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자유로운 수인_김태은展 : Bird Strike_exhibition review

yoo8965 2008. 9. 6. 00:27


당신이 이곳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 바깥의 시간과 공간에 익숙해있던 감각의 주파수를 조금 고치는 편이 좋겠다. 전시장이라는 장소의 아우라 때문이 아니다. 작가의 프로세스에 근접하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이곳을 찾은 이상 좀 더 즐기는 편이 낫지 않을까? 한눈에 둘러볼 수 있을 넓이의 전시장 내부는 어떤 일관성이나 이야기를 발견하기 쉽지 않다. 규칙적인 기계음과 벽면에서 흐르는 영상 - 색감은 다양하지만 고립된 채 흐릿한 빛을 발산하는 - 작품들은, 아직 멀쩡하지만 이젠 너무 나이가 든 누군가의 장난감을, 어쩌면 버려졌는지도 모를 장난감을 닮았다. 그렇기에 오히려 이 작품들은 언제나 현재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들은 군중을 닮았다. 작가로부터 변형되어 분리된 군중. 관객은 그 무리의 일원이 될 수도 있지만, 언제든 빠져나갈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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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들은 기교적이지도 않지만, 가볍지도 않다. 이 낯선 사물들에 담긴 사연들은 의외로 친숙할 수도 있다. 전체적으로는 인간의 기계되기, 그 시뮬레이션을 통해 기존에 익숙한 관념들이 재배치된다. 그것들은 불가청주파수가 될 수도 있고, 당신을 통하여 재생될 수도 있다. [circle drawing]에서 작가가 펜으로 재현한 LP의 기록방식을 당신이 읽어낼 수 있을까? [recycle screen]의 렌즈에 맺히는 상을 당신이 읽어낼 수 있을까. [Trauma]에서 보여지는 것이 작가로부터의 개별적인 환영인지, 보편화될 수 있는 이미지인지, 혹은 작가의 의도와 표현 형식만을 골격으로 남겨야 하는 것인지, 또 그 외의 답으로 스스로에게 말하는 몫은 당신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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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ong planet]에서 거울에 반사된 빛을 통해 양 벽면에 동일한 영상이 흐른다. 두 영상은 모서리로 수렴되나, 정확히 데칼코마니처럼 표현되진 않고, (거울에 비친 영상이 관객에겐 보이지 않으며, 두 영상의 소실점도 중간이 아니기에) 시간차를 두고서 관객에게 보여진다. 분절되어 보여지는 영상 속의 신체는 여타 작품에서도 발견되는 소재이나, 유일하게 도시 거리의 풍경을 보여준다. 관찰자에 따라 다르게 체감하는 시간과 육각형으로 좌표화된 공간으로, 동일한 영상은 좌우가 불일치된 채 소멸해간다. 거울과 관찰이라는 매체-행위로 인해 원래는 동일했을 영상이 변형된다. [k의 노크]라는 역설적인 제목의 작품은 유리 너머를 볼 수 있는 이중거울을 통해 작품 속의 k가 관객에게 문을 두드리는 내러티브에서 출발해 작가의 자화상들이 시현된다.

이처럼 우리에게 익숙한 자기 자신, 또한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를 낯설게 느끼도록 설정된 시뮬레이션에서 작품들은 출발한다. 그에 따라, 이 곳에서도 기계의 언어와 인간의 언어가 나란히 묘사되어 있는 이 작품들에 대해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서술해본다.

신체의 분할은 그러나 정지, 즉 죽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easel painting]에서는 이젤 대신 장착된 거울이 모터를 통해 움직이며 주위를 스캐닝한다. 그 모터의 on/off 리듬에 따라 이젤 옆에 상영되는 이미지들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물론 거울에 비치는 영상이 그대로 표시되는 구조는 아니다. 기계를 통한 새롭고 더 적합한 언어의 스탕달의 거울을 예감할 수는 있지 않을까? 기계에게도 리듬이 있다는 것을, 그렇다면 음악도 있다는 것을, 작가는 소리라는 공기의 진동을, LP라는 기록매체를 모사한다는 행위로 은유적으로 말하고 있다.

인간이 기계되기를 통해서, 현재의 재배치를 통해서 재생될 수 있다는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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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과 이야기의 병치로 작품들을 헤아리는 것도 이 전시를 즐기는 방법이다. [sea-saw]라는 작품은 매우 인간적인 감수성을 보여주는데, 여자 무희와 수면에 얼굴을 담근 여자 모델의 움직임이 각각의 모니터를 통해 플레이된다. 무희의 동작은 깨진 거울처럼 파편화되어 신체의 운동감은 강화되고, 파편화되지 않는 채 포커스되는 얼굴로 인해 성격의 표현도 강화된다. 반면 모델은 수중에서 숨을 참아야하는 괴로운 과정을 거쳐 반복적으로 촬영된 영상인데, 그런 번거로움을 떠올리지 않을만큼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모델의 얼굴, 신체에서 배출되는 가스로 만들어지는 기포의 형태와 움직임, 모델이 호흡을 위해 수면 밖으로 빠져나가는 순간의 수면의 파동, 카메라에 붙어있어 마치 우주공간을 연상시키는 물방울들, 그리고 영상들의 반복적인 패턴, 아울러 촬영 당시의 촬영자와 관객의 현재 위치의 불일치를 더해 현기증 짙은 중독적인 효과를 가져다 준다.



[easel painting]

김태은에게는, LP와 같이 선형적인 것들로 표현하려는 욕망과 on/off로 대변되는 기계적인 문법이 만나고 있다. 당신이 그 만남의 자리에서 무엇을 읽어냈는지, 그것을 기법상의 강조, 성격의 강화, 혹은 데이터의 집중, 무엇이라 불러도 좋다. 수많은 대안적인 이론과 기술들이 선언되는 지금의 세태에서 이 작품들은 그렇기에 현재적이다. 또한 당신이 어떤 이야기를 기억하고 있고,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면, 양립을 넘어 충돌할 수도 있는 아슬아슬한 상태라면, 당신은 이미 병렬화되어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들 중 당신을 닮은 게 있을까? 그렇다면 그 작품은 또한 현재적이다.

누군가 그 모든 걸 한 눈에 보려면 부감의 위치 있어야 한다. 그 위치가 김태은에게는 지표의 광경만을 떠올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이 전시의 타이틀이기도 한 Bird strike는 항공기와 새의 충돌을 말한다.

글. 김종혁(중앙대 문예창작학과) / reincarnation199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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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은 작가 홈페이지 : http://www.iiru.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