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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상성 예찬_빌렘 플루서_book review

aliceon 2008. 10. 2. 20:47


피상성皮相.
사전적 의미의 피상은 '겉모양', '진상을 추구하지 않고 표면만을 보고 내리는 판단'의 의미이다. 이러한 피상성은 오랜 기간동안 가치없는, 피해야 할 속성으로 여겨져왔다. 플라톤의 동굴 우화에서 보여졌듯 철학가들은 오랜 시간동안 진실과 참된 현실을 피상적인 것들, 본질로부터 투영된 것들이라는 진실아닌 거짓들로부터 지키려는 시도를 지속했다. 하지만 이런 시도는 사진의 등장 이후, 디지털의 등장 이후 그 의미가 점차 퇴색된다. 기술복제시대 이후 유일성, 진실성의 아우라는 점차 희미해지며 디지털 문명은 가상을 현실로 바꾸고 현실 속으로 편입시켰다. 진정성의 전통적 패러다임은 낡은 것이 되어버렸다. 플루서는 디지털 매체의 현상학을 논하며 그러한 현대, 그리고 미래의 시대상을 분석하고 전망한다.

저자는 현재의 디지털 인간이 있기까지의 현상들을 인간이 '실제'를 잃어온 과정으로 파악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자연에 대한 인간의 반 자연적 행위이자 추상 게임으로 명명한다. 원시인들은 현실의 바람을 가상으로써 이루기 위해 여인의 조각을 만들고 동굴벽화를 그리며 이미지를 생산했다. 이러한 주술 행위가 소용없게 됨을 깨달은 인간은 이미지 대신 문자로 세계를 기술했다. 문자를 통한 역사의 시대는 지나고 어느덧 우리는 다시 이미지의 시대로 돌아왔다. 아니, 이전의 이미지 시대보다 한층 더 나아갔다. 3차원의 조각에서 2차원의 벽화, 1차원인 문자를 지나 이제 0차원인 픽셀의 시대가 되었다. 이렇게 추상의 단계는 높아졌다. 원시인들의 이미지, 원시인들의 가상을 만들어내는 주술적 상상력 대신 현대의 가상은 기술적 상상력이며 꿈만 꾸고 기원만을 진행했던 예전과는 달리 이제 현대인들은 그 꿈과 상상을 현실로 이루어 나간다.

데리다가 "텍스트 너머에는 아무것도 없다"라고 이야기했듯 세상은 이제 미디어가 생산해 내는 복제 이미지들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날 실재는 대량 복제되는 이미지들 속으로 해체되어 사라져가고 있다. 앤디 워홀은 기계로 찍어내듯 반복되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복제하며 독창성을 파괴하였고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려 했다. 그에 의해 복제된 마를린 먼로는 그녀 본인이 아닌 그 사진을 복제한 복제이다. 이 원본 없는 복제는 실제의 먼로보다 중요하며 끊임없이 복제되며 곧 진짜 먼로는 그 이미지속에 뭍혀 사라진다. 당시 사람들이 사랑하고 환영했던 먼로는 미디어의 산물이었고 각색된 그녀였다. 사진 이미지 너머의 먼로는 결국 없다. 이 피상적 이미지 너머의 먼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피상적 이미지와 실재와의 비교는 무의미해졌다.

가상은 현실이 되었다. 컴퓨터 안에서 펼쳐지는 모든 것, 픽셀로 구성된 모든 것들은 가상이다. 우리는 이미 모든 물질이 분자로 이루어져있고, 매우 작은 요소들의 집합이라는 것을 안다. 플루서는 결국 컴퓨터의 픽셀, 디지털의 0과 1, 물리세계의 최소단위들의 집합들을 구별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가상과 현실의 차이는 단지 '해상도'의 차이임을 밝힌다.

이제 우리는 객관적 세계의 주체가 아닌 대안적인 세계의 기획이다. 세상은 유일한 진실이 존재하는 우리 모두에게 객관적인 세계가 아니다. 컴퓨터를 통해 입자들를 분석, 종합할 수 있으며 예속적인 주체적 위상에서 벗어나 우리 자신을 투영하는 것 속에 설치했다. 우리는 우리의 꿈을 투영해 아직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창조하는 기획이다.

플루서는 진리, 진실을 빛이라는 매체를 통해 비유했다. 계몽의 빛, 빛의 메타포들은 주체를 횃불을 든 자로 보여주고, 객체의 세계와 그 배경들을 횃불에 의해 조명될 때 빛나는 불투명한 차광판으로 보여주었다. 자연과학이 빛을 전자기적 발산이라 인식한 후 기술은 빛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빛의 메타포는 무의미하게 되었다. 빛으로 구성된 홀로그램은 객관적 세계 뒤에 배경이 숨겨져 있지 않다는 사실, 즉 배경은 없고 오직 전면만이 존재한다는 피상성을 밝힌다. 플루서는 이야기한다. 우리는 더 이상 수수께끼 앞에 서 있지 않다. 우리는 비밀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이제 우리는 비밀의 해독을 시도하는 대신 그 비밀에 우리 고유의 기호를 투영하려 시도한다. 세계는 전면을 가지고 있는, 아무것도 숨기고 있지 않은 표면에 불과하다.

이제 피상성은 가치없는 가상이 아닌, 새로운 시대에 요청되는 새로운 존재 바라보기의 방법이며 존재 찾기의 방법이다. 이 책은 선형적이지 않은 탈 역사적 글쓰기, 조각 조각 나 있는 요소들을 묶어 그러한 과정과 현상들을 보여주며 오늘날 세상을 조망하고 있다.


목    차

[ 1. 피상성 예찬 혹은: 추상 게임 ]
추상 게임 / 꿰기 / 간격 / 평면

[ 2. 코드화된 세계 ]
코드화된 세계 / 신뢰상실 / 배반에 대해 / 기준-위기-비판 / 전자출판을 위한 쓰기 / 코드 전환 / 형식 대신 색

[ 3. 새로운 매체 속의 그림 ]
그림의 위상 / 새로운 매체 속의 그림 / 영화 생산과 영화 소비 / 묘사 / 야성의 눈 / 텔레비전의 현상학을 위하여 / QUBE와 자유의 문제 / RTL plus 방송에ㅐ서의 '토크쇼' / 텔레비전과 전철 'tele-'에 대하여 / 레바논과 비디오 / 민코프의 거울 / 비디오 탐구 / 기술적 형상 시대의 정치적인 것 / 그림 없는 이슬람
[ 4. 새로운 상상력 ]
컴퓨터화 / 분산과 집합 / 예술과 컴퓨터 / 상상 / 디지털 가상 / 물질의 가상 / 모사-모범 혹은 : 묘사란 무엇인가? / 배경들 

제2판에 대한 편집 노트 
옮긴이의 글 
출처 증명 
옮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