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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형 <철완 아톰>(1951)

<철완 아톰>은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은 아니다. 하지만, 나중에 제작된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의 몇 가지 중요한 특징을 앞질러 보여주기 때문에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세계와 공동체를 구원하는 ‘소년로봇 영웅’이라는 모티프다. 잘 알려졌다시피 <철완 아톰>은 일본 만화애니메이션의 거장 데즈카 오사무의 작품이다. 일본에서 그는 만화는 물론 애니메이션의 기틀을 잡은 사람으로서, 이후 일본의 만화・애니메이션의 기본적인 문법을 만들어낸 장본인이다.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지만, 일명 일본식 애니메이션 제작방식인 리미티드기법을 정착시킨 탓에 많은 원성을 사기도 했다. 보통 아톰을 떠올리면 귀여운 용모에 십만마력의 강력한 능력을 갖춘 소년로봇을 생각할 것이다. 친구처럼 주변 인물을 도와주고 영웅처럼 공동체를 지켜내는 세계의 보호자인 것이다. 이렇게만 보면, 미국의 슈퍼맨처럼 여느 초영웅들과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슈퍼맨과 아톰의 차이는 미국과 일본을 갈라놓는 태평양만큼이나 깊다.

먼저, 원작만화에서 아톰이 태어난 과정부터 범상치 않다. 전도양양한 생명공학 박사인 텐마는 남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자동차 사고로 애지중지하던 아들 토비오를 잃게 된다. 토비오를 너무 사랑했던 텐마 박사는 토비오를 로봇으로 부활시키기로 결심, 마침내 뜻대로 아톰을 만들어 내고야 만다. 하지만 토비오와 비슷하게 만들기는 했지만, 전혀 성장하지 않는 아톰의 모습 때문에 절망한 텐마 박사는 마침내 아톰을 서커스단에 팔아 버리고야 만다. 볼거리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텐마 박사는 박사대로 두 번이나 아들을 잃어버린 셈이며, 아톰은 아톰대로 버림을 받은 셈이다. 서로가 서로를 소외시키는 존재였던 셈이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인간사회에 받아들여져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고, 물심양면으로 뒷받침하는 오차노미즈 박사를 만나고, 악의 무리에 맞서 사람들과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으로 다시 태어나지만, 태어날 때부터 토비오를 대리한 존재였으며, 게다가 버려지기까지 했다는 점은 아톰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된다.

지금까지 간략하게 ‘아톰’의 탄생과정을 살펴봤다. 여기서 <철완 아톰>이 언제 태어났는지 따져 보면 매우 흥미로운 실마리를 얻게 된다. 1951년 4월 7일생. 태평양전쟁에서 서양의 강국 미국과 맞서 제국주의전쟁을 벌이다가, 세계 최초이자 최후로 원자폭탄을 맞고서 항복한지 6년 뒤다. 10년이라면 강산도 변한다던데, 6년이라면 아무리 기를 써봐야 전쟁의 상처를 아물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게다가, 세계사에 유례없는 원자폭탄을 두 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 일본이 입었던 정신적 상처는 여전했을 것이다. 아톰은 이 같은 역사적 배경을 안고서, 또한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면서, 태어났던 것이다. 그랬던 탓에 아톰은 만화가 나오자마자 인기를 끌었으며, 대략 10년 뒤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됐을 때도, 장장 3년여에 걸쳐 193편으로 제작될 만큼 화제를 몰고 왔다. 현재까지 일본 전역이 아톰의 생일까지 챙기는 모습을 보면, 어떤 대접을 받는지 어떤 존재로 여겨지는지 두말하면 잔소리일 것이다.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가 국민의 영웅으로 간주되는 경우는 흔치 않은 것이다.

그렇다면, 아톰이 거대로봇 애니메이션과 어떤 관련을 맺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실마리를 끌어낼 볼 수 있다. 첫 번째 ‘로봇소년’ 영웅이라는 것. 달리 말하자면, 자연적 인간도 아니요 성숙한 어른도 아니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모험이야기에 등장한 영웅들과 사뭇 다르다. 사실, 오늘날 로봇을 주인공을 내세운 애니메이션, 영화, 만화가 드물지 않는 탓에, 아톰의 존재를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않지만, 곰곰 생각할수록 놀라운 일이다. 그것도 무려 50년여 전에 만들어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일본은 로봇소년을 영웅으로 불러 들였을까. 여기서 근대 시대에 일본과 서양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정확하게 일본이 서양의 과학기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일본은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날렵하게 서양문명을 받아들였다. 이때 일본이 내세웠던 명분이 바로 ‘화혼양재’였다. 즉 일본의 혼에 서양의 기술을 결합시킨다는 것이다. 칼을 버리고 총을 들었지만, 영혼만은 일본의 것이라는 이야기다. 아니, 어쩌면 서양에 없는 일본의 정신이 덧붙여졌기 때문에 더욱 훌륭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2차 세계대전에서 그들 일본은 서양에게 처참하게 패배했다. 아니, 패배한 정도를 넘어서, 원자폭탄이라는 가공할 과학기술에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고, 치유하기 힘든 상처를 받았다.

대저 대등한 존재라야 증오도 하고 복수도 하는 법이다. 하지만, 대등하기는커녕, 자신을 훨씬 뛰어넘는 존재를 만나게 되면, 그런 생각조차 사라지게 되기 마련이다. 바로 원자폭탄의 위력이 그랬다. 인류사에 기록될 거대한 전쟁이벤트였던 원자폭탄은 마치 초월적인 하느님이 세속의 세계를 쓸어버리는 것처럼 일본 본토를 할퀴었다. 어쩌면 원자폭탄이 상징하는 서양의 과학기술은 쉽게 넘보지 못할 숭고한 존재로, 하지만 이후 따라잡아야할 영웅적인 존재로 다가온 게 아니었을까. 이렇게 본다면 아톰에게 ‘아톰’이라고 명명한 까닭은 이해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쉽게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자기 모국을 황폐하게 만든 ‘원자폭탄’의 이름을 주인공에게 부여할 수 있을까. 게다가 자기 자신들과 세계를 구원하는 영웅이 아니던가. 마치 자신의 등에 칼을 꽂은 원수의 이름을 자식에게 내리는 꼴이다. 너무나 노골적인 표현이다. 하지만, 상식을 넘어선 초월적 존재라면,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면, 사정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비록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냈다고는 하지만, 로봇 아톰은 서양의 기술문명의 배다른 자식이자, 과학기술을 재현하는 물신인 셈이다. 일본의 혼만으로 서양을 초극할 수 없다면, 아톰처럼 과학기술을 자기 심장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 됐던 것이다.

또한, 아톰이 ‘소년’이라는 것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어른은 더 이상 결코 영웅이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패배한 어른들은 영웅이 될 수도 없었고, 돼서도 안 됐다. 그렇다고 미래까지 영웅이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법, 어른을 대신한 소년이 영웅으로 나서게 된다. 이 지점에서 <슈퍼맨>과 같은 미국의 초영웅 이야기와 결정적으로 갈라지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 미국의 영웅들은 하나같이 완성된 어른들이요 전능한 영웅들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영웅들은 아톰처럼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지도 않고 주위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지도 않는다.

두 번째 특징은 아톰의 가족관계다. 먼저, 아톰의 아버지는 창조주 텐마 박사와 보호자 오차노미즈 박사(코주부 박사) 두 명이며, 어머니는 없다. 나중에 로봇 아버지와 어머니가 등장하지만, 구색 갖추기 정도지 별다른 의미는 없다. 흥미롭게도 두 명의 아버지 모두 과학자인데, 그들이 아톰을 대하는 태도는 판이하다. 오차노미즈 박사가 아톰이 어려울 때마다 뒷받침하는 존재라면, 텐마 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톰을 난관에 빠트린다. 아톰을 만들자마자 버린 것도 텐마 박사요, 끊임없이 기회만 되면 괴롭히는 것도 텐마 박사다. 텐마 박사가 아톰을 버리고 미워하는 까닭은 앞서 지적한 것처럼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아톰은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영웅이 될 수 있었다. 오차노미즈 박사는 바로 이 같은 면모를 감싸안는 사람이다. 따라서, 두 명의 아버지라는 존재는 아톰을, 즉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일본의 모순적인 태도로 볼 수 있다. 무작정 사랑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원래의 토비오가 아니기에, 원래 일본의 것이 아니기에. 또한 무작정 미워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아톰의 뛰어난 힘이 필요하기에, 서양을 초극하려고 하기에.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아버지가 두 명이라는 것은 아버지가 분열되어 있다는 것이고, 어떻게 보면 사실상 없는 것이나 진배없는 셈이다. 앞서 지적한 대로, 어른들은 패배했기 때문에, 기껏해야 보조하는 존재로밖에 나설 수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의 존재는 아예 흔적조차 없으니, 아톰에게 부모는 부재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소년로봇 영웅과 부재하는 부모관계는 이후 거대로봇 애니메이션에서 ‘소년과 로봇’, ‘박사(아버지)와 로봇(어머니)’으로 각각 분열하여 정착된다.

글. 김상우(미학, 게임평론가) _newromancers@gmail.com


*** 본 컬럼은 필자의 <문화사회연구소>에서 진행된 '동아시아 대중문화 포럼'의 강의자료를 토대로 재구성된 글입니다. 총 5회로 구성되어 연재될 예정입니다.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1 : 시작하며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2 :
원형 <철완 아톰> (1951)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3 : 초석 <철인 28호> (1963)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4 : 완성
<마징가 Z> (1972)
거대로봇 애니메이션: 원형, 완성, 변주 5 : 한국적 변주 <로봇 태권V> (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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