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Artist

주재형, 애니메이션;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활동에 대한 탐구_interview

aliceon 2008. 8. 13. 17:41


작가 주재형에 관한 다른 컨텐츠는 아래 링크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Lucid Dreaming, 반복되는 그의 꿈 속에서 주재형: off the record

작가 홈페이지 manamong.com

Aliceon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다루는 작가로서' 선생님에 대한 소개를 드리고 있습니다. 받으신 교육과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와 활동에 대한 말씀 등 선생님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대학은 서울대 서양화과를 졸업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그런지 대학 3학년이 되면서 움직이는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때 2년간 혼자서 15분 분량의 애니메이션 ‘해발아기’를 만들었습니다. 프랑스 앙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상영되었고 대한민국만화영상대전에서 미술상을 받았는데 만드는 과정은 힘들었지만 저에게 큰 힘을 준 작품입니다. 졸업 후 제일기획에서 PD로 일하며 CF를 제작하는 일을 하면서 상업적인 영상을 만드는 과정을 익힐 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영상과 애니메이션을 더 공부하고 싶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The School of the Art Institute of Chicago에서 Film, Video and New Media 과에서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전공하였습니다. 이 때 만든 작품이 ‘환’ 이라는 애니메이션인데 디지털로 만들고 35mm 필름으로 키네코한 작품입니다. 현재는 제가 운영하는 manamong.com에서 ‘자각몽’같은 실험애니메이션도 만들고 웹툰도 연재하면서 작업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Aliceon 유학을 떠나신 것도 같은 맥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미술이 그렇지만 미디어 아트, 특히 애니메이션 작업은 더더욱 다루고 계시는 작가 분들이나 작품들을 접하기 힘이 듭니다. 특별히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다루시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요.

대학에서 그림을 그리면서 소통에 대한 생각들, 작업을 하면서 살아갈 모습 등을 생각하면서 그 동안 잊고 있던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특히 90년대 초에 외국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캐나다, 러시아, 프랑스 등 외국의 작품을 접하면서 아니 저런 애니메이션도 있었구나 하는 새로운 가능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제일 좋아하는 러시아 감독 유리 놀슈타인의 작품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이 당시 처음 보았습니다. 한편 그 전까지는 애니메이션을 하려면 필름 기반으로 해야 해서 비용과 노동에 제약이 많았지만 6mm DV 기반의 영상 시스템이 소개되면서 집에 있는 컴퓨터로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 디지털 영상편집을 위해 피나클 firewire 카드를 사기 위해 집에 있는 피아노를 팔아 130만원 정도에 구입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같은 성능으로 3만원에 구입할 수 있지만요...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는 제가 좋아하는 이야기와 이미지 그리고 다양한 영상기술을 담아낼 수 있는 종합예술입니다. 실사와 그림을 넘나들 수 있고 음악과 사운드를 이미지와 결합하여 제 3의 무엇을 만들 수도 있습니다. 실험애니메이션으로 조금 더 확장하면 형식적으로 또 내용적으로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자유를 느끼게 됩니다.
 
 
Aliceon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긴 했지만 아직까지 우리나라에서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 혹은 매체는 인식면에 있어 상업적 분야 혹은 순수미술 분야에 있어서도 마이너 장르입니다. 애니메이션 작가로 산다는 것에 대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특히 유학생활도 하셨는데 우리나라와 비교했을 때의 환경이나 인식의 차이점도요.

먼저 미술교육과 애니메이션에 대한 저의 생각은 미술대학 내에서 애니메이션 교육이 훨씬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관련 학과도 많고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나아졌지만 순수미술 분야에서 애니메이션은 크게 주목 받지 못하고 있는 듯 합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를 자연스러운 도구로 생각해야합니다. 특히 시카고 예술대학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점은 정말로 열려있다는 것입니다. 정규 과목으로 애니메이션 수업이 다양하게 개설되어 있고 회화과 조소과 디자인과 등 많은 미술전공의 학생들이 애니메이션을 수강합니다. 그들이 디즈니나 픽사의 애니메이션도 좋아하지만 예술로서의 애니메이션도 다양한 스펙트럼으로서 그 자체를 인정합니다.

애니메이션 작가로서의 삶 이전에 작가라는 말이 붙으면 어느 예술장르나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은 기법에 따라 다르지만 적지 않은 노동이 들어갑니다. 많은 노동 시간은 때로는 생활을 어렵게 합니다. 미국에서도 회사에서 일하는 애니메이터는 많은 보수와 경제적 여유를 누리지만 작가로서의 애니메이션 감독은 쉽지 않은 환경에 있습니다. 시카고에서 저를 가르쳤던 교수님 한 분은 몇 년간 바텐더로 밤에 일하며 낮에 작업을 했습니다. 택시 운전을 한 분도 있고요. 주로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작업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요. 한국에서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생활하면서 작업하는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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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ro Drawing, 스크린샷, 2008, Experimental Animation, Color, Sound, 5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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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on 잠시 작품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겠습니다. 선생님의 웹사이트를 방문해보니 다양한 만화작업과 애니메이션 작업들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만화작업과 애니메이션 작업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어떠한 것이 있는지요. 특히 표현 면에서 두드러져 보입니다.

 만화는 어릴 때부터 많이 보고 그려서 친숙한 매체입니다. 만화를 보다가 그림을 그리게 된 작가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만화는 저를 회화로 그리고 애니메이션으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한 때는 애니메이션 작업만 할 것 같았는데 지금은 만화작업도 같이 겸하려고 합니다. 각각의 매체에 장단점이 있겠지만 애니메이션 작업은 사실 이야기를 전달하는데 다소 비효율적인 면이 있습니다. 움직임을 만들어낸다는 어마어마한 장점을 빼면 솔직히 많이 고생스럽습니다. 이에 비해 만화는 소리도 없고 움직이지도 않는 일련의 그림이지만 한 사람의 노동으로 창조할 수 있는 최적의 툴입니다. 이미지와 텍스트를 이보다 더 잘 활용한 매체가 있을까요? 만화란 매체를 객관적이고 분석적으로 설명한 스콧 맥클루드의 ‘만화의 이해’를 보면 만화는 가장 추상적인 기호부터 사실적인 이미지를 넘나들며 스토리를 전달합니다. 저도 만화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을 잘 살피고자 합니다. 애니메이션은 만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그 동안 만화로 꾸준히 관객과 만나고 싶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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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 스크린샷, 2004, 2D/3D Animation, 35mm, Color, 13min 40s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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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on 웹사이트를 통해 작업뿐만 아니라 에세이 혹은 일기같은 모습을 통해 애니메이션, 만화 등 다양한 작업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특별히 애착이 가시거나 특별한 기억을 가지고 계신 작업은 어떤 것인지요? 그리고 그에 관한 설명 부탁드립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전시 등의 외부 활동 중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소개 부탁드립니다.

애니메이션 ‘환’의 경우 호랑이가 동물원에서 탈출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호랑이가 탈출한다는 약간은 있을 수 없는 이 이야기가 실제 작업을 하면서 벌어졌던 게 기억이 납니다. 타잔의 주인공을 기억하나요? 지금은 나이 들고 노인이 되었지만 이 배우가 실제 집에서 호랑이를 키우고 있었는데 그 중 한 마리가 집 밖으로 도망을 갔습니다. 다음 날 경찰에 의해 사살되었는데 CNN 방송에 타잔이 죽은 호랑이를 끌어안으며 경찰관이 호랑이를 죽였다며 흐느끼는 장면이 나왔습니다. 마취시킬 수도 있었는데요. 이 장면을 보며 제 애니메이션이 실제 일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동시에 타잔의 슬픈 느낌도 충분히 동감했고요.

또 다른 작업에 대한 기억은 ‘제주 4.3의 새벽’을 만들기 전에 실제 학살의 현장을 답사한 경험입니다. 군인들을 피해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는 제주의 기생동굴에 몇 달씩 숨어 지내는 현장을 체험하기 위해 일행들과 30여 미터를 기어들어갔습니다. 눈을 떠도 암흑인 동굴 안에서 숨소리마저 죽이며 지냈을 사람들을 생각하며 작업 내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어린 아이가 신었을까요? 아직도 그 곳에 남아있는 작은 고무신이 생각납니다. 요즘은 ‘Animating Earth'라는 갯벌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름으로 오염된 해안에서 떠나온 조그만 돌이 여행하는 이야기입니다. 돌을 배낭에 넣고 인천 갯벌들을 돌아다니며 촬영하고 있습니다. 갯벌 위에서 돌을 조금 움직이고 촬영하고 다시 움직이고 촬영하고...
 
 


Aliceon 상당한 기간동안 작업을 진행하고 계십니다. 영상 등의 미디어 아트 분야에서는 다른 기존 매체들보다 기술의 진보에 의한 영향이 더 큽니다. 그런 매체 및 기술발전의 영향은 어떠했으며 또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학부 졸업 작품으로 디렉터란 프로그램으로 ‘Waterdrops'이라는 인터랙티브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물방울을 누르면 영상이 나오고 다시 다른 물방울로 연결되는 작품입니다. 요즘은 플래시나 다른 툴로 인해 많이 사용되진 않습니다만 디렉터의 링고란 프로그램 언어를 사용했는데 여러 버그로 전시 전날까지 고생한 기억이 납니다. 애니메이션 ’환‘을 만들 때는 3D 컷 아웃 기법을 사용하여 Maya라는 3D 프로그램을 사용했습니다. 가령 호랑이를 150 여개의 이미지 조각으로 나누고 가상의 뼈와 관절에 연결하여 움직이는 방식입니다. 이 작업 역시 Maya라는 프로그램을 익히고 또 작품에 적용하기 까지 상당한 시간과 고생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술들로 인해 이전까지는 힘들었던 결과물이 나온 것도 사실입니다. 앞으로도 기술과 관련해서는 그 끝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진보가 계속 될 것입니다. 이와 관련된 새로운 예술형식도 계속 나올 것입니다. 애니메이션도 3D 애니메이션과 게임의 다양한 인터랙션을 보더라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기술이 나올 때마다 매뉴얼과 서적을 찾아보며 공부하다가 잠시 생각에 잠기기도 합니다. 유학가기 전 어느 선생님께 무엇을 배우고 와야 할까요? 라고 질문 드렸더니 가장 변하지 않는 것을 배우고 오라고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납니다.


 
Aliceon 애니메이션 작업의 실험성과 익히 익숙한 상업 애니메이션과의 비교 등으로 작업으로서의 애니메이션 작품들은 감상자들로 하여금 낯섬 등 익히 경험했던 감정과는 다른 느낌을 경험하게 됩니다. 선생님의 작품들의 경우 몽환적인 느낌이 강한 것 같습니다. 작업을 이어가는, 기반을 가지는 주제 혹은 선생님이 작업을 하실 때 가지시는 기본적인 작업관에 대해 부탁드립니다.

아침에 일어나 어제 밤에 꾼 꿈을 기억해보곤 합니다. 하지만 신기하게 증발되어버리고 마는 꿈들을 보면 깨어있을 때의 지속되고 있는 기억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보긴 봤는데 기억이 안 나는 영화들, 언젠가 읽었는데 전혀 생각이 안 나는 소설들, 멜로디가 떠오르지 않는 음악들, 이런 것들은 개인의 메모리 안에서는 꿈과 비슷한 영역에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의 작품 ‘자각몽’의 경우는 어릴 때부터 종종 꾸었던 추상의 점들이 무한 반복되어 결국 이게 꿈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에 대한 기억을 작품화 한 것 입니다. 현실에서 그 꿈을 기억해내고 이미지화해서 작품을 만들고 그 꿈은 현실화되지만 작품을 보면서 다시 꿈으로 돌아갑니다. ‘환’에서는 동물원 안에서 호랑이를 보며 환호하고 열광하는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돌아다니는 호랑이를 보고 피하고 두려워합니다. 사람들을 다르게 행동하게 하는 것은 동물원의 Cage, 틀 입니다. 사물이나 어떤 현상을 투과시켜 바라보게 하는 틀로 인해 환영이 생기고 그로 이해 대상에 대한 이해가 달라집니다. 제가 그 동안 해왔던 작품들은 의도했건 아니면 우연히 그렇게 되었건 꿈과 현실의 경계, 인식의 틀의 안과 밖의 경계에 관련되었던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매체 자체가 움직이지 않는 것들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감각과 인식의 경계에 있는 것 처럼요.
 
 
Aliceon 20세기 이후 디지털기술의 발전과 영화분야에서의 응용 때문에 창조라는 관점에서 그리고 애니메이션 내에서도 다양한 실험들이 등장한 결과 애니메이션과의 경계가 많이 무너졌다고 생각합니다.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애니메이션은 어떤 것인지요?

애니메이션도 사람마다 너무 다르게 생각해서 어떤 것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극장이나 TV에서 상영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상업 애니메이션과 갤러리나 소규모 예술극장에서 상영되는 애니메이션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실험영화와 실험애니메이션 같은 경우도 어떤 경우는 영화와 애니메이션의 구분이 힘든 작품이 있습니다. 저의 최근 작품 'Macro Drawing'의 경우 비행기 안에서 눈 덮힌 대지를 카메라로 연사하여 연결한 작품입니다. 일반 비디오 영상 같지만 실시간 레코딩 개념이 아닌 한 장 한 장 촬영된 프레임을 기반으로 한 작품입니다. 애니메이션에서는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의 활동이 무척 중요합니다.

음... 마지막 질문하신 제가 생각하는 애니메이션은 앞으로 더 생각해봐야겠지만 프레임 안에 정지했던 사물이나 그림이 애니메이션 되어 움직이면 정지했을 때와는 다른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 같습니다. 애니메이션이라는 말의 어원처럼 생명이 불어넣어진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관객이 아닌 창작하는 입장에선 어떨 때는 제가 샤먼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사물을 움직여 다른 세계로 여행을 다녀오는...  마지막 질문은 앞으로 여행 더 하고 정리해 보겠습니다. ^_^


Aliceon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는 저 자신도 애니메이션 및 만화라는 매체를 무척이나 좋아하고 또한 친숙했지만 정작 그 자체에 대한 이해는 많이 부족했었습니다. 선생님의 이야기를 접하고 나니 비로소 그 매체들의 위치가 잡히는 듯 합니다. 특히 애니메이션이 움직임을 다루는 것이라는 포괄적인 정의보다는 '프레임과 프레임 사이를, 그 활동을 다루는 매체'라는 언급이 무척 와 닿았습니다.^^ 긴 질문 답변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활동을 통해 뵙기를 기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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