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아녜스바르다 회고전, 미디어극장 아이공 개관 3주년 특별 기획전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4. 11:17


부드럽고 포근해 보이는 푸른 의자들이 놓여있다. 의자들 사이를 끄물거리며 차지할 수 있는 아늑하고 자유로운. 살포시 자리에 앉는다. 스크린을 바라보며 멍한 머리를 달랜다. 앞으로 90분 정도의 시간동안은 이곳을 보아야만 한다. 시각은 여러 감각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하지만 시선은 금세 자리를 옮기고 흩어지는 영상들은 피곤하기만 하다. 하지만 촉각은 사라지지 않고 몸의 한 자리 어딘가에 자리 잡아 느슨하면서 분명하게 기억된다. 바라보아야 한다는 시선의 강박에서 조금 여유를 찾는다. 모두가 바라보고 있는 스크린은 무겁게 가라앉는 것이 아니라 어디론가 흘러갈 것만 같다. 암전. 귀여운 고양이. 빛의 알갱이들을 통해 서서히 보이는 영화의 첫 장면에서의 긴 흐름은, 조용한 바람을 타고 관객들의 피부에 스며든다.


처음 <아녜스바르다의 해변>을 보았을 때, 급하지 않게, 충분히 다가올 수 있게, 따뜻한 시선을 듬뿍 받아버려 조금 당황했었다. 아이공에서 회고전을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아직 정체를  수 없는, 하지만 어딘가에 깊이 기억되어버린 영상.




<행복>,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여자>, <방랑자>,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을 보았다. 바르다의 영화는 행복, 사랑, 자유, 존재 등의 무수히 많이 들어 보았지만 정의하기 어렵고, 막연하고 가벼운 희망처럼 떠다니는, 어딘가 현실성이 떨어지는 개념들을 밀도 있게 물어본다. 당신은 행복을/ 사랑을/ 자유를/ 존재를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혹은 이런 추상적인 개념들을 당신은 어떻게 ‘인식’하고 있습니까? 라고. 바르다의 이런 질문이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를 개인의 감정의 변화와 경험을 근거로 조근조근 풀어나가기 때문인데, 이는 결국 영화를 보는 스스로의 인식과 경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어 준다. 개인의 경험과 기억에서 이어지지 않는 이념은 공허하고 헛되이 무너져갈 뿐이다. 스스로의 감정과 인식의 범위를 이해하고, 타인을 이해하려하는 공존의 시도는 바르다의 모든 영화에 걸쳐 공정하고 명확하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그려져, 시선을 스스로의 내면으로 돌리게 한다.


여성주의라는 말이 더 이상 낯설지 않고, 여성의 억압과 몸에 대한 여러 담론들은 아직까지 많은 부분들이 해결되지 않았음에도 지겨워져 간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너무나 오랫동안 되풀이 된 상황이 경험과 감정을 명제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이라는 것이 없는 사회에서 오해와 오해를 거듭한 남성중심적 인식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스스로를 알지 못한 채로 ‘인식한다’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인식되지 못한 스스로의 감정과 경험이 쌓여 갈수록 더욱 알 수 없는 것이 되어가는 혼란스러움이 명확함을 모호함으로 뒤덮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내가 바르다의 영화에서 흥미 있었던 부분 어쩌면 조금씩 빗겨간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행복>에서의 푸른 방이라든지, “그게 당신이 행복한가요?”라는 여성의 목소리는 인상 깊게 남았는데, 행복을 말하는 미묘한 뉘앙스의 톤의 울림이, 직접적으로 ‘나’에게 묻는 듯 했다. 행복이 무엇이냐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복해지고 싶어 한다. 하지만 결혼을 하는 것도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도 남성우월주의자들도 그리 행복해 보이진 않는다. 모두 이미지 놀이를 하듯 뱅글뱅글 돌며, 이미지만을 가지고 사는 것 같다. 영화 <노래하는 여자, 노래하지 않는 영화>에서 나오는 결혼, 임신, 낙태 등의 여러 가지 요소들 보다 시선을 끄는 것은 초반에 나오는 사진들인데, 위태로워 보이는, 상복을 입은 듯한, 흔들리는 듯한, 불안정해 보이는, 그리고 이 이미지들이 존재의 진실이라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는 남성의 죽음. 이라는 부분이었다. 이미지들 속에서 사는 것은 타인의 시선에 비추어 자신을 보는 가장 대표적인 방식일 것이다. 이미지들은 얄팍하지만 굳어진 인식은 굳건하다. <방랑자>에서 ‘모나’의 끊임없이 떠도는 삶과 <라 푸앵트 쿠르트로의 여행> 초반의 시선을 따라 움직이는 긴 호흡의 장면, 서성이는 시선과 기억으로만 존재하는 인물. 이런 부분들이 영화를 재미있게 만들어 준다. 195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의 2009년인 현재에서 약 20년의 시간 간격이 나는 영화들임에도 불구하고, 바르다의 시선의 명확함은 “이제는 정치, 철학, 사회문제 등 한 인간이 감당하기 힘든 큰 주제보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가가 어떤 느낌을 나누고 연대감과 동지애를 확인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라는 바르다의 말처럼, 스스로를 인식하는 방법과 딱딱하게 굳어진 인식의 틀을 흐르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글.독(pcave@nate.com). 1983년에 태어나서 사진과를 졸업하고, 작업을 하고 글을 쓰며 살고 있다.

페미니스트이며 이미지를 만드는 사람이며 끄적끄적 쓴 글을 이미지와 병치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