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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문화예술채널 앨리스온에서는 지난 11월, 백남준 아트센터의 초대관장으로 취임한 이영철 관장을 만나보았습니다. 2001년 고(故) 백남준 작가와의 약속으로부터 7년이라는 시간을 경과하여 만들어진 백남준 아트센터는 그 사이의 다양한 논란을 뒤로한채 지난 2008년 10월 8일 개관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1시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백남준 작가의 의미에서부터 아트센터가 오픈하기까지의 험난했던 과정 및 개관 기념전인 <Now Jump!>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들려주신 이영철 관장님께 감사드리며, 인터뷰에서 다루어졌던 내용들을 발췌하여 소개합니다. 



Aliceon : 안녕하세요. 이영철 관장님. 우선, 백남준 아트센터의 개관과 개관기념전의 개최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첫 질문은 역시 백남준 아트센터가 개관하기까지의 과정에 관한 질문입니다. 지난 2003년의 국제현상설계공모를 시작으로 그동안 아트센터 건립을 위한 다양한 단계를 거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도 노출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동안의 과정과 아트센터가 건립되기까지 가장 어려웠던 점에 관하여 질문드리고 싶습니다.

 

이영철 :  백남준 아트센터의 건립은 한국인으로서 20세기 불세출의 아티스트인 백남준의 위업을 잘 보존하고 활용하고자 하는 프로젝트 였습니다. 백남준 선생님은 6.25 이후 34년만에 한국으로 돌아오시기까지 오랜세월 외지에서 성공을 하셨지만, 고단한 세월을 보낸 분입니다. 알면 알수록 대단한 사람이고, 대한민국민 모두가 자부심을 가질만한 아티스트였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에서 당대 최고의 아티스트들과 관계를 형성하고, 비디오아트 분야에서 선구적인 예술가로 자리매김된 백남준 선생님은 살아 생전에는 독일의 국민 예술가 같은 분이셨다고 합니다. 독일 ZKM 같은 기관또한, 백남준 작가의 실험정신이 내재되어 있다고도 볼수 있겠죠. 당시 독일에서 가장 실험적인 예술가들에게 주어지는 상이었던 쿠르트슈비터스 (Kurt Schwitters) 상을 수상하시기도 하셨습니다. 이렇듯,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더 많은 활동과 인정을 받으셨던 백남준 선생님은 한국에 돌아와서 뭍히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에 백남준 아트센터는 그분의 정신을 기리고 보다 실험적인 예술 활동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초기 백남준미술관에서 백남준 아트센터로 이름이 변경된 이유도 미술관이라는 역사적 장소로서의 의미 즉 그분의 활동을 과거 속에 가두는 느낌의 명칭보다는 현재형의 느낌으로 그분의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아트센터로 변경하였습니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60년대 초기 청년 백남준이 무엇을 고민했고, 어떠한 실험적 활동을 진행하고 다른 예술가들과 당시의 시대상을 어떻게 공유하고 성장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갇혀진 텍스트가 아닌, 그분의 정신과 문화유산을 현재화,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그분이 영원히 현재형으로 살고 싶어했으니까, 우리도 그를 죽은 이로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살아있는 아티스트로서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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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on : 백남준 아트센터가 지향하는 ‘매개공간(Mediated Space)'은 미디어아트라는 컨텐츠’를 담는 하나의 틀이 아닌 공간 자체가 미디어가 되어 문화 예술과 인간, 지역과 지역, 장르와 장르를 연결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집니다. 이에 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이영철 : 백남준 아트센터는 역사적 과거 및 기억의 공간을 미래세계로 연결시키는 작용을 하는,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와 그외의 지역을 연결시켜주는 고리의 역할을 하는, 전통과 현대를 잇는 문화적인 매개공간을 지향합니다. 물론, 이러한 말은 누구나 하는 것이지만, 백남준아트센터가 그러한 작업들을 구체적으로 진행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을 국내 국공립 미술관에서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규모있는 비엔날레가 국내에서도 많이 열리고 있지만, 그러한 곳에서 다루는 이슈들을 따르기보다는 늘 연구하고 (무언가 행동을) 저지르는 에너지 공간, 혁신적인 예술 실험의 발전소 등을 자임하고자 합니다. 그것이 백남준 아트센터의 철학이자 미션이고 비젼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Aliceon : 백남준 아트센터 측의 자료를 보면, 이번 개관전인 “백남준 페스티발 - Now Jump”은 백남준백남준을 넘어서는 미래의 예술로의 도약에 관한 부분, 그리고 관념성을 떠난 예술의 실행과 혁신을 강조한 부분에서 그 기획의도를 살펴볼 수 있었는데요. 개관 기념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부분은 어떠한 점이었나요?

 

이영철 :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점은 기본적인 것을 어떻게 가시화하고, 현실화, 활성화하는가 라는 점입니다. 백남준 선생님은 훌륭한 예술가이자 젊은이들에게 꿈을 불어넣어주는 교육자였습니다. 동시에 사상가로서 넓은 인문학적 지식을 지녔던 백남준 선생님의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거장으로서 인지되는 백남준의 모습을 지식과 예술의 전쟁터에서 꽃 피운 교육적 사상 과 철학 등으로 소개하려고 시도하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전시를 만들어가는 방법에서도 내러티브가 있는 구조로 만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백남준 작가의 잘 모르는 초기 이야기들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가 문제였습니다. 어떠한 방식으로 시나리오를 만들어내는가를 고민하여 스탭들과 함께 연구하여 만들어낸 전시가 이번 전시입니다.

 

또한, 3월부터 관장으로 취임했기 때문에 아트센터의 프레임과 페스티벌의 내용을 함께 연동해서 고민했었어야 했습니다. 당시 준비되지 않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여러가지의 어려움이 있었는데요, 텅 빈 공간을 채워넣는 것이 사실 애로사항이 많은 일이었습니다. 특히 60~70년대 청년 백남준의 예술가적 고민을 전시로 조명하려고 하였는데, 이러한 부분을 조명할 작품들이 국내에 많이 없었기 때문에 애로사항이 좀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역적 한계(용인에 위치) 및 국내외의 무관심적인 상황에서 전시를 준비하는 것 또한 고민되는 부분이었습니다. 사실 망설일 시간도 없었지요. 과정 속에서 안되면 다른 대안을 신속하게 찾아 대처하였습니다. 사실 극도로 불안한 작업이었습니다만, 텅빈 집의 공간을 설계해 나간다는 것이 재미있는 부분이기도 했습니다.


 

특이한 점은 영주 부석사, 소수서원, 병산서원 등의 한국의 건축적 조망을 전시장 내에 응용하여 디자인하였던 점입니다. 백남준 선생님이 2001년에 경기도와 미술관을 만들기로 약속하면서 백남준이 오래사는 집으로 명칭을 정하였다고 합니다. 이름에서도 나타나듯이, 백남준 선생님은 굉장히 자유롭고 권위적이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전시장을 만들다보니, 백남준 선생님이 말한 그러한 부분들이 자연스럽게 구성되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전시장 내에 정원이 있는, 통로가 여러곳으로 나 있어 어느곳에서나 만나게 되고, 강제 동선이 없어 지루하지 않고 재미있는 오래 머무르고 싶은 전시공간을 기획하고자 하였습니다. 백남준 선생님의 작업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가 교차하고 전후좌후가 없는 동시다발적인 이미지가 한꺼번에 도래하는 만다라적 시각 풍경을 보여주기 때문에, 전시 공간에서도 이러한 점을 반영하여 접히는 공간을 곳곳에 배치한 점도 재미있는 요소입니다.

 

전시의 이름인 ‘Now Jump’는 많은 고민끝에 나온 제목입니다. ‘바로 지금 점프하라, 뛰어라의 의미인 이 제목은 보다 낳은 세상, 이상향이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 순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바로 행동하라라는 실천적 예술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백남준 아트센터가 그러한 정신이 구현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85~90% 만족하는 전시라고 평가합니다. 아트센터로서 페스티벌로서 모양새가 그래도 잡힌 것 같아 흡족하고 개막을 하고나서는 기분이 좀 홀가분해 졌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할일이 너무 많습니다.

 

 

Aliceon : 백남준 아트센터는 다른 여타의 미술관 및 센터보다도 다양한 역할들과 기능들을 요구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이영철 : 우선, 백남준 아트센터에 오시는 분들이 행복해하고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백남준 미술관은 시공간적 매개 역할을 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국제적인 관계는 백남준 아트센터에 있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그러나 국제교류전을 중심으로 전시들을 기획하는데에 있어 예산 부분의 문제점이 있습니다. 국내의 상황 또한 그리 좋지 못하구요. 어떤 부분에서는 국내에서 백남준 작가의 의미를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입니. 그러나 근대적 국가 이데올로기적 관념 혹은 지역적 정체성보다는 백남준 작가가 그러했듯, 국제적으로 열려있는 자세, 노마드적 자세의 견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Aliceon : 
백남준 아트센터는 개관과 함께, 센터 건립과 개관기념전에 관한 호평과 더불어, 그 운영 부분에 대한 우려 내지는 비판도 함께 받고 있습니다. 특히나 지역적 한계 등에 의해서 아트센터의 운영 수입에 관한 걱정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이에 관한 아트센터 측의 입장이 궁금합니다.

 

이영철 : 국내의 전시 행정이 좀 더 거시적 관점과 근거있고 뿌리있는 야심을 가지고 진행되었음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모든 것에 평등하게 분배를 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문화적 행정에 있어 보다 발전적인 행정마인드. 문화예술마인드가 필요합니다. 또한 한국 사회가 지닌 정체성 문제도 있지만, 정직성 문제가 더욱 중요합니다. 문화예술행정에 있어 정직성을 바탕으로 기본이 중시되는 예술 행정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백남준 아트센터는 그러한 최전선에 위치할 것입니다.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 아트센터는 넓은 바다를 향해 항해를 시작해야 합니다. 출항 이후, 조난을 당하거나 어려움에 처할 수 있을 것이고, 암초도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계속 더 큰 바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많은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겠지요.


 

 


Aliceon : 한국 미디어아트의 진행 및 발전에 있어 백남준 아트센터의 역할과 기능에 관한 부분은 역시나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에 관한 관장님과 아트센터 측의 특별한 계획이 있다면 어떠한 것이 있을까요? (특히나 포스트 백남준이라 할 수 있는 국내의 젊은 미디어아티스트들에 관한 지원 등의 계획이 있으신가요?)

 


이영철 :
포스트 백남준백남준 이후라기보다는 백남준과 함께 시작하고 그의 고민과 유산을 끊임없이 재해석해야하는 문제로서 굉장히 중요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 문제는 사실 한국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세계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백남준 선생님의 사후에 그의 의미와 발자취를 조명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프랑스가 마르셀 뒤샹이라는 작가를 만들어내었듯이, 어쩌면 이러한 부분은 한국의 문화예술 행정의 방향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백나준 아트센터라는 하나의 기관이 만들어졌으니,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국내의 경우, 네트워크가 굉장히 어려운 정서를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도 이제 세계를 경영한다는 생각을 해야합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에너지가 아직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백남준 선생님은 그러한 부분에서 예외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분의 무한한 긍정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할 것입니다. 한국이 보다 문화적 성장을 하려면, 백남준의 메시지 의미 가치등을 국민들이 공유해야 합니다. 2,3백남준을 올림픽의 메달리스트 만들 듯이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기본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재직하는 동안 옳다고 믿는 바대로 밀고나갈 것입니다. 열심히 하는 것밖에 없겠죠. 그리고 이러한 활동들에 대한 기록과 관심이 필요합니다. 개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역시나 그 이후가 중요하겠죠. 많은 관심과 성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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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행 및 정리 : 유원준 (앨리스온 디렉터)
영상 촬영 및 편집 : 류임상(앨리스온 아트디렉터)
사진 촬영 및 편집 : 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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