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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아트, 의미의 단절이 주는 풍부함 _aliceview

* 본 글은 2017년 2월 5일에 앨리스뷰에 게재된 "왜 우리는 사운드아트를 감상하는가?" 에 대한 코멘트 리뷰입니다. 칼럼의 논지 “우리는 왜 음악을 듣는가?” 라는 질문은 음악적 가치의 본질을 건드리고 있다. 왜냐하면 이는 청중으로 하여금 음악 감상의 목적과 그것을 달성했을 때 얻는 유익함이 무엇인지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음악이 작곡가 혹은 연주가의 단독 행위가 아니라, 청중과의 상호작용임을 감안했을 때 더욱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왜 사운드아트를 감상하는가?”라는 질문은 이보다 더 심오하고 진지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이 장르의 작품들이 주로 서로간의 연관성을 파악하기 힘든 시,청각 자료들을 소재로 삼으며 이를 청중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전개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청중은 자신의 기존 ..

review/Aliceview 2017.04.11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 기록시스템 1800-1900 _book review

“미디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 최근 우리의 현실을 이렇게 적시하는 말이 또 있을까. 이 테제는 키틀러(Friedrich Kittler)의 기술결정론적 주장을 함축하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를 유명하게 만든 말이기도 하다. 미디어는 우리를 반영하고 투과하며 동시에 확장시킨다. 특히 근대에서 현대로의 진입의 문턱에서 기술 미디어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 분야는 찾아보기 힘들다. 키틀러의 "기록시스템 1800-1900"은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의 현실이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시스템의 진화에 어떻게 연동되어 변화되었는지를 분석한다. 키틀러는 기술-미디어에 관한 관심으로부터 독창적인 미디어 학자로의 지위를 확립하지만, 이후 '음악과 수학 I. 헬라스 1:아프로디테'와 ‘음악과 수학 I. 헬라스 1:에로스’를 발표하며..

대형 스크린에서 펼쳐진 작가들의 이야기 : Vision Hall / VH AWARD 2016, part I _aliceview

‘스크린(screen)’은 상이 맺히는 평면이다. 어원상으로 무언가를 숨기거나 분기하는 경계이고, 영화 그 자체를 나타내기도 하며 오늘날은 영화관 화면, 컴퓨터나 스마트폰, 티비의 화면 등 무언가를 표현하는 평면 전체를 포함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접하는 그 어떤 매체보다도 많은 정보와 경험을 전달하는 이 스크린은, 말 그대로 우리 환경을 구성하는 표면 중 하나가 되었다. 사회 안에서 각자가 전하고 싶은 내용을 전달하는 매체로서 스크린은 기술 발달을 드러내는 가장 대표적인 상품이다. 스크린의 발달에 대해 크게 두 가지 방향을 짚어볼 수 있다. 첫번째가 고집적 고해상도이고 두번째가 화면의 크기이다. 우선, 애플이 제시한 고집적 고해상도에 대한 마케팅 용어 ‘레티나(retina)’는 많은 사람들이 접해본 ..

review/Aliceview 2017.02.15

실험실의 피그말리온: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 _book review

실험실의 피그말리온: 바이오 아트, 생명의 예술_book review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조각가 피그말리온(Pygmalion)은 자신의 이상형을 만들기 위해 세상을 멀리한 채 조각에만 몰두했다. 결국, 이상(理想) 그 자체인 조각상을 만들어냈고 자신이 만든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 이를 불쌍히 여긴 아프로디테 여신은 그 조각상을 실제 여인으로 만들어 주었다. 신화 속 조각가뿐 아니라 역사 속 많은 예술가가 피그말리온의 기적을 경험하고 싶어 했다. 더 사실감 있는 그림, 더 생생한 그림을 향한 열망은 가상의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열망이었다. 재현의 예술은 그렇게 성공을 거두는 듯했지만, 환영이라는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생명의 예술을 향한 피그말리온의 기도처럼 예술가들의 집요한 시도가 있었다...

왜 우리는 사운드아트를 감상하는가? _aliceview

사이언톨로지교 종교 집회가 있다면 흡사 사운드 아트 공연장과 비슷하지 않을까? 삐익- 삑 거리는 전자음, 출처불명 소음 덩어리는 외계인과의 교신음 같고 사운드 아티스트를 진지하게 바라보는 감상자들은 집회에 모인 신도들과 비슷해 보인다. 사람들은 이 알 수 없는 소리를 들으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이 소리의 의미를 무엇이라고 해석할까? 기회가 된다면 물어보고 싶다. “이거 왜 들으러 왔어요?” 사운드 아트, 예술감상의 두 가지 태도 예술 감상자들의 태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진다. 첫째는 감정의 고양이다. 반 고흐의 속 붓 터치와 조화로운 색감을 보는 감상자는 직관적으로 변화하는 심적 고양을 느낀다.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대중가요나 팝음악을 감상하면서도 우리는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감성을 느끼..

review/Aliceview 2017.02.05

빛 - 사운드. 효과로서 의미를 전달할 때: 토탈미술관 <Through the listening glass> _ exhibition review

이 전시에는 작품설명 태그가 벽면에 붙어 있지 않다. 작품을 알고 싶으면 팜플렛을 뒤적이는 수고를 해야 한다. 어두컴컴한 전시장에서 개미만한 팜플렛 글씨를 보는 건 최악이다. 작품설명은 고사하고 제목 태그 조차 없어, 팜플렛 안내동선과 내가 지나온 길을 일일이 대조해야, 내가 본 작품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다. 이쯤 되면, 다른 전시에 다 있는 제목태그 하나 붙이는 게 뭐 그렇게 어려운 일이냐고 전시 담당자한테 묻고 싶기까지 하다. 차라리 팜플렛을 덮어버리고 오롯이 작품만을 감상하고자 한 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순전히, 팜플렛을 뒤적이는 것이 귀찮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사실 빛과 사운드라는 이 전시 키워드는 꽤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나에게 예술이 주는 쾌감은 바로 규정된 경계를 허물어 버릴 ..

나쁜 주체들이 꾸미는 미래 기획: 뉴아트행동주의 _book review

오늘날 뉴 미디어를 사용하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어떠한 모습일까? '아방가르드(Avangarde)'는 전위 부대를 가리키는 군사용어에서 온 것이다. 초기의 아방가르드는 순전히 군사적 용어로만 쓰였지만, 프랑스의 사회주의 혁명가인 생 시몽이 아방가르드는 ‘인습적인 권위와 전통에 맞서며 사회의 발전을 앞당기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이후 다양한 분야에서 쓰이게 되었다. 단어의 뜻에서 알 수 있듯이 아방가르드는 남들 보다 앞선 것, 진보를 의미했고 정치적 급진주의를 가리키는 용어로 널리 자리 잡았다. 그러나 아방가르드는 고정된 개념은 아니다. 아방가르드는 당연하게도 시대를 달리하며 표현방식의 변화를 겪어왔다. 글의 서두에서 오늘날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모습을 그려보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뉴아트 행동주의: ..

<워크래프트: 전쟁의 서막>: 두 가지 서사적 양상의 통일 _aliceview

1. 2016년 6월 드디어 영화가 개봉했다. 오랫동안 블리자드가 공을 들였던 만큼 사람들의 기대는 상당히 높았다. 사람들이 기대를 했던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블리자드는 게임도 잘 만들지만, 시네마틱 영상을 잘 뽑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걸작으로 꼽히는 게임영상을 언급하면 언제나 블리자드가 제작한 영상들은 반드시 등장한다. 영화처럼 길지는 않지만 단편영화에 준하는 완성도를 언제나 자랑했다. 그런 곳에서 영화를 제작한다고 했으니 기대치는 높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이후 ‘와우’로 표기)는 게임계의 밀리언셀러다. 전성기 시절은 천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즐겼으며 2014년 기준 누적 사용자 수가 1억을 육박한다. 일정한 인구, (가상의) 영토, 공유하는 문화 등, 과히 국가에 준하는 공동체라..

review/Aliceview 2016.12.07

작품과 유물의 경계에서_<아주 공적인 아주 사적인 : 1989년 이후, 한국현대미술과 사진> _exhibition review

2016년 상반기에는 국립현대미술관과 서울시립미술관이라는 대한민국 미술계의 양대 공기관에서 모두 ‘사진’을 화두로 대규모의 기획전을 개최하였다. 마치 2016년이 ‘사진의 해’인 듯 전시의 주요 흐름이 ‘사진’으로 전개된 것이다. 사진 기획전의 포문을 연 것은 서울시립미술관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한불수교 130주년과 롤랑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을 개최하였다. 이 전시는 서울시립미술관이 직접 ‘기획’한 전시가 아니라, 프랑스 국립조형예술센터와 아키텐지역 현대미술기금이 공동으로 기획한 전시를 수입한 것이다. 이 전시와 더불어 일우스페이스에서는 롤랑 바르트의 관점으로 기획한 을 선보였다. 그러나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기 마련이다. 뚜껑을 열어 보았더니 바르트 탄생 100주년을 기념했다는 에서는 바..

연극 '게임(Game)' : 현실같은 환상 혹은 환상같은 현실, '파타피직스(Pataphysics)' _aliceview

오늘날 디지털 인터페이스는 가상과 현실을 봉합선 없이 중첩시키고 있다. 철학자들은 가상과 현실을 구별하였고 가상 뒤에 숨은 참된 실재를 찾으려고 했다면 디지털 대중은 모든 대상에 대해 판단중지를 수행한다. 즉, 가상을 다른 현실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디지털 시대, 가상과 실재를 융합시키는 “상상적 해결의 과학”시대, 파타피직스(pataphysics) 세계에 살고 있다. 디지털화된 세상은 가상현실(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ugmented reality)이 중첩된 세상으로 상상과 이성, 허구와 사실, 환상과 실재 사이의 단절을 봉합선 없이 이어주기에 파타피직스 세계라는 것이다. (진중권의 『이미지 인문학』(2014) 참조) 영국의 극작가인 마이크 바틀렛(Mice Bartl..

review/Aliceview 2016.0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