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관련 서적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 나랜스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0. 6. 10. 00:47


비저자Non-Authors의 탄생: 얼굴 없는 이가 들려주는 이야기


손끝으로 감각을 전달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그 세계는 인간의 오감 중 특히 시각에 의존하여 기존과 다른 전달과 이해방식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혁명이라 말해졌고 재빠른 누군가는 이 새로운 세계가 몰고 올 변화들을 예측하고 적응하기 시작했다. 인류의 절반 이상이 알아차리기 전에 디지털 시대가 먼저 도래 했다. 그런데 다른 누군가는 전달 방식과 표현방식이 변화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여전히 이야기하고 있고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놀랐다. 별로 새로워 보이지 않은 이 발견은 두 가지 동기를 부추겼다. 하나는 이야기를 ‘여전히’ 잘 써먹을 수 있다는 안도감이었고, 다른 하나는 ‘이제는’ 나도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었다. 이렇게 다른 욕망을 가진 이들이 이야기하는 인간homo narrans이라는 공통항으로 묶여 이야기판에 뛰어들었다.

『디지털 시대의 신인류 호모나랜스』는 디지털과 서사의 관계를 고찰하는 글 가운데 꽤 최근 저작이다. 2010 3월에 등장한 이 책에서 저자는 상반기의 핫이슈였던 ‘아바타’와 팀버튼 버전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 근저의 작품들을 빼놓지 않고 언급하고 있어 그 동시대적 타이밍이 놀랍다. 이런 동시성이 갖고 있는 생생함이 종이텍스트에 담겨 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디지털과 서사의 결합을 풍부한 예를 통해 접하고 싶은 독자들은 훑어볼만한 책이라 할 수 있겠다. 책이 명확하게 짚고 있는 중요한 두 가지에 관해 간략히 말해보겠다. 저자는21세기 콘텐츠의 특성을 감안한다면 스토리텔링은 전방위적 기술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고유성, 즉 극단적으로 말해 글 쓰는 이의 천재성이 이전 스토리텔러들의 심급을 결정했다면, 이제 스토리텔러에게 필요한 것은 다양한 문화적 코드를 이해하고 조합하는 능력이다. 디지털 시대를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 중 융합convergence과 분화divergence를 떠올렸다면 적절한 선택이다. 전공 혹은 직업을 넘나들며 분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동시에 이를 새로운 형태로 재창조해내는 이가 이 시대가 요구하는 스토리텔러의 초상이다.

누구나 이야기 고픈욕망을 갖고 있고, 그렇기에 저자는 이 시대의 인류를 호모나랜스라 칭했다. 인쇄매체 시대의 저자가 신격화되어 이상화되었다면, 디지털 시대는 비저자Non-authors의 시대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누가썼느냐가 아니다. 남는 것은 이야기뿐이다. 누구나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창작주체는 집단 지성의 형태로 나타난다. 인터넷에 끊임없이 넘어가는 페이지에서 누구나 그 시간 그 페이지의 저자가 된다. 나도, 당신도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디지털이라는 그릇에 이야기라는 내용을 담는 것이라는 예의 이해관계는 전복될 필요가 있다. 이야기는 디지털이라는 내용물이 운동할 수 있는 광활한 지대이다. 그리고 이제 디지털이 그 안을 채워나간다. 물론 책을 통한 여정을 떠남에 앞서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다. 동반하지 말아야 할 것들: 디지털 서사의 깊이에 대한 질문(여기에서 말하는 스토리는 근대 소설 이전으로 회귀하는 것은 아닌가?), 혹은 고부가가치와의 밀접한 관계,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비판의 가능성(드디어! 이야기가 돈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고 예찬하는 것에 대한 불편함?) 같은 것들. 여행을 시작함에 있어 주머니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나오려 꿈틀대는 이러한 의심의 요소들은 잠시 접어두는 편이 현명할지 모른다. 그것이 안전한 독서의 시간을 보장할 것이다. 현 시점에서 디지털과 서사의 결합의 양태가 어느 단계에 접어들었는지 사실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접근할 것.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직 우리의 기억 속에 책에서 나온 일련의 예들이 따끈따끈하게 느껴질 때, 얼른 확인하라. 이것이 먼저 읽은 일인이 줄 수 있는 몇 가지 팁이다.

 

 

       글. 조은아 (앨리스온 수습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