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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이야기: 고담 핸드북_소피 칼, 폴 오스터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9. 6. 11. 16:46



소피 칼 Sohpie Calle

사진작가, 설치 미술가, 개념미술가. 26세에 처음 사진을 배우게 된 그녀는 1979년 우연히 만난 한 남자의 일상을 카메라로 추적한 작품 <베니스에서의 추적>을 만든다. 1980년 11회 파리 비엔날레에 출품한 작품 <잠자는 사람들>로 유명해진다. 사진과 이미지로 이루어진 소피 칼의 작품들은 '사진-소설' 형식으로 새로운 방식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2004년 프랑스 퐁피두 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었으며, 2007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프랑스관을 대표하는 작가로 선정되었다.



"나는 그에게 허구의 인물을 하나 창조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나는 그녀처럼 되겠다고 했다. 말하자면 폴 오스터에게 나를 가지고 그가 원하는 인물을 만들라고 제안한 것이다. 그리고 최대 1년 동안 나는 그 인물로 살겠다고 했다."  - 소피 칼

"나는 당신에게 이 세상을 다시 만들라고 요구하지는 않겠어요. 다만 나는 당신이 이 세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신보다 당신을 둘러싼 것들에 대하여 더 많은 생각을 했으면 좋겠어요. 적어도 당신이 밖에 있을 때, 이곳에서 저곳으로 길을 걷고 있을 때 만이라도요." - 폴 오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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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에서 우연히 만난 한 남자의 일상을 카메라로 추적하고(보드리야르의 글과 함께 출판된 『베니스에서의 추적Suite vénitienne』,1980), 그녀가 알고 있는 친구들, 혹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들, 얼굴도 전혀 모르는 채 전화로만 부탁한 총 27명의 사람들이 9일간 그녀의 집, 그녀의 침대에 와서 교대로 잠자는 모습을 사진과 함께 기록하고(1980년 파리 비에날레에서 전시된 <잠자는 사람들Les dormeurs>), 호텔의 객실 여종업원으로 직접 일하며 손님이 나간 객실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그곳에 머물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허구로 재구성하고(『호텔L'hôtel』 ,1981), 길에서 우연히 주운 전화번호 수첩의 주인을 추적하기 위해 그 속에 적힌 사람들을 만나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고(『전화번호 수첩Le carnet d'adresses』,1983), 그녀가 직접 사설탐정을 고용해 자신을 미행하도록 해서 그 자료와 사진을 받고(『미행La filature』), 자신의 생일에 손님을 초대하고, 이들이 준 선물들을 10년이 넘는 기간에 걸쳐 모아 작품을 만들고(<생일 의식Le rituel d'anniversaire> ,1993).

이쯤 되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들을 신비한 경험과 기억, 예술로 바꾸어 놓는 이 귀여운 일상의 연금술사, 자신을 포함해 평범한 사람들을 예술가로 만들기 위해 항상 무슨 일인가를 꾸미는 이 여인의 정체가 궁금해질 것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소피 칼은 예술 작업과 관련된 정규 교육을 받은 적이 거의 없이 독학으로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다. 처음 사진을 배운 것도 그녀가 26살 때였다. 폴 오스터는 소피 칼의 삶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를 차용해 <거대한 괴물>에서 마리아 터너라는 인물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재밌게도, 후에 소피 칼은 오스터가 마리아에게 부여한 몇 가지 모습을 직접 따라 한다. 일주일간(일요일은 6일 동안의 모든 색을 모아서) 식기와 음식을 포함해 하루에 한 가지 색으로만 구성된 식사를 사진으로 기록하고(<The Chromatic diet>, 1997), 알파벳의 어떤 한 철자에 철저하게 토대를 두고 하루를 보내기도 한다(<Days under the sign of B, C & W>, 1998). 더 나아가 소피 칼은 오스터에게 그녀를 위해 허구의 인물 하나를 창조해 달라고 부탁하고, 그는 그녀에게 "뉴욕에서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소피 칼이 개인적으로 사용하게 될 교육 입문서 (그녀의 요구에 따른)"를 보내준다. 그 지침서에 따라 지내는 동안 일어난 일들과 그녀의 감상, 사진들이 어우러져 탄생한 책이 바로 『뉴욕 이야기: 고담 핸드북』이다. 그가 요구한 지침에 따라 그녀는 낯선 이들에게 미소 짓고, 이야기를 건네고, 걸인과 노숙자들을 위해 샌드위치나 담배를 항상 준비해 다닌다. 또 뉴욕의 공중전화 부스를 하나 선택해 마치 그녀의 소유인 양, 꽃과 주스, <타임>지, 담배, 그림엽서, 빗, 성냥, 휴지, 메모지 등등을 놓아두고, 사람들이 남긴 흔적과 사람들의 반응, 사람들의 전화 대화 내용 등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한다. 그녀의(?) 공중전화 부스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폭발적이다(왜 아니겠는가, 사는 게 바쁜 사람들일수록 작은 관심과 사건에도 감동하고 행복해한다). 그렇다면 어찌됐든 세상에 '존재했던 사실과 대상'을 기록한『뉴욕 이야기』를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사진이 가지는 인텍스적 속성 때문에 더더욱 소피 칼의 사진-소설 양식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실재하는 현실이 그 어떤 허구보다 더욱 초현실적이고 비현실적이라고 느낀 적은 아마 누구에나 있을 것이다. 사진과 실재와 부재와 허구라는 모든 것들을 교묘히 이용한 그녀의 '사진-소설' 기법은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앙드레 브르통은 만레이나 자신의 사진들과 그림들이 실린 실제 사건과 진실을 토대로 한 초현실주의 소설『나자Nadja』(1928)를 발표했으며, 넓게 보자면 듀안 마이클처럼 사진과 텍스트를 사용해 내러티브를 구성하는 작품들도 이 범주에 들어간다고 볼 수 있다.

사회가 복잡하고 거대해 질수록, 개인들의 통제력은 줄어들기 마련이다.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조차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존재한다는 엄연한 사실에 좌절감과 무기력을 느끼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스스로의 삶을 되도록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고 극복하거나, 씨실과 날실처럼 타인과의 삶과 인생에 같이 얽혀들고, 자신의 일상을 즐거움으로 채워나가는 것들로 그런 무기력과 고립감을 극복하려 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무서운 도시 '고담Gotham'으로 지칭된 쓸쓸한 도시 뉴욕에서 소피 칼과 폴 오스터가 이런 일을 벌인 것은 고독한 개인을 벗어나기 위한 애틋한 노력이다. 반복되는 일상과 거대도시에서 가지는 개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그들은 허구를 창조하고, 자의적인 상황을 고의로 연출한다. 이 방법을 통해 그들은 스스로가 타인이 되며, 무심하고 지긋지긋하기도 한 타인을 주인공으로 만들고, 자발적으로 타인과 얽혀든다.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내부만 들여다보는 것에 질려 외부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 사람들이 결핍감을 발판으로 풍요롭고 충족된 도시인으로 살 수 있는 가장 즐거운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알랭 드 보통의 "따분해하는 사람들은 주로 [스스로가] 따분한 사람들"이라는 표현처럼, 세상에 대한, 타인에 대한 호기심 여왕 소피 칼의 이야기에는 '나 자신을 포함해 모든 게 지루한' 마음이 끼어들 자리가 없다. 그녀를 읽으면 내 주변과 일상을 다시 돌아보고 뭔가 사건을 꾸밀 일이 없나 생각해보게 된다. 하다못해 주네 감독의 영화 <아멜리에>(2001)의 남자주인공처럼 사람들이 찍고 버리고 간 조각조각 난 증명사진이라도 긁어모아 수집이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위기의식까지 든다. 괴테의 말처럼 태초에 있던 것은 행위다. 모두가 오늘, 바로 오늘 뭔가 재밌는 일을 꾸미기 시작하면 내일은 더욱 재밌어 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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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관심이 더 생긴다면 다음 책들을 참고할 것.

<진실된 이야기Des histoires vraies>2003 /소피 칼 지음/ 심은진 역/ 마음산책, 2006
 '진실된 이야기'라는 제목을 믿고 읽다보면, 어느 순간 '속았다!'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녀의 글과 사진을 읽고 나면 그런 경계들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닫는다. 그녀의 책을 덮고, 그녀가 벌렸던(!?) 즐겁고 사랑스러운 일들을 생각하다보면, 누구에게나 주어지지만 언제나 하루만큼씩 사라지고 마는 하루의 일상들이, 마주치는 사람들이 더욱 애틋하고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녀는 끊임없이 일상적이고 낯선 이야기를 들려주는 세헤라자데인 동시에, 우리 역시 세헤라자데가 되어야 한다고 은밀히 부추기는 술탄이다, 우리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모두.

<Sophie Calle: M'as tu vue?>2003 / Sophie Calle, Munich ; New York : Prestel
Christine Macel이 큐레이팅한 2003년부터 2004년 프랑스 퐁피두 센터에서 열린 회고전이 실린 책. 45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통해 소피 칼의 거의 모든 작품 뿐 아니라, 데미안 허스트를 포함해 다른 사람들과 주고받은 편지 등도 볼 수 있다. 

글. 권민정(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 영상커뮤니케이션 전공. siempreflow@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