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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문화_‘팬, 블로거, 게이머’ 헨리 젠킨스 지음 _book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3. 1. 15:44
 

헨리 젠킨스의 ‘팬, 블로거, 게이머’는 인터넷 공간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능동적 수용자에 대한 다양한 담론을 다루는 책이다. 본인을 이론가이기 이전에 아카팬으로 자처하는 헨리 젠킨스는 철저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수용자의 입장, 팬들의 입장에서 모든 문제를 다루며, 팬과 학자의 이중적 정체성의 조화를 지향한다.

 

‘팬, 블로거, 게이머’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제목과 마찬가지인 팬과 블로거, 게이머들에 대해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진행한다.

1부 ‘팬덤 안에서’ 에서는 대중문화와 그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재생산해내는 팬덤 문화를 다루며 팬들이 만들어 내는 2차 창작 작품들의 의의와 창작 동기, 정치적 해방의 가능성에 대하여 분석한다. 2부 ‘디지털 속으로’는 네티즌의 활발한 참여를 통한 집단 지성과 그로 인해 새로이 생겨나는 문화에 대한 고찰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마지막 3부 ‘콜럼바인을 넘어’는 콜럼바인 총기 난사 사건과 그 이후 게이머들을 비롯한 대중문화 소비자들에게 돌려진 비난의 허황됨을 지적하고 젊은 세대가 만들어 내는 고유의 문화에 대한 옹호를 시도한다.



헨리 젠킨스에게 있어서 팬과 학자는 완벽히 구분될 수 없는 집단이다. 실제로 그의 주장처럼 많은 팬들이 미디어 관련 학과에 진학을 한 후 평론가의 길을 걷고 있으며 굳이 평론가의 길을 걷지 않더라도 블로그나 팬 카페와 같은 공간에서 작품을 분석하거나 2차 창작을 시도함으로써 능동적 수용자의 길을 걷고 있다. 헨리 젠킨스는 능동적 수용자와 대중문화에서 재생산한 그들의 2차 창작이 원전의 확장이 아니라 대안적 우주의 창조라고 지적하는데, 이런 그의 지적은 그가 얼마나 능동적 수용자의 위치와 그 잠재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능동적 수용자들은 텍스트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하는 텍스트 밀렵꾼이며, 이 밀렵은 결코 텍스트에 대한 반역이 될 수 없는, 팬들이 원하는 하나의 대안을 만드는 과정인 것이다.


실제로 대중문화가 비대한 크기를 차지하게 된 지금 대안 우주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루프’와 ‘패러렐월드’, 이 두 소재 모두 근래의 문화컨텐츠 사업에서 재조명 되고 있다. 이 대안 우주의 등장에는 두 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는데, 하나는 문화컨텐츠 사업의 확장으로 출판사와 영화제작사, TV 방송국이 힘을 합쳐 한 작품을 다양한 매체를 통해 선보이는 미디어믹스를 전개해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소비자들이 단순한 소비자의 위치에서 벗어나 패러디나 비평, 동인 창작에 이르기는 2차 창작자의 영역 또한 차지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지점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본다면, 예를 들어 패러렐월드는 작품의 상업적 확대를 위해 이용하는 방식은 대부분의 미디어믹스에서 발견된다. 동일한 한 작품이 소설이나 영화, TV 드라마에서 만화로 제작되어 상품화가 진행될 경우 각 매체 별 이야기가 조금씩 차이가 나는 오류를 무마하기 위해서 각 매체마다 다른 평행우주에서 벌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이라고 설정을 덧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루프나 패러렐월드가 주는 보증은 더 나아가서, 외전이나 속편으로 제작된 작품만이 아닌 독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2차 창작의 영역에 대한 보증으로 발전한다. 이것이야말로 근래의 문화컨텐츠 산업에서 루프와 패러렐월드가 주목을 받게 된 것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창작을 중시하는 능동적 수용자의 수가 늘어나고 작품을 향유하는 데 있어 그 세력권이 커지면 커질수록 문화컨텐츠 산업은 이들을 존중하고 그들만의 독자적인 지위를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헨리 젠킨스가 지적한 바와 같이 능동적 수용자는 이제 기정사실이 된 문제이며, 앞으로 문화산업의 방향이 능동적 수용자에게 주목할수록 이와 같이 능동적 수용자의 2차 창작과 문화컨텐츠 간의 균형을 맞추기 위한 시도는 끊임없이 발굴될 것이다.



글. 홍석인. 홍익대학교 미학과 석사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