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00to08, 5회의 비엔날레. 10년의 역사 _2008 제 5회 서울 국제 미디어아트 비엔날레 _exhibition review

yoo8965 2008. 10. 3. 03:11


  10년이라는 시간이 경과하였다. 신의 영역을 제외하고서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인 사례로서 예술 작품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뛰어난 예술 작품은 시대를 관통해 사람들의 감성을 자극하고, 이성을 깨우치는 역할을 수행해왔다. 그것이 신적 영감을 지닌 시대의 천재들에 의해 만들어진 예술지상주의적 관념일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이러한 예술의 특권은 예술 작품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가 변화함으로서 사라지고 있다. 오히려 시간의 경과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예술 작품들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예술과 기술의 결합으로서의 매체예술은 앞서의 언급처럼 시간의 경과에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시대의 맥락을 단편적으로 담아내는 과거의 도구적 매체로서만 기능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현재의 매체 예술은 맥루한의 명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는 듯하다. 즉 메시지로서 자체 기능을 발현함으로서 예술의 개념 확장을 시도하고 있으며, 이러한 바탕에는 기술의 발전이 자리잡고 있다. 따라서 현재의 매체 예술에 있어 시간이라는 요소는 작품의 예술성을 판가름하는 척도로서 존재한다. 지난 10년을 돌아보기 위해 기획된 이번 미디어 비엔날레의 어깨가 그만큼 무거울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과거의 10년을 돌아보며 새로운 10년을 준비한다는 의미로서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인 전환과 확장은 근본적인 변화가 아닌 새로운 매체를 통한 미적 경험의 변화와 확장이라는 측면을 다루고 있다. 과거, 새로운 매체가 지닌 ‘매체성’ 자체에 집중하며 과거의 예술과는 다른 새로운 예술로서의 근본적 변화를 공시하던 시기를 넘어, 다시 예술이 지닌 진정성의 확대와 연속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주제 아래 2008 서울 국제 미디어 비엔날레는 ‘빛’, ‘소통’, ‘시간’ 이라는 세 가지의 키워드를 제시한다. 캔버스를 통해 시각적 일루젼을 재현했던 요소로서의 ‘빛’ 과 예술 작품의 근본적인 존재 이유인 ‘소통’, 그리고 그 가치를 규정하는 ‘시간’ 이라는 세 가지의 요소. 미디어 비엔날레는 이 세 가지의 다른 층위의 단어들로서 각각 과거 예술이 주목했던 속성들이 새로운 매체 예술을 만나 어떻게 증폭되고 확장되고 있는가에 주목한다.


Part I : 빛 (Light)

  전시장 1층에 자리잡은 첫 번째 파트인 ‘빛(Light)’은 비엔날레의 도입부로서, 예술 작품들이 다루어왔던 빛이라는 소재를 새로운 매체들이 어떻게 해석하고 담아내고 있는가에 집중한다. 과거, ‘외광파(外光派)’로 알려진 인상주의자들을 비롯하여 빛을 그들의 주된 표현 도구로 사용했던 예술가들은 새로운 매체를 활용하여 다양한 형태의 작업들을 선보인다.
‘리 후이’의 작업 <환생 Rein-Carnation>은 삶이 반복되는 장소로서 침대를 등장시킨다. 어두운 공간 속에서 붉은 색의 레이져 빛이 쏟아지고 있고, 마치 불덩어리 같은 빛이 쏟아지는 침대는 마치 종교적 도상처럼 거룩해 보인다. 재미있는 점은 작품의 원제에 등장하는 'carnation'이란 단어가 라틴어 ‘carnalis’ 에서 유래한 것으로 "육색(肉色), 음탕함" 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에, 작가가 전달하는 의미가 아슬아슬하게 전복되기도 한다는 점이다. 마치 붉은 색이 사람들에게 신성함을 제공하는 빛의 색이기도 하지만, 색정적인 분위기에 취하게 하는 마력을 지닌 색인 것처럼 말이다.

Li Hui, <Rein-Carnation>, Laser Installation, 2007

‘리 후이’의 작업이 빛이 야기하는 인간의 감성 변화를 유도한 작업이었다면, ‘파블로 발부에나’의 <증강된 조각 시리즈 Augmented Sculpture Series>는 빛의 ‘재현성’에 대한 경쾌한 해석이다. 한 쪽 벽면에 설치되어 있는 직사각형들의 조합들은 프로젝터로 투사된 빛에 의해 선과 면으로 구성되고, 또한 변화한다. 건축을 전공한 작가는 실제 3차원 공간의 모서리 부분에 작품을 설치함으로서 수학 좌표계의 x축과 y축 그리고 z축으로 대표되는 현실 세계의 3차원 공간을 재현하는데, 한 순간 이러한 좌표계의 지점들은 빛의 생성과 소멸에 의해 사라짐과 나타남을 반복하며 차원의 경계를 넘나들게 된다. 작품을 감상하며 어느새 빛이라는 첫 파트의 주제를 망각할 무렵, ‘타카하시 고타’의 <사라짐 Vanishing>과 조우하게 된다. 빛이라는 주제에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그림자’라는 소재를 다룬 작업으로서, 빛에 의해 파생된 인간의 그림자들이 서로의 존재에 의해 생성되고 소멸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빛이라는 광원 반대편에 존재하는 그림자는 마치 플라톤의 이데아와 현상계에 관한 이원론적 분석처럼 가상과 실재,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유영하며 관람객들을 새로운 일루젼으로 몰입하게 만든다.

Pablo Valbuena, <Augmented Sculpture Series>, 2007~2008

Takahashi Kyota, <Vanishing>, Video Installation, 2006



Part II : 소통 (Communication)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새로운 매체를 활용한 예술 작업들은 빛이라는 소재를 각각 형식과 내용으로서 다채롭게 담아낸다. 매체가 지닌 능동적인 빛의 통제는 예술 작품의 자연스러운 감상에 개입하여 의도적인 몰입의 차원으로 관람객들을 유도한다. 어쩌면 이러한 부분이 과거의 예술과 확실히 차별된 입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도적 유도에 의한 몰입이 인공적인 매체성을 드러낼 때, 관람객의 순수한 감상은 방해받는다. 매체를 의식하며 빛이라는 존재에 접근할 때, 우리는 예술 작품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첫 번째 키워드인 빛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강한 매체성은 오히려 예술 작품의 근원적 기능이자 목적인 ‘소통’ 즉, 전시의 두 번째 키워드에서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전시의 두 번째 파트인 ‘소통’은 매체 예술이 강조한 차별적 감상의 역사를 되돌아보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번 비엔날레는 ‘상호작용성’으로 대변되는 매체 예술의 강한 소통적 기능이 그 전개 당시의 적극적인 모습에서 다소 정착된 안정된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날로그를 닮으려는 디지털처럼, 새로운 매체들은 자신들의 존재의 흔적을 소멸시키고 있는 것이다.

Christa Sommerer & Laurent Mignonneau, <Life Writer>, Interactive Installation, 2006


자가 증식하는 인공 지능적 디지털 생태계의 창조자들인 ‘크리스트 좀머러’와 ‘로랑 미뇨뇨’의 <생명을 쓰는 타자기 Life Writer>는 원숙기에 접어든 그들의 여유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과거 다소 심오한 디지털 인공 생명체의 증식에 관심이 많았던 그들은 이번 전시에서 상징적인 아날로그 입력 장치인 타자기를 인터페이스로 활용한 작업을 선보이는데, 관람자들의 타자기를 누르는 행위로부터 입력된 텍스트들은 각각 단어의 의미가 지닌 유전적 정보로서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된다. 이렇게 탄생한 생명체들은 텍스트의 찌꺼기(관람자의 입력에 의해 생성된 텍스트이지만, 통과(enter)되지 못한 것들)들을 식량으로 증식한다. 관람자들에 입력에 의해 창조된 이러한 생명체들은 타자기에 끼워진 아날로그 종이 위에서 텍스트를 해체하는 동시에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줌으로서 유기체적인 구성을 보여준다. 
 

Christopher Thomas Allen, <Dialogue>, Mixed Media Installation, 2008

‘크리스토퍼 토마스 알렌’의 <대화 Dialogue>는 소통이라는 주제를 보다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작품이다. 사무실과 같은 테이블과 컴퓨터가 놓여있는 장소에서 두 컴퓨터간의 대화가 진행된다. 그러나 이들의 대화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문자와 구술의 대화가 아닌, 이미지와 하이퍼텍스트의 대화이다. 마치 현재의 소통이 선형적 텍스트의 시대를 넘어, 이미지와 영상 문화 속에서의 소통으로 변해가는 것을 상징하듯, 작품 속에서의 대화는 단어와 그에 부합하는 이미지, 그리고 그로부터 발생하는 새로운 소통의 방법들이 제시된다. 토마스 알렌의 작품이 소통의 방식에 관한 다소 직접적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면, ‘마르쿠스 한센’의 <타인의 감정을 느끼다 No.3 Other People's Feelings are also My Own No.3>는 작가 자신이 타인들과의 감정 교류를 통해 다양한 인종과 문화 상황, 언어 등의 차이들을 관통하는 정서적 연대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작가는 다른 사람의 표정을 통해 나타난 감정을 그대로 스스로의 표정으로 나타낸다. 아마도 그들의 감정과 생각, 처해진 상황을 이해하려는 노력들에서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리라. 이러한 과정을 새로운 매체들이 가진 직접적인 효과들을 자제하고 최소한의 기능으로 서로의 차이들과 그러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소통의 모습을 진솔하게 포착한다.

Markus Hansen, <Other people's feelings are also my own No.3>, 2 Channel Video, 5min, 2006


소통 부분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작품은 ‘조이스 힌터딩’과 ‘데이빗 헤인즈’의 <OE 오르곤 에너지 안테나>와 <오럽 사막 1954-55>이다. 이 작품들은 오르곤이라는 생명 에너지를 발견한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인 ‘빌헬름 라이히(Wilhelm Reich)를 위한 두 작품’이라고 명명되어 있는데, 마치 라이히가 발견한 오르곤 에너지가 작품 속에서 노이즈가 가득한 소리와 이미지로서 관람객들에게 전달되는 듯하다. 두 개의 작품은 마치 하나의 작업처럼, 서로의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성적 에너지와 기후학을 설명하는 오르곤 에너지라는 요소가 각 작품에서 청각적 에너지로, 또 다른 작업에서는 시각적 에너지로 변형되는 순간을 재현한다. 관람객들은 도시의 밤 풍경처럼 보이는 이미지 앞에서, 전자기적 노이즈 사운드를 자신들의 행위(설치되어져 있는 바(bar)를 구리선에 접근시키는)에 의해 증폭되는 현상을 경험한다. 
 

Joyce hinterding & David haines, <Two Works for Wilhelm Reich>, Video and Mixed Media Installation, 60min, 2006 


Part III : 시간 (Time)

  전시는 마지막 부분인 ‘시간(time)’ 으로 이어진다. 백남준이라는 작가에 의해 처음 소개된 비디오 아트에 의해 새로운 매체 예술이 ‘시간’이라는 추상적 속성을 담을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후, 매체 예술의 주된 테마에는 항상 시간이라는 요소가 포함되었다. 시간성의 획득은 기존 예술이 지닌 차원의 한계를 확장시키는 역할을 수행하였기 때문이다. 새로운 매체들은 필연적으로 시간의 속성을 체화시켜 과거의 매체들이 가지고 있는 이미지들을 연결하여 새로운 하이퍼 이미지로 창조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당시까지 서사구조를 압축해 전달하던 예술가들에게 있어 도구의 확장을 넘어선 의미를 제공하는 동시에, 새로운 시도들을 가능케 하고 있다. ‘신기운’의 작업 <알람시계 Alarm Clock>는 현대 사회의 상징적 아이템들을 등장시켜, 이들을 기계장치로서 분쇄해버리는 과정을 담은 작품이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자주 사용되는 아이템들(휴대용 게임기, 핸드폰, 알람시계 등)은 분쇄기에 의해 가루로 변해버리게 되는데, 작가는 이러한 과정을 시간의 역순(逆順)으로 되돌려 다시 아이템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장면 또한 제공한다. 여기에서 주목해 볼만한 점은, 선택된 아이템들이 현대 사회에서의 필수적인 아이템이라는 것이다. 우리에게 편리함과 즐거움을 제공하는 각각의 아이템들은 사실, 어느새 우리들을 통제하고 억압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상황을 상징적인 아이템들을 소멸시키고 다시 생성시키는 과정들을 보여줌으로서 일종의 해방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셈이다.

Shin, Kiwoun, <Alarm Clock>, Video, 4min. 12sec, 2006


‘시로 후지’의 작품 <20010218-20060218>은 시간이라는 속성을 담백하게 비디오 작업으로서 보여준다. 작가는 복잡한 시간적 속성을 활용하여 이성적 분석에 의한 감상보다 시간의 경과가 제공하는 순수한 감상적 측면이 어느 순간 보다 큰 예술적 감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작품은 제목처럼 2001년 2월 18일부터 2006년의 같은 날짜까지 5년간의 풍경이 기억을 담고 있는데, 계절의 변화를 비롯하여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는 장면까지 다양한 풍경의 변화된 모습을 조명한다. 관람객들은 낯선 풍경의 기억 속에서 마치 자신의 일기장을 들춰보는 듯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순간에 묘한 여운을 느끼게 된다.

Shiro, Fuji, <20010218-20060218>, Video, 3min. 30sec, 2007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시의 마지막 부분인 ‘시간’에서는 다양한 매체들의 실험적 시도들이 등장한다. 그러나 한가지의 의문점이 떠오른다. 물론 제시된 키워드들은 각 작품의 주제 및 내용적 접근만을 드러내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매체가 지닌 필연적 시간성 이외에 얼마만큼 시간이라는 속성에 관해 접근한 작품들이 있는가라는 것이다. 2008 미디어 비엔날레는 여러 가지 부분에서 과거의 비엔날레 및 현대 예술에서의 매체 예술의 확장을 조명하려 한 점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나 과거 소통이라는 매체성 짙은 주제에서 빈번하게 제기되었던 예술의 진정성 문제를 넘어 보다 진지한 접근을 시도하고 있음은 눈여겨 볼만하다. 그러나 오히려 전시의 마지막 부분인 시간이라는 속성을 다룸에 있어서는 약간 아쉬움이 남는다. 새로운 매체 예술이 제공했던 차원의 벽을 허물었던 쾌거가 단지 하나의 형식상의 이점으로서만 다가오기 때문이다. 매체 예술이 현대 예술의 흐름 속에 하나의 조류로서 파악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확장된 예술 개념으로서 혹은 앞선 물결로서 새로운 매체 예술의 전환과 확장은 마땅히 독립적으로 주목받을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것이 ‘미디어(매체)’로서 특화되어 10년간을 진행해 온 미디어 비엔날레가 측정해야할 조류의 흐름일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