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report

transmediale 2013 Back When Pluto Was A Planet_world report

kunst11 2013. 2. 4. 14:17


당신의 플루토는 어디 있나요? 

명왕성(Pluto, 冥王星)을 기억하는가? 명왕성은 이제 우리에게 존재하지 않는 별이 되어버렸다. 2006년 8월 24일, 태양계의 아홉 번째 행성인 명왕성이 태양계에서 행성 지위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하늘에 떠 있는 별이 갑자기 어떻게 없어지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급격한 변화나 공고해 보이던 기존 체계들의 붕괴는 그리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현재 우리는 새로운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아주 근원적인 부분에서부터 변화하고 있으니까.

트랜스미디알레(Transmediale)는 매년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되는 세계적인 미디어아트 페스티벌이다.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주도적인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중 하나인 이 행사는 매년 새로운 기술이 문화·사회적 장벽을 넘어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고, 장르를 넘어 예술과 어떻게 교차하는지 보여준다. 행사의 프로그램은 컨퍼런스와 전시, 현장 퍼포먼스와 비디오 상영 프로그램, 워크숍 등이 있는데 매년 1월 말에서 2월 초 약 일주일 동안 베를린 전역에서 전방위적으로 열린다. 트랜스미디알레의 큰 특징이라하면 전시 중심의 페스티벌이 아닌 예술 실천적인 프로그램들이 다양하다는 점이다. 아티스트와 전문가집단, 관람객들이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미디어기술의 발전으로 인한 사회변화에 대한 이슈들을 담론화하고, 예술의 실천적인 행위들에 대해 공유하며 더불어 인문학적인 담론들을 제안한다. 올해는 1월 29일 부터 2월 3일까지 베를린의 미술관 ‘세계 문화의 집(Haus der Kulturen der Welt, HKW)’을 중심으로 축제가 열렸다. 독일 정부의 전폭적 지원으로 열리는 트랜스미디알레는 현재까지 매회 2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가는 축제. 연계 행사 중 하나인 클럽 트랜스미디알레(CTM) 페스티벌은 클럽 문화가 활발한 베를린의 지역성을 활용해 일렉트로닉과 디지털 형식의 음악에 집중한 미디어 퍼포먼스 프로그램 및 공연 등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클럽 트랜스미디알레만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마니아층도 늘어가는 추세다.

Pluto Y U No Planet? transmediale 2013 opening ceremony

Haus der Kulturen der Welt in Berlin 세계 문화의 집

transmediale 2013 opening ceremony


1960년대 백남준을 비롯한 플럭서스(Fluxus) 그룹이 독일과 미국에서 비디오아트를 선보인 후 최근까지, 미디어아트는 실험적이고 아방가르드한 예술이라는 생소한 역할을 넘어 현대 예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가장 다양하고 ‘핫’하게 보여주는 장르로 자리 잡고 있다. 미디어아트의 시작을 위와 같이 이해해보자면, 독일은 미디어아트 및 실험적 예술의 본고장이라고 볼 수 있다. 미디어아트의 기반이 되는 매체 이론에서 독일 철학자들은 여전히 주도적이며, 독일 칼스루헤의 ZKM 과 같은 대표적 미디어아트 전문 기관을 통해 이론과 실제작업을 아우르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이 융합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한국 작가인 문경원, 전준호가 참여한 독일 카셀 도큐멘타 역시 대표적인 독일의 아트 페스티벌이다. 이들을 통해 독일에서는 이론과 실제 작업을 아우르는 장르간 융합이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역사적으로 정통성 있는 아트 페스티벌의 본거지 역시 독일이다.


Sound Art Performance, de/Rastra by Kyle Evans © Seth Connway

Instrumentarium II. (BWPWAP Edition) by Boris Hegenbart and Felix Kubin

-logy, performance by Vanessa Gageos © Melanie Twele / transmediale

그렇다면, 2013 년 트랜스미디알레의 특징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언급한 명왕성에 관한 이야기는 이번 트랜스미디알레가 주제로 내세운 ‘BWPWAP’, 즉 ‘Back When Pluto Was a Planet (플루토가 행성이었을 때로 돌아가자)’에 관한 설명이다. 트랜스미디알레 2013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적인 주제이자 소재인 ‘플루토’는 우리가 믿고 있던 명확한 세계 질서 역시 바뀔 수 있다는 명제 아래 '변화'와 '회귀'에 대한 반성을 촉구한다. 행사는 4가지 소주제로 구성된다. 현대인에게 친숙해져버린 ‘사용자(Users)’ ‘네트워크(Networks)’ 같은 키워드를 시작으로 서구인들의 역사에 관한 탐구 주제인 ‘종이(Paper)’와 기술에 대한 새로운 ‘욕망(Desires)’이 그것.

구체적으로 페스티벌의 주요 참여자와 프로그램의 면면을 살펴보면, 생성 예술로 유명한 소니아 셰리던(Sonia Sheridan)의 전시로 페스티벌의 시작을 알리고, 미디어 이론가인 이안 해킹(Ian Hacking)이 트랜스미디알레의 강연 프로그램인 ‘맥루한 렉처’를 담당한다. 영상 작가 크리스토프 지라데의 영화 <Everything but the Planets>이 행사 시작 전에 상영되고, 전자 음악가인 보리스 하겐버트(Boris Hegenbart)와 펠릭스 커빈(Felix Kubin)의 일렉트로닉 뮤직 퍼포먼스가 열렸다. 조명 및 음향 전문가인 필립 스턴스(Phillip Stearns)의 퍼포먼스 프로그램 역시 흥미롭다. 다른 한편으론 전자매체의 쓰레기 문제에 대해 고민해보는 E-Waste 워크샵 등 환경을 생각하는 의미있는 프로그램도 있다. 이 외에도 트랜스미디알레에서는 지구상의 우리 모두가 직면하고 있는 거대한 변화를 조명하고 반성하는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풍성하다. 



E-Waste workshop © Giulia Baccosi / transmediale

Phillip Stearns 'Flourescene' © OnSite 2012

유럽 최대의 미디어 페스티벌이라는 이름값에 걸맞게 세계적인 명성의 영상 작가들의 포진도 눈에 띈다. 가장 주목받았던 것은 전설적인 영화감독인 알레한드로 조도로브스키(Alejandro Jodorowsky)와 영국뿐 아니라 세계 미술계가 주목하는 2012 영국 터너 프라이즈의 수상자 엘리자베스 프라이스(Elizabeth Price)의 참여다. 페스티벌의 피날레 하루 전 1973년 영화 <더 홀리 마운틴(The Holy Mountain)>의 알레한드로 감독이 참여하는 In the Jodoverse and Beyonds는 퍼포먼스와 영상작품 상영, 아티스트 토크 등으로 구성된 컨퍼런스로 알레한드로 감독의 작품 세계를 조망하고 그의 작품에 영향을 받은 많은 아티스들의 퍼포먼스와 영상작품 상영 등이 있었다. 1929년 칠레 태생의 알레한드로 감독은 영화감독뿐 아니라 배우이자 만화가이기도 한데, 공격적이고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가득한 영화를 선보이는 그는 지금까지도 컬트 무비 마니아들의 열렬한 숭배 대상이다. 영국의 비디오 아티스트인 엘리자베스 프라이스는 일상생활 속에 숨어 있는 뜻밖의 이미지, 뉴스 클립 속의 충격적인 사건 사고 등을 색다르게 변주해낸다. 이번에 상영되는 <울워스 합창단 1979 (The Woolworths Choir of 1979)>은 1979년 영국 맨체스터 울워스 백화점 화재 사건을 소재로 한 영상작품으로 텍스트와 영상, 음악을 신선하게 구성해낸다. 

Return to the World of Dance (2011) by Dan Boord, Luis Valdovino & Marilyn Marloff, video, 7min
© Dan Boord , Luis Valdovino & Marilyn Marloff

Malraux's Shoes (2012) by Dennis Adams, video, 42min © Dennis Adams

알레한드로 조드로브스키 <더 홀리 마운틴>의 한 장면 Photo Credit ©1973 ABKCO

Gatekeeper2013 performer Gatekeeper 'Exo' show ©Tabor Robak

The Woolworths Choir Of 1979 (2012) by Elizabeth Price, video, 20 min © Elizabeth Price / LUX

The pluto in me, Exhibition Opening, ARTCONNECT BERLIN, Juan Quinones / transmediale

Refunct Media Presentation, Juan Quinones / transmediale

MeLuhan Lecture 2013 with Ian Hacking

Mail Art in the GDR(General Distribution Release) 컨퍼런스

 BWPWAP Networks with Geert Lovink 컨퍼런스 현장

Digital Memory and the Archive & What is Media Archaeology? 워크숍 현장 © Giulia Baccosi / transmediale


새롭다는 기준은 시대별로 다르다. 지금 사진 기술은 너무나 일상적이지만 사진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도, 뉴 미디어라 각광받던 시절도 있었다. 하룻밤 자고 나면 ‘뉴’하고 ‘핫’한 기술이 뜨고 지는 현재에 새로움이란, 매체의 새로움이 아닌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이고 그것을 담아내는 것이라 말한다.
살펴본 것 처럼, 2013 트랜스미디알레는 플루토라는 주제를 앞세워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의 크고 작은 변화에 주목한다. 미래는 변한다. 변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미래를 받아들이고 빠른 변화에 순응하고 때론 매혹되는 사이에 우리의 기억 속, 과거에 존재했던 '플루토'와 같은 행성은 지워져 버렸다. 그러나 이제는 지워지고 잃어버린, 그리고 변화하는 것들을 다시 기억해야 할 시기인지도 모른다. 과거를 통해 우리는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 그럼 다시 밤하늘을 올려다보자. 과연 우리의 별 ‘플루토’는 어디쯤에 있을까.  


글. 정세라 (앨리스온 편집위원 / sera.j1124@gmail.com )


*이 글은 멤버쉽 매거진 뮤인(MUINE) 2월호에 기고한 글을 수정 보완하여 다시 게재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