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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finished Work 재구성의 경로들

알 수 없는 사용자 2011. 8. 10. 11:52


조혜정 작가의 다양한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는 개인전이 갤러리 정미소에서 열립니다.
사진과 비디오를 통해 시간과 사건들이 재구성되는 독특한 경험을 할 수 있을것 같네요. :)  

Unfinished Work 재구성의 경로들

갤러리 정미소_2011

작가와의 대화 / 2011_0813_토요일_갤러리 정미소


역사는 단순히 과거에 일어난 '객관적인' 사실들이 아니다. 역사는 재현되지 않았다면 존재하지도 않을 구성물일 수도 있다. 이러한 구성의 과정은 결코 진공상태에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재현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담겨 있다. 하나는 대표성을 지니며 다른 사람을 위해서 말한다 혹은 대변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있는 그대로 묘사한다는 의미이다. 재현이 가지는 두 가지 의미의 간극을 분석하면서 윤리성을 담보하여 그것을 담론과 문화영역에 끌어들이는 작업은 중요하다. 우리를 조종하는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드러내어 해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해석하기 위해서 주체적으로 식민주의 경험을 재현하고 언어와 문화를 회복하는 것, 희생자의 기준에 서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

올해 초 초등학교 4학년 국어교과서에 등재된 유관순 열사의 전기문이 교육과정 개편으로 삭제되었다가 국민적 저항으로 5학년 단원에 수록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이 일련의 해프닝은 아직도 3•1절이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위인으로 유관순 열사가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음을 상기시킨다. 우리나라 근대사에서 유관순 열사만큼 많은 위인전기집을 가진 인물도 드물다. 어린이용 위인전만 해도 70편이 넘을 정도이다. 교과서 사건과 함께 올해 4월에는 유관순 열사의 친구로 만세운동을 함께 한 뒤 역시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던 남동순 할머니가 별세하기도 하였다. 유관순 열사를 기억하는 마지막 생존자로 여겨져온 남할머니의 사망으로 유관순 열사가 다시 한번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프랑스의 잔다르크에 비견될 만큼 민족의 희생과 저항의 상징인 유관순이라는 표상은 해방 이후 민족주의 계열, 단독정부 수립과 이화학원 동문들의 주도로 구성된 것이다. 유관순 기념사업회와 전기간행위원회를 배경으로 하는 1948년의 전영택의 전기, 이를 바탕으로 제작된 윤봉춘의 영화 『유관순』(1948)은 이후 한국 사회에서 전승되는 유관순 표상의 골격을 결정하고 대중화한 기원의 텍스트들이다. 우리는 식민성의 문제를 자기의 주권성에 대한 사유의 근간으로 삼을 수 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계기들은 한국 전쟁, 분단 등을 통해 끝없이 유예되거나 말살되었고, 식민성의 문제는 국가 주도의 캠페인과 국민화 교육의 도구로 환원되어 버렸다. 그래서 식민성의 문제는 일본어 말투를 쓰지 않는 것이라든가 유관순 기념 영화를 보는 것과 같은 문제로 치환되어 버렸다. 그렇다 보니 우리는 여전히 식민성의 문제를 독도 영유권 문제나 신사참배 혹은 위안부 문제 등 '과거사'를 해결하는 차원의 문제로 간주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본인은 자기 서사(노예의 언어에서 해방의 언어까지를 가로지르고 함축하는)에 대한 연구를 통해서 '나에 대한 해방의 서사'를 구축하고자 한다. 아주 오래된 혹은 최신의 자기 서사들을 불러놓고 해방의 힘을 잃어버린 이야기들이 반복되는 사정이라든가 혹은 아주 진부하고 정형화된 이야기들이 그 이야기가 소통되는 맥락에 개입하고자 한다. 국민국가 내에서 억압되고 배제되어온 하위 주체들의 정체성 지표들(주변부, 여성, 비중앙)을 역사적 맥락에 따라 고찰한다.

이 작업은 '유관순'이라는 여성 우상(偶像)을 통해서 한국의 성(性)문화적 맥락을 분석해 보려는 영상전시이다. 유관순이 열사가 아닌 누나로 오랜 세월 불렸던 것은 유관순에 대한 재현을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국민이 되기 위해 꼭 누나만 필요했던 것은 아니다. 징용자를 징용자 할아버지라고 부르지는 않지만, 위안부는 꼭 할머니라고 칭하듯이, 국민이 되는 과정에는 일정한 선택적인 젠더의 차이가 작용한다. 유관순이 '국민누나'가 된 것은 1960년대 이후 대두된 애국선열기념사업의 결과였다. 유관순이 여성이며, 어린 학생이었다는 점, 3•1운동 과정에서 부모와 형제를 잃고 투옥되었다는 것은 희생의 비극성을 극대화한다. 한편 기독교도로서의 유관순의 형상에 또다른 초점이 두어져 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쏟아진 유관순 전기는 남성부재 상태에서 여성의 규범을 바로잡으려는 남성적 필요에 의해서 재구성되었으며, 군사정권에 의해 조극의 비극성을 상징하는 인물로 초등학교 교정마다 동상으로 등장했지만 음험한 괴담이 생산되고 유포되었다.

유관순은 식민지의 수난과 저항을 대표하는 여성 영웅이지만 침탈당하는 육체의 주인으로서 그의 발언을 들을 수가 없다. 주체로서 여겨지기보다는 타자로서 대상화되며 저항은 사라지고 가부장적인권위와 식민주의적 통제가 여성의 위치를 재구성한다. 왜 우리는 여전히 '유관순 누나'를 잘 알고 있을까? 그것은 어떤 주체 구성의 기획은 시대를 넘어 무수히 반복되면서 우리 몸에 각인되기 때문이다. 역사를 지탱하는 분화되지 않은 기원적 공간에 관한 탈식민주의적인 독법은 억압의 조제과정을 검토함으로써 여성 의식, 여성 존재, 좋은 여성, 좋은 여성의 욕망을 구축하는 대항 내러티브이다. 나는 가부장제와 제국주의 사이에서 침묵하고 비존재해오던 유관순이라는 주체가 가진 정확하고 윤리적인 저항에 접근하려고 한다 - 조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