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관련 서적

기술의 충격 WHAT TECHNOLOGY WANTS: 케빈 켈리_book review

kunst11 2011. 7. 28. 20:17

"나는 기술이 정말 무엇인가라는 생각을 전혀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술의 본질은 무엇이었을까. 기술의 근본 특성을 이해하지 않는다면,매번 기술의 새로운 산물이 등장할때마다 나는 그것을 얼마나 약하게 또는 세게 껴안아야 할지 판단한 기준 틀을 지니지 못할 터였다. "_케빈 켈리

세계 최고 과학 기술 문화 전문지 <Wired와이어드>의 공동 창간자이자 7년 동안 편집장을 맡았던 케빈 켈리는 '기술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려면, 그것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아야 한다'고 하면서 인간의 기원에서 시작하여 기술이 없던 시대에 우리의 삶은 어떠했을지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기술의 자율성, 독립성을 강하게 옹호하고 있다. 저자가 이처럼 기술을 강하게 옹호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기술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기술이 원하는것에 귀를 기울임으로써, 기술의 눈을 통해 우리 세계를 바라본 결과, 기술의 더 큰 목적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 책은 저자가 바라본 기술이 원하는 것에 관한 보고서다. 저자는 실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하드웨어를 넘어서 문화,예술,사회 제도,법과 철학 및 모든 유형의 지적 산물들을 포함하는 세계적이며 대규모로 상호 연결된 기술계를 가리키는 단어로 '테크늄'이라는 단어를 내세우고 있다.

그는 테크늄이 더 많은 도구,더 많은 기술을 창안하고,자기강화의 연결을 부추기며 자기생성적인 일종의 생명체와도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기술은 인간의 완전한 통제와 지배 범위를 벗어난 하나의 생물로 정의된다. 그가 기술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테크늄은 규모뿐 아니라 자기 증폭 특성에서도 엄청난 힘을 갖고 있다. 예로 돌파구를 이룬 알파벳, 증기 펌프, 전기 같은 발명은 책, 석탄, 광산, 전화 같은 또 다른 돌파구를 이루는 발명으로 이어질 수 있고, 이러한 발전은 다시 도서관, 발전소, 인터넷 같은 발명으로 이어졌다. 각 단계는 이전의 발명의 장점을 대부분 보유하면서 힘을 더 추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확장된 인간은 테크늄(생각의 생물)이다'라는 이퀄 관계가 성립된다. 마샬 맥루언은 옷이 사람의 '확장된 피부', 바퀴는 '확장된 발', 카메라와 망원경은 '확장된 눈'이라고 말했다. 우리의 기술적 창작물은 우리 유전자가 지은 몸의 거대한 외연이라는 식으로 생각할수 있기에 기술이 인간의 확장이라면, 그것은 우리 '유전자의 확장'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확장'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따라서 기술은 생각을 위한 확장된 몸이라고.

기술은 인간을 좀 더 낫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럼 어떻게 더 낫게 만들 수 있을까? 켈리가 주장하는 방법은 단 하나. 인간 각자에게 기회를 제공하고 개인이 타고나는 재능 집합을 발휘할 기회, 새로운 생각과 마음을 마주칠 기회, 자신의 부모와 달라질 기회, 스스로 무언가를 창조할 기회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기술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기술이 인간에게 기회를 준다는 걸까? 예로 제시된 사례를 보자. 바이올린의 현을 진동시키는 기술은 바이올린 대가를 위한 가능성을 열었고, 유화와 캔버스 기술은 수 세기에 걸쳐 화가들의 재능을 분출시켰다. 필름 기술은 영화적 재능을 창조했다는 것까지 더해서 저자는 계속해서 더 많은 기회를 지닌 세계는 더 많은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더 많은 사람을 낳았는데, 그 기회를 기술이 우리에게 준다는 것이다. 

사소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테크늄의 진화는 종국엔 유전적인 생물의 진화를 흉내 내고 있기에, '기술은 죽지 않고 결국은 필연적으로 사라지게 마련인 생물종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기술은 영원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기술의 지배는 궁극적으로 사람의 마음에서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은하, 행성, 생명, 마음을 출현시킨 것과 같은 자기 조직화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계속해서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기술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지막 챕터에 그 대답이 있다. 기술은 종국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원한다는 것이다. 인간으로서의 우리 역할은 적어도 당분간은 기술을 잘 구슬려서 그것이 본래 가고자 하는 경로로 나아가게 하는 것일까. 하지만 기술이 어디로 가고 싶은지 우리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결국, 저자는 사실 팽창하는 테크늄(그것이 우주적 궤적, 끊임없는 재발명, 불가피성, 자아)은 끝이 열려있는 시작, 우리에게 해 보라고 요구하는 무한 게임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바로 기술이 원하는 것이라고 한다. 저자는 기술을 옹호하면서도 '기술이 야기하는 모든 변화가 다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라고 역설하기도 한다. 그 예로 아프리카에 가해졌던 것과 같은 산업 규모의 노예 제도는 포로들을 대양 너머로 수송하는 범선을 통해 가능해졌고, 노예들이 심고 수확하는 섬유를 값싸게 처리할 수 있는 조면기가 부추겼다면서 만약 기술이 없었다면, 이 대규모의 노예는 없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명하기도 한다.

이 책은 사실 쉽지 않다. 공학자든 생물학자든 저자가 말하는 테크늄의 개념을 이해한다해도 논란의 여지는 분명 있다고 본다. 여전히 저자는 스마트폰을 쓰지 않고, 트위터를 하지 않으며, 자동차보다 자전거를 더 선호하고 인터넷은 싫어하지만 웹은 좋아한다고 말한다. 또한 생명이 진화하듯 기술도 진화하며, 기술 또한 생명을 가진 것이 원하는 것들을 요구하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는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도 인정했듯이 기술과 그의 관계가 모순으로 가득하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있기에 기술이 있었고, 기술은 결국엔 인간의 통제하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로우 테크가 하이 테크로 가는 길 역시 기술의 태생적 기원을 쫓다보면 인간에 의해서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기술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진화를 한다는 논리는 종국엔 기술 스스로의 태생적 기원에서보자면 납득하기가 힘들다. 정말로 자가진화를 가속한다는 테크늄이 인간의 지배를 떠난다면, 어떤 영화에서 처럼 인간을 공격하는 기술이 탄생하는 무서운 미래가 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글. 정세라

 

/목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