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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진을 위한 질문 : From Analogue to Digital _aliceview

yoo8965 2009. 1. 5. 21:31


Intro


과거의 은염 사진에 의해서 인화지에 기록된 아날로그적 사진 이미지들은 현대에 이르러서 그 과정에서의 방법과 절차, 그리고 근본적인 부분에서까지 디지털적 프로세스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상황의 우선적인 이유로는 디지털 매체의 발달과 확산이 그 첫 번째로 꼽히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매체의 변환에 따른 사람들의 근본 의식의 변화와 그와 동반하는 필요조건들의 이동에 있을 것이다. 디지털 사진이라는 새로운 매체 역시 이러한 시대에 따른 매체의 발달 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 하며, 또한 사진의 기술적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또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벤야민이 언급한대로 예술의 경우, 그 예술에 처해있는 환경에서의 기술 생산의 성격에 따라 변화한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현대 예술의 한 부분으로서의 디지털 사진을 위해 우리가 먼저 이해해야 하는 부분이 현재의 기술 생산적 환경일 것이리라. 그렇다면, 매체로서의 사진이 현재의 시점에서 담아야 할 예술적 실체는 무엇인가.



매체로서의 사진, 그 발생과 발달

매체란 어떤 작용을 다른 곳으로 전하는 구실을 하는 물체이다. 어떤 작용이 발생했을 때 그 작용이 다른 곳으로 전해지기 위해서는 그 작용 자체의 효과나 영향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다른 매개체가 되는 물질이 필요한 것이다. 이에 그러한 구실을 하는 것들을 모두 통칭하여 매체라고 부르며 우리는 그러한 매체 속에서 살고 있다. 그렇다면 사진은 어떤 작용을 전달하는 매체일까? 이에 사진의 역사를 살펴보며 처음 사진이란 매체가 발생하였을 때의 그 의미와 역할이 어떻게 발전하고 변화해 왔는지 살펴보자.

사진의 역사는 L.J.M.다게르(1787∼1851)에 의해 발명된 은판사진(銀版:daguerreotype)이 프랑스의 과학 아카데미에서 1839년 8월 19일 정식으로 발명품으로서 인정받고 공포된 후, 맨 처음에 찍은 풍경사진들에서 시작된다. 다게르는 파리에서 디오라마(반투명상의 캔버스에 풍경화를 그리고, 이에 반사광선이나 투명광선을 써서 변화시키면서 보여주는 것)의 원화(原畵) 화가로서, 카메라 암상자(暗箱子)를 쓰던 때에, 그 화상을 기계적으로 정착시키려는 의도에서 연구를 시작하였다. 1829년 같은 의도로 연구에 착수한 프랑스의 J.N.니엡스와 공동으로 연구하기로 10년의 계약을 맺어 니엡스가 발명한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를 다시 발전시켜 1837년 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이라는 독자적인 사진 현상 방법을 발명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식염의 포화용액에 의한 현상법이며 니엡스가 죽은 뒤에 발명된 것이었다. 그러나 얼마 후에 초상사진(肖像寫眞:인물사진)이 획기적으로 유행하였다. 이는 51년 영국의 F.S.아처(1813∼57)에 의해 개발된 습판사진술(collodion process) 때문이었다. 이것은 다게르가 발명한 사진술이나 W.탈봇의 종이인화법(talbotype)보다 노출시간이 훨씬 단축되었으며 또한 음화(陰畵)에서 양화(陽畵)로 인화하는 과정도 간략하게 되어 사진표현상 커다란 변화를 가져온 발명이었다. 이미 은판사진이나 종이인화법에 의한 초상사진의 수요가 증가하고 있었으나 습판 사진술의 출현으로 더한층 유행을 자극하여 1850년대에는 그 정점에 이르렀다. 이렇게 사진이 널리 보급되고 확산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산업혁명 이후 중산계층의 증가로 인한 초상화에 대한 수요의 급증이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진 기술이 급격히 진보하였고 그 결과 사진적 가능성이 확장되었다. 사진 기술은‘다게레오타입(daguerreotype)’, ‘칼로타입(calotype or Collodion)'을 거쳐 1871년 영국인 리처드 리치 메독스(Richard Leach Maddox) 박사가 젤라틴 은 브로마이드 감광층(Light silver bromide laters)을 발견함으로써 오늘날의 프로세스로서 이어지게 된다. 19세기의 사진은 그 기술적 수요에서 20세기의 사진과 구별되게 되는데, 이것은 각 사진이 가지고 있던 특성들에 기인한다. 다게르(Daguerre)와 니엡스(Nièpce)뿐만 아니라 적어도 20여명의 사람들이 사진술의 발전을 위해 제각기 작업을 해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보아, 비록 19세기에 어느 정도 사진술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있었다 하더라도 거기에 상응하는 대중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다. 사진은 회화의 합리적인 한 형태로 간주되었다. 물론 19세기에 창조적인 사진 분야에서 몇몇 뛰어난 작가가 있기는 했지만, 사진적 이미지 고유의 특성은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충분하게 평가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사진의 매체적인 작용은 비록 후대에는 그 작용과 범위가 변화하게 되지만, 초기에는 회화의 대체적인 의미로서 한정되었다고 생각될 수 있다. 회화는 오랫동안 사진의 원본 개념의 바탕이 되어왔다. 화가들의 작품과 비슷한 결과를 얻고자 하는 사진가들의 노력은 세기가 바뀌고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될 때까지 여전히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사진의 독자적인 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노력 또한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매체로서의 충분한 발전은 1918년 이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가능해졌다.


사진이 가지는 의미와 그 특성

톨벗은 사진을 16세기 이탈리아인이 이름붙인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 '어두운 작은 방‘)속의 그림의 확장이라고 생각하였다. 사람들은 어두운 방의 벽에 비치는 움직이는 상(像)을 보는 것을 즐기기 시작하였다. 바깥에 태양이 있고, 한쪽 벽에 작은 구멍이 뚫려 있으면 외계(外界)의 상이 그 반대쪽 벽에 나타난다. 이러한 외계의 상을 잡아내려는 노력이 사진 기법의 발달로 이어진 것이다. 이러한 부분에서 사진의 기초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순간의 포착이다. 순간이라는 것은 시간적인 측면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로서, 사진이 단순히 있는 그대로의 사실의 재현을 넘어서서 인간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시간적인 매개체로서의 역할까지 확장될 수 있음을 시사하는 말이다. 초기의 사진은 이러한 의미가 포함되지 않았다. 이미지가 빛에 의해 상을 맺기까지의 시간이 과거 초기의 사진에는 현대의 사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이 부과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초상화의 대용으로서 인기가 높았던 사진은 이러한 사항으로 인해 피사체가 되는 물체가 일정시간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포착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초상 사진의 경우 모델이 되는 인물이 계속 같은 포즈로 고정되어 있어야 하는 웃지못할 헤프닝도 많았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점에서도 사진이 가지고 있는 시간적인 측면은, 비록 후대의 사진이 가진 시간적 개념과는 다르지만, 여전히 존재하는데, 오클릭은 “이러한 사진이 지니는 단순성이 마치 잘 그려진 소묘나 초상화처럼 뒷날의 사진들보다 보는 사람들에게 훨씬 직접적이고 오래 가는 감동을 줄 수 있는데, 그 주요 원인은 모델을 오랫동안 부동상태로 있게 하지 않으면 안되었던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그 사진이 얻게 된 표현의 종합에 있다.”고 말하였다. 또 이러한 촬영방법은 모델들을 순간에서 벗어나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속으로 들어가도록 하였다.

또 다른 사진이 가지고 있는 기능적 의미는 초창기 사진 기술의 발달을 가져다 준 사실 그대로의 재현에 있다. 사진은 위에서 언급하였듯이 초상화의 대체물로서 인기를 얻었고, 아뜨제(Atget)에 와서는 1900년경의 사람이 보이지 않는 파리의 거리를 포착하여 역사적 증거물로서의 기능을 사람들에게 인식시키게 되었다. 이러한 사진의 충실한 재현적 기능은 일반 대중들에게도 비싼 초상화를 대신할 신매체로서 환영받게 되었고, 사진이 점점 더 발전함에 따라 더 많은 분야에서의 ‘사실’에 대한 증거물로서, 아니 사실 그 자체로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관람객들과 사진사들의 암묵적인 동의도 디지털 사진에 와서는 흔들리게 된다. 현대 과학의 총아로써 신기술과 예술의 결합체인 디지털 사진의 등장은 기존의 사진 이미지와 표면상 구별이 힘들지만, 쉽게 조작되고 수정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존의 사진에 관한 사고방식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

아날로그는 ‘닮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어의 ‘아날로기아(analogia)’에서 유래된 말로서 어떤 수치(數値)를 길이나 각도 또는 전류 등의 연속된 물리량으로 나타낸 것을 말한다. 아날로그적 사진이란 것은 전통적인 기법의 은염 사진을 일컬어 말하는 것으로서, 디지털 사진의 보급과 함께 디지털 이전의 방법적인 개념으로서 사용하게 되었다. 전통적인 사진 작업은 할로겐화은 결정체가 빛과 반응할 때 산화되어 화상을 만들어 새로운 결정체로 변형되는 화학적 과정을 말한다. 빛이 카메라의 렌즈를 통해서 필름면에 상을 맺게 되는데, 컬러 필름은 보통 할로겐화 된 은입자를 포함하는 여러 개의 빛에 감응하는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빛에 노출되면 충전된 전자가 할로겐화 된 은으로부터 변하게 되고 빛에 노출됨으로써 할로겐 이온이 이동하게 된다. 결국은 양극으로 충전되었던 은이온들이 금속화된 은으로 덩어리를 형성하게 되고 이러한 입자들의 변화는 네가티브(negative)를 이루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필름에 맺힌 상은 현상과 인화라는 과정을 거쳐 현존의 이미지가 된다.

아날로그 사진과 디지털 사진의 개념을 비교해보면 위에서 언급한 아날로그적인 특성을 디지털은 0과 1이라는 이진법적인 체계를 기초로 하여 정보화 시킨다. 아날로그의 정보 체계가 10진법을 기초로 한 기반이라면 디지털적인 체계는 모든 것을 두 가지의 상황으로 나누어 처리한다. 즉 0에서 9까지의 숫자를 사용하는 십진법과는 달리 이진법은 0에서 시작하여 1에서 끝이 난다. ‘2’라는 개념을 이진법으로 표시하기 위해서는 1,0이라는 두개의 숫자를 사용하여 10이라고 표시하게 된다. 이러한 이진법적인 체계는 숫자가 더욱 길게 배열되어 오히려 비경제적인 체계인 듯 싶지만, 수초에 많은 분량을 계산할 수 있는 기계들에게 있어서는 더할나위 없이 적합한 정보 체계인 것이다. 인간의 모든 지식과 정보를 숫자화 된 코드체계로 전환시키는 디지털은 인간의 감각체계를 중심으로 분화, 발전해온 매스 미디어를 복합 매체로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사진의 경우에도 아날로그 방식이 디지털 정보로서 전환되기 위해서는 이미지를 픽셀이라는 그리드의 수치로서 잘게 분화된 화상 요소(picture element)로 쪼갠 후에 각 픽셀에 해당되는 위치와 밝기를 표시하는 숫자로 표시해야 한다. 컬러 화상의 경우에는 각각의 픽셀을 세 가지의 색 명암도에 따라 세 가지의 숫자로 구분한다. 수학적 공식(아라비아 숫자 연산법)을 사용해서 컴퓨터는 이러한 점들을 조작한다. 컴퓨터 모니터에 화상이 아타난 경우를 제외하고는 디지털 사진은 아날로그 환경으로 전환되기 전가지 수학적 환경에서 추상적인 형태로 남아 있게 된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는 그 처리의 용이함 이외에도 아날로그 방식에 비해 여러 가지의 장점을 가진다. 디지털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히는 정보의 전송과 편집, 복사등을 아무런 질적 저하없이 수행할 수 있다는 점은 이전의 아날로그적인 방식에 비해 많은 부분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가령 보도 사진의 경우, 이전의 아날로그적인 방식에서 촬영된 사진이 신문으로 편집되기까지에는 현상과 인화의 과정을 거쳐 그 결과물이 신문사로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있었지만, 디지털 사진의 경우 찍은 직후 온라인을 통해서 보낸 화상의 정보값을 신문사에 있는 컴퓨터가 읽어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또한 아날로그 방식의 유동적이고 복잡한 구조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질적 저하가 나타나게 되지만, 디지털 방식의 경우 정해진 정보값의 변동이 있지 않는 한, 원래의 것에서의 질적 저하는 있을 수가 없다. 또한 이전의 아날로그적 사진에 존재했었던 현상 과정에 의한 필수 불가결한 환경 오염적인 사항은 디지털 사진에 와서는 더 이상 걱정할만한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매체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사고과정

인류의 역사는 과학기술의 발전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며, 특히 근대 이후의 과학 기술은 사회적 발전의 원동력이 되어 가고 있다. 에르네스트 만델(Ernest Mandel)은 이러한 상황을 자본주의의 발생 이후 과학기술에 따라 네 번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었음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는 인류의 사회발달 단계를 증기기관의 발명에 따른 수동적 생산에서 기계적 생산으로, 또 전기 및 내연기관 기계생산에서 마지막으로 전자 및 핵동력 기관의 기계생산을 통해 발전해 왔다고 분석한다. 이와 같이 각 시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그 시대의 테크놀로지에 따라 인간의 사유 방식과 관념세계에 대한 인식까지도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맥루한은 인류의 역사란 인간의 기능과 역할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나 기술, 즉 매체의 발달사라고 말한다. 사람은 감각을 확장하기 위해 미디어를 창조해 왔고, 그런 미디어는 인간의 감각과 더불어 작용하면서 상호 영향을 미치게 된다. 곧 새로운 환경이 나타나면 사람의 감각에도 새로운 균형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감각은 제각기 사용될 수 있는 양이 한정되어서 작용을 미치는 미디어가 달라지면 감각의 균형도 변한다고 한다. 즉 맥루한은 문제가 되는 것은 매체가 전달하는 내용이지 매체 자체는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라는 종래의 이론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매스미디어의 내용이란 그것을 전달하는 매체의 테크놀로지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으며 사실상 사람이나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그 내용이 아니라 그 매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기존의 아날로그적인 방식이 디지털적인 방식으로 변화해가는 것을 이러한 맥루한의 이론에 따라 테크놀로지의 발달에 따른 미디어의 변화로 인식하고, 또한 그러한 미디어의 변화에 의해 이전의 아날로그 적인 방식으로 사고하던 사람들이 보다 진보된 디지털적인 사고 체계로 바뀌어가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매체의 변화에 따른 인간의 사고방식의 변화는 플루서에 이르러서 더욱 구체화 된다. 플루서의 경우에는 문화사를 세 가지 단계로 시대 구분 하는데, 각각의 시대는 어떤 특정의 상징 유형에 따라 특징 지워지고 있다. “전역사적 의식차원은 형상[그림] 코드 속에서 표현되고, 역사적 의식차원은 알파벳코드 속에서, 그리고 새로운 [탈역사적] 의식차원은 디지털 코드 속에서 표현된다.”고 한다. 고대의 그림들은 구체적이지만, 그것들은 인간의 의식을 어떤 마술적 ․ 신화적 사고의 닫혀진 테두리 속으로 묶어두고 있다. 문자와 문자의 선형적 ․ 논리적 사고는 이러한 족쇄를 부수고 인간의 의식을 해방시키고 있지만, 그것들도 역시 인간의 의식을 개념과 숫자라는 고도의 추상적인 형태로 억압하였다. 새로운 합성적 그림들(기술적 영상들)은 플루서에 의하면 또 다시 구체화되는 경향으로 나아가고 있지만, 이것은 어떤 이차적인 인공적 형상이다. 왜냐하면 새로운 영상들은 전통적인 그림들처럼 단순히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로부터 튀어나오는 것이고 따라서 프로그램 언어라는 형태의 문자를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영상들, 즉 화면들 위에서 소리를 내는 이러한 역사(이야기)들은 낡은 그림들과 같은 영상들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평면이 아니라, 점들로 조합되어 있는 모자이크들이다. 우리는 따라서 더 이상 형상적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또한 더 이상 선형적으로도 사고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는 점단위로 사고한다. 플루서의 디지털 코드 속에서의 사고의 변환은 이전의 문자 중심의 사회에서의 생활 패턴이 디지털 코드로 변화되어가는 현재의 삶 속에서 증명되고 있다. 현재의 우리의 삶 속에서의 정보 교류는 점차 문자적으로 되어 있는 미디어보다는 이미지로 구성된 미디어의 형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이미지의 홍수’라는 말을 흔히 사용하고 있지만, 그것이 우리 삶 자체를 이루고 있고, 규정하고 있는 과정 속에 있다는 사실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점차 우리의 사고방식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변화는 0과 1이라는 정보로 구성된 디지털 이미지로 뒤덮혀 있는 세계 속에서 파악되기가 쉽지 않다.


디지털 매체로서의 사진이 주는 의미

지금까지 매체로서의 사진의 발생과 발달, 그리고 진보하고 있는 테크놀로지에 따라 변화되어 가는 매체와 그에 따른 사고방식의 변화에 관하여 살펴보았다. 디지털적인 사고체계는 기존의 아날로그적인 사고방식을 점차 소멸시켜 가고 있다. 사진이라는 매체에서 보자면 지금까지의 은염 사진이 담당하고 있던 역할을 상당부분 디지털 사진이 대체하고 있으며, 앞으로 이러한 추세는 점점 더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에 따른 사진이 가지고 있는 표현력의 범위도 점차 넓어지게 될 것이다. 기존의 사진이 가지고 있던 재현의 의미는 약화되고, 점차 사진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으로의 인식이 사라져 가겠지만, 이전의 방식에서의 제한되어 있던 표현 범위의 매체에 발달에 따른 확장은 보다 더 표현의 확장을 바라는 이들에게 더 좋은 도구로서 쓰이게 될 것이다. 지금가지의 사진이 보여준 ‘재현’은 재현된 ‘대상’과의 분명한 관계를 토대로 주어졌지만, 컴퓨터의 활용은 재현을 다른 지위에 위치시킨다. 이제 사진은 대상의 존재 여부와 상관없이 수치를 통해 조합되고 조작됨으로써 실재하는 대상 없이도 재현이 가능해졌다. 이러한 사진의 변화는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손쉽게 이미지를 생산하는 도구적 역할을 하게 되어 기존의 생산자 - 소비자의 관계 또한 모호해지는 상황이다. 예술가들의 경우 사진을 통한 예술창작행위 자체의 본질적 문제에 마주하게 된다. 과거로부터 사진의 발명은 예술가들의 입장을 상당부분 바꾸어놓았고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사진이 지닌 정체성 또한 변화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디지털 환경에서의 사진이 추구해야할 예술적 가치는 도대체 무엇인가.



*** 헬리오그래피(heliography)

1817년경 프랑스의 조셉 니세포르 니엡스가 발명한 세계 최초의 사진술. 니엡스는 석판 인쇄업을 하다가 기계적인 방법으로 원화를 직접 복사하는 방법을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원화를 직접 복사하는 데 성공한 니엡스는 곧 Camera 옵스쿠라를 사용하여 손의 힘을 빌리지 않고 상을 재현하는 최초의 사진술을 발명하기에 이른다. 제작 방법은 먼저 디펠유로 녹인 유태 미투먼으로 불리던 천연 아스팔트 용액을 납과 주석의 합금판에 바르고 Camera 옵스쿠라에 넣고 노출시킨다. 그리고 라벤더유로 적신 헝겊으로 닦으면 빛이 닿지 않은 부분만이 용해되면서 합금판 위에 상이 나타난다.


references

발터 벤야민, <발터 벤야민의 문예이론>, 반성완 편역, 민음사, 1990
마샬 맥루한, <미디어의 이해>, 박정규 역, 커뮤니케이션 북스, 2001
빌렘 플루서,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 윤종석 역, 문예출판사, 1998
                   <사진의 철학을 위하여>, 윤종석 역
페트르타우스크, <20세기 사진사>, 하종희 역, 눈빛사진선서, 1995
안드레스 화이닝거, <완전한 사진>, 김순민 역, 월간사진출판사, 1993

이영준, <사진, 이상한 예술>, 눈빛사진선서, 1998
김성민 엮음, <디지털 사진>, 눈빛사진기술총서, 1998 

논문
김태현, 전자복제 시대의 사진, 석사학위 청구논문, 홍익대, 1998
배홍관, 디지털에 의한 사진이미지 재현에 관한 연구, 석사학위 청구논문, 홍익대, 1998


*** 사실, 이 글은 2003년초에 작성한 글입니다만,,, 다시한번 디지털 사진에 관한 스스로의 입장정리 겸 정보 공유차원에서 공개합니다. 조만간 현재의 시점에서 디지털 사진에 관한 글을 정리해서 올릴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