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관련 서적

만화의 이해_스콧 맥클라우드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1. 7. 01:01



만화, 속 들여다보기

만화는 당신에게 어떠한 의미냐는 질문에 단지 시간 때우기용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렇게 쉽게 말하기에는 ‘만화’라는 존재가 그렇게 쉽지 않다는 사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공감하는 부분일 것이다. 만화는 대체 무엇일까? 인쇄매체가 차츰 사라져가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만화는 그 모양을 바꿔가면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만화를 영화와 사진에 이어 제 9의 예술이라고 명명하며 그 예술성에 대해 인정하기 시작했지만,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존재인 만화에 대해서 분석적으로 접근하려는 시도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만화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의 자체가 빈약한 상황이지만, 만화가인 스콧 맥클라우드가 ‘만화’를 통해 ‘만화’를 분석한 이 책 ‘만화의 이해’는 만화 자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전반적인 매체 자체에 대한 논의에도 단순하지만 체계적인 접근으로 만화의 매체적인 특성에 대한 논의 가운데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맥클라우드는 만화를 ‘연속예술’로 정의하고, 만화의 기원과 어휘, 구성 등의 세부적인 분석을 통해 만화의 속성을 파악하고자 한다. 컷과 컷 사이의 빈 공간은 보는 이로 하여금 완결성 연상을 통해 텍스트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요소이며, 실사를 얼마만큼 생략하고 추상화해서 이미지를 구성하는지에 따라 몰입의 정도를 조절하는 것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만화를 지배하는 것은 개입의 여지를 풍부하게 제공하는 모호함이며 이는 시간의 생략과 이미지에서의 생략(추상화)을 통해 표현된다. 생략의 미학을 추구하는 만화는 완벽한 재현보다는 오히려 적절히 생략하고 불필요한, 몰입을 방해하는 부분들을 들어냄으로써 이야기를 끌고 나간다. 완벽하게 다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생략의 과정을 통해 조절된 구성을 통해 모호함을 남기고, 이 모호함은 전적으로 보는 이의 뇌구조 속에서 재구성됨으로써 몰입을 선사한다. 보는 이는 모호함을 통해 강력하게 개입해 의미를 완성시키는 존재가 된다. 만화의 높은 흡인력은 바로 여기서 발생한다. 컷과 컷 사이의 ‘홈통’(빈 공간)을 통해 보는 이는 텍스트 속의 시간에 개입할 수 있다. 또한 만화는 영리하게 인간의 자기애적 욕구를 생략되고 추상화 된 이미지를 통해 채워간다. 지나치게 추상화 된 ‘문자’가 제공할 수 없는 적당히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일정한 구속력과 자유도를 동시에 만족시킨다.

만화의 이해을 읽다보면 만화의 시간성에 대해 깊게 생각하게 된다. 맥클라우드는 만화의 이해 전체를 아울러 만화의 주어지는 시간성이 아닌 개별적 시간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략’에 의해 만화의 시간성은 보는 이에 의해 조절된다. 칸과 칸의 간격사이에서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의 시간보다도 더 자율적인 시간성을 갖는다. 사이와 사이를 읽어내는 소통의 장으로 남겨둔다. 이러한 ‘사이’의 소통의 장이 만화의 시간성을 무한대로 나아가게 한다. 한사람, 한사람에게, 장면과 장면을 넘어서서 사이와 사이를 만나는 각각의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개별의 시간성이다.

만화는 절대적인 어떠한 형태나 형식을 강요하지 않으며, 열려있는 것으로서, 변화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어떠한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상대적인 존재로서의 특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격 때문에 사실 만화는 강한 소비적 성향을 가진다. 주변적이고, 미시적인, 밀접한 소통의 관계를 형성하는 만화는 쉽게 생성되고 쉽게 사라질 수 있다. 만화라는 존재 자체는 그 존재감이 거대할 수 있지만,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만화 작품은 영구적인 힘을 가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 듯하다. 사실 이 문제에서 짚고 넘어갈 문제는 만화에 있어서의 발전과 가치의 문제가 된다. 맥클루드는 만화를 ‘물론, 예술’이라고 말했다. 만화가 예술이라는 관점으로 넘어가면 만화의 가치문제에 있어서 좀 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실험적이고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만화를 진정한 가치가 있는 만화라고 할 것인가 아니면 대중적이고 익숙한 형태의 만화를 가치 있다고 할 것인가. 만화를 예술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과 소비경향의 매체 특성의 만화라는 점에서 만화를 판단하는 잣대는 ‘만화의 이해’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제 만화는 종이를 떠나고 있다. 디지털 문화의 급물살을 타고 매질을 바꿔 종이에서 구현하던 세계를 반복하거나 혹은 종이에서 구현하지 못했던 세계를 디지털 테크놀로지를 통해 구현한다. 그러나 여기서 다시 우리는 질문을 시작해야 한다. ‘만화의 이해’는 우리에게 만화에 대한 이론적 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큰 영향력을 미쳤지만, 이후에 이렇다 할 만화의 세계는 아직 불투명한 실정이다. 맥클라우드는 이 다음의 저작 ‘만화의 미래’에서 다양한 가능성과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만화의 미래는 쉽게 잡히지 않는다. 좀 더 다양한 분석이 필요함에도 벌써 만화에 대한 논의가 식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만화의 이해’는 만화에 대한 질문들을 해결해 주었지만, 우리에겐 여전히 만화에 대한 너무 많은 질문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맥클라우드가 강조하듯이 ‘만화의 이해’는 만화의 이해를 위한 첫 발걸음이기 때문이다.

<목차>

들어가며
기록을 정정하기
만화의 어휘
홈통 속에 흐르는 피
시간 틀
선 속의 생명
보여주기와 말하기
여섯 단계
색채에 관하여
종합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