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Artist

강이연, 꺼버리면 남지 않는_interview

yoo8965 2013. 1. 16. 18:50

앨리스온에서는 지난 2012년 '앨리스 온 더 테이블 : 한국의 여성 미디어아티스트'에서 만나보았던 강이연 작가와 다시 인터뷰를 진행하였습니다. 강이연 작가는 서울대학교 서양화과 및 UCLA에서 디자인과(미디어아트 부분)를 졸업한 이후, 창동 스튜디오와 난지 스튜디오 입주 작가를 거쳐 활발히 작품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하, 인터뷰는 4개의 테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I. 작업의 동기, <벽과 문>


Wall & Door, video documentaion, 1' 03", 2008


AliceOn. <벽과 문>을 흥미롭게 봤다. 이런 작업은 환상fantasy으로 볼 만하다. 환상이라고 해서 칼과 마법이 등장하는 것만은 아니다. 현실과 비현실이 병치되어, 이질감과 긴장을 드러내는 작업이 환상이다. 칼과 마법이 등장하는 환상물은 현실 너머의 세계를 만들어 버린 결과다. 두 가지가 충돌해서 발생해서 낯선 효과를 내는 게 핵심이다. <벽과 문>이 바로 그랬다. 전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낯설음이나 긴장감이 점점 사라진 것 같았다. 첫째 작업들이 전반적으로 완성도가 점차 높아졌고, 그 다음 우연이든 전략이든 자기 몸이 등장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초기 작업 <벽과 문>과 완전히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조금 아쉬웠다. 이후 작업의 중심은 몸이 중심이었고, 최근 신작도 자기 몸은 아니지만 남의 몸을 등장시켰다. <벽과 문>을 원형으로 본다면, 완전히 바뀐 모양새다. 이 과정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보는가.

다른 사람들은 초기 작업을 많이 보지 못했다. 발표를 할 때는 예전 작업이고 그런 개념으로 작업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서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듣지 못했다. 가끔 홈페이지를 꼼꼼히 보는 사람은 이 작업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다. 내게는 두 개의 선택지가 있었다. 환상계열의 작업과 몸이 등장하는 작업. 방향을 후자로 잡았던 것이다. 전자는 실재 공간에 가상 이미지를 입히는 것이고, 내가 사는 공간에 이미지를 입혔던 경우다. 후자는 텅 빈 화판에 몸을 쏘는 거다. 후자는 전자와 달리 실제의 몸을 쏘는 거라 반대다. 그래서 맞물리는 점이 있다고 본다. 두 개 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데, 후자를 선택한 셈이다. 앞서 말했던 대로, 현실과 가상 사이의 긴장에 관심이 있다. 경계에 대한 관심이다. 이런저런 실험을 하다가, 나의 몸이 개입이 되면서, 표면에서 형성되는 긴장감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전시공간이란 조건에서 잘 보여주기에 알맞은 형식이라고 생각했다. 방안에서 투영하는 것을 보여줄 수는 없었고, 세트장처럼 옮기면 의미가 약해질 듯 싶었고. 그래서 방향을 후자로 잡았다.

하지만 <문과 벽> 작업은 언젠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언제나 한다. 홈페이지에 올라가 있을 뿐이지, 전시 같은 형식으로 공개한 적이 없다. 언젠가는 잘 발전시켜 보고 싶다.



II. 매체―몸―여성


Can't Reach You + Unveiled 02, video installation, dimension variable, 2012


AliceOn. 이 관계는 쓰기 좋은 주제다. 쟁점으로 만들기 좋은 주제기도 하고. 그래서 조금 걱정이 든다.

다행히 생각보다 여성과 관련시키는 사람은 없었다. 여자인지도 잘 모르는 경우도 있었고. 퍼포먼스를 할 때 여성성을 최대한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여자의 몸이기 때문에, 당연히 나오는 반응이 있다. 그런 부분은 최대한 줄이려고 했다. 뚜렷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먼저 묻지 않으면 이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 처음에는 불편해서 그랬다. 다음에는 밝히지 않고 사람들이 봤으면 바랐다. 이 사실을 먼저 말하면 색안경을 끼고 여자의 몸과 작가의 몸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내 작업에서 중요한 점은 여자의 몸이 아니다. 성차나 성정체성을 묻는 작업이 아니기 때문이다.

AliceOn. 애매한 점이 있다. 남성작가가 몸을 주제로 작업을 많이 하지 않는 이유가 있다. 남자는 보이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자는 언제나 보는 자고, 보이는 자는 여자다. 서구에서 1970년대 많은 여자작가들이 몸을 주제로 삼았던 이유는 몸이 남자들의 욕망을 폭로하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몸을 등장시키면 성적인 함축이 사라지기 힘들다. 역사적인 맥락에서 그런 쟁점이 형성될 수밖에 없다.

나는 그게 싫고 불편하다. 피할 수가 없지만, 원하지 않는 방향이다. 그래서 내 몸이 아니라, 다양한 몸을 써보고 싶지만, 섣불리 하기가 어렵다. 몸의 담론이 워낙 세서, 재미 삼아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최근에 실로 연결하는 작업을 한다. 몸하고 멀어지는 작업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한다.



III. 몸, 상호작용, 그리고 소통


trace ; working title, 2009


AliceOn. 최근 작업에도 몸이 등장하는데, 몸을 쓰면서 소통을 다루는 게 잘 맞는 궁합이라고 보기는 어렵지 않을까. 비슷한 작업을 보면, 놀이가 되는 경향이 많다.

과정은 그렇다. 그런데 작업을 체험하고 나서 원래 이런 이야기였나 하는 반응이 있어서 재미있게 생각한다. 오히려 정신 없이 몸을 쓰고서, 이후에 진지하게 생각하더라. 이럴 때는 기쁜 마음이 든다.

AliceOn. 소통도 두 가지로 나뉘어 볼 수 있다. 내밀한 감정을 주고받는 소통, 그렇지 않은 소통. 난독을 주제로 했던 초기 작업을 보면, 내밀한 소통에 관심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 어느 쪽인가.

내밀한 소통에 관심이 많지만, 내밀하게 풀어내는 것은 불편하다. 작가가 드러나는 것, 개인의 트라우마가 전면에 부각되는 방식으로 풀어내지는 못한다. (그런 작업은 센 게 많은데) 세지 않더라도 소소한 것이라도, 자기 이야기를 부각시키는 작업이 있는데, 해보고 싶어도 잘 안 된다. 혼자서 해 본 적은 있는데, 너무 불편했다.(웃음) 일반적인 방식으로 내밀한 각자의 문제를 생각해 보는 계기와 기회를 주고 싶다. 각자의 내밀함을 돌이켜 볼 수 있는?

AliceOn. 깔끔한 것을 좋아하는 것이다.

맞다. 자기 방어적인 면모가 강하다. 요즘 정신분석 소설을 보고 있는데, 나와 비슷한 인물이 있어서 재미있게 보고 있다. 자기 방어적이고, 깊게 개입하는 것을 꺼리고, 발 한 쪽만 담그고 언제나 도망갈 준비를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가끔은 내지르는 작업들, 자기의 소소한 이야기를 고백하는 작업들이 부럽다.

AliceOn. 불완전 연소하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표출하는 작업은 모양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작업은 정말 정제되지 않는 작업들이다. 나는 보여졌을 때 효과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AliceOn. 몸을 쓰는 작업이 그래서 조금 의외였다. 초기 작업을 그대로 갈 필요는 없지만, 그 자리를 몸이 차지할 필요는 없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때는 몸을 쓰는 게 재미있었다. 나를 제외한 다른 학생들 작업은 전부 기계적이었다. 석사과정 끝에 나온 작업이었는데, 무리에서 나만 순수미술을 전공했다. 여러 가지 기술적인 접근을 하다가 몸이 등장하니까 신선했다.

AliceOn. 무엇인가 풀리는 느낌?

그랬다. 생각해 보니 이런 점도 있다. 내가 드러나는 것을 싫어하는 성향 탓에 천 뒤에 있으니까 편했다. 나라고 말하지도 않아도 되니까. 지금 얘기하다고 생각하니 그렇다. 유학 초기에 말도 잘 못하고, 나만 비영어권 사람이었다. 고립된 상황에서 몸은 꼭 여자의 몸이 아니었다. 혼자 새벽에 학교에서 여러 가지 해보다가 어느 날 몸을 썼는데, 편안했다.



IV. 매체작업의 동기


"부비다", installation view, Nanji Gallery, NANJI Residency, Seoul Museum of Art, Seoul, Korea


학교 다닐 때 그림을 그리는 게 싫었다. 캔버스가 쌓이는 게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웃음) 꼴보기 싫은 나의 그림들이 공간을 잠식해 목을 조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 비디오를 시작했다. 물질적으로 무엇인가 안 남는 게 좋았다. 평면에 한계에 부딪혔던 시기였다. 그러다가 시간을 다루게 되었고, 설치를 하면서 공간까지 다루면서 재미가 있었다. 다른 회화수업에 비하면 비디오수업도 많지 않았다. 여러 가지 해보다가, 디지털을 하게 되었다. 필름편집 이상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게 계기였다. 졸업전시도 비디오로 했다. 다 꺼버리면 남지 않는 게 좋다. 남아서 포장해 보관하는 게 싫었다. 그러다가 대학원에 진학했는데, 회화를 더 많이 요구하는 상황 때문에 고민이 많았다. 한 학기만 다니고 밖으로 나갔다. 그렇지만 서양화를 배웠던 배경 때문에 평면과 표면에 관심이 자연히 묻어나왔다.

AliceOn. 다른 사람들은 어땠나.

매체를 주로 다루는 없었다. 왜 그랬을까. 사진이나 비디오까지는 한다. 지금까지 한다. 하지만 컴퓨터를 주로 많이 쓰는 사람은 없다. 내가 보기에는 세대간의 골이 좀 있는 것 같다. 90학번까지는 비디오를 많이 했다. 찍어서 편집하는 과정, 찍고 편집하는 것은 매우 즉각적이다. 2000년으로 넘어오면서 디지털로 넘어가게 됐다. 나는 재미있었지만, 다른 사람은 그렇지 않아 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많이 그만뒀다. 결국 그 언어가 맞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2010년대 학생들은 디지털매체를 수용하는 감수성이 너무 즉각적이다. 휴대폰도 나는 대학교 졸업하고 쓴 경우다.

AliceOn. 내 세대는 습득해야 하는 언어라면, 지금 세대는 태어날 때 보유한 언어다.

내 세대는 낀 세대다. 비디오만 해도 장비는 어떻게 구해야 하고, 어떻게 캡쳐를 하고 등등, 매체를 다루는 스트레스가 있었다. 지금 세대는 휴대폰으로 바로 찍고 편집해 올린다. 즉각적이다. 그 이상의 코딩을 가르쳤을 때 반응이 내 세대와 다르다. 몇 년 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궁금하다.

AliceOn. 개인전 계획은 있는가.

내년 상반기에 공근혜갤러리에서 할 생각이다.

AliceOn. 좋은 작업 기대한다.
 


강이연 작가 홈페이지

http://www.yiyunkang.com/index.html

Interview : 김상우 (미학, 앨리스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