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제임스 터넬(James Turrell) 의 빛과 공간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8. 11. 3. 09:56
사용자 삽입 이미지

제임스 터렐은 말한다. “빛은 사물을 비추지만, 우리는 도처에서 빛을 보면서도 정작 빛 그 자체에는 좀처럼 주목하지 않는다.” 빛은 사물에 반영됨으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이것이 빛인지 아닌지 의심이 들만큼 유약하게 표현하기도 하고, 아주 강하고 위협적으로 나타내기도 하면서 그는 빛의 존재감을 다양한 공간 안에서 우리에게 증명하려 했다.


토탈미술관에서 제임스 터렐의 첫 작품 관람의 시작은 관람을 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듣는 것이다. 첫 번째 방으로 가는 길은 빛이 없는 좁은 골목길이다. 나보다 몇 십초 먼저 도착한 두 관람객을 뒤따라 안내를 해주시는 분의 설명을 들으며 따라 들어갔다. 내 눈으로는 어떠한 것도 볼 수 없고 단지 그분의 목소리를 따라서만 움직이게 되었다. 안내를 해주시는 분이 “오른쪽 벽을 짚으시며 따라들어 오세요. 벽이 두 번 꺽 이는 곳에 앉으실 수 있는 의자가 있습니다. 의자에 앉으셔서 어둠에 눈이 적응이 되시면 돌아다니실 수 있으실 것 입니다. 그럼 좋은 관람 되세요.”
어느 정도의 시간의 흐르자 희미한 형태의 어떤 것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몇 분이 지나자 언뜻 두 타원형의 형태 가운데 직사각형의 무언가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고 얼마가 지나자 이 공간이 어떠한 상황으로 꾸며져 있는지 파악이 되기 시작했다.

직육면체에서 마주보는 두 면에 각각 붙어있는 두 조명이 희미하게 둥근 타원형의 빛을 아래로 쏘고, 그 두면을 이어주는 또 다른 면에 조명에 의해 생긴 것인지 페인트칠이 된 것인지 알 수 없는 직사각형의 푸른 형태가 벽면에 놓여있었다. 이제 슬슬 나는 한 걸음씩 발을 옮기며 그 공간을 관찰하기 시작하였다. 무엇보다 나의 주의를 끌었던 것은 공간의 정면에 보이는 직사각형 이었다. 난 벽을 만지려 손을 뻗었다. 그렇지만 내 손은 그냥 허공에서 허우적댈 수밖에 없었다. 고개를 숙여 아래 위, 좌우를 살피며 한참 동안 이 만질 수 없는 색, 아니 빛의 근원을 찾다 결국 포기하고 그 방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제임스 터렐이 만든 <Tiny Town> 이라는 제목의 이 공간이 이렇게 오랫동안 내 발을 묶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볼 수 없었던 암흑의 공간에서 느껴지는 내 존재의 부재와 긴 시간의 흐름 끝에 찾을 수 있었지만 그 끝을 알 수 없었던 푸른빛의 반영이었다.

토탈미술관 지하층에서 터넬의 마지막 작품 이 다시 내 발길을 잡았다. 작품의 구조는 너무나 간단했다. 벽에 부착된 프로젝터가 마주보는 벽면으로 강렬한 붉은 색의 직사각형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실 이것 또한 창으로 손을 뻗어 닿을 수 없는 허공인지 우선 확인을 해보아야만 했다. 이렇게 보이는 것이 다일까?
이것이 다였다. < Projecction>이라는 제목을 가진 이작품은 그날 본 그의 첫 작품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빛이 어디에서 비춰지고 그 빛이 반영되는 곳이 어디인지 너무나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설마 이게 다 일리는 없지 않은가? 붉은 사각형에 가까이 다가가니 나의 모습이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다 드러났다. 그 자리에 서서 0.3mm볼펜으로 내 실루엣에 따라 그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이 작품이 내게 숨기는 것은 없었다. 그렇지만 오히려 그림자 진 나의 모습을 내가 감추려했었다. 붉은 색이 주는 강렬함은 함부로 다가가선 안 되는 성역과도 같은 힘을 내뿜는 듯 했다. 칼로 자른 듯 한 가장자리의 날카로움이 그 붉은 빛에 힘을 실어 주어 지금의 나는 다다를 수 없는 다른 공간을 마주하는 느낌이 들었다.

그의 작품 앞에서 처음에는 당황스럽고 어리둥절했지만 머지않아 명상적인 분위기에 빠져들기 쉽다. 경이롭고 숭고한 그의 작품은 빛과 공간이라는 꽉 차 있으면서도 텅 빈, 허와 실의 공간으로 가상과 실제,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인식하게 만든다. 독실한 퀘이커교인 작가가의 종교적 신념이 작품에 그대로 드러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관객이 관람을 통해 가질 수 있는 성스러움을 규정지을 수는 없다.


지난 세기 마크 로쓰코 와 바넷 뉴먼이 보여줬던 거룩한 숭고함에, 첨단기술과 결합한 빛과 3차원 공간의 개입, 그리고 관객의 능동적 참여를 더해, 새로운 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가 지금 이 순간 가질 수 있는 명상의 순간들을 그는 선사해 주고 있었다. 제임스 터넬의 작품은 토탈미술관을 비롯하여 오름갤러리와 쉼박물관에서도 볼 수 있다. 나는 아직 오름과 쉼을 가보지 않은 터라 그 두 곳에 있을 그의 작품이 더 없이 기대된다. 터넬의 작품은 꾸밈없이 단순, 명료해 보이지만 작품을 관람하는 과정에서는 짧지 않은 기다림을 필요로 하다. 혹 제임스 터넬의 작품을 감상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면 넉넉한 시간적 여유를 충분히 가지고 가길 바란다.

*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
1943년 미국 로스엔젤레스에서 태어나, 포모나칼리지(Pomona college)에서 심리학을 전공하였다. 화학, 물리학, 천문학, 지리학, 미술사학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였으며, 졸업 후에는 캘리포니아대학과 클레어몬트대학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다. 1969년 [파사데나 미술관]에서의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지난 40년간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 [휘트니 미술관],[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이탈리아의 [판자 디 비우모 컬렉션] 등 세계의 유명한 미술관에서 총 160회 이상의 개인전을 열였으며, 전세계 곳곳의 미술관에 그의 작품이 소장되어 있다.

* 전시정보
전시기간: 2008년 10월 9일 ~ 12월 18일
전시장소: 토탈미술관_오룸갤러리_쉼박물관
             3곳에서 다양한 제임스 터렐의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관람료: 10000원 (한장의 티켓으로 3곳을 자유관람 하실 수 있습니다.)


글. 노운영(홍익대학교 예술학, 99257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