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Aliceview

SICMF (Seoul International Computer Music Festival) 2008 _음악과 테크놀로지의 만남, 도구의 확장을 넘어 아이디어의 확장으로_aliceview

yoo8965 2008. 11. 21. 05:09


SICMF (Seoul International Computer Music Festival) 2008

SICMF(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는 컴퓨터를 통해 전자적 음악의 발전 및 새로운 모색들을 시도하는 국제적인 행사이다. 과거 1994년 서울컴퓨터음악제로 시작하여 2000년부터 국제적인 축제로서 발돋음한 이번 행사는 2008년을 맞아 15주년의 역사를 지닌 행사로서 존재하고 있다. 2008 SICMF는 11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 동안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4일간의 콘서트와,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2번의 세미나, 한가람미술관에서 1회의 컨퍼런스가로 구성되어 개최되었다. 그중 특히 마지막 날인 12일에는 영국의 ‘Shadow Play’라는 단체의 연주로 이뤄졌는데 기존 작곡가들의 곡들을 위주로 수준 높은 연주를 선사하였다. 3일 동안 연주된 24곡은 모두 공모작으로서 선정된 곡들이 연주되었다. 컴퓨터 음악제에서 발표되는 곡들은 크게 세 개의 카테고리로 나눠볼 수 있다. 소리를 녹음해서 편집하거나, 컴퓨터에서 발생되는 소리의 합성으로 만든 [Tape Music], 그리고 음악과 영상의 싱크로 이뤄진 [Audiovisual], 마지막으로 [Live Electronic Music]이 있다. [Live Electronic Music]은 미리 녹음된 테잎소리와 실제로 무대에서 연주되는 음악이 함께 어우러지거나, 연주되는 소리를 마이크를 통해 컴퓨터로 입력해서 미리 프로그래밍한대로 실시간 연주를 하는 것이다. 또한 tape곡을 연주할 때는 암전한 상태로 연주되어서 소리에 보다 더 집중할 수 있게 하였다.

첫 연주회(11월 9일)는 총 8곡이 연주되었다. 그 중 장재호의 <“v efil laicifitra” for audiovisual media>는 유전자의 돌연변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곡한 곡으로 복잡한 공식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그에 비해 결과물은 쉽고 단순하게 보여서 관객들로 하여금 작품에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곡의 제목은 "artificial life v"를 뒤집어서 만든 것이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박태홍의 <"ViPer" for violin, drum set&live electronics>는 대중적인 사운드로 재미있게 들을 수 있었다. 바이올린에 마이크를 대서 전자바이올린 같은 소리로 흥겨운 멜로디를 연주하고, 드럼은 ‘breakbeat’에서 ‘poly rhythm’으로 변화하면서 흥미로운 사운드를 선사하였다. 첫째 날은 전체적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로 이루어져있었다.


두 번째 연주(11월 10일)는 Matrix Duo(고병오, 남상봉)의 피리, 해금, 아쟁, 가야금과 전자음향을 위한 <"Shift No.1">로 시작하였다. 전자음악을 통하여 기존의 예술을 새로운 세계로 'shift'시키고자 노력하는 이 젊은 작곡가들은 한국의 전통악기를 소재로 흔하지 않고 참신한 사운드를 만들어내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였다. 연주자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악기가 낼 수 있는 다양한 테크닉을 찾아서 전자음향과 결합시킨 이 곡은, 최근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는 국악기와 컴퓨터음악의 협업에 밝은 희망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Mark Battier의 <"Audioscan" for audiovisual media>는 개성 있고 감각적인 영상을 만들었지만 그에 비해 음악적인 면에 있어서는 약간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보통 작곡가가 영상과 음악을 함께 작업할 때에, 음악은 수준이 높지만 영상의 미적인 감각을 보완해 줄 기술이나 테크닉이 부족한 경우를 많이 보는데 Mark Battier의 경우는 영상이 음악보다 더 좋았다는 평이 많았다. 6번째 곡은 Pei-Yu Shi의 <"Gedicht vom Wind des Herbstes" for saxophone, piano, percussion &tape>였다. 대만의 젊은 여성 작곡가인 Pei-Yu Shi는 선율이나 형식에 의해 진행되는 고전적인 작품이 아닌 단편적이고 색채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tape에 있는 소리는 거의 녹음해서 만든 소리 같았는데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소리와 잘 어울렸으며 곡이 연주되는 10분가량 긴장하고 집중해서 들을 수 있게끔 만들어 주었다.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들었던 곡 중 하나로 세심하고 개성 있는 자신만의 사운드를 가진, 앞으로의 가능성이 기대되는 작곡가였다. 둘째 날의 마지막 곡인 임종우의 <"Rupture" for string quartet and electro-acoustic>은 현악사중주로 만든 라이브일렉트로닉 곡이었다. 기술을 통해 음악의 가능성을 확장시킨 이 곡은 음악적으로나 기술적인 완성도적인 면으로나 모두 아주 수준 높은 곡이었다. 화려하고 전자음향의 효과가 좋아 관객으로 하여금 곡에 몰입할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는 음악이었다.




세 번째 연주(11월 11일)는 David Bithdll의 <"The President Has His Photograph Taken" for audiovisual media>가 흥미로웠다. 직접 무대에서 작곡가 자신이 라이브 퍼포먼스를 하였는데 무대에 검은 상자를 놓고 그 안에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하였다. 마치 그 카메라의 영상이 프로젝터를 통해 무대에 나오는 것 같았지만 실은 철저하게 계획된 퍼포먼스였다. 뒤에 그 반전이 나오는데 작곡가가 그 상자 안의 카메라에서 나와서 직접 프로젝터에 투사되는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것이다. 철학적인 질문을 관객에게 던져주었던 이 퍼포먼스는 13분 동안 강렬하게 관객에게 몰입의 경험을 선사했다. Yu-Chung Tseng의 <"Birds, Winds, Rains..." for tape>은 작은 요소로 다양한 소리와 흥미로운 음악을 만들었다. 이 사람 역시 대만작곡가였는데 우리와 같은 아시아계 사람으로서 추상적이고 시적이며 은유적인 자신의 음악적 성격을 컴퓨터를 사용하여 현대적이고 흥미로운 소리와 잘 융합시켰다. 문성준의 <"In the great green room...." for tape>은 깔끔하면서도 집중도 있는 곡이었다. 사람의 목소리를 소재로 만든 이 곡은 컴퓨터음악 테크닉을 중심으로 완성도 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은 Joåo Pedro Oliveira의 <"Timshel" for flute, clarinet, violin, cello, piano & tape>이었다. 매년 수준 높은 곡으로 공모를 해, 당선되어 연주를 했던 이 작곡가는 이번 2008년 컴퓨터 음악제에서도 좋은 곡을 들려주었다. 음악제 중 가장 큰 편성이었던 이 곡은 기악음악과 전자음향이 잘 조화가 되었으며, 아주 흥미로운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드디어 음악제 마지막 날(11월 12일), 'Shadow Play'의 연주가 있었다. 클라리넷과 첼로, 피아노의 trio로 구성된 이 영국의 연주자들은 현대음악 중에서도 특히 전자음악을 주요 레퍼토리로 연주한다. 이번 연주에서는 2곡의 창작곡과 6곡의 기존작품을 연주하였는데, Jonathan Harvey, Pierre Boulez, Steve Reich와 같이 한국에서는 듣기 힘들었지만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곡들이 연주되었다. Jonathan Harvey의 <“Advaya(1994) for cello and electrinics”>는 한국초연작으로, 첼로연주자와 샘플러 키보드연주자가 같이 나와서 연주했다. 이 곡은 컴퓨터 기술을 아이디어로 차용해서 만든 곡으로, 물론 기술에 의해 소리도 변형시키기도 했지만 음향합성을 할 때 자연배음을 분석한 후 재배열시키는 기법을 사용하였다. 기악적인 부분을 더 연구하고 발전시키지 않고 기술의 힘만 빌어서 화려한 사운드를 내려는 작곡가가 아니라, 기악적인 면으로도 손색이 없는 곡에 전자음향과 기술이 결합하니 얼마나 큰 시너지를 내는지 볼 수 있는 귀한 곡이었다. Pierre Boulez의 <“Dialogue de l'ombre Double(1985) for clarinet and electronics”>는 현대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불레즈의 곡으로, 제목과 같이 '두 사람의 대화'를 어떻게 전자음악으로 만들었는지 볼 수 있었다. CD로만 이 음악을 접했을 때보다 실제로 연주회장에서 들으니 더욱 곡의 구조에 대해 쉽게 알 수 있었다. 이 곡에서는 실은 심하게 변형된 전자적인 소리는 들어가진 않는다. 클라리넷 소리로만 곡이 진행이 되는데, 연주자가 실제로 연주하는 부분과 미리 녹음된 클라리넷 파트가 번갈아 가면서 연주가 되었다. 특히 미리 녹음된 소리는 멀티채널 스피커들에 의해 분산되어서 공간감을 줄 수 있게 해주었다. 이번 연주에서는 미리 녹음된 tape part가 나올 때는 암전상태가 되었다가 실제 연주가 있을 때는 다시 조명을 켜지는 식으로 이해를 도왔다. '두 사람의 대화'를 가상과 실재의 대화로 볼 수도 있을 것이고 기악음악과 전자(기술)음악의 조화로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Steve Reich의 <“Cello Counterpoint(2006) for cello and tape”>또한 한국초연이었는데, 미니멀 음악의 선구자인 라이히의 이번 곡 또한 미니멀 음악으로 시간에 따른 모티브 발전기법과 전혀 다른, 쉽고 반복적인 하나의 요소를 아주 조금씩 변형하면서 그 엇갈리는 현상을 느끼게 해주는 곡이었다. 'Shadow Play'가 연주한 기존작품들은 모두 전자음향의 효과적인 면이 부각되기 보다는, 실제 악기소리로 거의 작업이 되었다. 다만 기술을 이용한 스튜디오에서의 다양한 경험을 ‘개념화’ 시켜서 실제 기악악기로 연주한 것이다. 오히려 심하게 변형된 전자음향보다 이렇게 전자음악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기악음악으로 작곡한 곡들이 더 진정성 있게 다가온 이유는 무엇일까? 음악적인 연구는 하지 않고 기술의 힘을 빌려서 새로운 소리, 신선한 효과를 흉내 낸 것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기술은 인간에게 많은 선물을 제공하였다. 그것이 예술에 미친 영향 또한 지대하며, 다른 예술에 비해 다소 보수적인 편인 음악가들까지도 기술을 자신의 예술작품을 만드는데 도구로 사용하게끔 해주었다. 기술의 힘을 조금만 빌리면 기존과 다른 색다른 소리를 얻기 쉽다. 하지만 기술을 통해 자신의 음악의 가능성을 확장시키고 새로운 예술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 아니라, 정작 음악적인 내실을 기하는 데에는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단지 기술의 힘을 빌려 화려하고 멋진 겉포장으로 바꾸는 것은 이제 식상하다. 그런 면에서 마지막 날의 'Shadow Play'의 연주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러웠던 점은 ‘Shadow Play'가 우리나라에는 없는 전자음악을 전문적으로 연주하는 단체였다는 것이다. 이번 서울국제컴퓨터음악제는 국제행사이지만, 나라에서 많은 지원을 받는 것도 아니었고 오로지 선생님들과 학생들의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작곡가에게 작곡료를 지불하지도 못하고 연주자들의 pay만 약간 나가는 정도의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한다. 음악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은 당연히 연주자이다. 그들이 더 자발적으로 연주를 기획하고 문화의 다양성과 발전을 위해 힘써주면 좋겠지만 아직 우리나라의 실정으로는 먼 이야기 같다. 최근 기악음악 쪽에서는 창작곡을 위촉해서 연주하는 단체들이 많이 생기고 있어 참 기쁘고 다행으로 생각한다. 곧 컴퓨터음악도 이런 단체가 생기기를, 그리고 더 나아가 ’기악음악‘,’컴퓨터 음악‘이라는 구분이 사라지고 어떤 소재로 작곡을 하던지 만들어진 결과물을 함께 열린 마음으로 감상하는 분위기가 조성이 되면 좋겠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글. 조은희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테크놀로지과 컴퓨터음악작곡 전공)


SICMF 2008 webpage :http://www.computermusic.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