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빌비올라의 두번째 방한_TRANSFIGURATIONS_exhibition review

aliceon 2008. 7. 17. 13:54


빌 비올라 Bill Viola. 백남준과 더불어 비디오아트를 미술의 반열에 올려 놓은 누구도 부인치 않을 당대의 비디오 작가, 미디어 작가이다. 그는 작업활동의 시작을 비디오와 함께 했으며, 그 비디오와 함께 지금까지 30여년 이상을 꾸준히 인간 존재에 대한 탐구와 지각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왔다. 지난 2003년 개인전으로 국내에 첫 모습을 선보인 이후 2008년 두 번째 개인전으로 다시금 그의 작품 세계를 우리에게 선보이고 있다.
국제갤러리 신관 전 관에서 진행되고 있는 전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1층에서는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해변없는 바다 Ocean without a Shore>에 속한 혹은 부분 작업들이 각 디스플레이 상으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으며 2층에는 2001년 제작된 <천년을 위한 다섯 천사들 Five Angels for the Millennium>이 5개 스크린을 통해 전체 공간을 차지하며 상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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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의 작업들의 모습은 빌 비올라가 지금까지 일관되게 진행해 온 작업관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고요하며, 또한 정해진 틀이 없는 무정형의 공간 안에서 일체의 간섭이나 배제 없이 천천히 흘러가고 있는 시간. 그 공간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직접 접촉하지 않고서는 그 존재조차 파악하기 힘든 물의 커튼이다. 초당 수 톤 이상 쏟아지고 있을 그 격류의 커튼은 한 존재가 다가서고 접촉을 하고, 통과를 해야만 그 거대한 양의 흐름과 세기가 드러난다. 이 강한 힘을 품고 있으면서도 눈에는 보이지 않으며, 단단히 양 공간을 가로막고 있으면서도 통과가 이루어지고 있는 무형의 벽은 이승과 저승, 삶과 죽음, 현재와 미래, 그리고 과거를 가르는 경계선이다. 장막 저 너머의 인간의 흑백 실루엣은 영혼, 바로 그것처럼 보인다. 특히 실루엣 주위에서 희미하게 드러나고 있는 동심원은 마치 영혼의 아우라처럼 주위를 배회하며 등장하는 존재를 부각시키고 있다.
보이지 않는 이 장막 건너편에서 이승의 존재가 아닌, 현실의 존재가 아닌 형태들이 흑백의 모습을 드러내며 천천히 다가온다. 그리고 그 존재 혹은 존재들이 이 경계를 통과할 때, 그 존재는 비로소 삶의 색, 현실의 색, 천연의 색을 입어 현실의 시간과 공간에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여전히 실루엣 뿐, 형태의 대부분은 암흑에 가려 있으며 여기서 한 발자국, 나설 때야 비로소 모든 생기를 갖추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 즉 장벽을 사이에 두고 여러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들이 1층의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어떻게 보면 단순히 물의 커튼을 오가는 고정된 플랫폼일 뿐이지만 그것을 통과하는 각 사람들의 모습과 감정들이 모두 다르고 또한 하나하나가 풍부하기에 지루할 수가 없는 공간과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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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mall Saint, 2008, color video polyptych on six OLED flat panels, 3x157.5x27.9cm

천천히 장벽을 향해, 그리고 관람객 앞의 현실의 공간을 향해 들어오는 사람들은 다양했다. 단호하게, 혹은 거리낌없이 몸 전체를 장벽에 들이미는 사람. 조심스레 양 손으로 물의 장막을 헤치며, 탐색하듯 조용히 들어오는 사람. 선뜻 그 경계에 접촉하지 못하는 듯, 한 손으로 조심스레 접근과 후퇴를 되풀이하며 진입하는 사람. 눈을 감은 체, 그 존재에 순응 한 채 순리에 따르듯 자연스레 진입하는 사람. 초당 톤 단위로 떨어질 커튼의 물의 압력은 상당할 것이다. 그 압력의 장벽을 통과할 때 그 느낌이 좋던 나쁘던 통과자는 강한 충격을 받는다. 이승과 저승을 오갈 때의, 생명과 죽음을 오갈 때의, 그 극단을 통과할 때와 상통할 강한 충격과 반전 아래에서 통과자는 다양하면서도 강렬한 반응의 모습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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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rangement, 2007, color high-definition video on plasma display, 122x145x13cm

그 장벽을 통과한 후, 조명 앞에 서게 되는, 비로소 그 모습이 컬러로 드러나게 되는 그 한 발자국의 순간과 이후 천연색의 세상, 즉 작가가 상정했을 '현실'과 '지금'이라는 순간에 머무르고 있는 사람들 역시 가지각색의 모습을 보인다. 이미 거대한 물의 막을 통과했음에도 빛으로의 한 발자국을 내딛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모습. 통과 후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망연자실한 모습으로 무의식적인 한 발을 내딛는 모습. 고요히 통과했으며 또한 고요히 웃음지으며 관람객을 지그시 쳐다보며 미소짓는 모습. 막을 찢으며 나타나 마치 세상에 태어난 것이 고통인 듯 끝끝내 유지되는 고통의 모습을 지우지 못하는 모습.
이것은 다시금 뒤돌아 장막 저 편으로, 어둠 속으로 사라져가는 순간까지 지속된다. 이미 장벽을 통과했음에도 망설이듯 몇 번 씩 뒤돌아 보는, 미련을 둔 듯한 모습에서, 자연스레 저 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있는가 하면, 고개를 숙인 채 생기없이 축 쳐진 뒷모습을 보여주며 스러져가는 모습도 보인다.

빤히 이곳을 응시하는 모습들 사이에도 여러가지 다채로운 감정의 모습들이 드러나며 컬러의, 생명의 순간을 다 보내고 다시 장막을 지나 어둠의 저 너머로 사라질 때의 모습 역시 다양한 크기의 LCD판넬의 평면을 통해 다채롭게 등장한다. 작품을 제작하면서, 물의 장막을 통과할 때의 감정이나 동작을 특별히 주문하지 않았던 빌 비올라. 그 의도에 맞게 장막을 통과하며, 작품에 접촉하고 작품과 하나가 되면서 바로 그 순간에 각자가 느낀 감정들은 여과없이 기록되어 보여지고 있다.
물로 만들어진 벽. 인생에 있어서의 한 문턱. 그 문턱은 앞서 언급했듯 접촉하지 않는 한, 직접 그 자리에 있지 않는 한 알 수 없을 정도로 투명하다. 작가는 인간의 인생에 있어서 그 중요한 변화의 순간, 문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인생이 변화하는 그 선택의 순간. 그것은 필연적인 삶과 죽음, 생과 사의 순간 뿐 아니라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기로 모두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진 빌비올라의 작품들, 특히 1층에 위치한 시리즈들은 단순하다 못해 오로지 하나의 틀을 통한 이미지와 영상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단순하지 않고, 또한 지루하지 않은 것은 이런 인생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감각적으로 바로 떠오르고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직접적이며 또한 지극히 세련되게 정련되어 우리 앞에 놓여있기 때문이며, 그 보여지고 있는 인간상들이 다양하고 촉각적일 정도로 강렬한 감정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명상적이라 할 정도로 정적이며 고요한 그의 작품을 통해 그가 바라는 것은 잡념과 동요가 전혀 없는 궁극적인 고요함과 열락의 아타락시아ataraxia가 아니다. 그 고요하고 조용한 슬픔의 상태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인생의 어떠한 기점에 있어 인간이 결정하게 되는 반응을 통해 보여지는 다양함에 대한 것이다. 이 작품을 통해 보여지듯 인간은 다양한 표현과 해석을 진행한다. 또한 지금 이 작품을 보는 사람들 역시 다양한 해석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생각들의 다양한 접촉과 교류, 그리고 다시 여러 해석을 통한 새로운 의미의 생산. 즉 이러한 일련의 '대화'과정을 통해서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움직일 수 있으며 변화할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작가가 생각하는 테크놀로지 시대의 인간성이며 전시의 제목을 통해 드러나있는, 작가가 이야기하는 변환TRANSFIGURATIONS일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변환시리즈 외에도 어두운 밤의 공간에서 바다에 이르는 연인들의 사라짐을 위한 여정을 다룬, 특히 마지막의 강한 파도의 음향이 공간 전체를 채우는 Lovers Path와 상-하로 움직이는 빛에 의해 육체가 스러져가는 모습을 담은 Bodies of Light, 2층을 가득 채운 Angels of Millannium 등 다양한 작업들이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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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ve Angels for the Millennium, 2001, five channel of color video wall projections

고해상도HIGH-DEFINITION와 고프레임HIGH-FRAME이라는 이미지적인 요소에서의 기술들, 초고속 카메라와 HD 디스플레이라는 하드웨어 기술. 여느 미디어 작가들 보다도 세련되고 능숙하게 뉴미디어와 기술을 다루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전혀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며 어떤 면에서는 뉴미디어에 반하는 주제와 흐름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그이다. 그는 비디오는 단지 자신의 작품세계를 표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주장하며 테크놀로지를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는 뉴미디어 아트의 경향에 대해서는 오히려 자신의 작업에 있어서 방해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그는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존재의 문제를 표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매체로서 비디오를 이용하고 있다고 언급하며 이는 비디오 아티스트, 미디어 아티스트라고 칭해지기를 거부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대로 테크놀로지가 뒤덮는, 기술 자체가 목적이고 현실이 되는 것에는 반대하지만 대화communication을 강조하는, 즉 누구보다도 기술을 토대로 한 미디어 중심 사회의 모습을 잘 이해하고 그것을 강조하는 그는 당대 미디어 아트의 거장 중 한 존재일 것이다.

그렇게 한시간 반 여의 어둡고 아늑하고 시원하며 잔잔한 한줄기 기류만이 흐르던 고요하거나 웅장했던 공간에서의 체류를 벗어나 뜨겁고 따가운 햇빛이 작렬하며 시끄럽고 활기찬 세상으로 다시금 발을 내딛었다.



그리고,
이 전시가 오픈하기 전인 지난 6월 26일,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빌 비올라의 초청 특별 강연회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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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_빌 비올라 초청 특별 강연회 <TRANSFORMATION>

빌 비올라. 비디오아트 작가로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아도 서운할, 미술계의 대 스타중 한 사람입니다. 간단히 그의 약력을 살펴보면 1983년 뉴욕 현대 미술관MoMA, 1997년 휘트니 미술관, 2003년 폴 게티 미술관, 2004년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2003년 런던 국립미술관The National Gallery, 2006년 일본 모리 미술관Mori Museum에서 개인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995년과 2007년 두 차례 미국 대표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등 굉장히 굵직굵직한 족적을 남긴 작가입니다. 그리고 저에게도 여러 모로 의미 깊은 작가이기도 합니다.^^ 제가 2003년 처음으로 미술계에 발을 내딛었을 때(학과에 입학했을 때) 그가 처음으로 전시를 통해 한국에 소개가 되었고-2003년 국제 갤러리에서 그의 첫 한국 개인전이 열렸었습니다-, 처음으로 강하게 각인되었던 것이 그의 작업이었고, 그라는 작가였습니다. 그런 그의 강연회가 한국에서의 두번째 개인전 일정과 함께 6월 26일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진행되었습니다.

참고로 당시 초대되었던 작업들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이 빌 비올라의 격정The Passions 시리즈에 속해 있는 <Observance>이라는 작업과 <The Veiling>이라는 작업이었습니다. Observance는 고속촬영을 통한 느린 시간의 재생으로 현실에서는 짧게만 표출되는 격한 감정이 있을 수 없을 정도로 길고 일정하게 드러남으로써 드러나는 엄청난 감정의 증폭때문에 거의 심장을 찍어누르듯 기억이 되었습니다. The Veiling의 경우는 그 이전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환상의 시각화, 환상이라는 것이 정말로 촉감으로 느껴질 것 같은 경험을 저에게 제공해서 또한 굉장히 감동을 받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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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 Observance>, 2002, 플라즈마 모니터, 121x72x1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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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Veiling>, 2002, 혼합매체, 비디오투사, 350x670x940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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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인지도 만큼이나 사람들의 대단한 관심이 모였습니다. 강연회는 350명 선착순 입장이었던지라 설마설마 하면서도, 시작시간보다 1시간 일찍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작 시간에 간신히 입장해 비교적 빠듯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강연장의 350석 좌석이 모두 차는 것으로 모자라 계단에 빼곡히 앉았으며, 400개가 준비되었던 통역기마저 모자랐으니 그 관심과 열기를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강연은 Transformation이라는 주제 아래 크게 세 부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Transformation이라는 첫 파트, 즉 변환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와 기술Technology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작가와  작업에 대한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전반적인 분위기나 내용 모두 굉장히 마음에 들고 와 닿았던 시간이었습니다. 그가 말하는 하나 하나가 이론적이고 딱딱해서, 혹은 너무 자신만에 세계에 빠져 있다거나 분위기가 강해서 멀게 느껴지는 것이 아닌, 마치 그의 작업처럼 조용하면서도 피부에 와 닿는, 몰입케 하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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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formation. 그는 인간이 가진 가장 중요한 능력은 바로 스스로의 모습을 바꾸는 능력이라 설명합니다. 스스로를 다시 탄생시킬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스스로가 죽지만 또한 생명을 태어나게 할 수 있는 능력. 이 인생의 과정은 중요한 과정이며 인간이 가진 가장 근본적인 예술의 과정이라고 설명합니다. 변환이 없다면 아무 것도 변할 수 없으며 새로운 것이 들어설 자리가 생기지 않을 것이며 아무런 발전이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변환은 인간의 인생 중 탄생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과정이 포함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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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re Woman>이라는 작업을 설명하며 그는 현실이 무엇이고 환상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이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이미지가 지배하는, 직접적 경험보다 매체를 통한 간접 경험이 지배적인 이 미디어 세상에서 그것은 핵심적인 사항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비디오를 택하고 비디오를 통해 작업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진실이 아닌 현실과 비현실 중간의 어디쯤이 위치해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하며 바로 그렇기에 비디오가 인생의 이야기를 말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다르게 거짓말을 하고, 거짓말을 하는 방법을 알고 있기에 그러한 인간의 인생은 진실과 거짓 사이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가운데 찾아야 할 '진실'을 91년 어머니의 임종의 순간에 찾아내었다고 그는 이야기했습니다. 모든 문화권에서 공통적으로 중요하게 위치하는 것은 바로 망자를 기억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망자는 우리 삶과 함께 합니다. 이 방, 건물, 옷, 말하는 법 등 모든 것은 이 망자를 통해서 우리에게 온 것입니다. 우리 전에 살았던 사람들에게서 전달된 것이며 심지어 우리의 몸 자체도 부모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는 '인간'을 크게 세 가지로 구분했습니다. 망자와 살아있는 우리,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이며 망자와 미래는 정지되어 있기 때문에 무한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오직 우리, 지금 살아있는 사람들만이 유한하며 이러한 유한함이 있다는 것,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인간 종교의 근원이고 철학이 시작될 수 있었고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특히 기술Technology에 대한 그의 생각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는 미디어작가로 분류되지만 스스로는 비디오는 단지 자신의 세계와 생각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이며 현재의 기술중심 사회와 기술중심의 뉴미디어 아트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기도 합니다. 이러한 가운데 기술중심 사회, IT의 발달로 도래한 미디어 중심 사회에 대한 파악과 이해, 그리고 장점 등의 조망과 정리는 명쾌했습니다. 커뮤니케이션과 미의 핵심의 정수는 바로 내가 너를 만지고 싶다는 것, 서로 접촉하고 대화하며 스스로 가진 것을 나누는 것이라 하며 오늘날의 공간을 초월해서 서로 접촉하는 이 사회는 그것이 보다 쉽고 넓고 광범위하게 현실화 된 것이라 이야기합니다. 이 순간에도 그는 핸드폰을 켜서 미국에 있는 동생과 전화를 할 수 있고 계속 연결될 수 있는 이 상황은 분명 아름답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오감을 넘어선 미디어를 통한 접촉과 소통, 지각이 이루어지는 미디어 종속 사회에서는 다른 사람이 바로 그 채널을 막고 바꾸거나 중간에 변질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즉 이 세대에서 중요한 것은 현실과 환상의 정확한 인식과 구분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이런 현실과 환상에 대한 인식, 구분과 그에 대한 탐구는 작가 스스로의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인간은 특히 개인은 역사의 그 어느 때보다도 미디어를 통해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으며 휴대폰이나 인터넷을 사용해 그 힘을 드러내는 등의 상황은 분명 재미있고 신나는 상황입니다. 그는 많은 가능성이 드러나는 시점이지만 동시에 이 시스템은 조작이 쉬울 정도로 열려만 있는 상황인 점을 지적합니다. 그런 상황의 인식, 경계와 더불어 이런 오염과 조작이 가능한 현실에서 열린 채널을 가지고 비판하고 상황을 제시하고 이야기할 수 있는 작가의 존재가 중요한 사실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예정했던 시간보다 늦게 그의 강연이 끝났습니다.

백남준과의 관계를 물어보는 한 질문에 비올라는 정말 그다운 에피소드 하나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1974년 백남준이 뉴욕주의 이버슨 미술관에 <TV Garden>을 설치할 당시 비올라는 그의 어시스턴트였습니다. 전시회 개막이 불과 몇 시간 남지 않은 새벽에 간신히 그와 또 다른 어시스턴트, 그리고 백남준이 간신히 마무리를 한 상태였습니다. 그 공간은 전시장 전반에 걸쳐 말 그대로 TV로 이루어진 정원으로 가득 차 있었고 당시에는 결코 흔하지 않았던 컬러TV가 화려한 색상을 통해 그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 조망을 바라보다 비올라는 문득 천장을 바라보았답니다. 그 건물의 상단부의 상당한 부분이 유리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마침 떠도는 구름 사이로 달이  그 투명한 빛으로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달빛과 별빛이 어우러진 하늘 사이로 아래쪽에 설치된 TV의 명멸하는 빛이 유리창에 반사되어 한 데 어우러진 그 풍경에 넋이 나간 비올라가 황급히 선생님을 불렀답니다. 그러자 백남준이 크게 웃으며 저 달빛은 하이아트이고 내 비디오는 로우아트다 라고 품평을 했더라는 일화였습니다.
보통 들려오는 백남준에 관련된 에피소드는 대부분이 별나고 특별하고 괴짜스럽고 요란합니다. 비올라 본인도 백남준 아트센터가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할까라고 물어본 질문에 대해 crazy한 아트 센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발언을 통해 스스로도 그것을 인정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화는 참 비올라스럽다랄까... 굉장히 서정적이고 고요한 가운데 감동적이었습니다. 조용한 손짓과 묘사를 통해 들려오는 그의 설명은 참 다정 다감했습니다.

그의 모습 중 극히 일부분을 볼 수 있었지만 왜 이사람이 거장인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그런 경험이었습니다. 그의 은유, 예시, 설명들 하나 하나가 어떻게 보면 익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요소들이었지만 그 하나 하나가 그러한, 익히 알고 있지만 모호하게 부유하고 있는 그 요소들을 시원시원하게 찔러오더군요. 그것은 그가 인생을, 바로 우리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진중한 종교인의 모습을 보는 듯 한 분위기의 강연이었습니다. 그가 설명하는 '정靜'이라는 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모습이랄까요. 조근 조근 조용하면서도 확신에 찬 모습과 어투, 제스처가 그 라는 존재와 그의 작업관을 표출하고 있었습니다. 그 오랜 기간 동안 작업을 하면서도, 오랜 기간 동안 정상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천진함을 잃지 않고, 진지함을 잃지 않고, 겸손함을 잃지 않은 모습을 보면서 역시 거장이다 하며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졌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목적은 서로에게 영감을 주기 위해서이다. 이 영감을 통해 변환transformation은 이루어진다. 이런 영감을 서로 주고 받는 과정이 바로 현대의 통신communication이다." 등등 고전적인 세계와 현대의 기술시계를 꿰뚫는 그의 통찰은 상당한 설득력으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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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줄서서 사인받는 모습들.^^ 강연은 물론이거니와 다음 스케쥴로 바쁨에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성실히 소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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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중
지난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보여졌던 <해변 없는 바다 Ocean without a Shore>는 5월 30일부터 10월 26일까지 과천 국립 현대 미술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며,
한국에서의 그의 두번째 개인전 <변모 Transfigurations>가 6월 27일부터 7월 31일까지 국제 갤러리 신관에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