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디지털 나비효과전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9. 6. 10:35


매체예술의 등장은 단연 디지털의 발달 이전에서도 그 흔적을 되새겨 볼 수 있을 것이다. 전화와 타자기 그리고 축음기 및 팩스, 전광판 등이 초기에 발달되었을 때, 많은 예술가들은 그러한 다양하고 새로운 미디어를 통해 작업을 진행시켜 왔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생산하기 시작한 디지털 이미지는 그 이전의 이미지 생산방식과는 확연히 혁신적이고 존재방식 또한 기존의 시각이미지와도 달라졌기에 이제는 “달라졌음”에 대한 언급보다는 어떻게 구분될 수 있을까 혹은 작가들은 오늘날의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신의 작품과 어떻게 연결 짓는가에 대한 부분에 관한 집중이 부각되고 있다. 만약 매체, 즉 미디어가 컴퓨터 이전의 모든 예술에서 사용되었던 기술들을 포섭할 수 있는 개념이라면, 오늘날에 다시금 크게 부각되고 있는 매체예술에 대한 집중은 오히려 빠르게 발달되는 기술 속도의 맥락에서는 단지 자연스런 흐름으로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매체예술이 예전의 전통적인(아날로그)방식의 결과물과 왜 달라져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은 앞에서도 언급한 바 있는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이다. 디지털 이전에도 다양한 기술들은 예술가의 보조적인 재료의 수준에 그쳤다면, 오늘날에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창작되는 디지털 이미지의 생산방식은 고스란히 작업의 개념과 주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고도과학기술이 예술작품을 생산하는 보조적인 매체보다는 작업 그 자체의 의미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기술이 예술작품의 주요한 의미로 적용되는지, 아니면 예술가가 기술을 적절히 자신의 작업에 잘 배합을 시키는지에 관한 문제에 봉착해 있다면 갤러리 나우의 <디지털 나비효과>전은 작품자체가 기술이 될 수 있다는 점 보다는 기존에 전통적인 맥락으로 작업을 진행시켜 온 작가들이 디지털 기술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하는지 혹은 그러한 기술을 통해 어떻게 작품을 완성해 내는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전시라고 할 수 있다.

     



(좌) 신치현 ,생각하는 사람, 아크릴, 25 x 25 x 50 (H) cm, 2006
(우) 신치현, 생각하는 사람, 디지털 프린트, 65x75cm, 2006

조각을 전공한 신치현의 아크릴로 제작된 <생각하는 사람>은 전통적인 재료에서 벗어나 좀 더 세련되고 도시적인 조각물로 탈바꿈하게 된다. 이 작업을 무엇보다 우리가 기존에 알고 있던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의 작품을 차용한 것으로, 전통적인 조각물로 분류되는 로댕의 작업을 현대적인 관점으로 풀어냈다는데 의의가 있다. 그가 선택한 아크릴이라는 소재는 인간의 감정과 느낌이 지극히 절제된 재료로 영상 속 모니터에서 금방이라도 빠져 나온듯한 모습을 하고 있다. 이 작업과 같은 연결선상에 있는 또 다른 사진작업 <생각하는 사람>은 컴퓨터공간에서 자유롭게 부유하는 기하학적이고 수적재현이 가능한 픽셀의 디지털 이미지 효과를 그대로 전달했다.

 


(좌) 장희진, a space, 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 , 45x45cm, 2008
(우)장희진, a space (wave detail view), Gouache, gel on modelled canvas , 70x160cm , 2008

 단지 회화의 기법만을 고집하지 않는 장희진의 다양한 시도는 복합매체의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장희진에게 컴퓨터 기술은 더 완전한 회화작업을 탄생시키기 위한 재료로 작용하는 듯하다. 화면에 등장하는 자연이미지, 즉 나무사진들은 컴퓨터에서 조작되고 변형된 이미지로 인쇄되어 다시 본연의 자리인 캔버스로 이동하게 된다. 이로 인해 본연의 자연적인 나무 색감은 사라지고 디지털 이미지의 속성을 통한 다채로운 색 변형을 거쳐 다시금 회화의 모습으로 보여 지게 되는 것은 장희진이 컴퓨터 기술을 통해 생산해 내는 방식의 작품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조병왕, 기하학적 칼 드로잉 08-02-08, 폴리에스터 베이스 초 광택 컬러사진위에 스크래치. 칼 .철자 ,

93 x 47 cm, 2008


 마치 화면을 베어내는 것과 같은 날카로운 선을 통한 다양한 조합을 담아내는 조병왕은 이미 컴퓨터 기술에 거쳐진 세련되고 광택 나는 재료위에 또 다른 인공미를 가한다. 평면에 지나치게 번쩍번쩍 해 보이는 “선(line)"은 조병왕의 작품개념을 구체적인 시각적 매체로 풀어내 주는 조형언어이다. 작품을 구성해 내는 선은 회화 및 입체장르를 통해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기술을 매개로 매체를 접근하기 보다는 컴퓨터의 생산되는 기계적이고 인공적인 요소들을 선의 연출에 접합시켜 <기하학적 칼 드로잉>의 완성해 낸다. 궁극적으로 이 작품의 연작들은 전적으로 컴퓨터로 생산된 이미지는 아니지만, 컴퓨터의 기계적인 요소들을 사진 그리고 회화의 방식으로 풀어내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적인 것과 기계적인 요소의 배합을 또 다른 방식으로 대조해 보자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라는 개념으로 분류되어 질 수 있다.



(좌) 변재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境界)Ⅲ , Painting on St,Steel. Hologram, Neon Light, 122(W) X 220(H) X 10.5(D)cm , 2006
(우) 변재언,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境界)Ⅲ, Painting on St,Steel. Hologram, Neon Light, 488(W) X 122(H) X 10.5(D)cm , 2006


변재언은 아날로그 사진을 기반으로 일정 프레임 안에서 홀로그램 작업을 해 온 작가이다. 특정 화면에 대한 작가의 고민은 아날로그적인 감수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홀로그램 더 나아가 가상현실에 대한 작업 개념의 확장은 그 만큼 지속적으로 발달되는 기술이 작가에게 중요한 작업의 모티브가 되는 것임을 시사한다. 특히나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경계>에서는 비물질적이고 기하학적인 컴퓨터 공간을 물질의 세계에 구체적으로 제시함으로 현실과 가상 그리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고스란히 작품에 담아내고 있다.  



4명의 작가를 통해 살펴 본, 이 전시는 미디어아트 영역에서 중요하고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작품의 흐름과 양상이 아닌 미술사를 비롯한 현대미술이라는 거대 서사에서 미디어아트, 즉 컴퓨터 기술과 디지털 이미지들이 어떻게 조명되고 있는지에 관한 부분에 대한 언급으로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회화와 조각 그리고 사진이라는 장르에서 미디어아트분야에 대한 소극적인 해석은 마치 현대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예술가가 미디어아티스트가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보여주는 듯 하다. 그렇다. 디지털 문화를 접하는 모든 예술가가 매체예술을 생산해 내는 작가 일 수 있겠지만, 미디어아트에 대해 진정한 연구는 회화나 조각에서의 매개자로써 혹은 도구나 재료로 사용되던 매체의 입장이 그 출발지가 아님은 분명하다. 따라서 항상 이론보다 앞선 미디어작품이 아니면 새로운 미디어아트 이론을 탄생시킬 창조적인 기술을 겸비한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부재...어쩌면 그것의 발견조차도 다음의 것들을 더 윤택하게 만들어 내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