 스크린을 넘어 3차원의 볼륨과 가변적인 리듬으로 연장되는 형태의 영화적 개념에 대한 제안은 이보다 50여 년 전 라즐로 모홀리-나기의 “Light-Space Modulator”와 한스 리히터 등의 추상영화에서 예고된 것이다. 이러한 실험들은 오늘날의 관객들이 아트 갤러리와 미디어 아트 페스티벌 모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영화적 확장들의 전사(前史)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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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련의 “Mirror Door” 연작들이나 입체경 활용 설치물들 (“Color Spectrum Kaleidoscope (2003)”, “Sunset Kaleidoscope(2005)”)에서 드러나듯, 이 영화적인 조건의 실험들은 빛과 반사체 사이의 물리적 반응이 일으키는 특수효과(special effect)들 ―즉 잔상(殘像)과 가상, 흑백과 색채로 이루어진 이벤트―을 발생시킨다는 점에서 전-영화적(proto-cinematic)이기도 하다. 따라서 『관찰자의 기술』(1991)에서 19세기 시각 테크놀로지가 육체의 인지적 경험을 재조직하는 과정을 면밀하게 분석한 조나단 크래리가 엘리아슨의 작품에 일찍부터 주목해 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나 엘리아슨의 작품들은 시각적 환영과 장치 모두가 투명하게 노출되어 있는 한 ― 크래리의 지적대로 ― 환등영상의 전통으로 수렴하는 동시에 반-환등영상(anti-phantasmagoria)을 지향한다. 작품을 구성하는 구조와 작동과정은 공간의 표면에 노출되어 관람자의 망막과 피부로 연장된다.  갤러리와 공공영역을 넘나드는 가운데 엘리아슨은 이러한 물질적인 구성요소들이 비물질적인 빛의 변화와 포개어지는 장을 실험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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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실험이 예술의 특정한 범주들―키네틱 아트, 영화, 라이트 아트 등―에 귀속되지 않으면서도 이 모두의 컨벤션들과 교섭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작품을 이루는 재료들이 작품 자체의 표현적인 기능들로 환원되지 않는다는 점은 세기 초부터 유행어가 되어버린 키워드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의 ‘포스트-매체 조건 (post-medium condition)’을 떠올리게 한다. 많은 현대예술 평론가들과 큐레이터들을 매혹시킨 이유가 여기에 있다. ‘포스트-매체 조건’이라는 용어에 동의하는 평론가들이 전자매체와 디지털매체의 전면화를 대당관계로 설정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엘리아슨의 작품은 더욱 흥미로운 문제들을 제기한다. 그의 작품들은 첨단 테크놀로지를 직접적으로 차용하지 않고서도 가상성과 인터랙티비티, 이미지의 근본적인 유동성, 프레임의 파괴와 같은 디지털 시대의 시각적 경험들을 환기시키기 때문이다. “I only see things when they move (2004)”는 미디어아트에 쉽사리 포함되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미디어아트의 근본 문제들을 질의한다. 회전하는 컬러 필터와 유리 실린더로 둘러싸인 램프가 삼각대에 받쳐져 갤러리 한가운데에 놓여 있고 외벽에 프리즘 분광효과와 같은 형형색색 무지개띠를 반사한다. 관람자들은 한편으로 빛의 유희에 빠져들면서 자신들의 모습이 이루어내는 그림자와 놀이한다. 이 작품을 라파엘 로자노-헤머 (Rafael Losano-Hemmer)의 “body movies”나 카미유 우터벡 (Camille Utterback) “text rain”과 같은 반응환경 기반의 인터랙티브 작품들과 나란히 놓는 것은 결코 무리가 아니다.


글.김지훈, 뉴욕대학 영화연구 박사과정(jihoonfelix@gmail.com)

김지훈은 영화평론가로 활동했으며 2004-5년 서울영화제(SeNef) 프로그래머를 역임했다. 중앙대학교 첨단영상대학원에서 영화이론 석사를 받은 후 뉴욕대학교 영화연구(Cinema Studies)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상호매체적 예술(intermedia art)과 이미지의 변이를 주제로 한 논문작업을 진행 중인 그의 연구관심사는 미디어이론, 확장영화 및 실험영화, 미디어아트, 동아시아 영화의 문화정치학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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