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바람과 시간의 풍경 – 김태은 개인전 _exhibition review

알 수 없는 사용자 2007. 1. 18. 20:46



거대한 바람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반복되는 빛과 어두움.


전시장 중앙에 놓인 나무 탁자 위에서는 크고 작은 프로펠러가 제각기 돌아가고, 그 앞에 설치된 트리아드 빌딩 모형은 조각 조각 바람에 따라 흔들린다. 두 대의 카메라는 그 모습을 열심히 쫓아 전시장 벽면에 쏘아 보내고, 두 개의 시선에 잡힌 이미지는 바람과 시간의 순간성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된다.  


미디어 작가이자 영화감독,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폭넓은 활동을 보여주고 있는 김태은의 3번째 개인전이 청담동 트리아드 갤러리에서 열렸다. 2000년 <시각적 봉입장치>전, 2003년 <독毒>전 이후 3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는 <Double Exposure: Wind & Time>란 주제를 내세워 ‘이중적이고 상대적인 두 물질 사이의 역학관계’를 풀어내고자 한다. 바람과 시간이라는 절대적인 자연의 법칙. 유사점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이 두 힘 간의 물리적 불일치성은 너무 거대하기 때문에 생활 속에서는 쉽게 잊고 지내거나, 인식할 경우라 해도 상대적인 긴장 구도로 여기게 된다. 그러나 서로 상반된 듯한 이 두 힘의 관계는 작가가 설치해 놓은 기계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비로소 일정한 관계의 법칙을 지니게 된다. 거울을 향해 올라가는 소형 자동차, 바람에 따라 도는 프로펠러, 끊임없이 루핑(looping)되는 건물 이미지, 턴 테이블의 회전 운동 등 김태은의 작품에서 움직임은 주로 반복적이거나 회전, 왕복 운동처럼 원점에서 되풀이되는 성격을 가진다. 이러한 단순한 동작은 물질 자체를 변형시키고 그 내성을 재인식하게 하는 계기를 제공하여 상호 이중의 관계를 만들어낸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기계의 움직임 속에서 날이 선 긴장보다는 상호를 존중하며, 서로를 밀어내기보다는 서로의 성질을 그대로 지닌 공통된 의미를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앞서 묘사한 작품 [Triad Building unwrapped]은 빛과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구조물의 시각적 이미지와 청각적 경험을 통해 무형의 힘으로 이루어진 심리적 공간을 새로이 구축한다. 전시가 이루어지는 트리아드 빌딩의 외형을 모델링한 가상의 건축물은 파편화되어 바람에 날리고, 낮과 밤을 상징하는 빛과 어두움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주기적으로 뒤바뀐다. 해체되어 흔들리는 건축물의 생경한 모습은 실제처럼 느껴지기에 더욱 낯설게 다가오고, 이는 우리의 삶 속에 보이지 않게 공존해 온 ‘바람’과 ‘시간’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힘을 경험하게 한다.






시각과 청각이라는 서로 다른 감각은 김태은의 작업을 통해 공통된 성질을 가진 물질로 변형되는 과정을 겪게 된다. 이러한 공감각의 과정은 두 개의 턴 테이블로 이루어진 [Circle drawing]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LP판을 회전시키며 소리를 만들어내는 턴 테이블의 움직임을 선 드로잉으로 시각화한 이 작업은 ‘청각의 시각적 복사물’로, 청각이라는 원본과 시각이라는 원본에 대한 리메이크를 공통으로 드러냄으로써 의식의 충돌을 가져온다. 예상치 못한 부조화는 오히려 내재된 힘의 대한 재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이번 전시에서 또 하나의 중요한 요소는 건축적인 구조에 대한 관심이다.  트리아드 갤러리라는 장소성에서 출발한 이 같은 관심은 실제 건축의 이미지를 해체하고 재조합하는 영상, 설치 작업으로 나타난다. ‘트라이드 빌딩이 거대한 바람개비를 달고 풍력에 의해 성장하고 변형되면 어떠한 모양일까’라는 작가의 궁금증에서 출발했다는 [Triad Building unwrapped]는 실제와 똑같은 모형을 가상의 공간에서 다양하게 모델링함으로써 이러한 관심을 매우 구체적으로 심화시킨다. 그 외 건물의 벽면을 3D 영상으로 표현한 [차가운 기념비]에서 4개의 PDP는 세로로 길게 쌓여져 공간의 연속성을 되새긴다. 지금 이 순간에도 멈추지 않는 시간이라는 자연의 법칙은 이미지를 쉴 새 없이 변화시키고, 관객은 그 앞에서 빛과 바람이 만들어내는 가상의 공간을 체험하게 된다.








우리 삶에 내재된 다양한 힘들 간의 이중(二重)관계를 복잡하지 않는 기계 장치로 구체화 해왔던 김태은의 이번 전시는, 전작에서 다루어 왔던 기계 장치가 가진 소통의 힘을 발전시키고, 공간에 대한 연구를 본격화했다는 점에서 진일보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공기처럼 익숙한 풍경들이 그의 기계를 만나 좀 더 풍성하게 바뀌게 되고, 이를 통해 그가 의도하는 이중의 의미는 극대화된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바람과 시간, 빛과 어두움, 시각과 청각 등 서로 다른 것 사이의 경계를 흥미진진하게 그려내는 그의 다음 작업이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