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미디어아트 전시

‘빈티지’ 비디오아트, 1963-1983 비디오아트의 서사 _exhibition review

yoo8965 2013. 12. 26. 18:30


 11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했다. 이에 몇 가지 기념이 될 만한 기획전의 하나로 프랑스 국립 퐁피두센터의 뉴 미디어 소장품 특별전인 <비디오 빈티지 1963-1983>전이 기획되었다. 퐁피두센터 뉴미디어 학예연구실장인 크리스틴 반 아쉬와 플로렌스 빠로가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는 지난해 2월 퐁피두를 시작으로 독일, 레바논을 거쳐 이번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것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52명의 작가들의 작품 72점을 비디오가 등장하던 시기와 같은 관람 환경의 빈티지 스타일 공간 속에서 경험할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 가면, 우리는 늘 백남준의 ‘다다익선’을 만나게 된다. 1003개의 모니터를 18미터 높이로 쌓은 초대형 비디오타워는 88년 설치 이후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렇듯 이제는 과거가 되고, 역사가 된 비디오아트의 초기 20년을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현재의 시점으로 과거를 회상하듯 그 시절의 태도와 형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TV가 보급되기 시작했던 1960~70년대 거실은 벽난로 대신 TV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어두운 조명 아래 소파에 앉아 그 TV를 관람했다고 한다. 그 모습을 재현한 전시장에서 비디오테이프로 제작된 작품을 구형 CRT 모니터로 관람하다 보면, 어느새 시공간을 초월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전시 제목 ‘비디오 빈티지’는 이러한 측면에서 빈티지한 공간 자체와 작품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본래 기획자인 퐁피두센터 뉴 미디어 수석 큐레이터인 크리스틴 반 아쉬의 말에 따르면 좋은 와인을 ‘빈티지 와인’이라고 하는 것처럼, 좋은 비디오 작품을 ‘빈티지’라고 일컬어 붙이게 되었다고 한다. 


백남준의 초기작을 포함해 윌리엄 웨그먼, 앤트 팜, 게리슘 등 비디오아트 대표작가라 꼽히는 이들의 작업을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었던 이번 전시는 퍼포먼스와 셀프촬영 작품부터, 텔레비전의 발전과 관련된 경험, 보다 개념적이고 비판적인 연구를 담은 작품까지 비디오아트 태동기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는다.



[1부] 퍼포먼스와 셀프 촬영


백남준, <버튼 해프닝 Button Happening>, 1965, 흑백, 사운드, 2분


"비디오는 집안의 친구와 같다. 그 안에서 나는 관람자와 얼굴을 가까이 마주할 수 있고, 관람자와 한 공간 안에 존재할 수 있다."
-비토 아콘치(Vito Acconci)

1969년 오스트리아 비엔나 청년 세대 갤러리의 멀티미어 전에서 발리 엑스포트 Valie Export in the Multimaedia Exhibition, 1969, Junge Generation Gallery, Vienna(Austria)(C)Bernd Junker, Courtesy Valie Export


1960-70년대 남미, 북미 및 유럽지역 작가들이 비디오 매체를 처음 사용한 작업들이 소개된다. 작가들은 자신의 퍼포먼스와 셀프 촬영을 시도하며 사회정치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업을 시작했다. 이 당시 포터팩(Portapack) 비디오카메라가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되어, 비디오아티스트들은 비디오라는 매체 자체의 특성에 대해 연구하게 된다. 따라서 자신의 행동을 촬영하여 녹화된 영상을 보게 되는 ‘체험’ 자체에 매혹된다. 백남준의 초기작인 <버튼 해프닝> 역시 그러한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그가 소니 포터팩 비디오카메라를 새로 구입한 첫날, 카메라를 틀어놓고 그 앞에서 자신의 재킷 단추를 풀었다 잠궜다를 반복하는 초창기 퍼포먼스다. 정적인 화면에서 움직임에 대한 연구였던 샘이다.


비슷한 시기에 발리 엑스포트(Vali Export)는 <신체 테이프> 작업을 한다. 1940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는 발리 엑스포트의 작업은 퍼포먼스, 사진, 비디오, 드로잉, 저술, 영화, 설치를 아우르며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의 사회적 위치를 탐색하는 수단이 된다. 오토 무엘(Otto Muehl), 헤르만 니치(Hermann Nitsch)와 같은 다른 빈 출신의 액셔니즘(Actionism)작가들처럼 엑스포트도 자신의 신체를 가지고 작업하며, 사회가 부과한 한계를 넘어 대중과 직접 대면하려 한다. <신체 테이프> 작업에서는 만지기, 상자에 담기, 느끼기, 듣기, 맛보기, 걷기라는 자막과 함께 제시되는 일련의 미니멀리즘 제스처를 통해 단어와 행위 사이의 관계를 탐험한다. 이처럼 초기 비디오아트 작품에서는 평면의 회화나 사진이 담지 못하는 신체의 움직임 자체에 대해 흥미를 느끼며, 그 모습을 담는 매체로서 비디오를 이용한다.



[2부] 텔레비전: 연구, 실험, 비평

"오늘날 조이스가 살아있다면 그는 분명 마그네틱에 담긴 정보를 무한히 조작할 수 있는 비디오를 이용해 <피네간의 경야>를 창작했을 것이다."
-백남준(Nam June Paik)

초기 영화사와는 구분되는 비디오라는 매체를 가지고 시도되었던 실험을 주로 소개하며 정치적인 목적으로 텔레비전의 공공성을 탐구한 작품(고다르Godard), 비디오 시그널과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수동적 매체가 아닌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텔레비전의 역할을 모색한 작품(백남준 Nam Jine Paik), 텔레비전을 통한 예술작품의 재현과 이미지의 배포를 시도한 작품(게리 슘 Gerry Schum), 미디어가 지배하는 세상을 비평적인 시각으로 접근 한 작품(앤트 팜 Ant Farm) 등이 소개된다. 특히 텔레비전이 대중에게 보급되면서 비디오아트의 새로운 방향이 모색된다. 녹화된 비디오 작업이 전파를 타고 각 가정의 TV에서 방영될 수 있게 된 것이다. 1968년 샌프란시스코에서 예술가와 건축가들로 구성된 앤트 팜(Ant Farm)은 미국에서 반자본주의 게릴라 캠페인을 벌였다. 이들의 작품인 <영원한 프레임>은 TV로 중계된 최초의 비극인 존F.케네디 미국 대통령의 암살을 재연하는 작품이다. 미국 대통령의 사망이 새로운 미디어 이벤트가 된 방식을 탐구하며, 작가들이 직접 소파에 앉아 TV를 보는 모습이 나타난다. 이 장면을 모티브로 이번 전시 설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빈티지 가구부터 TV를 시청하는 자연스러운 모습까지 장면의 재현이 곧 우리의 관람이 된 것이다.

앤드팜, <영원한 프레임 The Eternal Frame>, 1975, 컬러, 흑백, 사운드, 23분50초



[3부] 태도, 형식, 개념

"텔레비전 덕분에 예술가는 자신의 작품을 하나의 개념을 담은 태도, 즉 하나의 제스처로 단순화할 수 있다."
-게리 슘(Gerry Schum)

존 발데사리, <나는 예술을 만들고 있다 I Am Making Art>, 1971, 흑백, 사운드 18분 40초

3부에서는 비디오라는 매개체에 대해 고찰, 연출적인 요소들의 등장, 신체를 촬영하고 텍스트와 내러티브를 인용하는 등의 방식을 통해 "태도"를 기록하고 구체적인 형태와 개념을 거부한 작업을 소개하며 장르의 발전에 기여한 작업들이 소개된다. 작가들이 이렇게 매체적 특성을 넘어 작품에 담기는 내용에 관하여 고민함에 따라 보다 개념적이며 비판적인 연구들이 수행된다. 존 발데사리(John Naldessari)는 미국 개념미술의 주요 작가 중 하나로, 60년대의 전설적 회화에서부터 80년대의 포토콜라주와 설치작업에 이르는 작업들을 통해 포스트모던 미술을 재정의하는데 기여했다. 그의 작품 <나는 예술을 만들고 있다>에서는 신체미술과 퍼포먼스를 반어적으로 가리켜 내용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작업에 도전한다. 완벽히 익힌 제스처로 손, 팔, 몸 전체를 매우 정확하게 움직이며 ‘나는 예술을 만들고 있다’라는 문장을 매 동작을 시행할 때마다 읊조린다. 마치 매순간 예술이 창조되고 있는 듯, 문장은 매번 다른 뉘앙스와 억양을 띠고 발화된다.


  비디오아트는 단순히 비디오와 TV를 사용하는 매체 특징을 넘어 개념적이고 비판적인 담론의 장으로서 그리고 대중과 소통을 꽤하는 만남의 장으로서 역할을 했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시대를 경험해 사진, 비디오, TV에 익숙한 현재의 미적체험으로는 비디오아트가 갖는 놀라운 구현에 대해 인지할 수 없다. 따라서 이번 국립현대미술관의 <비디오빈티지>전에서는 단순한 백과사전식의 나열로 작품을 보여주는 방식을 탈피하여 초기 비디오아트의 체감을 전시했다고 볼 수 있다. 언어로 배운 역사가 아닌, 몸으로 배운 역사가 될 수 있는 전시를 통해 비디오아트의 발전상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갖길 바란다.



글. 이진(앨리스온 수습에디터)

*위 글은 ‘월간 미술세계(11월)’에 실은 내용의 수정본입니다.
*참고/ 국립현대미술관 보도자료