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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_최혜실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8. 17. 20:26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 : 매체는 진화하고 이야기는 태어난다
최혜실 지음. 한길사, 2007.
 

우리는 촛불집회 현장에서 벌어진 ‘말의 술래잡기’를 알고 있다. 집회 참가자들의 피켓에는 풍자와 익살이 가득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의 집회 해산 명령에 “노래해”라고 대답하고 물대포를 맞으며 “온수”를 외쳤다. 집회 현장에서는 으레 이성적이고 무겁고 투명한 말들만이 오가게 마련이었다. 하지만 촛불집회 참가자들은 경찰과 정부의 직설법에 다양한 수사법으로 응답했다. 감성적이고 가볍고 꼬인 말들, 중·고등학생들이 쓴 소의 탈, 젊은 엄마들이 밀고 나온 유모차와 전경 버스에 밧줄을 매 끌어당긴 넥타이 부대의 제스처, 그들의 몸의 꾸밈과 움직임, 모두의 손에 들린 촛불이라는 여러 언어들이 이성적이고 무겁고 투명한 ‘정치적’ 말들의 틈새를 빠져나가고 뒤통수를 쳤다.

무엇이 집회 현장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쓰는 속도가 생각하는 속도, 말하는 속도와 가까워지고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문자화된 언어 뿐 아니라 이미지 언어도 쉽게 동원할 수 있는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이라는 분석이 많다. 촛불 집회가 태동한 바탕이 디지털 미디어 환경이었다. 미디어는 언어의 형태와 소통 방식을 규정하고, 이런 미디어의 특성은 사회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다.

최혜실의 <문자문학에서 전자문화로>(2007 한길사)는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사회적 언어와 소통 방식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개괄하는 책이다. 저자는 “인쇄매체의 스토리텔링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던 문학도가 디지털 매체를 접하면서 느꼈던 이질감, 그런데 그 이물질 같았던 디지털 매체가 곧 생활의 일부분을 차지하는 것을 본 경악감이 탐색의 근원”이었다고 밝힌다. 책은 디지털 미디어에서 지식 생산이 어떻게 민주화되었고 자아와 현실, 공간, 서사 등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생각한다. 이모티콘과 디시인사이드, 팬픽, 인터넷 문학과 미디어 아트, 컴퓨터 게임, UCC, 인터랙티브 영화와 모바일 콘텐츠 등의 특징적인 현상들이 근거로 제시된다.

저자 자신이 문학도인 만큼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문학에 대한 이해가 자세하다. 여기에서의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문학은 팬픽이나 ‘귀여니’ 소설 같은 디지털 미디어를 통해 발생하고 전달되는 문학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디지털 미디어의 언어와 소통 방식에 영향 하에 놓인 한국 문학의 전반적인 변화의 흐름을 아우른다. 예를 들면, 최혜실은 디지털 언어와 사투리에 “공식 언어의 위선에 저항하는 비공식 언어”라는 공통점이 있다고 지적하며 “인터넷 글쓰기와 닮은 말본새”로 폐광촌의 사연을 풀어내는 김종광의 소설과 충청도 사투리를 통해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냈던 이문구의 소설을 잇는다. 또 디지털 미디어의 영향으로 1980년대 두드러졌던 여성문학의 구술성이 부활하고 있음을 읽어내기도 한다. 1980년대 미시담론이 거대담론을 대체하고, 여성의 지위가 향상되었고, 주요 독자층이 여성으로 변화한 것이 여성문학이 부각된 배경이었음을 상기해볼 때 이 시대 구술성의 부활 역시 사회·문화·정치적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새로운 문학의 면면을 돌아본 책은 마지막으로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컴퓨터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을까?” 저자는 이야기를 시각화하거나 여러 조건들을 설정하면 이야기를 자동생성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예로 들며 인공지능이 사람의 창의력을 대체할 수 있는지, 디지털 미디어의 상호작용성이 이야기를 하고 듣는 사람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해본다. 하지만 그 고민이 그렇게 깊지는 않다. 책은 엔터테인먼트 로봇들의 등장을 소개하며 “가상공간의 캐릭터가 현실공간으로 뛰어나와 인간과 직접 상호작용하는 시대”에 대한 기대를 표현한다. 하지만 그것이 결국 사람의 창의력과 행동 양식, 삶 자체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 혹은 어떤 방향으로 바꾸도록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답하지 않는다. 섣부르지 않거나 얕거나. 하지만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한국문학의 변화 양상을 어렵지 않게 개괄하는 데에는 적합한 책이다.

목차

전자문화에서 이야기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1 디지털 매체와 소통의 변화
스스로 증식하는 말
소통의 변화와 문자 중심의 인문학, 그리고 위기
소수의 지식권력에서 다수의 지식권력으로
디지털 매체의 등장과 지식생산의 민주화
디지털 평등사회의 스타
디지털 언어: 손가락으로 수다 덜기
디시인사이드와 엽기문화
사이버 공간에서의 탈주체화 감수성
가상에서의 나-너-우리
가상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
현실과 공간의 변화

2 디지털 시대의 문학
이야기로서의 소설
여성 소설의 구술성
사투리와 디지털 언어의 공통점
디지털 시대의 팬에 대한 성찰
황당과 허무의 의미
팬픽 세대식의 '가난'과 환상
베끼기에서 상호텍스트성으로
황당하게 혹은 진지하게 다시쓰기

3 가상집단의식과 스토리텔링: 팬픽
스타덤과 팬덤
인터넷의 양방향성과 집합지능
한국의 팬픽
스타트렉과 슬레이어즈
야오이에 나타난 동성애의 의미
금기를 깨는 사이버 집단의식

4 문학의 프로슈머화: 인터넷 문학
인터넷 문학이란 무엇인가
인터넷 문학의 독자와 작가
디지털 독서로서의 다시쓰기
귀여니 이전과 이후
멀티미디어 작가 귀여니

5 하이퍼텍스트 문학, 넷아트, 미디어 아트
문학과 아트 그 혼란의 이유
한국의 넷아트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등장
넷아트와 하이퍼텍스트 문학의 속성
통합적 서사를 위하여
미디어 아트의 세계

6 컴퓨터 게임의 스토리텔링
통합적 서사를 위하여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전개와 현황
게임에 나타나는 이야기적 요소에 대한 다양한 견해들
역할놀이로서의 스토리텔링
유사공간 탐색으로서의 게임
카타르시스의 불가능성
MMORPG의 스토리텔링과 게임중독
게임중독자의 스토리텔링의 특성
유비쿼터스 시대의 시대

7 매체의 변모와 문화예술의 진화
매체의 진화 과정
매체의 변화와 문화예술의 변화: OSMU
매체의 변화와 21세기형 문화예술의 등장
UCC-원시예술로의 복귀

8 매체와 매체, 매체와 현실, 매체의 현실화
핍진성 증대의 세 가지 방식
인터렉티브 영화
몰입형 환경
TV와 인터넷의 만남
유선에서 무선으로: 모바일 콘텐츠
컴퓨터가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을까

글. 박우진.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mondenkind@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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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실 지음 | 한길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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