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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의 현실되기 현실의 지도되기 : 지도와 상상력_와카바야시 미키오_book review

aliceon 2009. 9. 11. 10:11


"지도가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이 지도를 모방한다."

필자 와카바야시 미키오는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에서 언급된 다음 우화를 인용한다. 이는 보르헤스의 소설집 <오욕의 세계사>에 실려있는 이야기로 '아주 정확했던' 제국의 지도에 관한 이야기이다. 어떤 제국에서 황제의 명령을 받은 지도 전문가가 대단히 정확한 지도를 완성했다. 그 지도는 정말 정확해서 그 크기가 제국의 영토를 뒤덮어버렸다. 시간이 흘러 지도가 낡아 너덜너덜해져가는 것과 같이 제국 역시 쇠퇴해갔고 마침내 제국의 붕괴 후 지도는 그 흔적만을 부분부분 남겼다.

현대의 우리 삶이 매체 의존적이라는 점은 이미 일반적 사실이다. 우리가 직접 보고 듣고 걷는 세상보다는 여러가지 다른 매체를 통해 알게 되는 세상이 더욱 넓다. 우리동네, 우리나라, 세계 각국, 지구 등 우리가 존재하는 세상에 대한 시각적 지각과 상상은 바로 지도와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경험과 사회 경험의 많은 부분을 '지도'라는 매체에 의존하고 있다. 저자는 지도라는 표현과 인간의 경함 사이의 관계의 구조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지도와 상상력>은 이러한 연결 관계를 모티브로 인간이 지도를 통해 사회를, 그리고 세계를 어떻게 경험하며 관계를 맺는지 살펴보고 있다. 지도는 세계를 그대로 옮긴 재현의 이미지가 아니다. 기호로 도상화되어 드러나는 이 공간은 세계의 의미화, 의미로서의 세계이다.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실은 의미와 함께 지도로 나타나지만 이 지도에 의해 사람은 그 의미를 현실로서, 세상으로서 인식하게 된다. 이렇게 저자는 처음 언급했던 보르헤스 우화의 시뮬라크르적 역설이라는 상황을 지도의 순차적 예시들을 바탕으로 서술해 나간다.

책은 1부의 이론적 설명을 시작으로 2부에서는 지도의 기원과 함께 오래 전 고대의 문명에서 지도가 수행했던 역할과 모습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근대적 세계의 발견을 다루는데 특히 유럽 열강의 신대륙 탐험으로 인한 세계의 확장이 주 내용이다. 4부는 지도가 국민국가 창출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쳤음을 미셀 푸코와 베테딕트 앤더슨의 논의를 통해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무리를 통해 확고하게 구분되어 있던 근대 국가 개념을 넘어선 현대의 초 국가적 상황을 드러내는 세계에서의 미래에 대한 언급을 통해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