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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먼저 간단한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강은수입니다. 인터랙티브 비디오, 사운드, 설치와 퍼포먼스의 융합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공간과 신체의 상호 작용적인 변화를 탐구, 실험하고 있고요. 이화여대 미술대학원을 거쳐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niversity of Claifornia Santa Barbara)에서 Media Arts and Technology(MAT)석사 학위를 받은 후 워싱턴 주립 대학(University of Washington)에서 DXARTS(Digital Arts and Experimental Media)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현재는 오하이오에 있는 University of Akron에서 뉴미디어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 작업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초기의 비디오, 나아가 퍼포먼스를 진행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에서 대학 다닐 때에는 싱글 채널 위주의 비디오 작업을 많이 했어요. 그때만해도 비디오 수업이 없었죠. 비디오를 다루고 편집하는 것 역시 생소했죠. 한참 천리안이나 하이텔 등 피씨의 보급이 시작되던 시기였어요. 그 때 비디오 편집 카드(당시 컴퓨터는 이러한 하드웨어 없이는 영상 편집 자체가 불가능했다. 진행자 주.)를 구입해 설치하는 것이 시작이었죠. 서양화과의 분위기가 자유로웠기 때문에 녹음기를 넣거나 움직임을 주는 설치나 키네틱 아트도 무리없이 진행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작업 중 컴퓨터를 접하고 비디오로 돌아서게 되었죠.

대학원에서도 계속 작업을 진행했어요. 당시 비디오로 보여줄 수 있는 결과물은 싱글 채널 위주였죠. 하지만 제 머릿속에서 표현하고 싶어하는 이미지는 어떠한... 공간이었어요. 프로젝터를 쓰면 투사하는 공간과 영상을 결합할 수 있을 것 같아 그 방향을 시도했습니다. 그리고 공간 안에 사람이 들어가게 되고 그러한 공간과 사람과의 연결이 좋아 그러한 방향을 시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 작가님의 첫 전시 <알수 없는 영역>이었나요.


네, 인사미술공간에서 2002년 첫 전시를 했어요. 공간 안에 사람이 들어가고 비디오로 공간을 보여주는 것을 시도했는데 만족스럽지 않았어요. 공간에 동영상이 투사되면 들어간 사람의 위치에 따라 적정량의 움직임이 발생하지만, 사실은 관객과 소통 없이 정체되어 있었고 주체-객체간 입장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것이 불만스러웠어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정말 인터랙티브 테크놀로지를 배워야겠다였어요. 알아보다가 캘리포니아 산타바바라에 위치한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MAT(Media Arts and Technology)과정이었어요. 그곳은 작가를 위해 만들어진 미디어 아트 프로그램이었어요. 그런 쪽으로는 굉장히 초창기 학과에 속합니다. 

MAT 과정 2년을 마무리지어가는 동안 옮기기로 예정되어 있던 박사 과정이 개설되지 않고 있었어요. 오로지 장학금만으로 학교를 다니던터라 펀딩이 가능한 곳을 찾아보았고 마침 워싱턴 주립 대학에 DXARTS(Digital Arts and Experimental Media) 박사과정이 개설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미디어 작가들을 위한 박사과정으로는 최초였죠. 풀 펀딩이었고요. 지도교수가 작곡가이셨고 이 때 소리 공간에 눈을 뜨고 만들 수 있는 능력도 갖추게 되었습니다. 



작가님의 작업에서 비디오도 그렇고 사운드라는 요소가 눈에 띕니다. 이를 주목하시게 된 이유는 어떤 것인지요.


비디오는 사람을 만지고 지나가는 과정이 폭력적이지 않아요. 힘으로 밀거나 다치게 하지 않고 공간을 점유할 때도 무언가를 부수거나 물리적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지만 공간 전체의 형상과 분위기를 바꿀 수 있습니다. 소리 역시 그렇습니다. 빛은 벽에 맺히는데 소리는 파장으로 공간을 채웁니다. 소리 공간이 그것이죠. 소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바로 공간을 변화시키는 것과 연결됩니다. 이 점이 좋았습니다.




이번 전시의 <신'음>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이 프로젝트는 무용수의 움직임과 관객의 참여에 반응하는 3차원 입체음향과 영상으로 이루어진 시스템입니다. 몸의 확장으로서의 소리, 혹은 소리로 변신한 몸은 주변의 공간, 나아가 인터넷 공간까지 넘나들 수 있는 가능성을 보입니다. 장치와 네트워크로 연장된 사이보그적 몸은 우리 주변의 공간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인터렉티브 작품이 가진 예술적 깊이를 보여주는 동시에 관람객 누구나 작품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작품이자 하나의 시스템이죠.



말씀하신대로 인터렉티비티가 중점이 되는 프로젝트입니다. 국내에서는 인터렉션이 한참 핫 이슈로 떠올랐다가 실패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인터렉션 자체가 작품이 될 수 없다라는 비판이 일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인터렉션이란 무엇인지요.


인터렉션. 상호 소통이잖아요. 이러한 문제에 대해서는 앞서 진행된 HYBRID ART FORUM: Body, Digital Media and Performance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습니다. 비판받은 것은 바로 리액션이었어요. 인터렉션과 리액션은 분명 차이가 있습니다. 리액션은 말 그대로 반응이에요. 내가 어떤 행동을 했을 때 거기에 대한 반응이 있지만 거기에 대해 교류가 없는 것. 내가 1번 누르면 빨강, 2번 누르면 노랑, 3번 누르면 파랑. 그런 반응에서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것입니다. 

반면 인터렉션은 말그대로 상호 소통이며 시스템 자체가 획일적으로 컨트롤 할 수 있는것이면 안됩니다. 사람간의 대화처럼 어떤 말을 던졌을 때 그 말에 대한 반응이 인식, 행위가 가능한 범위 안에서 자율적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중요한 지점은 피드백을 받았을 때 저 스스로도 변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스스로도 변화를 가지고 거기에 맞는 또다른 입력을 넣어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상호반응은 사람은 항상 가능하지만 컴퓨터나 시스템은 쉽지않습니다. 지금 발달되고 있는 시스템은 열린 시스템이라 해서 스스로 안에서 진화하거나 변화하거나 학습을 통해 관객의 반응을 받아들이고 피드백을 줄 수 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알고리즘을 쓰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피드백이 오갈 수 있는 그런 관계가 설정되어야 비로소 인터렉션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 개념이 정확히 정립이 안되어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반응만을 요구하는 것을 인터렉티브 아트라 속이고 혹은 몰라서 소개했고 그렇기에 거기에 대한 비판이 없을 수 없었던 거죠. 단순한 반응이 일어나는 프로젝트를 인터렉티브 작품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저는 그것을 기술의 시현이나 연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인터렉티브 작품을 만드는 것은 굉장히 어렵습니다. 반응을 만들기는 쉽지만 그 시스템이 살아있고, 열려있게 만드는 것은 어렵습니다. 많은 고찰이 필요한 문제죠. 오랜 시간이 걸릴 수 밖에 없으니 제작과 그 제작 과정간의 시간을 기다리기에도 많은 참을성이 필요합니다. 

즉 인터렉티브 작품이라고 불렀던 것들 중 상당수가 단순한 실험이었고 본격적 인터렉션이라기보다는 1차원적 리액션 작업이었기 때문에 비판이 제기되었다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술도 발달하고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고 있습니다. 그 변화를 따라가면서 스스로 예측하기 어렵게 순발력있는 방식으로 변화하는 반응이 이뤄지는 상황이 본격적인 인터랙션이겠지요. 그러한 시스템을 만들려면 단지 기술적인 발전만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생각과 영감이 필요합니다. 살아있게 만들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해야 하죠. 바로 그 과정이 미디어 프로젝트를 예술 작품으로서 만드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과정이 없을 경우 비판을 받는다 해도 변명거리가 없을 거에요.





Persephone, 2002, 720x480px, NTSC


퍼포먼스와 설치 작업을 병행하고 계십니다. 이 경우 한 특정한 감각만을 위한 작업이라기보다 시각, 촉각, 청각 등 여라 가지 감각을 한번에 풀어내는 공감각적 작업으로 이해해야 할 것 같습니다. 혹은 앞서의 설명에서 비디오 자체가 피부로 훑고 지나간다, 소리가 공간을 차지하고 피부로 느낀다라는 지점에서 촉각이 우세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어떠한 관점에서 작업 진행하시는지요.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동등하게 하려고 합니다. 보고 듣는 건 사람들이 쉽게 행할 수 있기에 굳이 강조하지 않습니다. 제가 추구하는 것은 함께 느낄 수 있는 것,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감각을 열고 경험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몰입과 경험입니다. 초기 작업의 화두가 Alien과 알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Alien이란 말은 외계생명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어떤 소외된 사람들이나 소외된 존재로서의 의미도 함께 지닙니다. <페르세포네>의 경우 땅 위와 땅 아래 어디에도 속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중간자이기도 한 그리스 신화 속의 여신이죠. 그건 걸 사용한 이유는 우리가 소통하고 사회에 살아갈 때 발생하는 모든 관계에서 소외되는 존재는 발생하며 이러한 소외가 본인의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 얘기들을 이미지로 보여주며 그렇다면 소통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커다란 사회 문화적 문제이기에 당장 쉽게 바뀌는 것은 아니겠지만 제가 무언가 할 수 있는 건 바로 작은 실험들이죠. 이를 통해 그렇다면 우리가 말과 글처럼 익숙한 것이 아닌 모든 감각 동원해서 대화한다면 좀 더 다른 깊이있는 대화가 가능하고 그러면 소외가 덜 일어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흐름을 미디어작업을 하면서 계속 발전시키다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말씀하신 소통이라는 문제는 컴퓨테이션 알고리즘 작품만이 아니라 우리의 환경과 기반 자체에 컴퓨테이션에 의한 커뮤니케이션 방법이 녹아 있기에 특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이 새로운 방식이 외부적 요소와 다른 분야와의 교류하면서 발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서 작가분들이 새로운 소통 방식을 작품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퍼포먼스 아트 등의 새로운 퍼포먼스는 새롭고 대안적이며 공감각적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 그렇기에 자연스럽게 무용가와 함께 일하게 되었지요. 우리의 몸은 미디어 아트에서 소외될래야 소외될 수 없는 시스템의 일부이고 또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복잡계(Complex System)이기도 합니다. 퍼포먼스란 저에겐 참으로 자연스러운 진행방향인 것 같습니다. 기술이 신체에 개입하고 이를 풀어내려는 시도들이 요즘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퍼포먼스 얘기 나와서 퍼포먼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신체, 신체성입니다. 이제 디지털 퍼포먼스가 등장했습니다. 퍼포먼스 안에 신체가 강하다 보니 신체의 아날로그성과 장치에서 나타나는 디지털적 요소가 충돌이 일어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자칫 잘못하면 어느 한쪽이 잠식되어 버리는 결과가 나타날수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해소하고 표현하고 계신지요.


그 부분이 제가 가장 자신있는 부분입니다. 디지털 예술작품과 퍼포먼스를 결합할 때 말씀하신 그런 예가 많았습니다. 가장 평범한 경우라면 배경에 프로젝션 영상이 있고 그 앞에서 퍼포먼스 를하는 모습들이죠. 그건 저희가 추구하는 융합된 형태가 아닙니다. 주제상으로도 몸이 테크놀로지와 어떻게 결합되는지, 예컨데 헤러웨이의 사이보그라던가 포스트 휴먼과 연관해서 삶에 배어 한꺼풀 차지하는 부분입니다. 그런 것이 결합되지 않고 분리된다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답은 간단해요. 잘 결합되게 하기 위해서는 노력과 시간을 많이 들이면 됩니다. 같이 일하는 안무가이자 무용수인 디에나(Diana Gracia-Synder) 같은 경우 몇년간 친하게 일을 오래 진행했습니다. 이 작품안무를 할 때 오래 준비했죠. 그녀가 있는 시애틀에 이 프로젝트 시스템을 셋업해 놓고 디에나를 위해서 운영했습니다. 그리고 시애틀과 같은 시스템을 오하이오의 제 랩에 설치해놓고 서로 동작해보면서 얘기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시애틀 전시 오픈 몇 주 전에 가서 거의 매일 만나며 토론했죠. "너는 안무해와, 나는 이거 만들었으니까" 라는 것이 아닌, 끊임없이 대화하고 확인하고 영감을 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구체적으로 이게 불편해. 고쳐줘"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게 불편한데 왜 그럴까." "그게 너의 신체의 이러한 식의 연장인데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않나보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너의 신체의 연장으로써 느껴질 수 있을까."  같이 접점을 찾아 나가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합니다. 일하는 방식의 문제죠. 어디서나 가능할 것 같은데, 공연예술이건 미디어 예술이건 빨리 성과를 보고 싶어서 서둘러서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SeoNang>, 2005


퍼포먼스나 설치작업 통해 신체의 확장, 그리고 그 가능성 통해 서로간의 이해 확대시키는 방향 진행하고 계십니다. 2005년 <서낭 프로젝트>의 네트웍성이 한 예가 될 것 같은데 이 프로젝트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 작업은 텔레마틱 프로젝트였습니다. 인터페이스를 만들고 하나는 서울, 하나는 시애틀에 설치했죠. 양 쪽에서 관객이 와서 움직이는 동작이 소리 공간에 영향을 미치고 그 동작이 가운데 사이버 공간 안에 위치한 형상을 바꾸게 만드는, 양 쪽의 영향이 동시에 미치게 되는 작업입니다. 저는 텔레마틱과 네트워킹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연결이라는 지점이죠. 이 작품은 완전히 완성된 것이 아닌 중간 단계라고 봅니다. 앞으로 추구하려는 부분이 이러한 네트워크 부분입니다. 소리가 한정된 갤러리 공간을 벗어나 인터넷을 통해 또다른 교류를 한 다음 다시 공간 안으로 되돌아오는 그런 것이요. 이러한 면에서 <서낭>은 그런 텔레마틱적 부분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만 그 당시 매우 지쳐있었습니다. 산타바바라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할 장학금을 거의 매 학기 새로 신청하고 받아야 했던데다가 시애틀로 이사하고 몇 주도 되지 않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짧은 기간 안에 설치와 작동 확인만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시다시피 복잡한 컴퓨터 세팅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면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울쪽의 인터페이스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인들이 그 이후 다른 작업을 보여줄 때 이번건 작동이 되니라고 묻게 된 아픈 추억이 있는 작품입니다. (웃음)



체험, 소통에 있어 특히 소리라는 매체는 장비와 기술에 민감할 것 같습니다. 스피커의 배치, 숫자, 장비의 질에 의해 체험할 수 있는 농도가 틀릴텐데, 특별한 기술의 체득이나 목표로 하고 있는 기술의 지향점이 있는지요.


스피커의 경우 확실히 질이 좋은 것을 써야 해요. 지금 설치된 작품은 6개를 사용하고 있지만 최소 12개 이상을 사용할 경우 좌우 뿐 만 아니라 상하의 움직임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소리로 풍요한 3차원 공간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현재 <신'음>의 소리공간은 중심부의 참여자에 의한 움직임을 빼고는 수평으로 움직입니다. 하지만 마치 높낮이가 있는 3차원 공간처럼 느껴지지요. 소리는 지각적인 경험이라 공간에서 소리의 위치를 이용해 잘 만들어진 '착각'을 그려내는 것입니다. 정말 완벽한 3차원에서의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12개 이상의 구성이 필요해요. 사용하는 소리가 낮거나 높을 때, 또 여러가지 소리의 성격에 따라 다른 종류의 스피커가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엠바소닉(Ambisonic)이라는 기술을 즐겨 써 오다가 이번 작품에서는 배경으로만 약하게 사용했습니다. 스피커의 수가 아주 많지 않아도 듣는 이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구형의 공간의 표면을 소리가 자유롭게 옮겨 다니게 할 수 있는 3차원 소리 공간 기술입니다. 이번에는 사용하지 않았지만 워싱턴 주립 대학에서 참여하던 지향성 소리공간의 연구도 계속 하고 싶습니다. 이는 소리가 빛처럼 강하게 한 방향으로 쏘아지고 반사되는 기술이기에 소리를 공간에 그리는 또 다른 특별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최신 기술들을 실험하겠지만 최종 선택은 항상 참여자의 경험에 가장 직관적으로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 수 있는 방식을 택하는 것입니다. 몰입성을 높이기 위해서 실제 우리의 지각 경험에 가까운 시청각적 경험이 제공될 수 있는 장비를 사용하는 것이 최선이지요. 인간의 지각 경험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잘 이해하고 거기에 맞는 장비와 공간 구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Entanglement, 2007>

Telematic sound installation


소리가 강조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공감각을  전달하는데 있어서 모든게 균일하게 전달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컨데 시각이 중심이 되어 합쳐진다던지 청각자체가 중점적이 되어 시각이나 다른 감각이 붙는 등의 모습이 있습니다. 이렇게 한 감각이 중심이 되어 다른 감각들을 함께 이끌어 내시는지요. 혹은 바그너의 총체예술처럼 모든 것을 융합하여 강화하는 방향을 추구하시는지요.


저는 후자에요. 사람들이 시각에 워낙 민감하다 보니 시각적 면을 단순화하려 하고 있습니다. 너무 화려하지 않고 반응 빠르지 않고. 그래서 사람들이 소리를 들으면서 시각 역시 같이 느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는데 두고봐야죠. 이는 관객들 반응을 살펴보며 조율합니다. <Entaglement>의 경우 아예 빛이 없는 공간을 만들었는데 이 경우 그런 빛이 없는 공간에 대한 거부반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후 적당한 균형을 찾아보려 하고 있습니다.




현재 오하이오 University of Akron에서 교수로서 재직하고 계십니다. 학제간 융합 교육에 대한 뉴미디어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계십니다. 그 프로그램이 어떤 것이며 현재 진행상황이 어떤지에 대해 답변 부탁드립니다. 


현재 한학기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어요. 이곳에 고용된 이유가 학제간 융합 자문으로서 뉴미디어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서였어요. . 프로그램의 정의는 제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산타바바라나 시애틀을 모델로 해서 여러 다른 장르들의 수업들을 들을 수있으면서, 동시에 각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기본 지식을 주며 자신의 특별한 프로젝트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코스를 만들고 있어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을 교육으로 이어서 진행할 수 있다는 것에 많이 들떠있습니다. 

한학기만에 많은 걸 보았죠. 현재 진행상황은 프로포절을 끝내고 지금까지 만나본 사람들, 미술, 문화, 무용, 연극, 커뮤니케이션, 컴퓨터 사이언스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함께 모든 학생들이 다같이 들을 수 있는 프로그램을 꾸준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뉴 미디어 수업은 가을부터 시작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에요. 저는 수업 두 가지를 해보고 있습니다. 강의 수업 하나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하이브리드 아트, 뉴미디어 아트의 흐름을 보여주고 배경지식, 관련 철학을 짚고 소개해주는 수업입니다. 또 하나는 스튜디오 수업이죠. 사운드, 미디어 퍼포먼스와 연관된 프로젝트, 인터렉티브 미디어, 프로그램 등을 조금씩 접해가며 학생이 자신의 컨셉이 어떤 쪽으로 연결되어 진행될 수 있을 지 배울 수 있게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구상중인 세 번째 수업은 학생 스스로가 프로젝트 안을 짜면 연관된 각 과의 교수들이 팀으로 지도를 하며 학생의 융합적 연구를 지원하는 수업입니다. 지금까지는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009년 교육의 트렌드는 '융합' 이었습니다. 하지만 잘 이루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토의하고 결과물 만들어 낼 수 있는 과정이 아니라 단편적으로 모아놓고 풀어놓는 식이 많았던 것 같아요. 


서로 다른 분야에서 공부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각자 사용하는 언어가 다릅니다. 그 때문에 서로 똑똑한 사람들이라도 대화가 제대로 안되고 오해가 생길 소지가 많죠. 예를 들어 공대생이 미학을 배운다면 먼저 미학용어를 습득하겠지요. 그렇듯 서로의 언어와 문화를 먼저 습득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여러 방법이 있을 수 있는데 그 하나가 모두가 섞인 수업을 만드는 것입니다. 단 교수가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게 아닌 서로가 배울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서 친분관계 생기고 협업의 노하우가 자연스럽게 생깁니다. 그런 과정이 있은 다음에 더 깊게 들어가기 위해 교수님과 같은 깊이있는 지식을 가진 분들이 와서 가르치면 좋습니다. 이런 습득과정이 생략되면 영어모르고 미국와서 수업듣는것과 같은상황이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작업 역시 같은 문제입니다. 순수미술 작가, 개발자, 안무가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협업하는데 있어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 인내, 노력, 그리고 시간입니다. 학제간 융합 할 때도 한 프로젝트를 같이 하겠다 라는 계획이 있다면 예컨데 프로젝트 기간이 3년이라면 그에 준하는 기간동안 준비를 해야 합니다. 그걸 안하고 지나가면 결과를 장담할 수 없죠. 



앞으로의 작업 진행 방향은?


지금은 하이브리드의 강도가 높지 않아요. 지금 접하고, 사용하는 분야는 성격이 다르지만 예술이라는 범주 안에서 컴퓨터 공학이 가미된 것입니다.. 앞으로 포괄 범위를 넓혀 다른 공학이나 과학 분야의 분들과도 접촉해서 스스로의 작업과 세계를 확장시키고 성숙한 프로젝트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를 위해서 다른 중요한 이슈와 접근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교육과 연결하여 무언가 만들어야 한다라는 느낌이 드는데요.


융합교육은 자발성, 창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창의성을 근간으로 한 교육을 받는 미대생들조차 그러한 자발성에 익숙치가 않습니다. 학생이라는 입장 자체가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거잖아요. 이 친구들이 자기들끼리 놀고 얘기할 수 있는 그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자발성에 대해 미국 내에서도 오랜 기간 동안 굉장히 많은 실험이 있었습니다. 어떻하면 융합교육을 활성화시키고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 주립 대학의 경우 특수 박사과정이 있습니다. 학교 내부, 심지어 다른 대학교에 있는 다른 과정의 교수들을 지도교수로 삼아서 스스로 박사학위 과정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심지어 학위의 이름도 자신이 지어요. 그렇게 박사 학위를 자신이 스스로 디자인하고 마치고 졸업하는 과정입니다. 단, 굉장히 어렵죠. 기존 시스템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스스로 부딪치고 해결해야 하죠. 미국 내에서는 그런 융합 시스템을 계속 실험하고 있습니다. University of Akron에도 학부생들을 위한 비슷한 과정이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의 공통점은 기존 시스템에 기대는 것이 아닌 스스로 뭘 하고 싶은지 발견하기 위해 노력하고 굉장히 대화를 많이 하며 그걸 어떻게 나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느냐 라는 것입니다.



그런 방향의 결과물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갤러리나 미술관 뿐 만이 아닐 것 같습니다. 작업을 보여주는 공간이나 방식에 대해 다른 시도나 계획이 있으신지요.


한창 하고 싶은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조금씩 발전시켜나가고 싶습니다. 새로운 것을 행하는데 있어 조심스러운 부분이 있습니다. 저는 아이디어와 영감이 있어도 바로 만들지 않고 몇 년간 묵힙니다. 기술 쓰는데 있어서 어린 세대에 비하면 어쩡쩡하기 때문이죠. 몸에 완전히 붙어있지 않아요. 그런 입장에서 쉽게 빠지게 되는 흐름은 이게, 이 기술이 내 주변에 이게 있으니까 재미있으니까 뭔가 나오겠다 싶어서 몸에 배어들지 않았는데 그걸 사용하고 무언가를 만들어 내려고 하는 행동이죠. 저는 그런 것을 경계합니다. 기술 쓰거나 도구를 쓸 때 자기검열을 통해 컨셉과 일치하고 몸에 체화되었고 소통하고 있다고 생각할 때 비로소 사용합니다. 인터넷은 굉장히 쓰고 싶은 부분인데 기술적으로 성숙되어있지 않아서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인터넷은 모두가 관객이 될 수 있고, 보여주는 장소 역시 물리적인 한계를 벗어난 네트웍이 될 수 있죠.





향후 전시나 잡혀있는 행사 계획이 있으신지요.


서울의 두산 갤러리와 뉴욕에서의 개인전을 준비 중입니다. 그동안 미국에서 있으면서 진행한 작업들 보여주는 자리가 될 거에요. 이런 식으로 해왔고 이런 맥락이었다 라는 전통적 방식의 개인전입니다. 그리고 이번 포럼이 활성화되어 계속 이어질 예정입니다. 많은 분들의 요구가 있었어요. 미국에 가 제 연구만 하느라 한국의 미디어아트가 전보다 덜 활성화 되어 왔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경제적으로도 침체되고 많은 분들이 떠나시기도 했다고 하네요... 이제 직장에 안착해 생활도 연구 환경도 안정되었으니 활발히 활동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번에 와서 같은 관심을 가진 분들을 많이 뵈었습니다. 훌륭한 분들을 만나니 저절로 다음 포럼이며 출판, 컨퍼런스로의 발전 가능성까지 이야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계속 잘 진행되어 융합예술에 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지고 확대되었어면 하는 바램입니다.



긴 시간 인터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강은수작가 웹페이지.

글. 허대찬(앨리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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