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2008년 대안공간 루프 미디어 아트 교류전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7. 3. 18:57


 

 “나는 이 처음의 계획을 단념하고 대신에 하나의 측면에만 집중하기로 결정했다. 여기 사용했다시피, 총체예술작품의 개념은 모든 예술의 종합synthesis의 일반적인 언급, 그 이상의 것을 포함한다. 이는 무엇보다 관객들을 감싸고 완전히 그 신체를 흡수하는 실재 혹은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는 것의 근원적인 노력을 가리킨다. 이러한 관점에서 총체예술작품은 밖에서 보여 지는 상황이 아니고 관람자가 그 안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의 성격은 관람자가 직접적으로 행동하고 볼 수 있는 것과 그것안의 누군가의 존재 방식에 관한 참여의 본성에 의지한다. 몰입의 많은 가능한 방법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모두 공간적으로 유한한 상황들을 가정 한다”. Florian Rötzer, "The Virtual Body", ZKM(ed), Media Art Perspective, Cantz Verlag, 1996, p.135.

 이처럼 프로리안 뢰쪄(Florian Rötze)는 미디어아트분야에서 야기되는 시각외의 감각을 사용하게 되는 예술작품의 경험은 총체예술작품의 개념을 통한 종합의 일반임을 밝힌다. 이러한 총체예술작품에서 파생되는 온몸몰입은 이미 인간의 감각을 가상현실의 3차원공간에 이끌어 놓았으며, 이제 관람자는 그림 밖의 존재가 아닌 그림 속 에서 유희하는 존재로 탈바꿈하게 된다.  

 예술작품 감상을 위한 감각의 확장은 컴퓨터의 등장과 맞물린 기술적인 요소들이 예술에 널리 사용되기 이전부터이다. 이와 더불어 미디어아트 분야에서 자주 언급되는 ‘감각의 확장’ 부분은 소위 시각 이외의 다른 감각을 이용하여 마치..내가 ~한 것처럼(as if) 즉, 평면을 바라보고 있지만 공간성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예술에서 중요시 되었던 관람방식이 아닌 디지털 문화로 인해 생산된 또 다른 코드의 예술작품 관람방식이다. 가령, 과거의 원근법 회화작품에서 관람객은 시각적인 부분에 호소하여 작품을 감상하지만 그로인해 삼차원 공간성을 경험하게 된다. 물론 화가가 기존에 꾸며놓은 공간에 조작이 없는 일정한 장소에서 감상이 이루어져야 삼차원성을 획득 할 수 있지만, 원근법을 통해서 경험된 3차원성의 경험은 이미 시각이외의 다른 감각이 사용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처럼 오늘날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빈번히 등장하는 새로운 기술을 통한 관람방식은 예전에도 존재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미디어아트에서 감각의 확장은 어떠한 의미로 받아 들여 져야 하는가? 미디어아트영역에서 감각의 확장부분은 인간-기계, 기계-인간, 혹은 현실의 공간에서 실제로 3차원의 구현될 수 있는 요소이다. 왜냐하면 “미디어아트”라는 용어자체는 컴퓨터 기술을 비롯한 첨단 고도과학기술이 동반되는 예술작품임을 이미 내포하고 있는 용어가 되었기 때문이다.1)

 이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오늘날은 가상현실, 혹은 증강현실의 경험 혹은 인간-기계의 인터페이스 상호작용을 넘어서 유전학 공학을 통한 3차원적인 경험을 위한 다양한 기술적, 철학적 채널들이 산재해 있다. 현재 신체-기계 인터페이스에 가장 급진적인 접근은 아마도 미디어 총체예술작품의 확장으로서 그것의 영향을 증가시키기 위해 신체를 재형성하는 개념을 보급시키는 오스트리아의 예술가 스텔락Stelarc일 것이다. 신체-침투자 스텔락은 그의 최근에 발전된 근육-자극기의 능력에 대해 열광적이었다. 기계는 사용자로 하여금 스크린상의 일련의 움직임들을 안무하게 하고, 그 후에 시스템에 접속하여 그 자신을 어떤 종류의 인간인형으로 이전시킬 수 있는 다른 사람에게 모뎀을 통해 데이터를 보낸다.2) 스텔락이 자신의 신체에 직접적으로 보철을 박고, 귀를 삽입하는 등을 통한 감각의 확장을 시도했다면, 론 허쉬만은 자신이 가상적 인물을 고안하여 실제의 삶에 바로 투입시키기도 한다. 이처럼 오늘날의 미디어아트의 감각적 확장을 통한 가상현실의 경험은 관객이 원한다면 잠시 동안 현재와 다른 이질적인 공간에 잠시 놓일 수도 있으며, 자신의 역할이 다른 가상의 자아로 변형될 수 있으며, 자신의 몸에 다양한 기계가 삽입되어 기계와 인간의 분리가 아닌 하나의 연합체로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재 진행 중인 대안공간 루프의 한국, 일본 미디어아트 현재라는 테제아래 <확장된 감각>전에서는 어떠한 작품들로 미디어아트의 현재와 감각의 확장을 주시했는지 지금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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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공간 루프 전시장에서는 미디어아트 영역에서도 시기나, 개념별로 구분을 짓고 있는 예술장르가 분류되어 있는 듯 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미디어아트 영역에서의 소주제로 분류될 수 있다. 가령, 사운드아트, 테크놀로지아트, 비디오아트, 싱글채널, 인터렉티브아트, 믹스드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등으로 말이다. 미디어아트는 위에서도 언급한바 있듯이 다양한 의미와 개념으로 그 용어를 정의 내릴 수 있다. 프랑크 포베라의 경우는 기술이 발전되는 속도와 그 기계적 속성에 그대로 예술(ART)라는 단어를 조합했기 때문이다. 그의 저서 『전자시대의 예술』의 목차에 열거 되어 있는 예술의 형태가 모두 특정예술의 용어가 된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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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입구를 들어서면 바닥에 길게 깔려져 있는 모리유코(Mohri Yuko)의 작품이 진열되어 있는데, 이 작가는 사운드 기반의 인터렉티브 아트에 속한다. 이 작품은 프린터 기계가 사운드를 인식하여 그 데이터 변환 소리에 맞추어 프린터물이 출력이 된다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프린터 두 대가 마주보고 있는 이 작품은 사운드 자체가 러브송이었으며, 노래의 컨텐츠에 착안되어 진행되는 데이터변환은 프린터 두 대가 서로 키스하는 장면 연출과 동시에 이루어진다. 하지만 전시장 자체에서는 본 작품의 이러한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다만 정지되어 진열된 프린트 두 대와 그 결과물들은 단지 인스톨레이션 작품이라는 생각을 하게끔 했다. 물론 작품 안에 내포된 작업의 개념도 중요하지만 전시장에서 관객은 작품의 의도와 개념을 충분히 전달 받아야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 작품에서 전달되어야 될 시각이외의 다른 감각의 확장(사운드와 상호작용성)의 부분이 적절하지 않음에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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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쉬움을 뒤로하고 전시장의 왼쪽공간으로 움직였을 때 “꽝”하는 사운드와 함께 거울이 파편화 되는 이미지가 거울을 통해 투영되고 있음을 발견했다. 이 작업은 그간 한국의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기술과 다양한 이론을 접목하여 지속적으로 작업 세계를 선보여 주었던 바로 이용백의<A broken mirror>이다. 거울은 자신의 주체성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하나의 매개가 될 수 있음을 반영하곤 하는데, 이 작품에서의 요지는 거울이 관객에게 상이한 경험을 제공될 수 있음을 제안한다는 것이다. 즉 거울에 온전한 자신의 모습이 아닌 파편화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끔 하는 것이다. 관객이 거울의 특정위치에 섰을 때 거울이 깨지는 굉음이 전시장 가득 울려 퍼진다. 이 부분에서 작품과 관객과의 상호작용이 일어났었지만, 시각과 사운드를 자극하는 감각 이외의 어떠한 감각의 부분이 관객에게 전달되고 설명되어 질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서는 다시 한번 재조명 할 필요성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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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공간으로 내려가는 중에 우리는 커다란 스크린에서 마치 자동차 광고를 하는듯한 영상물을 만나게 된다. 최근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공간에서 이 작품을 접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 작가는 영상이 만들어 내는 허와 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했던 현대소비심리와 매스미디어의 영향력과 권력에 대한 작업을 하는 진기종이다. 진기종은 우리가 진실일 것이라고 믿는 대형스크린 혹은 매스미디어의 광경이 어쩌면 전부 거짓일 수도 있음을 여실히 드러낸다. 마치 실재의 자동차로 제작한 것 같은 자동차 광고 영상물 뒤에는 장난감 혹은 조립식의 작은 오브제가 위치하고 있다. 이는 실제 거대한 매스미디어의 실체의 이중성을 그대로 전시장에서 드러내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부분에서는 관객이 수없이 떠밀려오는 현대의 정보와 무분별한 매스미디어 자료에 노출되어 있을 지라도 이에 대해 다시 한번 비판의 시각으로 견제할 수 있도록 깨닫게 해주는 작가의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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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oon의 작업<관객의 방백 (Aside of Audience)은 현시대 군중을 관객(觀客.Audience)이라는 위상(位相)에 위치시켜 놓고 그들의 방백(傍白)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나 이 작업은 스크린 앞에 무대가 설치 되어있는 비디오 설치 작업으로 전시장을 들어선 관객은 무대를 은유하는 위치에서 스크린 속의 비디오 작업을 바라보게 된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100명에 가까운 일반인들이 예술분야에서 파생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되는데, 수집된 다수의 개인적인 의견들은 작가들이 시도하게 되는 의견들의 차이의 해석과, 그것들의 교점의 재배치를 통해서 보는 이에게 제시된다. 다수의 사람들의 보편성과, 개인들의 개인지각의 차이, 그리고 개인들이 교차되면서 생겨나는 소통에 대한 의심의 결과를 추적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또 다른 관객인 작업을 보는 이에게 새롭게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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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에서 언급된 작업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장에 소개되어 있었지만, 전시의 제목과 의도에 관해 작업들의 스토리가 적절하게 조화 되지 않았음에 아쉬움이 여전히 남는다. 물론 다니구치 아키코(Taniguch Akihiko)작업에서 상호작용성 경험 및 마치 카메라가 전시장에 설치되어 바로 찍혀서 결과물을 만들어 내는 듯 한 착각은 이미 설정된 과거의 이미지와 조합된 것으로 관객은 전시장에서 작가의 과거와 현재의 이중적 공간의 경험을 제공 받는다. 이는 공간의 확장을 넘어서 감각의 확장 부분에 대한 충분히 언급할 여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부분에 관한 설정은 일부 작품에 제한되어 있었다.

물론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아트 현재에 대한 담론을 형성하고 새롭게 조명하려는 부분에 대한 점과 작가 섭외 부분에서는 흥미롭게 조명되거나 발전될 수 있는 가능성이 드러나 있었다. 그러나 이 전시를 통해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아트의 현재 혹은 더 나아가서 아시아 미디어아트의 현주소와 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한 전시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와 적절한 전시제목과 컨셉을 통한 작가의 섭외가 이루어 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1. 시몬페니는 자신의 논문 “가상현실, 가상예술”에서 디지털 기술은 일반적으로 문화의 양식이 급속하게 변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면서 예술가와 예술계에서 이러한 패러다임과 미적인 행동을 초래하는 디지털 미디어와 문화 몇몇의 방법들을 찾는 가운데 오늘날 매스미디어 혹은 하이테크놀로지 시대의 예술을 “디지털아트”, “컴퓨터아트”, 그리고 “전자예술”등의 여러 가지 용어로 쓰일 수 있음을 지적한바 있다. 이와 더불어 시몬 페니는 오늘날을 현황은 디지털 예술개념, 자본주의 생산물과 더불어 전통적 개념의 순수예술(fine art)의 역사에 바탕을 둔 궤도의 교차점에 서있다고 밝혔다. Simom Penny, " Realities of the Virtual", ZKM(ed), Media Art Perspective, Cantz Verlag, 1996, p. 127.


2. Florian Rötzer, 같은 논문, p. 1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